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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상 환자》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거나 혹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현대 사회와 개인의 ‘통증’을 날카롭고도 감각적인 언어로 들추어내는 작품이었다. 시집을 덮고 난 후에도 몇몇 장면과 구절들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시 〈책 속을 걷는 여자〉에 등장하는 위트 있으면서도 씁쓸한 언어유희였다. “반가사유의 반가를 반차로 읽는 여자” 박물관 디지털 영상관이나 VR 체험실 같은 지극히 현대적인 공간(사유의 방)을 걸으며, 고요한 달관의 상태인 ‘반가사유(半跏思惟)’를 직장인의 현실적인 생존 수단인 ‘반차 사유’로 바꾸어 읽는 여자의 모습. 이 짧은 비틀기 속에서 쉼 없이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현대인의 초상이 서글프게 겹쳐 보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디지털 화면 속 책장을 뒤로 걷는 여자의 모습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서사이기도 했다.
시집의 표제작인 〈무증상 환자〉는 제목 그 자체로 거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플 때 멀쩡해 보이는 사람, 멀쩡해 보여도 아픈 사람” “열도 없고 기침도 크게 없다면 무증상에 가까워요” 우리는 얼마나 자주 ‘증상 없는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는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카페에 가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지만, 속으로는 잠과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고 뉴스 특보 속 비상사태처럼 내면의 전쟁을 치른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며 “잠을 푹 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지만, ‘도파민 중독자’이자 ‘탄소 유발자’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온전한 숙면이란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인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헐어 있는 ‘무증상 환자’들의 일상을 시인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문혜진의 《무증상 환자》는 우리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애써 모른 척했던 내면의 불면증, 일상의 피로, 그리고 무너져가는 세계의 징후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무감각해지던 일상 속에서 나의 ‘증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뜻깊은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신과 세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모든 ‘무증상 환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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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문혜진 시인의 시가 반갑다. 그녀의 시에서 보이는 야생의 감각은 반복되는 일상에 불현듯 치고 들어오는 낯선 장면을 선사한다. 생소한 감각을 지각하게 만드는 건 문학의 미학이니까. 그런 지점에서 시인의 시는 탁월하다. 당분간 시집을 손에 쥐고 있을 테다. 이 새로운 감각을 잃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