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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것이 저자의 지식과 경험을 응축하여 조리있게 정리된 저작물이다 보니, 한 번의 독서로 완전히 읽는 사람의 지식으로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서평, 후기 같은 되돌아보는 글을 적어보면 읽는 이의 시각으로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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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이런저런 봉사를하며, 봉사자들을 만나고 또 신부님과 함께 나눔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는데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던 차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 책에는 1부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에서 사랑의 단계를 4단계로 나누어서 제시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어느단계에 해당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2단계~3단계 그 어느사이쯤 머물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어라구요. 모태신앙으로 가늘고 긴...신앙생활을 하던 제가 최근 몇년 사이에 다양한 성당 내 봉사활동을 하면서 3단계에 써 있는
이 부분에 있어 제가 봉사하는 이유가, 이웃사랑=하느님사랑=큰 계명 이렇게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4단계인 영성의 최고봉까지 오를려면, 저는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기주의와 물질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이기적 사랑'에서 '순수한 신적 사랑'으로 나아가라는 성인의 권고가 담긴 책으로 단순한 신학 이론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이끄는 실천적인 영성 지도서인 <신애론>이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영적여정에 지속적으로 읽으며 참고해야 할 책을 만난 것 같아서 좋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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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론》이전에《그리스도의 탄생》을 읽으며 마음에 붙들었던 인물은 바오로 사도였다. 어떻게 한 사람이 회심 이후 자신의 삶 전체를 그렇게까지 예수님께 내어맡길 수 있었을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때로는 무모해 보일 만큼 한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과연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님은 왜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만큼 강렬한 존재가 되는가. 그리고 《신애론》을 만났다. 성 베르나르도는 이 책에서 신앙을 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를 끝까지 붙든다. ‘우리는 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이 문장이 낯설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라는 표현은 어딘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랑이 어떻게 의무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사랑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랑은 인간이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먼저 주어진 사랑에 대한 응답에 가까웠다. 우리는 대개 필요해서 하느님을 찾는다. 위로받고 싶을 때, 삶이 흔들릴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붙잡고 싶을 때 그분을 찾는다. 베르나르도 역시 인간 사랑의 시작점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앙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사랑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와 도움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그분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방향으로. 이 대목을 읽으며 문득 바오로가 떠올랐다. 회심 이후 그의 삶은 더 편안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외롭고, 더 고통스럽고, 더 위험한 길로 향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만약 신앙이 단순한 확신이나 교리였다면 그렇게까지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마 바오로를 끝까지 움직이게 만든 것은 논리가 아니라 사랑이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신앙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기꺼이 나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가. 결국 신앙은 그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신애론》은 동시에 불편한 책이었다. 너무 맑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현실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쉽게 지치고 흔들린다. 기도보다 해야 할 일이 먼저 떠오르고, 사랑보다 계산이 앞설 때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지금의 나는 과연 어디쯤 와 있는 사람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깊이 남는 이유는 사랑을 완성된 상태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위해 시작되지만, 조금씩 하느님을 향해 움직여 가는 것. 어쩌면 신앙 역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단번에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시 그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것. 《그리스도의 탄생》이 믿음의 시작을 묻는 책이었다면, 《신애론》은 그 믿음이 어디를 향해 자라가야 하는지를 묻는 책처럼 느껴졌다. 이해에서 믿음으로, 믿음에서 사랑으로. 그렇게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단순히 설명해야 하는 분이 아니라, 끝내 사랑하게 되는 분이라는 것을. 어쩌면 신앙은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내 삶 안에 와 있던 사랑을 뒤늦게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오늘도 아주 천천히 우리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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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두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