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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우주적 통찰
"소중한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우주적 통찰" 내용보기
이직을 했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이다. ‘기술을 배워야 한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정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살아보니 그렇다.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되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대학 나온 놈이 기술 배운다고? 기름때, 먼지 풀풀 나는 곳에서? 아는 사람이라고 만나면 어떡해? 라는 보통의 걱정과 우려는 전혀 아니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소중한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우주적 통찰" 내용보기

이직을 했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이다. ‘기술을 배워야 한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정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살아보니 그렇다.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되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대학 나온 놈이 기술 배운다고? 기름때, 먼지 풀풀 나는 곳에서? 아는 사람이라고 만나면 어떡해? 라는 보통의 걱정과 우려는 전혀 아니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단지 그 하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쪽으로 타고난 녀석들이 있다. 꼭 라디오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녀석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 녀석을 보고 생각한다. ‘아니 잘 되는 라디오를 왜 분해한대~ 라디오 on만 누르면 잘만 나오는 것을’

전역하고 나서 사회로 나왔다. 내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웬만해서는 후회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기질의 소유자인데, 그 선택만은 후회와 후회를 거듭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속이 타들어 간다. 물론, 다른 한쪽을 선택했어도 무조건 잘 되고 성공했을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껏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자격증을 딴 후 현장으로 뛰어 들었다. 현장일 2주 동안 매일 매일이 새로운 순간이었다. 처음 보는 장비, 공구, 구조물……. 황당하고 낯설고 무서웠다. ‘아니 사장님은 도대체 나를 왜 뽑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눈치 빠르고 손 빠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현장은 온통 가시밭길이다. 초등학생이 아니,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다. “OO어린이~ 양치는 이렇게 칫솔을 잡고 이렇게 이렇게 치카치카 하는 거랍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손을 들고 좌우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한 후에 건너는 거랍니다.” 처럼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전동공구를 비롯해 각종 현장에서의 언어들을 습득해야 했고, 몸만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사를 하나 박을 때도 정확한 자세를 취해야 몸에 무리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2주 였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함께 입사한 형님 한 분은 그렇게 빠를 수 없다. 사장님이 지시하신 걸 그대로 이행한다. 나는 사장님이 지시하는 것에 반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말이다. 정말 좌절의 연속이었다. 일하면서 계속 묻는다. 계속 묻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장점이다. 모르면 묻는다. 이미 말씀해주신 것도 잊어버렸다며 다시 묻는다.

2주가 지나고 3주째 들어서며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다. 정확하게 수치를 재고 수평을 맞춰 끼워 맞춘 구조물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혹시 조금의 오차가 있었지만 ‘에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싶어 넘어가면 다음 공정에서 반드시 차질이 생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든 기계로 제조한 구조물이 인간보다 더 정직하다. 정확한 나사 구멍에 나사를 맞춰 임팩을 가하면 정확한 나사선에 맞물려 들어간다. 각도가 어긋나거나 자세가 불안정하면 나사는 반드시 헛돈다. 정말 정확하고 정직한 사물(物)이다.

 

 

“아무 말이 없다. 사람만 빼놓고 모든 사물이 말을 아낀다. 그들이 아끼는 것은 말이 아니라 고요함이다. 그래서 늘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p.59)

 

내가 좋아하는 이현주의 사색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발견한다. 내가 만약 이직을 하지 않고 이런 각종 구조물과 장비, 공구들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정말 재미없게 읽었을 것이다. ‘뭐야~ 사물과 대화를 한다고? 사람과 대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 판국에 무슨’ 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경험은 소중하다.

사물은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요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계산과 값에 맞게 만들어진 장비와 구조물, 공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출근 전 가족과 다퉜거나 출근하는 차 안에서 안 좋은 일을 경험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 착오가 발생하고 사고가 나는 것이다. 2-3주 안에 얻은 깨달음 치고는 꽤 괜찮은 것 같다.

 

 

“오늘 새벽에는 향(香) 담아두는 나무통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 (p.22)

“내 손에 들려 있는 연필에게 말을 건넨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p.39)

 

딸아이가 11개월이 되었다. 이제 기어다는 것에 싫증을 느끼는 것인지 자꾸만 잡고 일어서려 한다. 두 손을 떼고 몇 초 동안 서 있다가 꽈당 넘어지고도 울지 않는다. 또 다시 잡고 일어서서 손을 뗀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정확하게 발음하지는 못하지만 이전까지 선보이던 옹알이와는 분명히 다른 언어를 쏟아낸다. 엄마와 아빠는 쉴 새 없이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상관없이.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사물에게도 말을 건네는 이현주의 생각의 전환은 신선하다.

