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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조각 퍼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책 광고에 있었다. 죽은 사람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며,,, 한 집안의 하녀였던 멘눌라라에게서 날아온 편지로 인해 일어나는 미스터리를 추적해 나가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집안 사람들이 생전에 멘눌라라에게 무슨 짓을 했고 죽음 이후에 멘눌라라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혼합된 책이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광고에 속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책 띠지에 '지적 유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 하나의 소설'이라는 거창한 홍보 문구는 엄청난 과장으로 느껴졌다.
책이 재미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책 홍보 문구가 잘못 되었다는 말이다. 보통은 홍보 문구 등을 보고 책의 내용을 추측하며 그에 맞는 내용을 기대한다. 내가 기대하던 것과 다른 결말이 나오면 상상하지도 못한 내용이라며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고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르게 내가 삽질한 느낌이 들었다. 마녀에게서 온 편지라고 해서 대체 언제 편지가 오는지, 멘눌라라가 언제 말을 거는지, 그리고 지적 유희가 언제 나오는지, 기대하며 자꾸 기다렸던 것이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홍보 문구를 멘눌라라의 정체에 대해서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가 죽었다. 그 여인과 친한 사람도 있었고 그냥 얼굴만 보거나 이름만 들은 사람도 있었다. 시칠리아의 로카콜롬바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서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 여자가 주인집에 열심히 봉사했다며 좋게 평가하는 쪽과 욕하고 못돼 먹은 여자라며 나쁘게 평가하는 쪽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왜 하녀인 멘눌라라가 주인집인 알팔리페가의 재산까지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하녀인 주제에 주인집 사람들의 삶에 그렇게 관여할 수 있었을까? 하녀의 봉급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집을 사기도 하고 알팔리페가 자녀들에게 주는 돈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출처를 궁금하게 여겼다. 특히, 알팔리페가 자녀들은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멘눌라라가 개인적으로 착복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 한다. 그래서 멘눌라라의 유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는데,,,
이 책에서 나오는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는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공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사생활이 신문지 상에서 자극적으로 까발려지고 우리는 또 그것에 대해 입방아를 찧지 않은가 말이다. 작은 마을에서는 옆집의 수저가 몇 개인지도 알 정도로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작은 일도 금세 화제가 되어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래서 알팔리페가 사람들이 멘눌라라에게 욕을 했다든지 서로 싸웠다든지 하는 내용이 하루가 멀다하고 마을에 금세 퍼져 나갔다. 개인 사생활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지옥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나 멘눌라라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밝혀지는 멘눌라라의 정체... 책을 읽다보면 작은 단서들을 모으고 모아서 멘눌라라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조각 퍼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멘눌라라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없어서 결국 본인과 긴 편지에 의해 많은 얘기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멘눌라라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억이나 편지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그녀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거칠고 단호하고 욕도 하고 남자같고 기가 쎘던 멘눌라라는 똑똑하고 끈기있고 책임감이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랑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지켜나갔던 의지가 있는 여성이었다.
이 책에서 지적 유희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요약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고 있으므로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많은 이름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만 말이다. 멘눌라라의 장례식이 벌어지는 그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사람들의 얘기만으로 잘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칠리아,,,라는 말만에서 풍기는 마피아의 위력을 이 책을 읽으며 더 실감하게 되었다. 만약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시칠리아나 로카콜롬바 지역의 모습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멘눌라라가 언제나 그림자로 존재하는 자신의 삶에 정말 만족했을까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는 행복을 매일 밤 꿈꾸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너무나 늦게 깨닫고는 한다. 뒤늦은 후회에 몸부림치면서 말이다. 멘눌라라,,, 그녀의 삶에 조의를 표한다.
* 네이버 책좋사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겉표지를 벗긴 모습<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벗은 등판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옆모습의 그녀는 매력적이다.
