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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 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 고혜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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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현대 남성은 역설적인 시대를 살아간다. 가부장제의 틀은 여전히 그들에게 강인함과 지배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시대는 공감하고 돌볼 줄 아는 남성성을 목마르게 찾는다. 이 간극 속에서 수많은 남성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내면의 혼란을 안고 산다. 그렇다면 이 물음에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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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남성은 역설적인 시대를 살아간다. 가부장제의 틀은 여전히 그들에게 강인함과 지배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시대는 공감하고 돌볼 줄 아는 남성성을 목마르게 찾는다. 이 간극 속에서 수많은 남성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내면의 혼란을 안고 산다. 그렇다면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지도는 어디에 있을까. 놀랍게도 그 지도는 수천 년 전 그리스인들이 상상한 신들의 세계에 숨어 있다. 심층심리학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인간 무의식에 내재한 보편적 패턴, 곧 '원형(archetype)'으로 이해한다. 제우스, 아폴론, 디오니소스, 헤파이스토스… 이 신들은 저마다 인간 내면의 특정한 힘과 충동, 결핍과 가능성을 형상화한다.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을 읽는 일이다. 모든 남성의 내면에는 '아버지'라는 원형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실제로 경험한 아버지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된 집단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는 이 아버지 원형의 진화를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라는 세 세대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 준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땅속 깊이 가두어 버린다. 새 생명이 빛을 보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이 이미지는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 개인의 의식이 태동할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는 내면의 힘을 가리킨다. '나는 늘 이렇게 해왔다', '이게 내가 배운 방식이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남성, 집단의 규범과 관습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남성의 내면에는 우라노스가 살아 있다. 우라노스적 의식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개인의 자각과 통찰이 자랄 틈이 없다. 억압된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심리적·신체적 증상으로 되돌아온다. 끊임없는 두통, 원인 불명의 피로, 잠재된 분노가 그 신호다. 우라노스는 비단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수많은 남성의 내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묻고 있다.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며 세상을 해방시킨다. 억압적 질서에 맞선 영웅적 반란이다. 그러나 권좌에 오른 크로노스는 태어나는 자식을 삼켜 버리는 독재자로 변한다. 자신이 타도했던 바로 그 억압을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이 패턴을 끝없이 반복해 왔다. 혁명을 내걸고 등장한 지도자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철권 통치자가 되는 것은 크로노스 원형의 집단적 발현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이 드라마는 조용히 반복된다. 아버지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던 아들이 막상 아버지가 되어 똑같은 방식으로 자녀를 통제한다. 직장에서 상사의 억압에 분개하던 직원이 관리자가 되자 부하를 더 억압한다. 크로노스의 혁명은 내면이 미성숙한 채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결국 두려움이 지배 욕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 특히 오늘날 '잿빛 미래'를 사는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무력감과 우울은, 크로노스처럼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기성 세대의 구조적 문제와 깊이 맞닿아 있다.

제우스는 앞선 두 아버지와 다르다. 그는 자식을 감금하거나 삼키지 않는다. 오히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녀의 아버지가 되어 올림포스의 다양성을 꽃피운다. 제우스의 통치 방식은 명령과 지배가 아니라 경청과 중재에 가깝다. 서로 다른 신들이 갈등하고 충돌할 때 그는 각자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섬세하게 조율한다.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배타적 왕정보다 의회 민주주의에 가까운 리더십이다. 주목할 것은 제우스가 여성성 에너지에 둘러싸인 신이라는 점이다. 어머니 레아와 할머니 가이아, 딸 아테나, 수많은 여신의 도움으로 권력을 얻고 유지한다. 그는 여성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숙한 남성성이란 힘의 과시가 아니라 내면의 여성성을 통합하는 것임을 제우스는 보여 준다. 물론 제우스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우라노스의 억압, 크로노스의 독재를 넘어 제우스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현대 남성에게 열려 있는 아버지 원형의 진화다.


