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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원만 빌려줘 를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슬픔보다도 무력감이었다. 이 소설에는 절대적인 악인도 없고 누군가를 구원하는 영웅도 없다. 대신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함께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제목에도 등장하는 ‘이만원’이라는 숫자였다. 처음에는 너무 적은 금액이라 의아하게 느껴졌지만, 작품을 읽을수록 이만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절망과 죄책감, 그리고 삶의 무게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고작 이만원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라고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이만원이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의 시작일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결과만 보고 사건을 판단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감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작품은 공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쉽게 “이해해”, “나도 알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태도를 경계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해한다고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복잡한 삶을 단순하게 재단하게 된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은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해설에 나온 “그러니 알 것 같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라는 문장이 특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문장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일 수 있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보다 내가 이해했다고 느끼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소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끝까지 억지스러운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는다. 대신 작품은 “우리가 될 수 없다면 서로인 채로 있으면 된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졌지만, 곱씹을수록 오히려 더 따뜻한 문장처럼 다가왔다. 타인을 내 기준으로 바꾸려 하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존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만원만 빌려줘』는 읽기 편한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 공감의 한계,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이야기보다 질문이 더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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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순히 줄거리를 보고 가벼운 이야기겠거니 하고 짧은 소설이여서 금방 읽고 하루를 마무리하려했다. 하지만,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니었음에 결국 내 생각이 오만했구나 라고 느끼며 마지막에 작가님이 하는 말도 이거랑 맞아떨어지는구나 해서 함부로 속단하였다는 걸 알고 머리가 띵해진다. “끝끝내 우리가 될 수 없어 각자의 지옥 속에 산다“ 이 말이 결국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 핵심문장을 작가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게 아닐까 싶다. 맞다. 나 또한 인생을 길게 산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경험과 고난 속에서 남들과 사소한 걸로도 투닥되고 또 쉽게 생각을 하여 함부로 말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책이 결코 나에겐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우리가 될 수 없으면 그냥 있는 그대로 살자. 이게 맞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