<이책은> 자음과모음 카페의 서평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은 소감> 겉표지도 시선을 끄는데 속표지의 강렬함도 좋았다. 부피가 방대하고 이야기가 몰입이 되면서 왼쪽으로 넘어가는 책장이 얇아질수록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행복한 책읽기를 한 것. 이 책과 저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서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가문 이름과 마을 이름도 분간히 안가는데 등장 인물도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한 가문의 가족이 등장하고 거기에 사촌가족, 저마다의 하인들, 다른 가문, 마을 사람들, 의사, 신부, 마피아 대부 등등. 읽다보면 이게 누구였더라... 거기다 이름인지 지명인지도 종잡을 수 없는 상태. 이런 과정을 조금 익힐 즈음부터 탄력이 붙기 시작하더라.
알팔리페가의 하녀이자 재산관리를 도맡아했던 멘눌라라가 죽었다. 모두들 '아몬드를 줍는 여자'란 뜻인 멘눌라라 혹은 멘누라 불렀다. 그녀가 하녀가 되기 전 아몬드를 줍는 여자가 되어야했던 소녀 가장의 눈물겨운 삶이 있다. 병든 엄마와 언니를 부양한 어린 소녀. 당연히 배움이 없었지만 타고난 영민함에다 적응력은 놀라웠다. 습득력은 대단했고 하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녀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그 안에서 자생한 능력. 대단했다.
변호사인 아버지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팔방미인이었다. 문화쪽의 재주를 두루 가지고 있었지만 귀족집 자제들이 흔히 가진 끈기는 없었다. 싫증을 금방낸다는 건 절박하지 않음이요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말. 거기다 결혼한 유부녀들과의 외도가 또 유별났다. 아내와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상태로 살았는데 두 부부는 자신들이 먼저일뿐 아이들은 늘 뒷전이었다. 장남에게만 향하는 모성으로 장남은 부담감을 가졌고 큰딸은 소외감을 느꼈다. 이들의 빈자리를 잠시 멘누가 채웠던 적도 있었지만 멘누 자체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일상의 경험이 주는 산교육은 무시되었다.
멘누는 죽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멘누가 죽고 나서 알팔리페가 자녀들은 상속을 위한 유언장 찾기에만 눈이 벌개진다. 대부분이 조문을 와서 의아하게 살피는건 어쩜 애도하는 분위기가 없나 미심쩍어한다. 이런 중에 멘누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를 신문에 실으라니. 기막혀하다가 남의 이목을 생각해 벽보 부고로 어쩔 수 없이 했음을 짧게 알리는데 유언장을 찾기 위한 의기투합을 한다. 망자의 지시대로 신문에 하녀의 부고가 정중한 애도의 글로 실리고 뭇사람들은 찧고 까분다. 모든 이들의 이야기거리로 전락하다니...
그나마 멘누에게 우호적이었던 신부와 의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런 정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둘이 멘누에게 적대적이지 않았고 또 둘의 유대관계가 있다. 어릴 적부터 멘누를 보아 온 신부는 그녀의 여러 면을 잘 알았다. 마찬가지로 일적으로 멘누가 일하는 가문과 관계를 맺어 온 의사 역시 멘누를 알지만 서로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부분보다는 일적으로 아는 부분을 공유하는 부분이다. 이미 망자인 멘누를 신부는 맘 치료를, 의사는 몸 치료를 해 준 전력이 있다.
알팔리페가의 가장이자 변호사였던 오라치오가 죽고, 멘누가 죽고, 그 아내가 남편의 유언 이었다며 전한 책 속의 편지 내용이다. 자신과 멘누가 죽은 후에 전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쓴 편지다. 의형제처럼 지냈던 친구도 둘의 사후에나 알게 된 사실.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지도 있는 지위에 있던 그로선 친구에 관해서는 뭐든 안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비밀로 맘 상하는건 아니다. 다만, 떠도는 말들에서 자꾸만 살이 붙는 소문들에 진상을 바로잡기도, 인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현명한 처사를 내린다.
