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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적어 본 지도 굉장히 오래됐고, 뭘 썼는지 떠올려 보려 해도 떠오르는 문장이나 구절이 하나도 없지만, 일기를 쓸 때 내가 아닌 다른 독자를 상정하고 쓴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학교 숙제로 쓰는 일기야 선생님이 검사를 하니까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 쓰긴 했지만, 그때조차도 일기 속에서 그걸 읽는 사람한테 전달한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뭘 했고, 무엇을 느꼈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를 적는 일종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기에, 일인칭으로 내가 겪은 일에 대한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상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적고 보니 굉장히 이기적인 글이었던 것 같네요 제가 적던 일기는. 반면 <반성문>은 시작부터 일기를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기록한다기보다는 전달하려고 합니다. 대놓고 이해나 공감을 바라진 않지만, 뭔가 읽는 사람이 내 의도를 오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바라봐 줬으면, 이걸 전달하는 내 생각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간절함이 알게 모르게 전달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너무 일상적이어서 일기에 잘 적지도 않을 만한 내용들인데 오히려 더 긴장되게 만듭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런 밑밥 같은 이야기들을 깔아놓는 걸까? 전반부는 한마디로 태풍 속의 눈, 폭풍전야인것 마냥 너무 고요합니다. 조금 더 읽어보니 일기가 아니라 당신께 보내는 편지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편지는 어쩐지 좀 어색합니다. 일기도, 편지도 아닌 듯한 글을 계속 읽어가다보니, 아니 사실 글이 굉장히 자세해서 배경이 그려지는게 머릿속에 영상이 자동재생되서, 글을 구경한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계속 구경하다보니, 이 사람 좀 특이한게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대화내용은 그렇게 자세하게 작성하면서, 정작 자기가 글쓰기모임에 가서 뭐라고 했는지는 너무 단순하게 말해서 자기도 놀랐다고만 할 뿐, 자기 자신이 한 말은 적질 않습니다.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는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글쓰기 모임에서 자기 글을 자기에 갇힌 글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재대로 긁힌 모양입니다. 이렇게 터트리기 위해서 앞에 밑밥을 깐걸까 싶을 정도로 글쓴이는 그야말로 폭주합니다. 제사 전날까지 이어진 이 폭주는 더 이상 담론에 갇힌 사람들과 우리로 묶이기 싫어함을 성토하는, 반항기의 10대 청소년처럼 미처 날뜁니다. 아직도 자신이 우주먼지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없는, 무리뉴 감독 같은 스페셜 원이라고 생각하는걸까요.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 마냥 패륜적인 멘트까지 서슴없이 내뱉으며 긁다 못해 가슴에 대못을 박기 시작하는 글쓴이와 마침내 인내심을 상실해버린 모친의 답변에 씰룩거리기 시작한 제 입꼬리가 견디지 못하고 실소를 토해 내며, 태풍과 같은 전개에 휩쓸려 신나게 휘둘리고 있습니다. 이쯤되니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려우면서도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가 어려워집니다. 이윽고 흥분은 가라앉고 1장이 끝나가면서, 속지 색이 구분되는 2장부터는 화자가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2장의 화자는 어머니군요. 1장을 읽으면서 제 어머니가, 2장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던 자신의 어머니, 외할머니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맨날 밥 얘기만 하고 제대로 된 도움을 준 적이 없다며 푸념하던 어머니. 그래서 자신은 자식에게 한 마디 말도 삼키지 않고, 몇 시간이고, 몇 날 며칠을 납득시키려고 하시며, 지금 밥이 넘어가냐고 하시던 어머니. 제가 3장을 쓰게 된다면 1장을 넘어서는 가관일지도 모르겠네요. 1장과 2장의 화자 모두 이해가 가고, 무엇보다 확신이 드는 것은 정답은 없다는 확신이 듭니다. 저 역시 한때 원망하던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을 묻어 두고, 상대방이 바뀌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제가 바뀌어서, 따끔거리게 하는 말들로 입은 상처를 재생시키는 리들샷 같이 살아가려 합니다. 이번에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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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인의 밥심은 세계에서 알아준다. 안부 전화의 시작은 대부분 밥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아침에 전화를 하면 아침 먹었냐고, 점심이나 저녁에 전화를 하면 점심식사나 저녁식사를 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헤어질 때 다음 밥 한번 먹자라고 한다. 실제로 밥을 먹을 약속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안부를 묻는 질문이지만 밥이 들어간다. <반성문>이라는 소설은 바로 '식사는 하셨습니까?'라는 가장 한국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책 <반성문>은 식사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앞에서 식사를 통하여 안부를 묻는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저자는 이 질문에서 따뜻함이 아니라 차가움으로 바라보았다. 