아폴론은 현대인이 가장 깊이 내면화한 신이다. 합리성, 명료함, 목표 지향, 감정으로부터의 거리두기, 이것들이 오늘날 '이상적인 남성'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것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난 2천 년의 서양 문명은 아폴론의 빛 아래 펼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턴이 수학으로 우주의 법칙을 해명하고,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를 선사한 것은 바로 이 아폴론적 정신의 결실이다. 그러나 아폴론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그는 언제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명료함과 객관성을 추구한다. 복잡하고 통제 어려운 감정과는 굳건한 담을 쌓는다. 머리가 가슴을, 이성이 본능을 억누른다. 이렇게 억압된 충동이 가장 파괴적인 법이다. 신화 속에서 아폴론은 연인들에게 집요하게 달려드는 '막무가내 돌진형'으로 돌변한다. 평소 그가 혐오하던 바로 그 날 것의 충동을 야만적으로 노출하는 것이다. 아폴론적 남성은 종종 '영웅의 귀'로 세상을 듣는다.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단한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단번에 해결해 버림으로써 그 에니그마를 영원히 사라지게 한 것처럼, 삶의 모호함과 역설을 제거해 버리려는 충동이 오히려 비극을 낳는다. 진정한 지혜는 명쾌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깊은 물음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아폴론의 빛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디오니소스는 현대인이 가장 오해하는 신이다. 술과 광란의 신이라는 이미지 뒤에 가려진 그의 본질은 '조이(joy, 희열)'와 '엑스터시(ecstasy, 황홀경)'다. 이 신은 불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의 자궁과 아버지의 허벅지라는 두 자궁에서 두 번 태어난 '양성의 신'이다. 그는 여성 혐오가 없고, 몸과 자연과 본능의 세계에 친숙하다. 위계와 격식을 혐오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자였다. 신화는 분명히 경고한다. 디오니소스를 억압하고 무시한 자들(트라키아의 리쿠르고스 왕, 테바이의 왕자 펜테우스)은 광증의 벌을 받아 스스로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한다. 이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감정을 억누르고 오직 이성과 통제로만 살아가는 남성이 어느 순간 예측 불가한 분노 폭발이나 중독으로 무너지는 것은, 디오니소스라는 원형이 그림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청교도적 억압이 강한 사회일수록 카니발이 성행하고, 유교적 위계가 철저한 문화일수록 밤 문화가 발달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것도 위험하다. 제어되지 않는 강렬함을 신성으로 착각하는 것은 자신을 태워버린 세멜레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선물(황홀경, 공동체적 해방감, 몸과 자연과의 합일)은 엄격한 의례와 경계 안에서만 온전히 받을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광대함에 담겨야 한다'는 페루 속담처럼, 이 신을 위한 자리를 삶 안에 마련하는 것이 현대 남성에게 주어진 과제다.


우라노스의 억압, 크로노스의 독재, 제우스의 다양성. 아폴론의 이성, 디오니소스의 열정. 이 원형들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올림포스는 열두 신이 갈등하고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는 다중심적 세계다. 건강한 내면이란 그 모든 힘들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상태다. 아폴론의 날카로운 이성으로 무의식의 언어를 해독하면서, 동시에 디오니소스의 불길로 삶을 뜨겁게 살아내는 것. 제우스처럼 다름을 수용하는 너른 마음으로 내면의 모순을 견뎌내는 것이다. 신화는 '이렇게 살아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라고 속삭인다. 그 속삭임을 듣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면, 억압해온 충동, 인정하기 두려운 욕망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림자 속에 구원의 열쇠가 있다는 말은 빈 수사가 아니다. 내가 가장 부정하고 싶은 나의 모습 안에, 온전한 나로 나아가는 문이 숨어 있다. 그리스 신화는 완벽한 인간을 그리지 않는다. 신들도 질투하고 실수하고 상처받는다. 그것이 오히려 이 이야기들을 수천 년이 지나도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다. 현대 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아버지, 완벽한 이성, 완벽한 열정이 아니다. 자신 안의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를 인정하면서도 제우스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 아폴론의 빛을 들고 디오니소스의 어둠 속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가는 것—그것이 신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이달의 사락 p****r 2026.04.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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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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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없는세상의아들들 #고혜경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한겨레출판_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신화는 상징이라는 생각을 한다. 신화의 일정 부분은 인간의 삶을 형상화하여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각종 신의 영역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강력한 상징과 은유가 신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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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없는세상의아들들 #고혜경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한겨레출판