보잘 것 없는 하녀라는 신분에서 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재산을 맡아 관리하면서 안주인처럼 행세할 수 있었던 그녀 멘눌라라. 까칠한 성격하며 도도한 오만함은 그를 알던 사람들의 질시와 무시를 먹고 산다. 사생활은 절대 노출시키지 않으며 언니의 자식들을 부양하고 의사의 양아들까지 남몰래 무려 7년여의 학비를 대주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자면 건방진 하녀 주제에 라 무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멘누는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들에 초연했다. 당당했다. 오히려 그녀의 죽음으로 파생되는 이야기들은 일파만파다. 그녀를 둘러싼 추측들과 진실이 쏟아져 나오고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렇대도 그녀가 정직하고 헌신했음은 누구나 안다.
첫 인연이 된 저자인데 빨려 들어가는 흡인력이 있다. 루머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의 파장이 흥미롭다. 죽은 사람을 각기 기억하는 일들이 나열되고 살이 붙고, 거기다 개인의 감정이 곁들여진다. 애정을 가진 알팔리페가를 죽어서까지 위상을 세우주고픈 멘눌라라의 지략과 계략이 빛을 발한다. 사내대장부도 하기 힘든 배포와 배짱은 시원시원하다. 노력하여 성취하는 학습욕은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폐쇄적일 수 밖에 없었던 사생활을 이해하니 그녀 나름으로는 행복한 삶이었고 알팔리페가에 헌신하는 마음이 우러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새로운 저자의 잘 만나진 책은 기분좋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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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일단 죽어야 한다 누구나 죽는다. 죽고 나면 사람들이 하는 말을 통해 고인에 대해 알 수 있으니 내 자신을 알고 싶다면 일단 죽어야 한다는 글귀가 유달리 시선을 사로잡는 책 '마녀에게서 온 편지 멘눌라라'... 알팔리페가(家) 사람들에게 그들 곁에서 평생을 함께 한 가정부가 죽었다. 그녀의 이름은 멘눌라라... 멘눌라라의 죽음을 알리는 시간부터 한 달 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 동안 가정부이며 재정 관리자인 멘눌라라가 남긴 유언장을 둘러싼 알팔리페가(家) 사람들의 모습과 마을 사람들을 통해 멘눌라라란 인물의 본모습이 서서히 들어난다. 멘눌라라의 유언장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 황당하다. 당당하게 자신의 장례식을 어떤 식으로 치러야 할지 요구하는 멘눌라라... 알팔리페가 사람들은 그녀에게 받은 경제적인 도움과 어머니의 완고한 태도, 멘눌라라의 재산에 대한 기대감에 다른 집안의 가정부에게는 결코 해주지 않는 장례식을 기꺼이 실행에 옮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평소에 멘눌라라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알팔리페가의 사위는 멘눌라라가 요구한 유언장의 내용과 살짝 다른 내용으로 벽보를 만들어 붙인다. 서로가 가진 입장이 달라 멘눌라라에게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특히나 만눌라라가 일개 가정부에 재정관리자의 신분을 넘어 알팔리페가 집안의 결혼식과 관련해 자신에게 느끼는 안 좋은 시선에 화가 난 남자나 알팔리페가의 주인장인 남자와 연인 관계에 있던 여인이 남자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분명 멘눌라라가 개입했다고 보기에 그녀 또한 좋은 감정 대신 속 시원히 멘눌라라를 씹어주고 싶어 한다. 여기에 알팔리페가 사람들 역시 멘눌라라가 어떤 식으로 재정 관리를 하였는지 몹시 궁금해 하며 틀림없이 자신들 몰라 돈을 빼돌렸을 거란 생각을 갖는다. 마피아 보스까지 멘눌라라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걸로 보아 그녀는 분명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장례식을 치르고서야 멘눌라라의 다른 유언장을 받는다. 알팔리페가의 주인을 통해 남다른 안목과 식견을 키운 멘눌라라는 비밀의 장소에 숨겨진 도자기를 감정 받으라고 알려준다. 허나 이 도자기가 알팔리페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판명이 나자 화가 난 그들은 또 다른 비밀의 장소에 숨어 있는 물건들을 찾아 화풀이를 한다. 헌데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유언장을 통해 들어나는 진실 앞에 망연자실해진다.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책이란 생각이 먼저 드는 작품이다. 일개 가정부가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모으고 자신이 생활하는 알팔리페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는지는 마지막에 들어나는 너무나 아픈 진실 속에 숨어 있어 마음이 짠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멘눌라라 역시 여자로서 사랑도 하고 기쁨도 알았다는 것이다. 