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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 슬픈 진실은, 제3세계 국가들에 천연자원은 흔히 폭력과 새로운 빈곤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p111 우리는 혼란과 절망의 경험에 충실하고자 했다.이는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불가피한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p135 따라서 새로운 세계질서가 나타나고 있고 가자 전쟁은 매듭이자 우리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적대감을 응축하는 마디이며, 곧 모든 것이 결정될 장소다. ... 원죄는 오랜 세기 동안 다른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던 땅을 유대인에게 줌으로써 홀로코스트를 속죄하려 했던 서유럽 국가들에 있다. p137 미래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대안적인 미래는 없다.배타적인 분리 대신 중첩된 상태들이 있다. p145 이스라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p215 네타냐후 정부가 제안한 조치에 유발 하라리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쿠데타다.이스라엘은 독재를 향해 가고 있다.' p242 학살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 이 학살을 막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를 '사유'해야 한다고 얘기한 지젝! 가자를 직접 사유하며 사유의 제로 포인트 위에서 다시 모든 것을 검토하라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학살을 막기 위해 막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말하자고 얘기합니다.오늘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예전에 초창기 스타벅스 커피를 의식하며 안 마셨었습니다.총알커피이야기를 듣고 ... 처음 알게 되고 만나게 된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모르는 단어들도 많고 개념을 이해 못해 다시 읽기를 반복했지만 (지금도 확실하게는 모르는)읽기를 잘 했다 나자신을 칭찬하며 함께 읽으며 도움을 준 우주철학방고맙습니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직접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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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재집권, 장기화되는 중동 전쟁, AI가 인간의 이념마저 대리하는 시대, 우리는 붕괴하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뼈아픈 질문과 마주한다. 우중몽에서 출간된 슬라보예 지젝의 신작 <제로 포인트>는 무너져가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친 걸작이다. 세계적인 철학자 지젝은 복잡한 국제 정세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기만 속에서 진실을 마주할 짜임새 있는 혜안을 제시한다. 책의 제목인 <제로 포인트>는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 좌표계가 철저히 붕괴하여 더 이상 어떠한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절대적 영점을 의미한다. 이데올로기의 장막이 걷히고 적나라한 폭력과 기만이 얼굴을 내미는 파국적 상황이자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사유해야만 하는 출발점이다. 지젝은 미국 대선 정치판의 대중 심리를 분석하며 진보적 엘리트들의 오만함이 어떻게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지 지적한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 연설을 통해 가자 지구 사태의 맥락을 살피는 것조차 반유대주의로 몰아붙이는 상황을 분석 금지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며 맹목적 지지가 지배 권력의 잔혹성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경고한다. AI 시대를 향한 통찰이 눈에 띈다. 알고리즘이 우리가 무엇을 선호하고 분노해야 할지 결정해 주는 거대한 디지털 통제 환경 속에서 인간은 사유할 주체성을 박탈당할 위험에 처했다. 지젝은 기계가 결코 대리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결여와 아날로그적 사유 과정을 껴안는 것만이 고유한 인간성을 방어하는 유일한 실천이라고 역설한다. 과연 개인의 도덕적 행동만으로 거대한 파국을 멈출 수 있을지 그는 냉혹하게 반문한다. 사유와 발언의 단계를 넘어 근본적인 체제 변혁을 도모하는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탐욕스러운 자본은 언제든 인간을 통째로 삼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안전선을 넘어 투쟁의 현장으로 기꺼이 나아가 올바른 말을 해야 하고 조직적인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붕괴된 제로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제로포인트 #슬라보예지젝 #지젝신간 #우중몽 #철학책추천 #현대철학 #정치철학 #이데올로기비판 #자본주의비판 #트럼프재집권 #극우포퓰리즘 #가자지구사태 #프랑크푸르트도서전 #마르크스주의 #라캉정신분석학 #AI시대 #디지털대타자 #세계경제위기 #전쟁과평화 #연대와저항 #이데올로기의숭고한대상 #진보에반대한다 #행동하는지성 #베스트셀러추천 #신간도서리뷰 #독서기록 #책리뷰 #서평블로그 #인문학도서추천 #사회비평 #도서추천 #책스타그램 #우주스토리 #도서제공협찬 #서평단 #우주서평단 #신간추천리뷰 #지젝철학 #독서그램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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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인트>를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삶은 더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의 인정과 기대에 맞추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생각과 감정, 습관들을 돌아보며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1부에서는 불필요하게 쌓인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내가 붙들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본질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2부에서는 그렇게 발견한 중심을 삶 속에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이야기한다. 완벽해지려는 조급함보다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는 태도,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삶의 방향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했지만, 때로는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는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제로 포인트>는 성공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본질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장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진짜 나와 마주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닫게 해주었다. 