소설의 1부와 2부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담겨 있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부모의 시선으로 넘어간다. 부모는 자식의 원망에 대하여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물어본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다른 어느 관계보다 특이하다. 우선 자신의 마음으로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랑이 오가기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 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모두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책의 제목이 반성문인 이유는 자식의 행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 자식에게 헌신적이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어려움을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마음이 먹먹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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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 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밥 먹었니?"라는 말은 단순한 식사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자, 걱정이자, 때로는 가장 하기 힘든 말 대신 건네는 투박한 안부다. 정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은 바로 이 '밥'이라는 소재를 통해 부모와 자식 사이에 흐르는 가장 차갑고도 뜨거운 감정을 보여준다. 표지의 쓸쓸한 분위기에 이끌려 집어 든 이 책은,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명치끝이 묵직해지는 통증과 함께 기이한 위로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만약 당신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본 적이 있거나,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이 입안에서 맴돌고 있다면 이 책이 당신의 대필 편지가 되어줄 것이다. 소설의 1부는 자식이 부모(혹은 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한다. 냉장고에 붙은 쪽지와 얼린 밥을 데워 먹는 화자의 일상은 지극히 건조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대체 저를 왜 낳으셨습니까라는 시퍼런 질문이 흐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가난과 부채, 그리고 끊어낼 수 없는 혈연의 굴레를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마치 나의 내면을 들킨 것만 같았다. 냉장고 속 식어가는 밥처럼,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은 소리 없는 활자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1부를 읽으며 나는 우리가 부모에게 갖는 원망이 사실은 '더 깊이 사랑받고 싶었던 욕구'의 다른 이름임을 깨닫게 되었다. 2부로 넘어가면 시점은 부모(혹은 신)에게로 옮겨간다. 자식의 날 선 질문에 부모는 논리적인 해명 대신 그저 묵묵히 쌀을 씻고 불을 켠다. 눈보라를 견디는 펭귄처럼 온몸으로 가난과 세파를 막아내며 자식을 지켜온 그들의 대답은 오직 하나, "밥은 먹었나"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부모 세대의 사랑은 왜 항상 이렇게 엇갈리고 투박할까. 자식은 "왜 나를 힘들게 했냐"고 묻는데, 부모는 "그래도 밥은 먹어야 산다"고 답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듯한 이 평행선이 사실은 서로를 향한 가장 치열한 사랑의 형태였음을, 작가는 '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여준다. 화해나 용서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그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것. 그것이 가족이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숭고한 반성문임을 알게 되었다. 소설 <반성문>은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덮을 수 없는 책이다. 다 읽고 나면 내 곁에 있는 가족의 얼굴이, 그리고 오늘 먹은 밥 한 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말 못 할 응어리가 있는 분들, 혹은 삶의 무게가 버거워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책장을 덮은 후, 용기 내어 가족에게 "식사는 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라. 그 한마디가 당신이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반성문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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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1부를 반쯤 읽다 덮었다. 숨쉬기가 답답할 정도로 글들이 꾹꾹 읽힌다. 한 장 한 장 넘어가지 못하고 꺽꺽 숨이 멈춘다. 직선으로 난 길을 걷다 굽은 길에 도착해 발걸음이 부드럽게 꺾이지 못하고 삐그덕삐그덕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숨을 이어가며 붙여가며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을 펼쳤다. “차라리 거짓으로만 쓰였다면” 심장이 눌리는 듯하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마음과 다르게, <반성문>을 읽는 동안 계속 해찰했다. 읽다가 덮다가를 반복하다, 어렵게 구한 작가의 이전 책 <맹인의 거울>을 먼저 읽었다. 경쟁과 비교가 일상처럼 되어버린 사회에서 스스로 남의 시선 앞에 자신을 가져다 두고 평가를 기다리는 중심 없는 현대인들이 거기에 있었다. 작가의 독특한 문체가 이전 책에서도 읽혔다.