멘눌라라는 마녀라고 표현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녀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인간은 누구나 욕심이 있고 능력이 되면 누리고 싶어 한다. 1900년대 초에 태어나 1963년에 죽기까지 시대가 가진 어두운 면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이 얻은 것을 자신을 위해 쓰기 보다는 타인을 위해 쓰기 위해 노력했던 만눌라라... 누구보다 외롭고 열정적인 인생을 살다간 한 여인의 진솔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모습을 상상하며 재밌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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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소설은 처음 접하는 나에겐 소설의 배경도, 인물의 이름도 익숙치 않았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자체로는 관광지로 유명하다는 것과, 그 나라 국민성이 우리나라랑 비슷한 점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과, 남자들이 로맨틱하다는 이 정도의 정보력만 가지고 있는 나에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책 자체가 낯설었다. 시대 자체도 2000년대가 아닌, 그렇다고 아예 고전이라고 할 만한 배경도 아닌 1960년대 초반(정확히는 멘눌라라가 죽은 1963년도)을 배경으로 하기에 더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책을 읽기전엔 뜻이 없는 말장난 같은걸로 생각했던 '멘눌라라'.. 책을 읽다보면 아몬드를 줍는 여자라는 뜻이라는 것도 알수있었다. 그리고 멘눌라라는 주인공이름이기도 하다. 책을 시작하자 마자 멘눌라라(줄여서 '멘누'라고 불림)는 이미 죽은 상황이다. 그리고 멘눌라라가 어떤 인물이였는지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여자는 이랬어.. "'"그 여자는 저랬어.." 익숙치 않은 이탈리아로 이루어진 인물들의 이름이 한참 나열되며, 책중반까지 사람들이 멘누를 평가하는 이야기들만 이어진다. 그들이 멘눌라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한참 보여주다가 장례식이 진행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에 지루해질때쯤, 멘누가 보낸 편지하나가 도착하고 또 다른
사건이 이어진다.
그후로는 책이 지루해지지는 않았다. 초반 주어진 모든 떡밥을 회수한 작가의 마무리에..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그 기회를 이용했던 영민한 주인공이라고 해야하는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해야하는걸까.. 책을 광고할때 "죽은 사람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라는 문구가 있어서, 난 약간 기묘한 분위기의 소설인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긴다이치코스케 시리즈의 추리소설인줄 혼자 상상했었다; 근데 그런 분위기가 절대 아니다. 1900년대 혼란스런 사회에서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한 여인의 삶이 주된 이야기이고, 그 삶이 어땠는지는 책 후반부에나 등장하니까. ("죽은 사람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좀 무리수였던거 같다..;;) 멘눌라라에 대해서도, 주변의 멘눌라라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팔리페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100% 감정이입하며 읽을만한 인물들은 없었던점은 아쉬웠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는 멘눌라라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난 내 의무를 다했어. 산사람에게든 죽은사람에게든..." 멘눌라라가 하는 말로 멘누의 성격을 알수있긴하지만, 과연 자신의 삶엔 만족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알팔리페 가문의 사람들도 그렇고, 멘누에 대해 단편적인 기억으로 모든걸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사람을 그렇게 단편적인 내 기억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여러가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어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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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유희가 뭔지를 보여주겠다고 했던 소설...정말이지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한 가문에서 몸 바쳐 평생을 주인을 섬기며 살았던 멘눌라라..~ 그집의 아이들을 모두 키웠고 또한 아이들이 모두 큰 후에는 주인인 변호사가 죽인후 그의 부인을 돌보며 살던 멘눌라라가 사망했다. 이 책은 멘눌라라의 사망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죽은후에 그녀는 자신을 둘러썬 많은 소문에 휩쌓이게 된다. 멘눌라라를 보는 시각은 두가지로 좋게 보는 경우도 있지만..안좋게 보는 경우도 있다. 멘눌라라의 주인집 자녀들은 모두 3명인데 멘눌라라를 모두 좋지 않게 보고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어머니는 다르다. 