_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


신화는 상징이라는 생각을 한다. 신화의 일정 부분은 인간의 삶을 형상화하여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각종 신의 영역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강력한 상징과 은유가 신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신과의 조우와 조화를 꿈꾸게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신들도 결국 인간의 내면과 속성을 확인하기 적절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확연히 구분하지 않고, 일정 부분 그 양극을 넘나드는 요소가 바로 신화를 알아가는 묘미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남성성의 대표인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속에 담긴 여섯 신들을 면모를 들여다보며,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반영되어 남아있는 남성성이 무엇일지도 주의깊게 살펴보게 됐다. 사실은 궁금했다. 어느 정도로 우리는 신화적 사유의 영향을 받고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인류의 원형적 아버지인 제우스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사무치는 단어, 느낌, 이미지인지 새삼 확인한다. 가부장제라는 체제하에서 누구에게나 아버지란 상처와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한없는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생 떠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인가 보다.(67쪽)


사실 아들을 먹는 장면의 공포와 두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신화적 장치라고 해도 이 장면이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자신의 권력과 생존과 세력을 유지하려는 아버지의 집념과 집착, 즉 아버지라는 무한 권력 앞에서 이미 다른 것은 무의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갈망과 존재적 의미, 그 강력한 뿌리와 근간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결국, 그들의 손바닥 안에서 우리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 눈에는 언제나 무언가 '찾는 중'이라는 초조가 읽힌다. 집이 있어도 집을 찾고 가족이 있더라도 마음 가족을 찾아 헤맨다. 따뜻하고 안전하며 자신의 결함이나 취약함조차도 받아들여지는 '홈'에 대한 허기를 지상 어디에서, 또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싶다.(91쪽)

평소에는 무엇과도 거리를 두는 아폴론이 살육과 무차별적 파괴가 자행되는 이런 '원시적 전투'에 참여하는 이유는, 아폴론이 싸우는 적들이 바로 그가 혐오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마우스를 싫어하고 무질서를 견디지 못한다. 동공 풀린 눈, 흐느적거리는 몸, 혀가 꼬일 정도의 만취 상태, 욕망으로 뒤엉켜 있는 자들의 끈적거림을 끔찍하게도 싫어한다.(128쪽)


'홈'에 대한 간절함, 집과 가족을 꿈꾸며 또한 정돈되고 질서정연한 사회에 대한 집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추구해나가고자 하는 안정에 대한 갈망이지 않을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우리가 앓는 각종 병리적인 증상들은 억압된 심적 에너지를 의식화하라고 촉구하는 영혼의 호소일 터이다.(30쪽)

올림포스로의 귀환은 헤파이스토스에게 통과 의례다. 세상에서 자신의 바른 자리를 찾으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통과 의례의 본래 뜻이다.(116쪽)

그리스는 자신의 세계다. 올림포스는 여섯 여신, 여섯 남신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아폴론은 이 열두 신 중 주요한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지난 3000여 년 동안 인류는 아폴론은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향되게 발전해왔다. '몸 없는 머리' 이미지가 아폴론이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현재라면, 다시 온전한 몸, 땅, 어두움, 그리고 모든 창조의 근원인 혼돈으로 의식의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171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달의 사락 n*****0 2026.04.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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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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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요즘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102030세대의 남성들이다. 30은 제외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데 이 젊은 남성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세대, 성별을 아울러 갈등의 한편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새로운 점은 같은 성별 안에서도 세대를 나눠 또렷이 자신들과 구분짓고 있다는 것인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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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요즘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102030세대의 남성들이다. 30은 제외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데 이 젊은 남성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세대, 성별을 아울러 갈등의 한편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새로운 점은 같은 성별 안에서도 세대를 나눠 또렷이 자신들과 구분짓고 있다는 것인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영포티라는 밈/혐오 역시 그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까. 이들의 등장과 시대의 흐름에 대해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어떤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었다.

책은 어느 정도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인간사를 포함하고 있었고, 또 그를 위해 그만큼 깊이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이란 부제에서 책을 읽기 전에는 뒷부분에 시선을 두었었는데 읽고 나니 앞부분에 더욱 큰 무게가 있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신, 제우스와 우라노스 관계에 관해서는 확실히 기존 세대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담겨있다. MZ세대를 두고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이 노력과 노동의 결과로 보이지 않을때, 상승 욕구가 좌절된 벽 앞에서 이들은 이미 부의 기틀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에 공격성을 드러낸다. "신화의 친부 살해가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36)"이라는 것처럼 그들의 규칙과 문화에 반대하고 저항한다.

