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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ㅡ 생각의 전환이라는 패러다임 🔖사색평ㅡ 조직의 경쟁력은 누가 정답을 더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누가 오답을 더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가에서 나옵니다.우리가 맞고 틀린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 팀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그 믿음이 있을 때만 인간은 자신의 모든 지적 역량을 쏟아부어 진짜 정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팀은 지금 안전합니까?" 아니면 "모두가 리더의 정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하고 있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답을 더 많이 내놓을수록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혐오는 깊어집니다.각자가 자신이 받은 답을 "정답"으로 여기며,반대편을 틀린 사람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오답처럼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정답 그 자체가 아니라,정답과 오답 사이의 광활한 회색지대인지도 모릅니다. 그 회색지대는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었는데 말입니다.나 자신을 항한 반성의 기록이자,정답이라는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한 탈출 지도입니다.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자기성찰과 자기 확신이라는 덫에 걸린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역사와 뇌과학이 만난 날카로운 질문에 사유하게 되는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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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인간이 왜 자신의 옳음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그 확신이 어떻게 인간관계의 균열을 넘어 정치적 대립, 이념 갈등, 조직과 사회의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뇌과학과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Review 지금의 사회는 대화가 사라지고, 저마다의 분노가 담긴 외침만이 남았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누가 정의롭고, 누가 무지한지.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제거해야 할 반대편인지. 정치적 입장, 이념적 성향, 직업과 지위, 세대와 성별까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넘쳐난다. 그리고 그 기준을 손에 쥔 사람들은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서 있다는 확신으로 타인을 쉽게 내려다본다. 문제는 이 확신이 단순한 의견 차이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약점을 찾고, 이해하기보다 조롱할 준비를 한다. 논쟁은 조율이 아니라 투기장이자 사냥이 되고, 반대 의견은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인격의 결함처럼 취급된다. 누군가를 물어뜯어야만 자신의 위치가 더 단단해진다고 믿는 사회인 것이다. 김병호 작가의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단순히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처세서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시작된 갈등이 어떻게 뇌과학, 심리학, 사회심리학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왜 틀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지, 왜 증거 앞에서도 고집을 꺾지 못하는지, 왜 집단 안에 들어가면 더 쉽게 확신이 맹신이 되고 여기에 취하게 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간다. 책에서도 말하듯 '확신'은 진실보다 '진실이었으면'하는 마음과 가까이있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은 넘쳐흐르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방어 기제에 가깝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뇌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짐승처럼, 자아의 위협을 감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어찌됐건 자신이 옳다는 이야기를 새로 만든다. 이 확증편향은 지식이 부족해서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무너질까 두려운 인간이 선택하는 익숙한 도피다. 이 메커니즘은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내가 옳다”고 믿으면 고집이 되지만, 집단이 “우리가 옳다”고 믿으면 폭력이자 마녀사냥이 된다. 정치적 대립과 이념적 대립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편을 더 이상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틀렸기 때문에 계몽시키거나 입막음을 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는 조금씩 대화의 공간을 잃고, 각자의 확신을 증명하는 전쟁터가 된다. --- 저자는 옳고 그름이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옳음을 말하는 방식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맞는 말도 칼처럼 사용되면 폭력이 된다. 선의도 지배의 언어로 바뀌면 관계를 무너뜨린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감각을 잃는 순간, 자신이 비판하던 폭력과 닮아갈 수 있다.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책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견디지 못하고,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며, 집단의 뒤에 숨어 타인을 쉽게 공격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정말 진실을, 옳은 길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내가 속한 편의 정답을 수호하며 안도하고 싶은 것인가. 정답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정답으로 타인을 겨누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내고, 돕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누군가를 침묵시키고, 밀어내고, 지워버린다면 그 옳음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정답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가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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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회의실, 상대의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승리감을 맛보았던 순간들,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옳은 길을 강요했던 시간들. 그때의 나는 분명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왜 우리는 틀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가(1부), 집단은 어떻게 확신을 폭력으로 바꾸는가(2부), 조직은 왜 틀린 결정을 반복하며 무너지는가(3부), 우리는 왜 맞는 말로 서로를 잃어버리는가(4부), 정답 없이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5부) 등을 통해 빠른 즉답을 제공하는 AI 시대를 맞아 오히려 우리 사회는 갈등과 혐오의 골이 깊어짐을 비판하고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그리 정확한 편이 아니란다. 