가진 게 없는 집이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조상들 제사를 챙겨야 하고... 죽은 이들의 밥상이 너무도 풍성합니다. 이미 다 끝난 고생과, 다 끝난 빚과, 다 끝난 사연이 올려져 있습니다... 조상들의 밥상과 지금 제 밥상 사이에 있는 실패들을, 도대체 언제까지 누가 얼마만큼 떠맡아야 합니까... 하고 자식은 제삿날을 푸념한다. 제삿날, 죽은 이가 와서 밥을 먹고 가는 날. 이미 세상을 등진 조상을 매개로, 살아있으나 그닥 끈끈할 것 없는 말라버린 딱풀 같은 부모와 자식이 얼굴을 보고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경건한 의식을 치른다.
책을 읽는 동안 곳곳에 눈길이 머물렀다. “지금 우리가 서로에게 쓰고 있는 이 말들이, 언젠가 또 다른 영수증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원망도, 감사도, 여기서 잠깐 멈춰 두겠습니다.” “나는, 내가 했던 말들과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 사이에 조용히 서 있겠다.” 간격을 둔 대화들 사이에 나인 듯하고, 너인 듯하고, 우리인 듯한 인생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작가의 말대로 “차라리 거짓으로만 쓰였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은 결국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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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며 나의 잘못을 관찰예능처럼 모든 사람에게 다시 보여준다면, 흔히 우리가 말하는 발가벗겨진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은 심정이 되어 책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1부를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다. 오랜 시간 "널 위한 거야~"라고 포장했지만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딸아이를 숨막히게 채찍질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런 딸아이의 힘겨운 숨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많이 괴로웠다. 지나간 과거의 상처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이겨 내기 위해 애쓰는 피해자와 통렬히 반성할 수 있는 가해자가 용기를 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책이다. 자식에게는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무한한 사랑만 주면 된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왜 몰랐을까요. 영혼이 글러 먹었다고 나무라고, 노력의 방향이 틀렸다는 말보다 존재 자체가 부적합하다는 그 험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았던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생각하지 못한 채 나의 감정에만 매몰된 채 끝간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사지로 내모느라 밥 한술도 편히 삼키지 못한 고통을 주었다는 죄책감과 마주해야 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영혼은 허우적거려도 제자리에서 맴돌 뿐 제자리 걸음이고 갈증만 더 커져서 상실감으로 왜소해진다. 이 과정은 너무 익숙해서 아프다. 더 슬픈 건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돈을 내도, 소리를 질러도, 이 무게는 결국 나의 몫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화자는 비명을 그대로 내지르지 않는다. 날것의 절박함은 타인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감당 가능한 크기로 잘라 ‘예의 바른 고민 상담’의 형태로 내민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은 유난히 정직해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통을 편집하고, 좌절을 포장하며 살아가는가. 사랑에 허기 진 아이는 음식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채워주는 착각을 얻고, 그 착각을 소화시키기 위해 밤에 걷는다. 어둠 속에서는 서로를 비교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숨이 찰 때까지 걷는다. 쓸모없는 응원으로부터 도망치고, 스스로에게 어둠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는 내 딸아이를 보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물 한 모금조차 무게로 느껴지고, 중력이 유독 자신에게만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은 무기력한 느낌. 이 책의 슬픔은 과장이 아니다. 이 반성문은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일 아침 해를 한 번 더 보겠다”는 데까지만 겨우 이른 상태일 뿐이지만, 그 ‘겨우’라는 말 속에 이 책의 모든 힘이 들어 있다. 가볍게 살자는 다짐이 사실은 실패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붙잡아보는 태도 자체가 이 글의 반성이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 책은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대신, 왜 이렇게까지 무거워졌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래서 읽고 나면 위로받았다고 말하기도, 희망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혼자만 이런 무게를 들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하게 된다. 그 확인 하나만으로도, 이 반성문은 충분히 아프고, 또 충분히 의미 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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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런 귀한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YES24와 도서출판 "메트릭"애 이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책을 다 읽어 갈수록 책을 덮고 싶지 않고 깊은 생각에 눈을 감게 하는 책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후자입니다. 서간의 형식을 빌어서 원망 혹은 어쩔수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책입니다. 이런 내용의 책은 드물지 않습니다. 제가 제 아들과 같이 읽었었던 박민규 작가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라는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과 전하고자 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젊은 나에게 힘겹고도 힘겨운 삶의 원망과 고통을 가족에게 이야기 해도 그 분은 가라앉지 않고 타인에게,생판 다른 남에게 이야기 해도 이 "반성문"의 내용처럼 사람은 귀기울여주지도 않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가족은 그걸 알고 있고 변명도 못하고 슬프고도 무겁게 있을뿐입니다. 거꾸로 이야기 해봅시다. 우리는 이런 무겁고도 무거운 삶의 괴로움을 누군가에게 원망섞인 회한으로 토로해 본적이 있는지를... 반면 나이가 들어버린 우리가 젊은 누군가에게 젊은 시절 내가 했었던 토로를 거꾸로 들었을때!!!! 