이 기존세대와의 갈등은 중년의 위기를 다룬 헤르메스의 내용과 이어지는데,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중년 세대가 '익숙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려(207)'다 무기력하고 서툰 실패의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세대에게 이는 경기가 좋았던 시기에 운 좋게 부를 축적한 세대의 무능이 드러나는 순간이며, 이들이 답습하려 한 익숙한 방법은 현재엔 통하지 않는 라떼의 유산일 뿐이다. 중년 세대가 완숙의 시기로 나아가야 함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세상의 재배열을 모색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강조할수록, 혹은 이 전환기를 앞두고 정신적 성숙의 길을 모색하지 않고 아직 젊고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힘을 가지고 있음을 피력할수록, 이들의 위기 극복은 요원하고 이들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은 커진다.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이야기가 왜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구세대의 남성들을 배척하는가에 대한 틀이 되었다면 이어지는 헤파이토스와 아폴론에 대한 관점은 여성과의 관계 맺기의 원형을 보여준다. 아폴론의 구애 좌절을 통해 젊은 여성들이 왜 비연애/비혼을 택하는지 떠올린다. 내면에 '여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과 배타성(162)'을 품은 아폴론의 구애는 위협과 공포가 된다.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구애를 하는 그의 내면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부재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여신들 헤스티아, 시빌라, 카산드라, 다프네는 이에 대한 거부와 반발로 영원히 처녀로 살 것을 맹세하거나, 구애를 피해 달아나고, 저주를 받는 길을 택한다. 현실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대와의 관계맺기를 거부한다.

또다른 남녀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삼으려 하는 생각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의 단계를 밟으며 살면 그에 따른 이상적 삶이 보상으로 주어지리라 믿었는데, 자신이 준수해온 규칙과 가치와 상관없이 여성의 선택은 다른 남성이 차지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내치고 버린 세상에 대한 저항과 위협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게 된 헤파이토스의 결혼은 이들의 젊고 아름답고 온순한 여성-성녀-에 대한 선망 그 자체이자, 그녀가 잘생기고 건강한 아레스를 애인으로 두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까지 그들이 '퐁퐁'이라 이름붙인 두려움과 닮아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결합은 결국 헤파이토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부정을 덮쳐 다른 신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부정을 함께 욕하고 조롱해주기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공론화와 비슷하고, 그 시도가 오히려 아내의 부정을 막지 못한 무능한 남편을 조롱하거나 여성의 외모에 초점을 맞춰 관심이 옮겨가는 결과를 낳으며 뜻처럼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파국을 앞둔 관계에 있어 남성이 여성에게 "그동안 내가 네게 주었던 것들을 모두 돌려 달라는 이런 '물품 반환 의식'(111)"의 원형까지 보여준다는 점이 신화와 현실 사이의 격차를 더욱 없애준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왜 다른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는데, 가장 오래된 신화 속에서 이들의 모습을 겹칠 수 있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시대와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 남성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의식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달라진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것이 아닐까. 여전히 남성은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지만, 여성이 기꺼이 그들 기준의 성녀 자리에서 내려와 창녀-이들이 혐오하는 늙고 못생기고 공격적인 여성-가 되기를 개의치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여성이 달라지자 남성을 읽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여신들을 다룬 내용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음을 기대하며 감상을 마친다.


*[장기불황시대를 사는 2030 리포트]`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 꼬리표 붙은 2030 젊은이들의 고군분투 삶 / 매일신문 / 20190506
한국인 60% 자식이 부모보다 못 살 것…역대 최대 / 한국경제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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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사락 m******j 2026.04.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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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으로 가득할 나만의 길을 찾아
"모험으로 가득할 나만의 길을 찾아" 내용보기
이 책의 저자는 신화학자이자 꿈 분석가 고혜경씨다. 이번 책,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에서는 아버지라는 권위가 해체된 시대이자, 남성들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 앞에 제우스, 헤파이스토스, 아폴론,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하데스라는 여섯 그리스 남신을 제시한다. ‘들어가는 말’의 제목, “그림자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서”처럼, 오랜 세월 아폴론 적인 남성성만이 유독
"모험으로 가득할 나만의 길을 찾아" 내용보기

