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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하지만 그거,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에요.」 「어떤 점에서요?」 「보일 겁니다.」 (181p)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관계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되는 거죠. 부모와 자녀 사이가 그렇죠. 아멜리 노통브의 장편소설 《자매의 책》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네요. 작가는 이 작품을 트리스탄처럼 자신을 돌봐준 언니 줄리에트에게 바쳤다고 해요.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해요. 젊은 연인들, 플로랑과 노라가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첫 아이가 트리스탄인 거예요. 주인공 트리스탄은 착한 아이라는 저주에 걸렸고, 여동생 레티시아와 사촌동생 코제트를 돌보면서 기묘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네요. 과연 트리스탄은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두 자매의 사랑은 플로랑과 노라 사이의 사랑이 치환된 게 전혀 아니었다. 플로랑과 노라의 사랑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남녀간의 연애에 속했다. 반면 트리스탄과 레티시아의 사랑은 절대적 의미의 사랑, 범주 바깥의 사랑, 목록에 없는 더욱 강력한 현상이었다. 모든 사랑인 동시에 모든 자유인 그것은 어떤 분류에 의한 변질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트리스탄은 네 살 반의 나이에 충만함을 발견했고, 레티시아는 그 충만 속에서 태어났다. 레티시아는 마음이 굶주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지만, 트리스탄은 그 고통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49p) 트리스탄의 부모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도리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잉꼬 부부지만 딸의 입장에서 본다면 최악의 부모네요. 만약 트리스탄이 그토록 영특한, 거의 천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뛰어난 아이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버텨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애착 실험은 유명하잖아요. 어미와 격리된 새끼 원숭이가 젖병이 달린 철사 엄마와 먹이는 없지만 부드러운 헝겊 엄마 사이에서 배고플 때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엄마에게 매달려 있더라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네요. 이 소설은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 아기 트리스탄을 통해 부모의 잔인함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네요. 문득 그림 형제의 잔혹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떠올랐네요. 숲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생존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두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네요. 그림 형제의 원작에서는 엄마가 친모였고 아이들을 버린 것은 굶주림 때문이었다고 해요. 근데 트리스탄과 레티시아의 부모는 지극히 평범해 보여서, 오히려 그것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네요. 어쩌면 부모들 자신만 모르는 것인지도... 일상의 모습을 24시간 카메라로 찍는다면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드러날 테니까요. 부모의 무관심과 방임 속에서 자라난 트리스탄과 레티시아, 두 자매를 통해 가장 내밀한 관계의 슬픔과 고통을 보여주고 있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매의 이야기인데도 금세 몰입될 정도로 강력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네요.
#자매의책#아멜리노통브#열린책들#아멜리노통브장편소설#자매관계의본질#자전적소설#프랑스소설#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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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자매의 책』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딸에게 나눠줄 사랑이 없었던 부모 덕에 트리스탄은 아기 때부터 스스로 글자를 깨우칠 정도로 영민했지만, 눈에 띄지 않게 사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런 트리스탄은 동생에게 자신이 받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듬뿍 쏟아주며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해준다.
악의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이나 방치가 아닌 미지근함으로 인한 결핍이나 소외에 대한 이야기로 자매가 아니어도 공감될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런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자매가 있다는 것이 엄청 부러워질 것... 트리스탄은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침울한 여자아이라는 생각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비단 트리스탄뿐 아니라 한 사람을 구성하는 것에는 어린시 절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트리스탄이 성장하며 과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깊이 와닿은 듯하다.