현장에서의 일도 그랬다. 처음 며칠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 대충 하면 되지 싶었다. 아뿔싸! 큰 착각이었다. 2주일쯤 지나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아침에 처음 손에 쥔 공구를 향해 부탁을 한다. ‘오늘도 잘 해보자. 많이 가르쳐 다오.’ 물론, 그런다고 어제까지 안 되던 작업이 기똥차게 되는 일은 현재까지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비록 작은 몸이지만 내 속에 하늘 땅이 들어 있고 지상(地上)의 호박이 밟아 온 까마득한 과거와 끝없는 미래가 들어 있으니 어찌 거룩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후광이란, 성인(聖人)들 머리가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는 눈길에 있다네. 자세히 그리고 그윽하게 보시게.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후광을 보게 될 걸세.” (p.166)

 

호박씨 하나를 보고 쏟아내는 사색의 깊이에 혀를 내둘렀다. 지극히 미묘한 세상의 이치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신을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는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이 지극히 대단한 일이고, 지극히 대단한 일이 지극히 평범한 일이 될 수 있다.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시다. 으레 대접받는 것에 익숙한 대부분의 목사님들과는 다른 분이다. 자신의 신앙과 말,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분이다. 오랜 시간 옆에서 그 분을 지켜보고 교제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

몇 개월 전 육아로 지친 아내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육아가 예배입니다.” 간단한 문장에 큰 위로를 받았다. 번지르르 옷을 차려 입고 위세 등등한 교회 건물 안에 들어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만이 예배가 아니라는 통찰.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일과 행위는 소중한 것이다. “자세히 그윽하게 볼 때” 세상 속에서 내가 하는 일과 행위는 소중해 지는 것이다. 비단 그것은 나에게만 멈추는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 사건들 속에서도 그윽한 생각의 깊이를 더할 때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후광을 보게 될” 것이다.

 

 

“잠깐 생각해 봐도,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물자와 인력이 동원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단언하거니와 인간이 요즘처럼 휴지를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쓰다가는 반드시 크게 낭패를 볼 일이 생길 것이다.” (p.91)

 

가치 없는 것은 없다. 돈이라는 기묘한 놈이 세상의 온갖 가치를 잡아먹다 보니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었지만 별 수 없다. 그대로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느냐 그것과는 좀 다른 가치를 따라가느냐. 선택의 문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중하다. 내 새끼가 소중 하듯 남의 새끼도 소중한 것이다. 내 돈이 소중하듯 남의 돈도 소중한 것이다. 내 일이 소중하듯 남의 일도 소중한 것이다.