짧은 생각이라면 ~~~ “삶의 중심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멈추어 선 자리에서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삶은 더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의 인정과 기대에 맞추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생각과 감정, 습관들을 돌아보며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1부에서는 불필요하게 쌓인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내가 붙들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본질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2부에서는 그렇게 발견한 중심을 삶 속에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이야기한다. 완벽해지려는 조급함보다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는 태도,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삶의 방향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했지만, 때로는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는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제로 포인트>는 성공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본질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장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진짜 나와 마주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닫게 해주었다. 짧은 생각이라면 ~~~ “삶의 중심은 멀리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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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인트는 그러므로 상황이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지점이 아니라-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훨씬 악화될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하강 나선에 갇혀, 기존 체제하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점이다.' '1부 다시 원점으로'에서 지젝은 정의롭지 못하고 파괴적이며 이기적인 상황에도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지금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제로 포인트'다. 지금 세계 여러 곳에선 자기의 유익을 위해 혹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폭력성을 포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나의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거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매체는 우리를 자신들이 원하는 매개체로 만들고 있다. 어딘가에 소외된 사람들은 죽음과 고통, 성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고 지금 행복하다면 진실과 정의는 외면해도 되지 않냐고 생각한다. 정의가 사라진 세대에 살고 있다. 모두 잘 해결될 거라고, 정의는 죽지 않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지금 내려야 하는 결정들이 미래의 역사적 흐름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무작정 돌진하는 행동이 아니라 바른말을 해야 하는 때라고 상기시켜 주었다. '2부 말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는 지젝이 2023년 10월 17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에서 '상황 분석 금지'라는 연설을 한 후 몇 개월 동안 쓴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 연설문에서 지젝은 가자 지구 인근의 이스라엘인을 공격한 하마스를 비판하고, 또한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비판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상황의 배경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지지하거나 정당화한다고 비난받는 이상한 현실 또한 비판한다. 그 후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았다. 그럼에도 지젝이 도서전에서 이런 연설을 한 이유는 독서를 통해서만 상황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곤경의 난해한 모호성과 복잡성을 뚜렷하게 만들어 주는 특권적인 수단이 문헌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리즘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모든 가치를 부정합니다. 네, 그리고 가자 지구 주민 수백만 명의 집단 응징도, 아다니아 쉬블리의 시상식 취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선 것이 자랑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합니다.' [분석하지 말 것, 언급하지 말 것] '나는 이 편안한 중립이라는 의미에서의 중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이 본질적으로 비극적이기에 어느 한쪽 편에 설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뿐이다. 하마스는 끔찍하고, 이스라엘은 무고하지 않다.' 도서전 개막 연설이 공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연설이 너무 극단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균형 잡힌 중도 입장이기 때문이다. 지젝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운동 조직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테러 공격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과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접근법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세력들에겐,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주저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도 보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무조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걸까?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국가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대인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이스라엘 편에 서기로 했다. 그래서 오랜 세기 동안 다른 민족이 거주하던 가자 지구와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유대인에게 주었다. '원죄는 오랜 세기 동안 다른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던 땅을 유대인에게 줌으로써 홀로코스트를 속죄하려 했던 서유럽국가들에 있다.' 그들은 지젝이 이스라엘 국가의 행위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그저 동참하리라 기대했다. 