그녀는 멘눌라라를 아주 좋아하고 좋게 보고 있다. 아이들이 멘눌라라를 좋지않게 보는 이유는 많지만 그중 하나는 재산 때문이다. 멘눌라라는 많은 재산을 가졌고 그 재산이 자신의 집안 재산이고 자신들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이들은 멘눌라라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죽음이후 그 주변을 서성이게 된다. 멘눌라라는 죽으면서 이상한 요구조건을 들어서 자신의 장례를 치워주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멘눌라라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녀의 주인집 집안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아주 재미있고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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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눌라라의 마지막 숨이 넘어가려고 한다. 이제 알팔리페가의 하녀였던 그녀의 인생은 그 끝자락의 불씨를 꺼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주인공 멘눌라라는 그렇게 첫 등장에서 죽음을 맞이 하고 있다. 장례식은 결국 그 사람이 살아간 인생의 결과물, 평가물이 되는 것 같다. 멘눌라라의 죽음이후, 사람들은 그녀의 장례식에 많이 참여할까. 멘눌라라는 한 장의 편지를 남긴다. 알팔리페가의 자식들은 멘눌라라의 유언장이라고 은근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알팔리페가의 재산 관리자로도 활동을 했던 멘눌라라였기에 또, 매달 알랄리페가의 자녀들에게 돈을 주고 있었으니 자신들의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뒤로 빼돌린 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알팔리페가의 자녀들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재산을 관리하면서 은닉한 재산이 있다면 그것은 곧 그들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알팔리페가의 자녀들은 포악했던 멘눌라라를 믿지 않았던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종이는 유언장이 아니었다. 멘눌라라의 장례식 일을 맡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던 편지였을 뿐이었다. 자신의 조카들에게는 당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고, 자신의 부고를 신문에 올리며 부고의 글도 다 적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팔리페가의 자녀들은 그녀의 말대로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부고를 신문이 아닌 벽보로 남겼다. 조문객들은 그렇게 벽보를 보고 찾아 왔다. 멘눌라라는 어떤 여자였을까. 어떤 사람은 그녀를 흉보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그녀를 성녀라고 기억하기도 했다. 성질이 고약한 포악한 여인이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여하튼 알팔리페가의 재산을 관리했던 여인이었으니 엄청난 재산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는 있었다. 또한 그녀의 장례식에 나타난 마피아 보스, 누구는 멘눌라라는 마피아 보스의 딸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란 추측을 하기도 했다. 책은 그렇게 남은 사람들이 멘눌라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그 평판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수근수근 억측같은 소문들도 많았다. 죽은 멘눌라라에게서 편지가 왔다. 서재에 숨겨둔 도자기가 있다고 그것을 찾아내어 증명서를 받으라는 편지였다. 더 숨겨진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찾을 생각을 말고 하라는데로만 우선 하라고 말했다. 그곳에 도자기가 있었다. 알팔리페가의 자녀들은 편지대로 증명서를 받고 왔지만 알고봤더니 진품이 아닌 모조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 멘눌라라를 믿지 못 했던 알팔리페가의 자녀들은 나머지 도자기들도 찾아내어 마저 깨트려 버린다. 멘눌라라에 대한 원망을 삼키면서.... 그리도 또 하나의 편지가 날아 들었다. 알팔리페가의 자녀들을 넋놓게 만드는 편지의 내용이.... 아레나 신부는 멘눌라라의 친구였다. 그녀를 아끼는 아레나 신부 말이다. 그리고 이제사 알게 되는 오라치오와 멘눌라라의 이야기....서서히 더 많은 멘눌라라의 이야기가 밝혀진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간다. 알팔리페가의 하녀가 그녀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멘눌라라, 그런 그녀가 사랑했던 한 사람. 멘눌라라의 인생은 그녀의 양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상당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그 무게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만 것이 아닐까. 강한 책임감이 있던 그녀였기에.... 첫 장에 등장인물의 소개가 있어 좋았던 것 같다. 