이 책의 저자는 신화학자이자 꿈 분석가 고혜경씨다. 이번 책,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에서는 아버지라는 권위가 해체된 시대이자, 남성들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 앞에 제우스, 헤파이스토스, 아폴론,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하데스라는 여섯 그리스 남신을 제시한다. ‘들어가는 말’의 제목, “그림자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서”처럼, 오랜 세월 아폴론 적인 남성성만이 유독 빛났음을 밝히며 그 외의 그림자에 묻혀있던 다른 남성 내면 원형들을 찾아 보여주는 책이다. 그 외에도 나는 심층심리학적 분석과 저자의 통찰이 담긴 글들에 빠져들며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더 읽고 싶었기에 너무 아쉽다는 생각만 들었다. 대학 때 교양으로 들었던 서양문학사 첫 시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기억한다. 무수한 인물과 긴 음절의 생경한 고유명사와 수많은 지명, 복잡한 신들의 계보에 일찌감치 읽기 포기했다. 독서력이 조금 생겨 이제야 보는 눈이 생긴건가, 저자가 잘 쓴걸까,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을 읽으며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던 적은 처음임을 고백한다.  


1장의 주인공은 제우스다. 자식을 먹어버리는 아버지에 대항해 살아남은 제우스이기에 아버지 없이 성장한 모델이 되는 셈이다. 여성성을 통합하는 리더십의 원형을 제시한다. 2장은 헤파이스토스로 신체적 결함과 헤라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창조적인 동력을 보여준다. 


3장에서는 오늘날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아폴론이다. 이성과 냉철한 질서의 빛으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는 가이아의 신전이었던 곳에 델포이 아폴론 신전을 세웠는데 이 곳에서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알고있던 서사였으나 저자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접한 듯 신선했다. 이어 ‘영웅’에 대해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빠른 자들“(p.155)이라며 저자의 개인적인 영웅에 대한 개인적 물음을 적어놓기도 했다. ”영웅은 왜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할까? 남의 땅을 정복하며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파괴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가?“(p.155) 늘 침략받아온 땅에서 같은 DNA를 공유한 독자로서 비슷한 질문을 품었던 적이 있는 바,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요새 쇼츠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더 필요한 메세지라 생각한다. 


4장 헤르메스에서는 도둑과 사기꾼의 신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를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신'으로 재해석한다. 고착된 가치관의 틈새를 이용하여 유연하게 소통하는 헤르메스의 에너지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는 그를 말의 연금술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적으로 국어를 가장 싫어하며 요즘 시를 써야 하는 수행평가에 2주 동안 고통(만) 받고 있는 우리 집 중학생이 그리스 로마 신들 중 가장 좋아하는 신이 헤르메스이기에, 헤르메스는 정말 패러독스 그 자체이군, 하며 읽었다. 


5장 디오니소스와 6장 하데스에서는 그동안 고정된 관념으로 봐왔던 신들을 재발견했다. 현대인에게는 그저 술의 신으로 오해받는 디오니소스에 대해 저자는 ”신을 인간적으로 존중하지 않으니 비인간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p.216)라고 해석하며 신이라기 보다 그림자로서의 디오니소스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을 지적한다. 하데스 역시 ”지옥이라 생각하는 건 큰 오해다“(p.267)라며 흔히 죽음의 공포로 상징되지만 진정한 부, 플루토를 선사하는 신'으로 조명한다. 


하데스는 이 책의 마지막 파트이기도 하다. 하데스의 세계, 우리 내면의 가장 어둡고 깊은 곳, 즉 무의식의 심연으로 내려가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그 곳을 향한 ‘하강’에 대해 카를 융과 연관지었다. 융이 나이 마흔에 맞게 된 ‘중년의 위기’(p.287)는 그 하강을 통해 해소된다. ”‘영혼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깊이로 들어가야 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융의 하데스 세계로의 하강은 자신의 영혼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p.287) 오디세우스가 하데스 세계로 들어갔듯, 융 또한 스스로의 무의식으로 하강했음을 짚으며 ”구원의 열쇠는 그림자 속에 있다“(p.291)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흔히 나올 ‘작가의 말’ 대신 써놓은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문장에는, 


”삶에 쉬운 길은 없지만, 나만의 길은 있음을 믿는다. 모험으로 가득할 나의 길이 결국 풍요의 길이자, 영예로운 길이고, 또 유일한 길이다.“(p.292)라며 이 책에 동행한 독자들이 각자의, 유일한 길로 그림자 모험을 떠나길 응원한다. 지금은 두렵지만 그 그림자속에 그토록 찾던 보물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단지 내게 필요한 것은 하강이라는 행동이다.   