진실에 대해 어떤 분석도 하지 말고, 진실을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악행을 막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기로 평화협정으로 맺지 않으면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평화는 없다. [모두가 들을 때 말할 것, 아무도 없을 때 철회할 것] '희망을 향한 첫걸음은 모든 면에서 우리가 처한 절박한 곤경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지젝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지지했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바로 보고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의 인권과 고통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듯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불만스러워하며 '말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라고 외치는 걸 듣는다. 이 맥락에서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적절한 시기는 언제인가? 지젝은 진실이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언제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거짓이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순간 거짓말을 하고, 그 후 진실이 별 영향 없는 사소한 수정 사항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명백할 때 진실을 말함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였다. 같은 의도로 지젝의 도서전 연설에 대해 그것이 진실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공개적으로 말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때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두가 들을 때 거짓을 말하고, 아무도 없을 때 거짓을 철회하고 진실을 말하라는 의미다. [듣지 않을 것, 멈추지 않을 것]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상황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가능성을 실현하면서 본래 그랬던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내가 내 것이 아닌 땅 일부를 차지하고 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서안 지구, 또는 우크라이나의 일부 지역)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이 저항한다면, 나는 그들을 진압하려 하면서 자기방어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그렇다. 명백한 사실에 대한 존중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구는 무조건 옹호하고, 언론은 축소, 은폐하면서 진실을 왜곡한다. 진실은 서구 미디어에서는 경시되거나 무시되어 모든 외침은 묻히고 있다. 이것은 서구 자유 민주주의 종말의 징조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피해자 지위를 사용해 자신의 팽창주의적인 지역-초강대국 정치를 정당화하고, 스스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조작하고 이용하여 수 세기 동안 다른 사람들 것이었던 땅을 차지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구는 이런 진실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야망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순간에 있다. 지금 내려야만 하는 결정들은 미래의 역사적 흐름을 결정할 것이다. 매우 의심스럽지만, 만약 미래에도 인류의 역사가 있다면 말이다. 환경의 대대적인 파괴를 피할, 충분히 실행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제로 포인트에 서 있다. 사회로서 우리의 생존은 유럽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대의를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데 달려있다. [다시 또 요약 : 안전선을 넘어 투쟁의 현장으로] '나는 종종 동일한 글에 대해 정치적으로 분열된 양쪽에서 모두 공격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몇 안 되는 믿을 만한 신호라는 장 폴 사프트르의 주장을 떠올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막으려면 상호 인정하는 것이다. 강에서부터 바다 사이의 민족-종교집단 둘 다 그 땅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은 말로는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행동하는 것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재정적, 군사적 지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서구 미디어는 편향된 보도로 이스라엘의 악행을 눈감아주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전 지구적인 지정학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고, 지역 전쟁이 일상화될 것이다. '나는 기부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이 내 기부를 필요로 하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고, 이것이 유혈이 낭자하고 피해자로 가득한 잔혹한 투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제로 포인트'를 읽으며 내가 참 안일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자 지구나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들이 나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였고, 뉴스를 보며 참혹함에 참담함을 느꼈을 뿐 내가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영상의 진위를 파악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나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행동들이 결국엔 우리에게까지 비극을 몰고 온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나의 이런 무지함에서 돌이킬 '제로 포인트'인 것 같다. 진실을 제대로 알고 올바른 말을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철학 에세이는 처음이라 초반에는 읽기가 어려웠다. 읽은 부분을 또 읽고 또 읽었지만 사실 지금도 다 이해하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제로 포인트'는 계속 읽어야 할 거 같다. 슬라보여 지젝 선생님은 마음이 따뜻하시고 위트도 넘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그건 어떤 잔혹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겐 어려운 철학 에세이였지만 곳곳에 남겨진 재치 있는 말들이 읽는 동안 즐거움을 주었다. #우주클럽_철학방 #제로포인트 #슬라보예지젝 #우중몽 @woojoos_story @badahalways @woojoongmong.books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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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1946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태생으로 8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생산적이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우리 시대의 온갖 정치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수십 종의 책들, 왕성한 대중 연설들이 보여주듯 그는 '현행성의 철학자'이다.