나도 학창 시절 정상 가족이란 단어에 대해 오래 생각해본 적이 있기에 책 속 자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 과거를 떠올릴 정도로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이나 언니와 나눴던 대화나 생각들이 그대로라 너무 공감되었다. 책 속 주인공은 언니인 트리스탄이지만 동생의 입장인 나에게까지 와닿았던 것은 동생인 작가가 자신의 언니를 위해 쓴 소설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가족 구성원에게 하나씩 책을 바쳤다는 점이 인상 깊어서 작가가 쓴 다른 가족사에 대한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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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개인적 의견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이 신기하다. 주인공(트리스탄)의 마음이 1인칭 시점으로 묘사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아직 갓난아기인 시절부터 트리스탄의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사고가 나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읽는 걸 멈출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주인공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익숙해 지긴 하지만 초반엔 조금 적응이 어려웠다.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트리스탄, 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자신들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 인생 2회차인 것 마냥 트리스탄은 그런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더이상 울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른다. 두돌이 될 무렵엔 "왜 이 아인 말을 못하지?"라는 엄마의 말에 말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대견함을 느끼기보단 기괴함을 느끼는 엄마. 트리스탄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다. 아니 방임이라는 학대를 당하는 아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부모가 동생을 낳아주었을 때, 자기가 받지 못한 사랑을 모두 동생에게 쏟을 생각에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겨우 5살 차이지만 부모처럼 동생 레티시아를 돌보는 트리스탄의 모습은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자기 희생적인 반항 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자매는 자매이상의 감정과 유대를 쌓아간다. 사실 중간 중간 묘하게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다행이 나의 걱정을 비켜가서 마음을 놓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런 묘사와 전개가 사람들에게 불편감을 주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위험한 시소위를 걷는 것처럼 흔들리며 글을 읽어내렸다. 트리스탄에게는 동생 만큼이나 아끼는 사촌 여동생이 있다. 그녀의 대모가 될 정도로 사랑한 사촌 코제트. 이야기 중후 반쯤 그려진 코제트와의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잠깐 읽는 걸 멈춰야만 했다. 나 지금 뭘 읽은거지? 나의 이성은 적잖이 동요했다. 그럼에도 트리스탄이 한 그 행동이 코제트를 위했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하면서도 소름돋게 느껴졌다. 이들은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트리스탄이 집을 떠나면서 부터는 조금음 편한 마음으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지금껏 그려지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어떤 충격보다는 너무 어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트리스탄을 딸이 아닌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엄마의 정서적 학대가 시작되지만 다행이 잘 이겨나가는 트리스탄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트리스탄이 잘못한 건 뭘까? 마지막 엄마의 그 짧은 편지는 트리스탄을 죄책감과 나락의 세계로 인도하기 충분했다. 이대로 이렇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순간 빛같은 레티시아의 한마디.. 나는 마음이 놓이면서 햇살이 스며드는 기분을 느꼈다. 이 소설은 사실 마음을 놓으려하면 한번 씩, 큰 충격을 안겨준다. 그래서 읽는내내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하게 반응하고 다른 그림을 그려낸다. 부모와 자식의 정상적인 관계는 뭘까? 적어도 트리스탄과 그녀의 부모는 아니겠지? 아무래도 트리스탄에게 너무 감정이 이입되어서 읽었던 터라 책을 읽고 나서도 나가 그녀 같은 고독하고 아픈 유년을 지낸 것 처럼 느껴진다.
결국 트리스탄이 원한 건, 사랑이었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것. 그래서 그녀의 희생이 아름답고, 그럼으로 행했던 실천이 아팠던 작품이다. 잔잔하지만 가장 거센 풍파 속에서도 표류하지 않았던 수많은 트리스탄들에게 이 소설이 힘이 되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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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노통브_자매의책 #열린책들
아멜리 노통브의 ‘자매의 책’은 여러 작품이 생각나고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다소 복잡한 작품이다. 좋은 부모는 과연 어떤 부모일까? 좋은 자매는 어떤 자매일까? 서로밖에 모르는 부모들 덕분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을 동생을 위해 쏟아 붓는 트리스탄. 불우하지만 불우하지 않은 행복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모순의 상황속에서 트리스탄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성장을 하고 발전해 가는 모습에 응원을 하게 한다. 대녀 코제트의 자살을 조력하는 장면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콤플렉스-침울한 사람-에 대한 극복의 장면은 정말 공감이 갔다. 프랑스의 ‘장녀컴플렉스’ 라고나 할까? 본인의 딸을 질투하는 엄마 노라가 정말 극도로 혐오스러웠고 언니 덕분에 자존감이 높아 본인을 단단히 지켜내는 레티시아가 부러웠다. 좋은 문장들이 많았고, 자전적 소설인지 트리스탄의 심리묘사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열린책들 지원으로 작성하였습니다.