과연 나는 무슨 말을 할수 있겠는가를.. 그 뻔하디 뻔한 질문과 뻔하지만 말할 수 없는 답을 이 책은 "우리를 대신해서" 무겁게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책장은 쉬이 덮을수 있어도 여운은 쉽게 덮히지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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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신원 미상의 수신자에게 편지를 하는 이야기로 서두를 여는 방식에 큰 흥미를 느꼈다. 필자는 평소에도 편지쓰는 것을 좋아한다. 편지를 쓰는 일은 큰 정성이 필요하다. 편지 쓰는 목적을 생각하다가 지난 일을 회상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느낀다. 모든 글자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고, 마지막에는 수신인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 마지막 대사는 주로 '앞으로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밥 잘 먹고, 감기 조심해라.'와 같은 말을 쓴다. 이 책의 '나'도 '식사는 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 하지만 '나'의 글에는 그의 복잡한 감정과 기억이 섞여 있었다. 초반에는 작품을 읽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부모나 보호자에게 쓰는 편지처럼 보이는데, 왜 이렇게 경어를 쓰고 예의를 차리는가? 필자가 썼던 편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수신인과 발신인이 엇갈린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읽을수록 거리감이 느껴졌다. 작품을 다 읽고, 다행스럽게도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제목이 '반성문'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아쉽게도 이야기가 깔끔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기승전결이 아쉽다는 말이 아니라, '나'와 '당신' 사이의 문제가 여전히 먼 곳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편지 글은 시적이다. 분노, 후회, 원망, 슬픔, 자책 등 짧은 표현 속에 깊은 감정이 묻어 있다.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서 축적된 것들이 글자 속에 드러나 있었다. '당신'이 '나'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예감했다. 깔끔한 엔딩은 아니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당신'의 편지를 읽어보니 전해지지 않는 진심을 입 속에서, 그리고 글자 속에서 굴리고 있었다. '나'와 '당신'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당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밥을 짓고, '나'의 몫을 준비해 둔다. 입을 막고서 그 자리에 서 있는다. 그리고 '당신'은 '나'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계속해서 반성문을 쓴다.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스물 두 살 때 자취를 시작하고 부모님과 소홀해지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정말 익숙해져도 괜찮은 걸까? 부모님은 "딸, 밥 먹었어?" "다음에 집에 오면 딸이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같이 먹자."같은 말씀을 자주 하신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유리판 위로 글자를 하나씩 누르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자연히 그려진다. 그러다 부모님께서 밥을 해주시고, 집밥이 제일 맛있다고 익숙하게 말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필자는 그 기억을 영원히 쥐고 싶다. 몸과 마음이 멀어진다고 해도 밥과 말, 글에 담겨 있는 따끈따끈한 사랑을 덮어 두고 싶지 않다. 책 속의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방향은 바꿀 수 있다. 사랑을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두었으면 한다. 원망 없는 사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사랑을 진심으로 내밀 수 있는 '당신'과 그것을 부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가 되었으면 한다. 현대의 삶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해의 지점이 맞지 않는 사람이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러나 내면에 사랑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똑바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면 사과를, 용서가 필요하다면 용서를 할 수 있는 관계로 말이다. 밥은 매개체다. 언젠가는 작품 속 두 사람이 연결되길 바란다. #리뷰어클럽리뷰 |
“식사는 하셨습니까?”, “밥은 먹었냐”.. 한국인의 밥 타령은 아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가볍게 던질 수 있는 인사, 혹은 스몰톡이 어색한 문화에서 건넬 수 있는 가장 친근하고도 예의를 갖춘 물음을 넘어서서 묻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지만 그런 것들을 고봉밥처럼 꾹꾹 눌러담아 겨우 건넬 수 있는 물음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자식과 엄마의 심정을 아주 담담하고 고요하게, 또 매우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세상과 부딪히며 생긴 상처, 박탈감, 무력감, 도태 되었다는 소외감.. 이런 감정들이 세상에 대한 분노로, 그리고 나를 이런 세상 밖에 나오게 한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이 책은 나도 한 번 쯤은 생각했던, “이럴 거면 왜 낳았냐”는 모진 질문을 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이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 대신 “식사는 하셨”는지 묻는다. 솔직하지 못하지만 가장 솔직함을 내비친 다정한 안부인사다. 엄마 또한 이런 저런 걱정과 감정을 쏟아내지 못하고 묻는다. “밥은 먹었냐”고.. 묵묵히 밥을 차리고 기다리는 것은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하고 열렬한 응원이다. 무심하지만 최선의 안부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은 그 이상의 미안함을 표현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한다. 그런 반성문을 읽는 나는 쯧쯧 혀를 찬다거나 이해할 수 없기 보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대안이나 해결방안이 없어도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가며 버티고 살아가면 된다고.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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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에는 각 부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지 않아, 독자는 아무런 예고 없이 이야기에 들어가게 된다.