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철학에 대해 체계적인 조예도 없지만 지젝의 책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는 있다. 우리 집 서재에 지젝의 책을 꽂는 방식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인 학자 지젝이 쓴 이론서들과 현실 참여적 지식인 지젝이 쓴 국제정세 관련 논평/에세이들이다. 『제로 포인트』 는 후자에 속한다. 『제로 포인트』의 1부는 세계정세에 관한 철학적 개입 에세이들이고 2부는 가자 학살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2부는 2023년 10월 17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전 연설 이후 벌어진 해프닝 이후 쓴 글들을 엮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 중 '가자를 위한 철학'은 2부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제로 포인트』 1부에서 독자인 우리는 지젝의 해석을 거친 우리 세상의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1부에서 지젝은 '우리의 사회, 경제적 제로 포인트뿐 아니라 글로벌 전쟁의 위협과 강간 문화까지, 각기 다른 영역에서 하강 나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일반적인 개요를 제공하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지젝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왔다. "정치 대신 전문가들의 행정, 집단적 권리와 연대가 아닌 개인의 자유, 사회 복지보다는 민간 자선, 예술 대신 문화, 계급투쟁 대신 특정한 정체성, 사랑 대신 섹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단어 두 개를 더 추가해 보자. '우파 포퓰리스트', '글로벌 자본주의'. 그리고 더욱더 강조돼야 할 단어들도 있다. '금융의 광기', '경제 정치', '연성 파시즘 등. 국제 정서와 관련해서는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이다. 한편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우리 세계의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젝의 이야기에는 '좋은 사람은 없다. 그저 어느 정도 나쁜 사람들과 결코 쉽지 않은 선택들이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 역시 분열과 갈등이 폭발하고 있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드론 폭탄에 찢겨 죽는 수준은 아니다.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절대적 빈곤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최소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덕택에 '각자 자신 특유의 '자기 돌봄', 자신의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분산된 개인들'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대의는 사라졌다. 지젝은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대부분 단순히 자신들의 편안한 삶을 지키고 있을 분이고 그런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우크라이나를 희생할 것이라 말한다. 나는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2부는 가자 지구 참상과 관련하여 지젝이 일기처럼 써 내려간 에세이들이 엮여 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하여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헬리나 코번, 라미 G. 쿠리 지음, 동녁 출판사, 2025), 『이스라일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일란 파페 지음, 교유서가, 2025) 등을 읽었기에 지젝의 논평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평소 좋아하는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지젝을 향한 비판과 지젝의 반론,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유발 하라리, 노엄 촘스키 등이 가자 지구 참상과 국제 정세와 관련해 내놓은 논평들에 눈길이 갔다. 2부에서는 지젝이 거듭하여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심지어 2부 제일 마지막 글은 <다시 또 요약>이다. 지젝은 새롭고 독창적인 반전에 반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요약하는 것은 '본성을 거스르는 무언가'라고 한다. 먼저 가자 지구 사태와 관련해서는 둘 다 그 땅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비극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상호 인정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않는 그것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우리 집 지붕에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그 어떤 글을 읽더라도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라는 위선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피해자를 향한 동정심에 깃든 비밀스러운 주이상스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독자가 되었다. 나는 나의 위선적인 면을 깨달은 상태까지는 왔지만 지젝이 말하는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젝이 지치지 않고 논평을 쏟아내고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이 웬만하면 '제대로 된 말'을 하길 원해서 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다음 해야 할 것은 사라져 버린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대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여전히 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자기 안의 위선이라도 깨닫자. 우리는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알면서도 그것이 깨지기를 원치 않는 존재이지 말이다. *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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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2부 《제로 포인트》 완독리뷰 보는 것의 용기, 말하는 것의 책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처음 제목을 봤을 때와 전혀 다른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제로 포인트. 처음엔 리셋, 새 출발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근데 지젝이 말하는 영점은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오류를 정면으로 직면하는 좌표에 가까웠다. 1부는 질문을 던지는 파트였다. 지젝은 첫 장부터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것들을 하나씩 건드린다. "결국 다 잘될 것"이라는 낙관주의, 선한 의도는 선한 결과를 낳는다는 믿음, 진보적 언어로 말하면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안도감. 그것들이 얼마나 쉽게 현실 회피의 언어가 되는지를 그는 냉정하게 해부한다. 「모든 말이 동등하지는 않다」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연대, 포용, 다양성. 이 말들이 어떤 구조 안에서 작동하느냐에 따라, 현실을 바꾸는 언어가 되기도 하고 현실을 고착시키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는 것. 