결국 멘눌라라를 끝까지 믿지 못 했던 알팔리페가의 자녀들과 결국 사랑이고 말았던 멘눌라라의 그. 죽었던 사람 멘눌라라에게서 온 편지, 그 편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운명이라고 믿기로 했던 그녀의 삶에 대한 남은 사람들의 평가 그리고 베일이 벗겨지던 멘눌라라의 인생 이야기, 재미나게 읽게 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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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에게서 온 편지 ]라는 제목과 " 죽은 사람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 라는 책띠지 문구를 본다면 여름철 인기있는으스스한 호러 스릴러책은 아닐까? 착각 할수 있겠네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도 살짝 생각을 했었는데 이책은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책인과 동시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믿음 그리고 한평생을 평범치 않게 살다가 한 여인의 삶에 대한 책인것 같아요, 자! 책속의 멘눌라라가 궁금하시다면 저와 함께 고고 ~~~~ 13 살의 나이로 알팔리페 가문에 하녀로 들어와 가문의 재산관리이자 가정부로 죽을때까지 봉사한 멘눌라라가 55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이한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의사 멘디코는 멘눌라라의 마지막을 혼자서 지키고 그녀의 희망사항이 적인 편지(유언장)을 알팔리페 가문의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그녀의 죽음에 임하는 이 가문의 사람들의 행동이 껄끄럽기만 합니다 평생 봉사한 가정부의 죽음에 어떠한 안타까움도 애도도 없이 오직 그녀의 유언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기때문이죠..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알팔리페 가문의 사람들은,,,자신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 자신의 장례식에 알팔리페가 사람들이 모두 참석해야하고 가문의 가족 무덤 옆에 구매해놓은 묘지에 자신을 묻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시칠리아 일보>에 자신의 부고를 실어달라는 희망사항이 담긴 유언장을 보고는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욕을 합니다. " 무슨 유언장이 이따위야! 돈은 어디에 있는 건데? 누구한테 남기는 건데? 이 더러운년 때문에 체면 무릎쓰고 얼굴에 똥칠까지 하고 다녔는데,,,"(19) 하며 분을 삭하지 못하면서 마녀라고 멘눌라라를 욕하지요.. 그렇습니다,,한낱 가정부인 멘눌라라는 실질적으로 알팔리페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명령을 내리면서 실질적으로 가문을 이끄는 여인이였던거죠,,그들은 그녀에게서 한달에 한번 어머니를 만나로 방문하면은 특정날짜에 넉넉한 돈을 받고 있었기때문에 숨겨진 엄청난 가문의 재산이 있을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거죠,, 이야기는 멘눌라라의 죽음을 대하는 여러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면서 그녀를 회상하며 그들의 기억속의 존재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같은 처지의 피고용자들, 친정친척들, 알팔리페가의 사람들, 의사 멘디코, 아레나 신부, 등등의 추억과 회상속에서 멘눌라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어떤이들에게는 포악한 여자이고 노동자들의 배신자이며 악독한 마녀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녀는 아름다웠고 굉장히 정직하고 꼼꼼한 사람으로 평생을 안팔리페 가문을 위해서 봉사하며 일한 하다가 죽은 불쌍한 여자이기도 하지요. 알팔리페 가장이 죽은후 사치와 허영으로 빚을 잔뜩 진 가문을 멘눌라라가 관리인으로 나서면서 파산의 위기에서 구해내고 집안 사람들 모두에게 계속 돈을 지급하며 귀족처럼 살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멘눌라라의 죽으면서 희망한 몇가지 안되는 그 하찮은 유언을 따라주지 않는 이 가문사람들의 탐욕이 결국 모든 것을 다 망치네요. 장례를 치러주고 신문에 부고를 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돈이 아까웠을까요? 체면때문에 장례식은 치르지만 신문에 부고를 내지 않은 것 때문에........ 책의 후반에 멘눌라라가 왜 그런 유언을 남겼었는지, 한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알팔리페 가문에 봉사하면서 살아갔던 이유, 그런 그녀의 비밀이 모두 밝혀지네요 멘눌라라의 사후에 주변사람들의 평가가 독자들은 알수 있을거같네요, 1960년대의 그 어려운 시기에 아주 똑똑하고 현명한 한 여인이 한 가문을 위해서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본인의 의무를 다 하려고 노력했었는지를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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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팔리페가의 가정부 멘눌라라가 사망한다. 