심지어 뇌는 거짓말까지 한다. 즉, 사진의 한 장면을 보고 전혀 없었던 추억을 자신에게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는 거다. 이런 뇌를 믿고 나의 기억이 분명하다고 상대방에게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억지이자 강요인 셈이다. 그리고 스스로 내린 선택(결정)이 틀리지 않다고 확신하는 것 또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비합리적임이 밝혀졌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찰스 로드 연구팀은 사형 제도에 관해 찬반 의견이 뚜렷한 사람들에게 상반된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두 그룹의 사람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갖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극단적인 확신이 더욱 깊어지게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증거는 가짜 뉴스로 치부하거나 무시하고 만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이는 팬덤 정치에 사로잡힌 맹신적인 열성 지지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지혜는 뒷전이고 오히려 확신의 덫에 빠져버린다. 이처럼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어리석다.(사진)
뇌과학자들은 '내가 맞다'는 것이 확인되는 또는 내 의견이 관철되는 순간, 뇌에서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분비됨을 밝혔다. 이 호르몬은 쾌락과 보상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마약을 흡입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쾌감과 동일한 경로를 밟는다. 그렇다. 확신은 논리적 결과물이 아니라, 뇌가 보상받기 위해 스스로에게 투여하는 환각제인 셈이다. 신경과학적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신념에 거역하는 정보를 접할 때 뇌의 반응은 물리적인 위협을 느낄 때와 거의 흡사하다고 한다. '틀렸다'는 사실이 바로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자 자아 붕괴로 인식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인지적 경로를 밟는다면 사고의 오류는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맞고 틀린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질문만으로 상대방의 철옹성 같은 '가짜 정답'을 무너뜨렸다. 그는 결코 상대에게 "틀렸소"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에 질문을 계속 던져 상대 스스로 잘못된 논리의 모순을 깨닫도록 함으로써 오류를 인정하는 용기를 얻도록 했다. 그렇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열린 마음이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기 위해선 경청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 오토 샤머 교수의 경청 4단계 다운로드 경청~ 이미 아는 걸 확인하는 경청 사실적 경청~ 기존과 다른 새로운 정보에 주목 공감적 경청~ 상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생성적 경청~ 새로운 가능성에 귀를 여는 것
주식 투자에 있어 내가 늘 참고하는 인물이 있다.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릿지워터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다. 그는 성공 비결을 "고통 + 성찰 = 진보" 라는 말로 요약한다. 즉 투자 과정에서의 처참한 실패를 회피하지 않고 오답 노트란 기록을 통해 왜 그런 잘못된 판단을 했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렇다. 위대한 지혜는 수많은 오답의 기록 위에 세워진다. 그렇다. 이를 끊임없이 수정하려는 성실함이 중요한 가치이다.(사진, 오답 일기의 작성)
인생은 정답을 맞혀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오답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빚어 가는 조각의 과정이다. 성장은 질문의 시작에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오늘 뭘 새롭게 배울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산다. 인간은 사랑으로 변화된다 인간은 논리로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으로 변화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랑 없는 정의는 괴물을 낳을 뿐이다. 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을 집단 광기에 빠져 마녀사냥 하듯이 다루는 사회는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왜 그런 말을 했을지를 읽어내는 너그러움이 더 성숙한 인간과 사회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작은 종지 수준 같은 정치판에 물을 계속 부어봤자 넘치는 꼴불견만 바라볼 뿐이다. 흑백논리에 빠진 많은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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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주 “너를 위해서”라는 말을 한다. 그 말 속에는 분명 사랑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언제나 따뜻하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답처럼 강요되고, 때로는 아이의 말을 끊는 근거가 된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할 때, 부모는 아이를 이해하기보다 고치려 한다.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이런 관계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는다. 이 책은 맞는 말이 왜 사람의 마음을 닫게 하는지, 선의가 어떻게 지배의 언어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이 문제는 더욱 크다. 부모는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근거로 옳은 길을 제시하지만, 아이에게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판결처럼 느껴질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팠던 지점은 내가 옳다는 확신이 반드시 사랑의 증거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아이를 내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려 한 것이 아니라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부모에게 무조건 물러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를 오답처럼 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녀는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사람이다. 맞는 길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길을 함께 걸을 관계를 잃지 않는 것이 먼저다.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가족 안에서 우리가 자주 놓치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사랑은 정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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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을 읽으며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은 조직에 관한 이야기였다. 개인의 고집도 문제지만, 조직 안에서 확신이 굳어질 때 그 위험은 훨씬 커진다. 