말의 내용만큼, 말이 놓인 맥락을 봐야 한다는 것. 「히스테리 환자들이 꿈만 꾸는 것」은 1부에서 가장 뜨끔했던 챕터였다.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변화가 오면 불안해하는 태도. 꿈꾸는 것 자체가 행동의 대체물이 되는 구조. 잠깐 책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가. 이 책을 읽는 것으로 무언가를 한 것처럼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 「메타버스의 영웅들」도 같은 맥락이었다. 리스크 없는 참여, 상처 없는 연대. 그게 지금 우리 시대의 정치적 행동주의와 얼마나 닮아있는지. 읽는 내내 불편했다. 근데 그 불편함이 나쁘지 않았다. 2부는 그 질문들이 실제 현실과 충돌하는 장면이었다. 지젝이 2023년 10월, 가자 전쟁이 터진 직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 연설에서 어느 편도 아닌 말을 했고, 거센 비난을 받았다는 걸 알고 나서 읽으니 2부의 무게가 달라졌다. 「분석하지 말 것, 언급하지 말 것」. 처음엔 역설처럼 들렸다. 철학자가 분석하지 말라고? 근데 지젝이 말하는 건, 진영의 언어 안에서 안전하게 분석하는 척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거였다. 어느 편에 서느냐를 먼저 정해놓고, 그 편에 유리한 말만 골라 늘어놓는 것. 그게 분석이 아니라 편가르기라는 것. 「모두가 들을 때 말할 것, 아무도 없을 때 철회할 것」도 오래 남았다. 비판이 쏟아지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슬그머니 후퇴하는 것. 지젝은 그게 말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말은 발화된 순간부터 세계 안에 존재한다. 지젝은 비난을 들었고, 멈추지 않았다. 그 태도가 「듣지 않을 것, 멈추지 않을 것」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1부의 베케트 문장이 여기서 다시 살아난다. 더 나은 실패를 하라. 비판이 두려워서 말을 삼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실패라고. 프랑크푸르트 연설문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계속 염두에 뒀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지젝은 행동 강령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를, 또는 보면서도 보지 않는 척하는지를 가리킨다. 어느 하나만 골라 분노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도덕인지를 그는 조용하고 날카롭게 묻는다. 책을 덮으면서 p.11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처음 읽을 때와 지금, 이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 영점은 출발선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무엇을 보지 않으려 했는지를 직면하는 자리다. 말하는 것의 용기보다 제대로 보는 것의 용기가 더 어렵다는 걸,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말하고 있었다. 쉬운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서 오래 남는 책이다. 올바른 편에 서는 것과 올바르게 보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 단순한 문장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woojoos_story @woojoongmong.books #우주서평단 #우주클럽_철학방#우중몽 #슬라보예지젝#제로포인트 @woojoos_story님의 진행으로 우주클럽 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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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제로 포인트》 완독 리뷰
어둠 속의 사람들을 보기 위하여 > 그리고 어떤 이들은 어둠 속에 있다 > 그리고 어떤 이들은 빛 속에 있다 > 하지만 당신은 빛 속에 있는 이들만 본다 >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은 보지 못한다 — 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 마지막 대사 슬라보예 지젝의 《제로 포인트》를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이 브레히트의 문장이었다. 지젝은 책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제대로 말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특히 2부에서 다루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그 질문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지젝은 이 갈등을 선악의 대결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의 점령 정책과 정착민 폭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하마스의 끔찍한 공격과 민간인 학살 역시 명확히 규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한쪽의 폭력을 다른 쪽의 폭력으로 정당화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를 잃어버리게 된다. 지젝에게 중요한 것은 편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상황을 정확하게 명명하는 일이다. 특히 현재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암울한 상황을 두고 하마스의 공격을 비판하는 것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존엄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민간인을 향한 테러가 정당화될 수도 없다. 오늘날의 진영 논리는 이러한 복합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지젝은 오히려 그 불편한 긴장 속에 머물 것을 요구한다. 2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행동하라“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올바르게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젝은 사실과 진실을 구분한다. 사실이 정보의 나열이라면 진실은 그 사실들을 가능하게 만든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드러내는 언어다. 그래서 그는 성급한 실천보다 먼저 현실을 왜곡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연설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강조한 것은 특정 진영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어떤 비극도 침묵 속에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제로 포인트‘ 역시 여기서 의미를 얻는다.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단순한 위기 상황이 아니다. 기존의 정치적 언어와 도덕적 좌표가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 다시 말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역사적 임계점이다. 트럼프 시대의 포퓰리즘,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불안, 종교적·민족적 근본주의의 부활, 그리고 전쟁의 확산은 모두 그러한 징후들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건을 소비하지만 그것을 이해할 개념은 점점 잃어가고 있다. 지젝은 정신분석학과 철학, 정치이론을 넘나들며 이러한 단절된 현상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현대 사회의 혼란을 단순한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로 읽어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불안할수록 더 강한 정체성과 더 단순한 답을 원한다. 