모쪼록 물(物)과 대화를 나눌 정도는 아니더라도 물(物)도 소중히 여기는 나와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l****h 2015.03.29. 신고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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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듣고픈 물(物)들의 이야기..
"귀 기울여 듣고픈 물(物)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이 세상은 너무도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된다.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에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세상은 갑자기 내게 다가온 것이 아닌, 늘 내 곁에 있어오던 존재였다. 나의 눈과 귀는 세상을 향해 닫혀있었고 나의 마음은 넓은 이 세상을 모두 가슴에 담기엔 너무도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귀 기울여 듣고픈 물(物)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이 세상은 너무도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된다.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에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세상은 갑자기 내게 다가온 것이 아닌, 늘 내 곁에 있어오던 존재였다. 나의 눈과 귀는 세상을 향해 닫혀있었고 나의 마음은 넓은 이 세상을 모두 가슴에 담기엔 너무도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어쩌면 그것은 제한된 나라는 존재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자아방어 기제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관점이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어느 순간 나의 것이라고 믿었던 사물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면 기분이 어떠할까. 아무렇지 않게 집어던지고 아무 곳에나 놓아두곤 했던 것들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더럽다고 여겨왔던 것들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존재일 수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한가지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만을 진리로 여기는데 너무도 익숙했던 지금까지의 나로부터 탈피하고픈 욕구가 솟구쳤다.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사물들을 소유하고 지배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부담감으로부터의 탈피. 항상 추상적인 것으로만 다가오던 ‘자유’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책의 저자, 현경 님이 생각났다. 기독교와 불교를 아우르는 그녀의 종교를 향한 폭넓은 이해와 존중을 이 책의 저자인 이현주 님으로부터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한가지만이 진리라고 우기는 가운데 그 외의 것들을 배제하는 논리 속에서 어쩌면 우리 세상은 ‘폭력’을 경험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졌던 수많은 박해 사건 그리고-물론 그 이면에는 좀더 복잡한 요소들이 깔려 있지만-흔히들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의 갈등이라고 이야기하는 오늘날의 수많은 폭력 행위들. 그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이 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폭력 행위들은 ‘생’이라는 단면만을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태도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지금 이 순간도 걷고 있지만, 그것은 죽음을 향해 걷는 것임과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태초에 우리를 가능케 했던 어머니로의 회귀, 우리를 보듬어 품고 있는 자연으로의 되돌아감.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곳에서 각종 갈등과 폭력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존재는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형태가 바뀔 뿐이다. 낙엽이 썩어가는 것을 무(無)를 향한 나아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한 그루의 나무의 성장으로 볼 수도 있다. 관점의 전환 속에서 우리는 지금껏 침묵하고 있다고 믿었던 많은 물(物)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q*****2 2003.1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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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 자세로 그것도 한 팔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생각하며...
"물구나무 자세로 그것도 한 팔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생각하며..." 내용보기
보는 위치에 따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우주의 한 녘에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단숨에 읽어내린 "物과 나눈 이야기"... 감동이라 이름하기엔 호흡이 너무 가빠와서 혹여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그 책에 젖어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리학적인 저자의 가슴과 나의 가슴은 그렇게 차이가 없지만 왜 그렇게 패러다임 자체가 내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의미부여에 대
"물구나무 자세로 그것도 한 팔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생각하며..." 내용보기
보는 위치에 따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우주의 한 녘에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단숨에 읽어내린 "物과 나눈 이야기"... 감동이라 이름하기엔 호흡이 너무 가빠와서 혹여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그 책에 젖어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리학적인 저자의 가슴과 나의 가슴은 그렇게 차이가 없지만 왜 그렇게 패러다임 자체가 내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의미부여에 대한 기초체계가 달랐던가! 아마 패러다임 자체가 반대가 아니라 깊고 얕음의 차이이겠지(?)하는 일말의 자기 위로(??) 깊이만 더해 관점을 집중하면 그냥 흘러간 내 지난 날의 일과성도 저자의 심중에 열 발의 화살 중 단 하나라도 과녁에 명중하듯 관점의 일치를 맛 볼 수 있을까! 아- 아- 그것도 空이라 하지 않았나~ 위함이 없이 함이 외로움에 빠지지 않고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또한 자기 기만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음이라 하지 않았는가! 팔만가지가 넘는다는 불경중에 반야심경만한 불경도 없다 했거늘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오고 뜻을 세워 왔던 그 경보다도 차라리 좁은 내 의식에 깊게 밀착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저자의 지난 이력에 대한 명함이 없어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 그만큼 物과의 대화에 깊이 빠지다보니 이름할 수 없는 이름, 지난 이력에 대해서 한 포기 작은 풀처럼 살아온 그림자 탓이리라. 본시 그림자는 빛이 없다면 생기지 않는 것이거늘... 흔히 그냥 이름이랄 것도 없는 상투적인 용도로, 그러나 쓰임새로 보면 없어서는 안 될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들을 깊이있게 바라볼려면 스스로 많은 쓰임새를 가진 인간이면서도 그것조차 놓아버려야 대화가 가능하리라 본다. 아니 더 깊은 대화가 있었음에도 일부러 못 다 적은 구석도 있으리라 본다. 나머지는 저마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그 대상 하나하나들을 다시 들추어내며 천착해들어가 혼자만의 의미부여가 아닌 진지한 대화를 유도해 그들과 또 다른 면으로의 대화시도를 위해 저자가 나머지 독자들에게 숙제로 남겨두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物과 대화를 나눈 저자와 物과 物로서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글쎄, 같은 한국말인 모국어를 쓰고 있는 저자이지만 돌, 쓰레기통, 향통보다도 더 의미있는 대화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그렇게라도 엮어놓아야 외롭지 않을까나!!!