p.49 두 자매 사이의 사랑은 플로랑과 노라 사이의 사랑이 치환된 게 전혀 아니었다....트리스탄과 레티시아의 사랑은 절대적 의미의 사랑, 범주 바깥의 사랑, 목록에 없는 더욱 강력한 현상이었다. 모든 사랑인 동시에 모든 자유인 그것은 어떤 분류에 의한 변질도 허용하지 않았다. p.74 <나는 왜 이다지도 슬플까?>..... 반응이 미지근하다고 해서 하늘에 대고 복수를 부르짖는 사람은 없다. 이건 하찮은 고통이다. p.77<모든 영혼에는 자신만의 상처가 있어, 이게 내 상처가 될 거야.> p.162 < ... 많은 사람이 사랑의 고백과 감정의 배설을 혼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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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가장 외로운 유배지 『자매의 책』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 한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플로랑과 노라, 두 사람은 곧 결혼하고 딸 트리스탄을 낳는다. 그러나 식을 줄 모르는 사랑 속에서 아이는 축복이라기보다, 둘만의 세계를 방해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트리스탄 앞에 동생 레티시아가 태어나면서, 이 독특한 가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은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기발함과 속도감 덕분에 쉽게 읽힌다. 하지만 정서적 결핍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소외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단순한 재미를 넘어 깊은 공감과 슬픔을 함께 느끼게 된다. 노통브의 작품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사회는 오랫동안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이상처럼 제시해 왔다. 그러나 그 틀은 때로 가족 내부의 결핍과 침묵을 가려버린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가정 안에서도, 아이는 충분히 외롭고 위축될 수 있다. 이 작품이 아멜리 노통브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나의 과거와 겹쳐지는 부분이 매우 많아, 읽는 내내 자주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분명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공기와 분위기 속에서 내가 어떤 감각을 느끼며 자랐는지, 그때의 나를 돌이켜 보았다. 직접적인 폭력이 없더라도, 비언어적인 태도와 분위기는 아이에게 분명히 전달된다. 나는 어른들의 미묘한 망설임과 거리감,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냉소를 보며 자랐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념하는 법을 배웠다. 원하는 것을 쉽게 말하지 않게 되었고,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숨기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트리스탄이 느꼈듯 그게 가장 안전하고도 사랑을 받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렇게 몸에 밴 방식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자매의 책』을 읽으며, 내가 ‘별일 아니었다’고 넘겨왔던 순간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과거를 완전히 지워내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는 오래된 감각과 목소리들을 하나씩 알아차리고 구분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때때로 그 시절의 방식대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매의 책』은 내게 단순한 가족 소설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내가 외면해왔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들었고,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묻어두었던 경험을 직면하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 되묻는다. 나는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트리스탄이 어머니의 편지를 태우며 과거로부터 한 걸음 벗어났듯, 나 역시 더 이상 붙들고 있을 필요 없는 감정과 방식들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바라게 되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나 자신의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려는 마음으로. 그런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쉽게 곁을 떠나지 않는 작품이다. 📚 출판사로부터 선물 받은 도서를 정성껏 읽은 후, 자유롭게 작성한 저의 기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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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만난 아멜리 노통브. 앉은자리에서 단번에 완독하고 만다. 쉬이 읽히지만 가볍지 않고, 공감되지만 진부하지 않다. 노통브의 어린 시절을 함께 엿보며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도 잠시 다녀온 듯한 감흥이다. 노통브가 자신의 언니 쥘리에트를 위해 쓴 자전적 소설이다. 제목부터 줄거리까지 모든 것이 그의 언니를 향해있다. 소설 속 언니 트리스탄과 동생 레티시아가 나누는 우애와 대화 속에 노통브의 실제 경험이 얼마나 많이 묻어있을까. 자매는 서로가 서로의 부모였으며, 서로의 세계이자 존재의 이유였다. 사랑스럽지만 아프다. 부모가 미워진다. 서로를 사랑하느라 바쁜 나머지, 두 딸에게는 한 톨의 사랑도 나눠주지 못한다니. 부모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해 이혼하면서 자녀를 서로 데려가겠다고 다투는 것이 오히려 나을까. 사실 그 어디에도 완전한 부모의 형태는 없을 테다. 부모라는 것은 늘 불완전하기에 더욱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트리스탄이 어른아이로 클 수 있었던지도 모른다. 물론 그럼에도 불편했다. 특히 엄마는 충격적이었는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뉘앙스의 문장을 읽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구태여 콕 집어서 언급해야 할 만큼 부모답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에 안타깝다는 메모를 남겼는데, 이 소설이 그에 적절히 부합한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시골 구석의 어두운 집으로 홀로 이사해 버리는 장면에서는 미움과 동시에 연민마저 느낀다. 자녀들로부터 버려질까 두려웠을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는, 그 사람에게 사랑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방향이 틀어지고 망가진 모양새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다 한들 자식 입장에서 무슨 위로가 되겠냐마는. 레티시아보다 트리스탄에게 더 이입하며 읽었다. 노통브가 언니를 위해 쓴 소설이라 그럴까, 언니인 트리스탄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낸 듯하다. 아마도 어릴 때 어른아이처럼 행동했던 경험 때문이리라. 