신화를 통해 '자기 탐구'를 하고 싶은 모든 연령층의 독자에게 추천한다. 

f****j 2026.04.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비난이 아닌 모델이 필요한 시대, 그리스 신화에서 찾은 남성성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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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없는세상의아들들우리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고 기술이 세상을 유례없는 속도로 바꿔놓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에서 '가장 인간다운 본질'은 무엇일까. 기술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이상하게도 남성성에 대한 탐구는 과거에 발이 묶인 채 '정지' 상태다. 가부장제의 낡은 권위가 허물어진 자리에 마땅히 들어서야 할 새로운 남성성의 부재는 우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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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없는세상의아들들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고 기술이 세상을 유례없는 속도로 바꿔놓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에서 '가장 인간다운 본질'은 무엇일까. 기술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이상하게도 남성성에 대한 탐구는 과거에 발이 묶인 채 '정지' 상태다. 가부장제의 낡은 권위가 허물어진 자리에 마땅히 들어서야 할 새로운 남성성의 부재는 우리 사회를 다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책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바로 이 공백을 인식하여 그리스 신화라는 인류의 거울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건강한 남성성의 원형을 '재건'하고자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성과 비례하게 남성성 또한 전형적인 고정관념에 갇혀있다. 모두가 변화를 맞이하는 와중에 정해진 모델을 제시하지 않고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라고 꾸짖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소위 '나쁜 남자'에 대한 정보는 사방에 넘치지만 '좋은 어른' 혹은 '건강한 남성'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좋은 아들, 좋은 남편과 같은 역할로서의 전통적인 남성성을 요구한다. 시대적 배경과 맞지 않은 요구가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남성성의 공백은 이 시대의 아들들을 무력감과 분노, 혹은 정체성 상실이라는 모호함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때 책은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고민을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서사인 그리스 신화에 비추어 본다. 현대사회에서 제시하는 교과서가 아닌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를 통해 남성성의 원형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로마신화의 상징적 왕이자 아버지인 제우스다. 그는 할아버지 우라노스의 '억압'과 아버지 크로노스의 '파괴'를 끊어냈다. 제우스의 위대함은 자신의 강력함뿐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신에게 역할을 분배하고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조율의 미학'에서 나온다. 내면의 모순과 대극을 외면하지 않고 그 갈등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세운 질서,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남성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우스의 질서가 무작정 '선함'에 치우쳐져 있지는 않다. 저자는 건강한 남성성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그림자의 수용'을 꼽는다. 우리는 흔히 이상적인 아버지를 결점 없는 성자로 상상하지만 신화 속 아버지는 때로 파괴적이고 잔혹한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내 안의 원시적이고 공격적인 에너지를 부정하고 무의식의 심연으로 밀어넣을 때, 그것은 오히려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파괴적인 본능을 가진 나 또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마땅히 추구해야 할 남성성은 결점 없는 영웅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그 결함마저 자신의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불완전함이야말로 신의 특징이라는 말처럼, 인간인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남성성을 단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제우스가 다스리는 올림포스에는 저마다의 결핍과 강점을 지닌 다양한 아들들이 존재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창조적 예술로 승화시킨 헤파이토스, 억압된 공격성을 생명력 있는 열정으로 전환하는 아레스, 명료한 이성으로 세계를 정돈하는 아폴론, 그리고 논리를 넘어 영혼의 황홀경을 노래하는 디오니소스까지. 더해 관계의 신비와 사랑의 에너지를 품은 에로스, 경계를 허물며 위트 있게 소통하는 헤르메스, 그리고 가장 깊은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 가라앉는 하데스까지 더해지면 남성성으로 향하는 영혼의 지도는 비로소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남신들은 현대 남성이 가질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얼굴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제우스가 될 필요도, 아폴론이 될 필요도 없다. 때로는 하데스처럼 자신의 어둠 속으로 내려가 영혼을 돌보아야 하고, 때로는 헤르메스처럼 경쾌한 위트로 세상과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이 다양한 신성들 중 어떤 에너지가 지금 나의 영혼을 깨우고 있을지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결핍과 마주하는 용기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갈 아들들이 가져야 할 힘이다.