특히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믿는 순간, 조직은 오히려 가장 위험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 상사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문화, 이미 정해진 결론에 맞춰 근거를 끼워 맞추는 방식은 많은 조직에서 반복된다. 겉으로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패를 향해 아주 질서정연하게 걸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도 고집스럽지만, 여럿이 모이면 그 고집을 시스템처럼 운영한다. 참으로 조직적인 자멸이다. 이 책은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통해 오답을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 건강한 조직은 모두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곳이 아니다. 불편한 질문을 허용하고, 반론을 공격이 아니라 점검으로 받아들이는 곳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감각이 개인에게 지적 겸손이라면, 조직에게는 생존 장치다.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인간관계 책이지만, 조직 문화와 의사결정에도 적용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리더나 실무자라면 이 책을 통해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조직은 진실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정해진 정답을 모두가 함께 연기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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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를 보면 대화보다 판정이 먼저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누가 깨어 있고, 누가 무지한지.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몰아내야 할 반대편인지.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과 이념, 세대와 성별, 직업과 지위를 기준으로 서로를 분류한다. 그리고 그 분류가 끝나면 상대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행동한다.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이 피로감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은 개인의 확신이 어떻게 집단으로 번지고, 집단의 확신이 어떻게 폭력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한 사람이 “내가 옳다”고 믿으면 고집이 되지만, 집단이 “우리가 옳다”고 믿으면 반대편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정치적 대립과 이념 갈등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편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틀렸기 때문에 고쳐야 하거나 침묵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대화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서로의 확신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뿐이다. 이 책은 정답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정답을 가졌다는 믿음이 타인을 지워버리는 순간, 그 옳음은 이미 위험해졌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주장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를 이기기 전에, 상대를 사람으로 남겨두는 감각. 이 책은 그 인지를 되찾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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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이 왜 자신의 옳음에 그렇게 집착하는지를 뇌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단순히 “고집을 부리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뇌가 왜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왜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자아의 위협처럼 받아들이는지 설명한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논쟁에서 이길 때 분출되는 도파민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논쟁에서 승리하면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뇌 차원에서 보상을 받는다. 상대를 설득했다는 감각, 내가 더 정확하다는 감각, 집단 안에서 우위에 섰다는 느낌이 쾌락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인간이 쉽게 논쟁에 중독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인간 뇌가 이렇게 설계되어 있는데, 평화로운 대화가 드문 것도 새삼 놀랍지 않다. [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확증편향을 단순한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의 문제로 본다. 우리는 몰라서만 틀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무너질까 두려워 틀림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 관점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을 읽고 나면 확신이라는 감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내가 맞다고 느끼는 순간, 정말 진실에 가까워진 것인지 아니면 뇌가 나를 안심시키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이 의심이야말로 이 책이 건네는 가장 중요한 태도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생각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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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누군가와의 논쟁에서 이겼던 순간들이었다.나는 분명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논리도 있었고, 근거도 있었고, 상대가 반박하지 못할 만큼의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의 관계는 조금씩 멀어졌다.이 책은 그 이유를 묻는다. 우리가 정말 진실을 말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내가 옳다는 감각에 취해 상대를 밀어내고 있었는지 말이다. 저자는 확신이 때로 진리의 증거가 아니라 불안을 감추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방어 기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꽤 불편했다. 나는 진실을 위해 싸웠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이 무너지는 게 두려워 상대를 이기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이 책이 좋았던 점은 무조건 양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옳음을 말하는 방식이 관계를 파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맞는 말도 칼처럼 사용되면 상처가 된다. 선의도 강요가 되면 폭력이 된다.내가 맞고 틀린 것보다 소중한 것은 관계에서 늘 정답을 말하려 했던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관계는 승패로 남지 않는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내가 맞았다는 사실보다, 그 말을 어떻게 전했는지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