외동이라 레티시아가 태어나기 전에 느꼈을 트리스탄의 외로움에 꽤나 공감했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동생이 있었다면 트리스탄이 레티시아를 대한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받지 못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을 것 같다. 인간이 살면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로 간추려지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한정적인 사랑을 갖고 태어나는 걸지도 모른다. 슬프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그 한두 명이 소중해지는 것이고, 트리스탄과 레티시아가 서로에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쏟아주었다는 사실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라 믿는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음에도 서로를 사랑할 줄 알았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언니 쥘리에트에 대한 긴 고백이자 헌사인 셈이다. 말로 다하지 못한 것을 소설로 풀어썼을 것이다. 읽고 난 뒤의 감정이 쉬이 정리되지 않는 건 그 때문일 테다. 설명하지 않고 함께 과거를 경험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노통브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나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음에 의미를 두고 싶다. 노통브다운 소설이다. 묘하게 불편한데 어느새 공감하게 되는 것. 너무 잘 아는 익숙한 감정인데, 그 감정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 다작을 하는 작가인데 어떤 책을 선택해도 늘 보통 이상의 감정 묘사를 해내는 것이 신기하다. 매력적인 노통브의 글을 만나보기에 적절한, 어렵지 않은 책으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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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책 #아멜리노통브 #열린책들 📚 < 책 속의 말 씨앗 > 📚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어떤 사랑은 사람을 평생 어린아이로 남겨 둔다.” “가장 외로운 아이는 혼자인 아이가 아니라, 사랑 바로 옆에 서 있는 아이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 버려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성장하지 않는다. 몸만 어른이 될 뿐이다.” “우리는 결핍된 방식 그대로 사랑한다.” “자매는 서로의 구원이 되기도 하고, 가장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 대신 자기 존재를 줄인다.” 아멜리 노통브의 『자매의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자매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평생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가”를 아주 정교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트리스탄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아이입니다. 지나치게 똑똑하고, 감정을 예민하게 읽고, 타인의 기분을 너무 빨리 눈치챕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사랑이었겠지요. 하지만 부모는 서로에게만 몰두합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는 아닙니다. 오히려 세련되고 지적이고 낭만적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압니다. 자신이 부모 사랑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이 설정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노통브는 여기서 큰 사건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감정의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아이였던 트리스탄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줄입니다. 너무 똑똑하지 않은 척하고, 너무 많이 바라지 않는 척하고, 너무 외롭지 않은 척합니다. 그 장면들을 읽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사랑받기 위해 자기 존재를 축소하며 살아가는구나. 그리고 동생 레티시아가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트리스탄은 동생을 사랑합니다. 아니, 거의 숭배에 가깝게 사랑합니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애정을 전부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핍 속에서 자란 사람의 사랑은 종종 불안과 함께 자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사랑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위태롭습니다. 읽다 보면 자매는 서로의 가족이라기보다 서로의 세계 자체처럼 느껴집니다.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지만, 동시에 서로 없이는 무너질 것 같은 관계. 노통브는 그 위태로운 감정을 아주 차갑고 간결한 문장으로 써 내려갑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아픕니다. 특히 저는 이런 감정이 오래 남았습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 본 사람은 사랑을 믿는다. 하지만 사랑이 부족했던 사람은 사랑이 사라질 가능성부터 먼저 계산한다.” 이 책은 단순한 자매소설도, 성장소설도 아닙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의 결핍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는 심리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심리 묘사가 너무 현실적이라 읽는 내내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문체도 인상적입니다. 짧고 날카롭고 건조한 문장들. 그런데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은 외로움이 가득합니다. 마치 차가운 유리잔 안에 뜨거운 물이 담겨 있는 느낌이랄까요. 읽고 나니 문득 사람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 “버려지지 않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자매의 책』은 읽고 나면 조용히 마음을 후벼 파는 소설입니다. 화려한 사건은 많지 않지만,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외로움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소설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 한 줄 정리.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평생 사랑하는 방식이 된다.” ☆추천.