n******1 2026.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인류의 원형적 아버지인 제우스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사무치는 단어, 느낌, 이미지인지 새삼 확인한다. 가부장제라는 체제하에서 누구에게나 아버지란 상처와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한없는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또 아버지의 자랑이 되기 위해 줄곧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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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의 원형적 아버지인 제우스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사무치는 단어, 느낌, 이미지인지 새삼 확인한다. 가부장제라는 체제하에서 누구에게나 아버지란 상처와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한없는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또 아버지의 자랑이 되기 위해 줄곧 매진했다... 지금은 생물학적 아버지보다 원형적 아버지 탐색에 마음을 쏟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일생 떠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인가 보다.             p.67


현대 심리학이 힘, 대화, 공격성, 장애, 이성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발달시켰다면 고대 그리스인은 제우스, 헤르메스, 아레스, 헤파이토스, 아폴론 같은 신들을 탄생시켰다.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은 인간 정신을 이루는 여러가지 서로 다른 힘들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 속에서 이 책은 남성성의 본질적 힘과 아름다움을 고대 그리스에서 찾는다. 


신화학자 고혜경 교수는 가부장제 아버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진 제우스, 태어남과 동시에 배신으로 삶을 시작해 상처를 가진 헤파이스토스,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는 아폴론, 샘솟는 위트와 트릭의 소유자 헤르메스, 억압을 깨부수는 해방의 신 디오니소스, 세상의 은밀한 부를 관장하는 하데스까지 그리스 여섯 남신이 보여 주는 남성 원형의 다채로운 맨얼굴을 들여다본다. 정여울 작가는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고 추천사를 썼는데, 읽으면서 매우 공감했다. 실제로 저자 또한 상담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신음하는 청년들을 자주 만났다고 한다.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버지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경제적 풍요를 잃게 될까봐 몹시 두려워하는 것이 이 시대 연약한 아들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니 말이다. 




삶의 궤적을 회상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우연이 현재를 만들어 왔음을 느낀다. 길게 또 짧게 겹친 인연들, '진짜 나'를 알아 가게 해 주는 학교들, 지혜로 영글어진 스승들, 나란히 걷는 친구들, 배움을 요하는 난관들, 죽음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길 없는 암흑의 나날들, 영혼에 자국을 새긴 감동과 아름다움, 그래서 지금 이 자리... 우연처럼 펼쳐졌던 순간들이 서서히 퍼즐처럼 맞추어져 일관된 패턴과 제 모습이 드러나는 듯하다. 지금껏 우연이라 여긴 일들이 헤르메스의 설계라면 이보다 더 한 트릭이 있을까?                 p.209~210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애정을 가지고 자녀를 대하면서도, 동시에 위협적일 때도 있고 파괴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폭력이 일상이 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뉴스 보도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밤새 잠 안 자고 우는 아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춘기 자녀의 반항 앞에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때때로 자기 안의 괴물을 만나게 된다. 자녀는 아버지의 한쪽 면을 다른 쪽 면보다 훨씬 우세하게 경험한다고 한다. 실제로 저자가 수업에서 각자 경험한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물었을 때, 다수가 권위주의, 폭력, 바람, 경제적 무능, 유기, 냉담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했다고 한다. 실제 아버지는 어느 한쪽 모습으로만 완전히 치우쳐 있지는 않을 텐데도 말이다. '마땅히 이래야 하는 아버지'는 실제 각자가 경험한 아버지와는 대체로 간극이 크다. 그렇다 보니 파괴적인 아버지는 마치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존재인 듯 여겨진다. 그러나 아버지 신화의 원형에는 긍정-부정, 창조-파괴, 밝음-어두움 양면이 모두 존재한다.