단순한 가정부가 아닌, 가문의 실질적 지배자나 다름 없었던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죽기 전 자신의 집에서까지 돌본 안주인을 제외한 나머지 가문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권력을 휘둘고 주인에게 명령을 하는 등 강압적이던 멘눌라라의 죽음에 기쁨도 잠시 그녀로부터 편지가 도착한다. 자신의 부고를 신문에 기재하되 자신이 써준 글과 똑같아야 하고, 정중히 장례를 치러야하며 가문사람들은 모두 참석할 것, 자신을 미리 장만해둔 가문 묘지 옆에 뭍을 것을 지시한 편지에는 일이 끝난다면, 보답을 한다고 적혀있었다. 죽은 사람에게 그것도 가정부에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가족은 상의하에 신문대신 벽보에 내용을 고쳐서 붙인다. 하지만 죽은 멘눌라라가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두 번째 편지가 도착한다. 두려움을 느낀 가족들은 멘눌라라의 편지대로 실행한다. 어린 나이에 알팔리페 가문에 들어와 재산을 관리하기까지 멘눌라라의 무용담은 끝이없다. 그녀를 존경하고 가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고 하는 사람, 무시당하고 핍박당했다는 사람까지 가문에 소속된 종업원들을 비롯한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은 저마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들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알팔리페 가문 사람들은 듣기 민망할 정도로 멘눌라라의 욕을 헤대며 자신들의 유산만을 걱정한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안타까울 정도로 죽은 후까지 그들을 챙긴 그녀의 마음씀씀이에 결국 가문 사람들은 그녀에게 감사하게 된다. 책 뒷표지에 이런 말이 쓰여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일단 죽어야 한다고. 하지만 죽은 후에 어떤 사람으로 생각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살아있을 때 말로 진심을 전하고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나중에, 다음에란 변명이나 핑계로 그 시간을 미루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가 정말 부모를 필요로 할 때에는 아이를 위해 돈을 번다는 이유로 방치한다. 여유가 되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이미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제서야 부모는 함께 있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후회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내가 이제껏 어떻게 살았는지는 중요하다. 그 하루하루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중요하다. 앞으로의 나를 만들 하루하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멘눌라라의 삶을 주변사람들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의 진심이 담긴 편지로, 그녀를 아꼈던 지인의 고백으로 알게 한다.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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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줍는 여자'라는 뜻의 멘눌라라. 신분이 엄격히 나눠져 있었고, 한 집안의 가정부로 살았던 그녀가 죽은 이후에 일대소란이 일어난다.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신분이 높지도 않은 가정부 멘눌라라에게 도대체 어떤 능력이 있었기에 한집안의 모든 재산을 관리할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죽고 난후에 보내져오는 편지는 뭐란 말인가. 멘눌라라가 남긴 유언장을 보고 그들은 멘눌라라라 짐작한대로의 반응을 보인다. 이정도 되었음 멘눌라라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였고, 또 얼만큼 정확하게 그들을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능히 알 수 있다. 집에서 일하던 고용인이 죽었다. 그런데 그녀의 부음소식을 신문에 실으라니, 이게 가능한 말이냐고. 그렇지만 그녀의 뜻대로 부음이 신문에 실리게 되고. 본격적으로 그녀가 지시하는데로 움직일수 밖에 없다. 멘눌라라가 시키는대로 하면서도 그들은 분노한다.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가 죽은 이후에 이뤄진다고 하듯이 사람은 똑같은 멘눌라라인데, 그녀를 평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극과 극의 양상을 보여준다. 자신이 일하는 집안을 위해서 글자도 잘 모르는 그녀가 그 가문의 재산을 관리할 정도에 다다랐다고 하면 그녀의 충성도는 더 말할것이 없을 정도다. 그녀는 살아서나 죽어서까지 그 집안의 자손들이 품위를 유지하며 잘 살수 있게끔 도와줄 정도의 혜안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못내 자신들이 고용했던, 일을 부렸던 가정부가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라고 하니 솔직히 그들 입장에서 자존심도 상했고, 이게 뭐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을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멘눌라라의 장례식을 치른후, 그들은 비밀장소에서 도자기를 찾아내고, 기대를 픔고 감정을 받아보는데, 그 도자기가 그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줄거라 기대하고 신나했건만 도자기는 가짜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되었단 소리인지. 