1부는 부치지 못한 편지 혹은 일기 같은 형식으로 하루의 일상과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처음에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글처럼 느껴졌지만, 읽을수록 그 대상이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철없는 아들의 푸념과 현실의 어려움이 뒤섞여 엄마를 향한 원망으로 쏟아진다. 읽는 내내 나 역시 무거운 감정에 잠기게 되었고,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책 속에는 저자가 자신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받은 평가가 등장한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 대목에서 나 또한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라는 의문을 품은 채 한 장 한 장 넘기게 되었다. 뒤로 갈수록 아들은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고, 마치 음성 지원이 되는 것처럼 생생하게 분노가 전해져 솔직히 읽는 나까지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러다 엄마가 이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하면서, 모자 간의 깊은 간극이 드러나고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이 왜 ‘반성문’인지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2부는 엄마의 시선으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일상과 그 속에 담긴 감정을 다룬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몰입이 잘 되었고, 1부보다 덜 힘겹게 읽혔다. 엄마의 큰 사랑은 말이 아닌 한 끼 식사에 꾹꾹 눌러 담겨 있었던 건 아닐까.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 그것뿐이라, 아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애지중지 키우던 자식이 어느새 커 버리면 눈치를 보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면서도 가장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가 자식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 또한 자식으로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부모에게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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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정무 #메트릭 #편지#일기 #엄마 #식사 #일상 #부모 #밥 #리뷰어클럽리뷰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평범한 안부 인사이자 마지 못해 하는 인사말이 되기도 하는 "식사는 하셨습니까?" 평범한 일상을 전하는 편지로 시작하는 책이다. 너무나 평범해서 또는 나와 너무나도 닮은 하루를 보내는 화자를 보며 책 제목이 왜 '반성문' 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장 한장 읽어 나갔다. 한장 한장 읽어 나가다 보니 왜 책 제목이 '반성문'인지 알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왜 그랬을까 하면서 반성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저를 왜 낳았냐?"고 말하는 자식과 그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는 부모 나도 입밖으로 내 본적은 없지만 한번은 생각해 봤던 질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되고 보니 내 자식도 저 질문을 품고 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이제 나의 원망을 들어줄 부모는 없고, 원망을 들어야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책 속의 부모처럼 끼니 걱정 말고는 할게 없는 것 같다. 가족이기에 너무 편하고 때로는 너무 어려운것 같다. '너에게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설명하면 또 변명이 된다.' '세상에 부족한 사람에게는 밧줄을 내려주고, 충분한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는 곳임을.' '사람의 본업은 거절당하기입니다' '오늘 아침처럼, "하지 못한 것"들 위에 "한 것"들을 얹어 두기 위해서요.' '지나간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편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무섭습니다.' '네가 나를 답답해하는 시간만큼, 우리가 같은 자리에앉아 있을 수 있다면, 나는 그 정도의 비참함은 기꺼이 택한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뒷말이 귀에 들린 말보다 더 또렸했다.' '어쩌면 '말'이라는 건 너무 가벼워서, 우리 같은 사람들의 무거운 진심을 담기엔 역부족인 건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