포퓰리즘과 전통주의가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젝은 그러한 회귀가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중이 기억하는 지젝은 종종 아이러니하고 난해한 사상가다. 그러나 내가 그의 글에서 발견하는 것은 오히려 지적 성실함에 가깝다. 그는 어느 한쪽에 안주하기보다 모두가 불편해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제로 포인트》는 결국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언어에 대한 책이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왜 ’제로 포인트‘인지,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도 어떻게 현실을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서도 브레히트의 문장이 오래 남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확신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말하려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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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포인트 슬라보예 지젝 | 이혜진 옮김 | 배세진 서문 • 해제 우중몽 출판사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문구에 이끌려 과감히 도전하게 된 지젝의 책! 철학책이라 망설였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다양한 세계를 접하는 것이니까! >_< '우주철학방'에서 같이 읽으며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들으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세상에 갇혀있었는지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지젝의 책을 보며 내가 얼마나 세계 정세에 무지했었는지 또한번 자각하며 좌절함..
관심을 갖지 않아 모르는 이야기가 훨씬 많았기에 결국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으며 읽어 내려갔다. 1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단연 "뭔가 하지만 말고 제대로 된 말을 해!" 요즘 무조건 먼저 행동하라는 내용을 보다가 이 문장을 만나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ㅋㅋㅋ 우린 또 얼마나 생각 없이 행동만을 추구해 왔던가.
2부 가자지구에 대한 내용은 끔찍한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핑계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내쫓고 학살하는 '인종청소'라니, 단어만으로도 끔찍하다. 자신들이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피해자였으면서 이제는 다른 인종을 그렇게 대우하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참상이 생존자들을 윤리적 주체로 정화되는 장소로 바꾸지는 않았다"는 문구와, 독일 박사 과정생들과 나눈 대화 중 "아우슈비츠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인간성과 관용은 배울 수 없다"는 대화 내용은 소름 돋았다. 난 왜 여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피해자라 관용과 인간성이 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을까? 수용소 생존자가 도리어 아랍인을 욕하는 악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며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ㄷㄷ 지젝은 어느 한쪽도 옹호하지 않는다. 그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을 순수하게 애도할 뿐.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읽으면서 반은 이해 안 가고 반은 까먹었지만 ㅋㅋㅋ) 지젝이 양쪽 모두에게 비난받는 이유는 민간인을 학살하는 이스라엘 정부도 비판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테러하는 하마스도 비판하기 때문인 것인가? 양쪽 모두 절대선일 수도, 절대악일 수도 없다. 그런데 왜 난 여태까지 어느 한 쪽만 열렬히 지지했을까? 우리는 모두 흑과 백으로 나뉘어 아군 아니면 적군으로 나뉘어버린 건 아닐까? 세상을 두루뭉술하게 보았던 나에게 새로운 시선과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준 지젝의 통찰. 그의 전작 《진보에 반대한다》가 더 궁금해졌다. 이 책 한 권으로 지금의 위태로운 세계 정세를 만나보시길, 새로운 시야를 틔우고 싶은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꼭 보시길!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 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제로포인트 #우중몽 #슬라보예지젝 #현대철학 #우주클럽_철학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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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곤 한다. 전쟁과 학살, 난민 문제와 같은 인류사적 비극도 어느새 뉴스 속 자극적인 사건으로 소비될 뿐이다. 《제로포인트》 는 바로 그 무관심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책이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는 '철학적 지식이 부족한 내가 읽을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책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어느 한쪽의 선악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지젝은 과거 강제 추방과 종교적 박해를 경험했던 유대인의 역사적 상처를 깊이 인정하면서도, 그 아픈 기억이 또 다른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특정 민족을 향한 혐오나 비난이 아니다. "말년에 에델만은 그가 투쟁해왔던 유대인의 자기방어가 선을 넘어 억압될 위험에 빠져있다고 주장하며,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공개적으로 옹호했습니다."(p.216-217)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마지막 생존 지도자 마렉 에델만이 말년에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던 파격적인 행보는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신성불가침한 정체성을 스스로 깨부수면서까지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만큼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원칙에 대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인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여론 환경으로 이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이미 거대한 진영 논리의 재판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 자체보다 오직 내가 속한 집단을 위협하는 의견을 찾아내 매장하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정의를 울부짖는 군중은 남과 다른 생각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폭력성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올바른 진영’에 서 있다는 환상 덕분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지젝은 이처럼 양극단의 진영 논리 뒤에 숨어 안전하게 냉소를 즐기는 위선을 향해 가차 없이 일침을 가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것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까지 양쪽 모두의 극단을 향해야 합니다. "(p.215) 이 선언은 "양쪽 다 잘못이 있으니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식의 온건한 중립이나 기계적 균형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쪽 진영이 짜놓은 가짜 선택지 자체를 거부하고, 양쪽 모두로부터 매장당할 위험을 감수하라는 도발적인 요구다. 