☆ 인간의 결핍과 애착, 외로움에 관한 섬세한 심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아니 에르노, 프랑수아즈 사강, 한강 작가의 작품처럼 감정의 미세한 균열을 따라가는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깊게 남을 작품입니다. //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이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북러버의독서노트 #완독리뷰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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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책 #아멜리노통브 #열린책들 #도서협찬 우리는 흔히 소설에서 교훈을 얻거나 주인공에게 공감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을 목격하는 것이 전부인 독서가 되기도 합니다. 다섯 살 트리스탄이 갓난아기를 돌보는 설정은 육아의 모습이라기보다, 보호받지 못한 영혼이 생존을 위해 강제로 자아를 형성해야만 했던 비극의 극대화라고 보입니다. 이 자매가 십 대가 되자 음악에 빠지는 것은 유일한 자기 방어 기제 였을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만든 공백을 스스로 채우기 위해 그들은 서로에게 집착하고, 세상의 일반적인 잣대가 아닌 자신들만의 언어로 도피한 것이니까요. 부모가 침울한 여자애라고 규정짓는걸 들은 주인공이 평생 이 단어와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사랑은 주지 않으면서 낙인만 찍어버린 부모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평생 그 말에 얽매인 것은 연대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독설조차 그가 부모로부터 받은 유일한 관심과 유산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를 구원했던 이 자매의 이야기는, 결국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지독한 생존법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이 틀렸다는걸 이 자매가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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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운전병으로 일하는 플로랑과 자동차 정비소에서 회계로 일하는 노라는 열렬한 사랑에 빠졌고, 그로 인한 결실로 딸 트리스탄이 태어났다. 보통 자녀가 태어나면 부부의 사랑은 옅어지고 자녀를 향한 사랑이 깊어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플로랑과 노라는 그 반대였다. 갓난아기는 우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플로랑은 트리스탄에게 이제 질질 짜는건 끝이라며 그만 울라고 한다. 그 후 그 아기는 울지 않았는데 불과 트리스탄이 태어난지 2주가 지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 트리스탄은 천재로 태어난 것이다. 플로랑과 노라는 이 사실을 알 리 없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아니라 관심도 없었다. 트리스탄은 자신의 부모들은 딸보다 서로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리스탄은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지 않기로 한다. 플로랑과 노라는 둘째를 원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애정을 쏟을 시간이 그 만큼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리스탄이 동생이 태어나면 젖병도 물려주고, 기저귀도 갈아 주고, 동생이랑 같이 자면서 보살펴주겠다고 하자 둘째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트리스탄에게는 여동생 레티시아가 생겼고, 트리스탄은 자신이 받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레티시아에게 쏟아 부었다. 그 때 트리스탄은 고작 다섯살이었다. 트리스탄에게 부모의 사랑은 무엇이고, 동생 레티시아를 향한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자매의 책>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레티시아가 부러웠고, 있지도 않은 언니를 향한 열망이 깊어졌다. 트리스탄은 다섯 살에 레티시아를 재우고,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놀아준다. 레티시아가 성장하면서 말과 글을 가르친다. 그런 트리스탄에게 플로랑은 어린 천재 시늉은 그만두라는 말을 한다. 나는 예쁘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여기서 플로랑과 노라는 노답이다. 플로랑과 노라가 품고 있는 사랑에는 수량이 한정되었나 보다.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양의 사랑을 준 나머지 자녀들에게 줄 사랑이 없다. 트리스탄과 레테시아는 그 사실을 알았고, 그들 역시 부모에게 쏟을 사랑을 줄이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늘려 나갔다. 트리스탄과 레티시아는 정 반대의 성격을 지니며 성장하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어렸을 때는 트리스탄이 레티시아를 돌봤지만 성장하면서 레티시아는 트리스탄의 엄마가 된다. 트리스탄은 부모 모르게 대학을 준비했고, 장학금까지 받아 학비도 나온다. 그럼에도 노라는 왜 부모랑 상의하지 않았냐며 트리스탄을 질책한다. 딱히 말을 못하는 트리스탄을 대신해 레티시아는 모든걸 척척 알아서 하는 훌륭한 딸을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고 노라에게 똑부러지게 말한다. 트리스탄과 레티시아는 서로에게 엄마가 되주기도 하고, 친구가 되주기도 하고, 연인이 되주기도 한다. 정의할 수 없는 이 절대적 사랑이 애틋하면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자녀보다 서로에게만 애정을 쏟는 부모의 사랑은 기묘했다.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첫 작품을 아버지에게 바쳤고, 이 책은 자신을 돌봐준 언니에게 바쳤고, 이어서 나온 작품은 어머니에게 바친다고 한다. 시리즈 아닌 시리즈 같은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위 게시글은 @openbooks2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제 느낌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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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보다 의젓하고 성숙한 아이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자의로 인해 형성된 자아일까? 극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 아니라고 본다. 나는 그것을 보호자가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결핍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부모의 방임으로 인해 천재성을 숨겨야 했던 소녀 트리스탄의 이야기다. 그 방임의 이유가 부모가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게 특이점이다. 결국 그 충족 받지 못한 애정을 이후 태어난 여동생 레티시아에게 쏟아붓는 등 보호자를 자처하는데, 이것은 단순 자매애가 아닌 밀도 높은 모성애와 동지애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하나 생각해 보니 자신처럼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할 여동생을 구원함과 동시에 결핍된 자신마저 구원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서제공 #서평단 #자매의책 #아멜리노통브 #열린책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