도자기도 던져가며 화를 내 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을리 없고.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기에 그 도자기가 등장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죽어서까지 자신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모습때문에 그 누구도 그녀를 향해 고운소리가 나오지 않을 성 싶다.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멘눌라라가 재산을 함법적으로 불려 돌려줄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냥 가정부로 정체되어 있는 무미건조한 외로운 삶을 살았을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멘눌라라가 실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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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다 읽은 멘눌라라다.. 이탈리아 소설은 처음 접하는 나에겐 소설의 배경도, 인물의 이름도 익숙치 않았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자체로는 관광지로 유명하다는 것과, 그 나라 국민성이 우리나라랑 비슷한 점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과, 남자들이 로맨틱하다는 이 정도의 정보력만 가지고 있는 나에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책 자체가 낯설었다. 시대 자체도 2000년대가 아닌, 그렇다고 아예 고전이라고 할 만한 배경도 아닌 1960년대 초반(정확히는 멘눌라라가 죽은 1963년도)을 배경으로 하기에, 더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책을 읽기전엔 뜻이 없는 말장난 같은걸로 생각했던 '멘눌라라'.. 책을 읽다보면 아몬드를 줍는 여자라는 뜻이라는 것도 알수있었다. 그리고 멘눌라라는 주인공이름이기도 하다. 책을 시작하자 마자 멘눌라라(줄여서 '멘누'라고 불림)는 이미 죽은 상황이다.(임종을 맞이한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멘눌라라가 어떤 인물이였는지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여자는 이랬어.. "'"그 여자는 저랬어.." (쉽게 표현하면 뒷담화;;) 익숙치 않은 이탈리아로 이루어진 인물들의 이름이 한참 나열되며, 책중반까지 사람들이 멘누를 평가하는 이야기들만 이어진다. 그들이 멘눌라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한참 보여주다가 장례식이 진행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에 지루해질때쯤, 멘누가 보낸 편지하나가 도착하고 또 다른 사건이 이어진다. 그후로는 책이 지루해지지는 않았다. 초반 주어진 모든 떡밥을 회수한 작가의 마무리에..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그 기회를 이용했던 영민한 주인공이라고 해야하는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해야하는걸까.. 책을 광고할때 "죽은 사람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라는 문구가 있어서, 난 약간 기묘한 분위기의 소설인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긴다이치코스케 시리즈의 추리소설인줄 혼자 상상했었다; 근데 그런 분위기가 절대 아니다. 1900년대 혼란스런 사회에서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한 여인의 삶이 주된 이야기이고, 그 삶이 어땠는지는 책 후반부에나 등장하니까. 멘눌라라에 대해서도, 주변의 멘눌라라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팔리페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100% 감정이입하며 읽을만한 인물들은 없었던점은 아쉬웠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는 멘눌라라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난 내 의무를 다했어. 산사람에게든 죽은사람에게든..." 멘눌라라가 하는 말로 멘누의 성격을 알수있긴하지만, 과연 자신의 삶엔 만족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알팔리페 가문의 사람들도 그렇고, 멘누에 대해 단편적인 기억으로 모든걸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사람을 그렇게 단편적인 내 기억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상황에서 부모님이 보시더니, 많이 읽었다면서 그 책 재밌냐고 물으셨다. "응, 근데 미친 놈이 너무 많이 나와"라는 답을 했던 걸 올리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