지젝은 우리에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정의라고 일컫는 도덕적 태도 자체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들추어낼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친절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직 지독한 불편함만을 남긴다.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희망적인 반전이나 새로운 대안이 싹트는 시작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기존의 사실이 통째로 붕괴하는 원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든 위선과 환상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이 주입하는 평온한 현실을 의심하고, 지배 권력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아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힘은 바로 이 제로포인트에서 고개를 든다.📍 #제로포인트 #우중몽 #슬라보예지젝 #서평단 #정치철학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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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우중몽 🪞 영광스럽게도 우주서평단에 합류하게 되어 슬라보예 지젝의 <진보에 반대한다>에 이어 <제로 포인트>까지 읽을 수 있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진보에 반대한다> 먼저 읽은 뒤에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제로 포인트>는 전작과 이어지는 글처럼 느껴졌다. ㅇ연결 독서 하는 느낌! <진보에 반대한다>가 ‘진보’라는 말 자체에 대해 한 번 더 의심하고 숙고하게 만드는 책이었다면, 이 책 <제로 포인트>는 그 의심을 지금의 세계 정세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오는 좀 더 실천적인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 전작 <진보에 반대한다>에서 지젝은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었다. 선한 구호, 올바른 입장, 세련된 말들이 실제 현실의 고통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과감한 문체와 내용으로 압도적인 필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이 책 <제로 포인트>에서는 더 날카롭게 확대 재생산된다. 트럼프의 귀환, 가자 지구의 참상,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 플랫폼 자본주의, AI와 알고리즘이 바꾸는 일상까지. 이 책은 지금 세계가 어딘가 혹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불편한 감각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듯 했다. 🪞 처음에는 지젝 특유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 구성이 조금은 정신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헤겔, 라캉, 마르크스가 펼친 철학적 내용들이 계속 나오고, 정치 뉴스와 철학 개념이 문장들 여기저기에서 부딪혀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그리고 AI의 도움을 받아) 읽다 보면 과거 한가닥 하셨던 철학자, 사상가들의 이름이 괜히 등장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젝은 헤겔의 철학을 빌려 모순을 피하지 말고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끝까지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지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은 우리가 아직 답을 못 찾아서가 아니라, 현실 자체가 이미 모순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젝은 라캉을 통해 우리가 왜 알면서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욕망하고 있는 지를 설명해준다. 사람은 진실을 마주한다고 해서 바로 바뀌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믿고 싶은 구조 안에서 묘한 만족감을 느낀다. 지젝은 마르크스를 통해 이 모든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선함 혹은 악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폐적 자본주의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지젝은 어느 한쪽 편에 서서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마스의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맥락을 말해야 한다고 하고, 서구의 위선을 비판하면서도 쉬운 반서구주의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다소 지젝이 회색 분자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황희 정승인가?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고... 하지만 지젝은 문제에서 빠져나와 한 걸음 멀리서 생각해내는 메타 인지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듯 했다. 우리는 대개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편 가르기로 정리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데 지젝은 그 편안함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읽으면서 작금의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선거가 끝나자 진영 싸움과 권력 투쟁만 남았고 어떤 사건이 생기면 사실을 따지기도 전에 내 편과 네 편부터 갈라진다. 질문은 곧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의심은 곧 음모론으로 몰리거나 반대로 무책임한 선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젝이 말하는 “제대로 된 말을 하라”는 문장은 그래서 더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고 하며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이 책은 다 잘될 거라고 위로해주는 책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지점에 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젝의 이야기가 완전히 절망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닥을 인정하는 일은, 포기가 아닌 다시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말은 무엇인가? *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출판사 : @woojoongmong.books #우주서평단 #우주클럽_철학방 #우중몽 #슬라보예지젝 #제로포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