[인상깊은구절]
병뚜껑은 우리가 '비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는 동안 '힘'을 행사하지만 일단 밝혀지면 아무 힘이 없다. 그래서 "이미 보여지고 알려진 것에 너무 많은 시선을 쏟지 말라"(루미)는 것일까? 뚜껑은 병의 입을 막고 있는 동안 존재 이유를 지니고 제 값을 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벗겨지면 그 순간 문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어 잊혀지고 버려진다. 잔칫상 한 모퉁이, 무심으로 던져진 소주병 뚜껑을 손에 들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소주병 뚜껑은 말이 없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럴까? 그것 참! 그러고 보니 과연 그렇구나, 내 생전에 단 한 번도 '침묵'고 '술판'이 공존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술과 침묵은 불공대천의 원수지간인가? 말없이 소리 없이 맑은 술에 몸을 적시며 앉아 있는 사람들 모습을 그려 본다. 어떤 성스러운 기운이 그 자리를 맴돌 것 같다. 술 마시는 일도 수행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터인데...
YES마니아 : 로얄 b*****7 2001.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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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기보다 귀 밝기를 바라며.
"눈 밝기보다 귀 밝기를 바라며." 내용보기
사람과 말 섞기가 싫을 때가 있다. 한시간을 참지못하고 정적을 향해 조갈증을 낼 때가 있다. 같은 사전을 쓰며 거기 수록된 언어로 대화를 하면서도 서로 소통하지못하는 때가 있다. 이중삼중 외연과 내포로 포장한 말 속에 사로잡혀 마주보고 서로다른 외국어를 쏟아놓는 그런 때가 있다. 열렬히 자신만을 옹호한후 돌아서서 그도 이해했겠지라고 장담한다. 이현주 목사는 대단한
"눈 밝기보다 귀 밝기를 바라며." 내용보기
사람과 말 섞기가 싫을 때가 있다. 한시간을 참지못하고 정적을 향해 조갈증을 낼 때가 있다. 같은 사전을 쓰며 거기 수록된 언어로 대화를 하면서도 서로 소통하지못하는 때가 있다. 이중삼중 외연과 내포로 포장한 말 속에 사로잡혀 마주보고 서로다른 외국어를 쏟아놓는 그런 때가 있다. 열렬히 자신만을 옹호한후 돌아서서 그도 이해했겠지라고 장담한다. 이현주 목사는 대단한 귀를 가졌다. 자기 아우성으로 시끌벅적한 세상속에서 말없는 것들이 건네는 말까지 귀기울여 듣는다. 얄팍하지만 실팍한 부피를 지닌 말없는 물상과의 대담집(?)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는 귀를 열었고 사물은 입을 열었다. 저자는 종종 그들이 건네는 촌철살인의 말 속에 침묵하고만다. 가볍게 시비를 걸었다가 번번히 말없는 것들에게 역전패 당한다. "네가 무엇이냐?" 물으면 겸손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줄 끊어진 그네. 버틸만큼 버틴다는 빨래줄. 나는 나그네로 가득찬 주인이라 말하는 빈의자. 송곳은 오히려 "자네의 뾰족한 끝은 무엇인가? 자네의 모든 부분이 오직 그것으로 수렴되는 그것은 무엇이냐?" 라고 질타한다. 불에 타서 피어오르기위해 태어났다는 향. 나는 버림받지않았다는 소주병 뚜껑까지 제 할말을 다한다. 저자는 목사지만 기독교, 불교, 원불교의 철학을 무심히 넘나들며 울타리없고 담장없는 자유자재를 구가한다. 자유자재란 이렇게 한 경계를 넘어선 이들에게 적당한 표현이리라. 니 편 내 편. 참인가 거짓인가. 정답인가 오답인가...이분법적 사고방식이 굳어진 이들에게 사물의 답변은 당혹스럽다. 불편하다. 고치타래 속에서 칩거하는 나를 불러낸다. 손 가까이 두고 언제 어느 부분을 펼쳐읽더라도 다정한 물상들의 준엄한 목소리가 쟁쟁한 책. 내 안의 부끄러움을 말갛게 밝혀내는 책. 잘 닦은 거울같은 책이다. "부디 자네한테 지금 있는 것으로 오늘 하루만 사시게나."라고 말해주는 친구를 나는 가졌는가.

[인상깊은구절]
자네 속에도 불이 타고있는가 - 향 향에 잠겨있던 향이 불에 타면서 피어오른다. 타버린 재는 더이상 향을 머금지 못한다. 그러니까 불붙은 향은 시방 세상에 하직을 고하고있는 것이다. 저것을 죽음이라 부른다면 온몸의 향을 남김없이 쏟아놓고 사라지는 향의 죽음이야말로 얼마나 향기로운가? (....) "가지 않은 길도 길인가?" "....." "사랑하지 않는 사랑도 사랑인가?" "....." "나는 불에 타서 피어오르기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네. 고맙네. 자네가 나를 나로 살게 해주었으니." "너는 시방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자네는 아닌가?" "......"
p******6 2002.03.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