인간 정신은 본래 단일하지 않고 다중심적이며 다면적이기 때문에, 이를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정교한 시각이 필요하다. 각자의 내면세계는 복잡다단하고, 다채로우니 말이다. 카를 융의 심리학은 원형 이론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이 원형들의 고향이자 메카가 바로 고대 그리스다. 그리고 심리학적 견지에서 신들은 유용한 개념이자 은유다. 이 책에 소개되는 제우스, 헤파이스토스, 아폴론,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하데스 모두 각각의 심리학적 원형으로 볼 수 있다. 혹자는 '그리스 신화는 그 자체로 심리학'이라 단언하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신들을 새롭게 읽어 내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신화의 언어를 통해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돌아보는 과정도 매우 인상적인 책이었다.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작동하는 원형들의 힘을 알아차리고, 보편적 마음 무늬를 찾아 다면적인 나와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신화와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고대 그리스 신들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26.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 많던 신들은 누가 다 죽였을까? 그 많던 신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기, 저 아래, 심연의 밑바닥에 있지.
"그 많던 신들은 누가 다 죽였을까? 그 많던 신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기, 저 아래, 심연의 밑바닥에 있지." 내용보기
우리는 언제부터 신과 다른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전지전능의 일신론이 의식체계와 기반 세계를 재편하기 전, 인간의 욕망과 충동, 명과 암의 양면성은 인간사회의 곳곳에 스며 있었다. 그것들은 신의 광휘를 입고 그 자체로 자연스레, 혹은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고의 창조주와 순종의 물결을 타고 인간 안의 감정과 욕망 생리와 사회적 본능이 피조물의 속성으로
"그 많던 신들은 누가 다 죽였을까? 그 많던 신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기, 저 아래, 심연의 밑바닥에 있지." 내용보기

 우리는 언제부터 신과 다른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전지전능의 일신론이 의식체계와 기반 세계를 재편하기 전, 인간의 욕망과 충동, 명과 암의 양면성은 인간사회의 곳곳에 스며 있었다. 그것들은 신의 광휘를 입고 그 자체로 자연스레, 혹은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고의 창조주와 순종의 물결을 타고 인간 안의 감정과 욕망 생리와 사회적 본능이 피조물의 속성으로 전락해, 신성을 인간과 별개의 존재로 떼내어 숭앙하기 시작한지 기천년, 또 백여년 사이 급기야 제거 대상의 물목에 오른 지금 현대인은 수용되고 합일되지 못하는 야만과 내면세계와의 갈등을 겪고 있다.


 p.49 편향된 신화는 우리를 현실성 없는 이상에 매달리게 하며 거듭 좌절하게 만든다. 자녀가 자기 아버지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아버지가 성숙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도 온전한 아버지 이미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융 분석가인 매리언 우드먼은 어머니의 어두운 측면을 통합하는 것이 현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진화사적 과업이라 했는데, 아버지의 어두운 면을 통합하는일 또한 이에 버금가는 중요한 숙제로 보인다.


 p.208 심리적 위기의 정점인 '영혼의 어두운 밤'은 마치 태양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식과도 같다. 그런데 깜깜할 때야말로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며 비가식적 존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성인기에는 책임이나 성공 같은 '바깥의 빛'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주 과업이라면, 삶의 후반부에는 눈을 안으로 돌려 내면 작업에 매진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사라진 신들은 어디로 갔는가? 야만과 죄를 뒤집어쓴 채 영영 타르타로스의 밑바닥에 봉인되었는가? 여기서 기억해내야 한다. 신탁과 운명을 부정하던 이들의 말로를. 그들은 잠재된 위협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봉인을 강하기에 억눌리는 것이 아니라 억눌렸기에 위험하고 강한 존재가 된다. 현대인에 있어 뜯겨나간 신성의 또다른 이름은 폭력, 중독, 우울과 채워질 길 없는 절망이다.


 그리스신화는 명백한 다신론적 세계관이다. 아니, 모든 것이 신이자 신성이다. 갈등도, 모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도.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다채롭게 존재하는 세계야말로 가득한 신성의 증거이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사잇길이다. 무턱대고 누를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을 회복하는 길이요 그 안의 자유를 찾는 방법이라 저자는 말한다.


 p.112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즉 성과 공격성 혹은 사랑과 전쟁의 구도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몰아내길 원한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찾으려 했다. 하르모니아의 탄생에는 바로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가장 감당하기 어렵고 또 가장 매혹적인 원초적 에너지들이 결합해 두 에너지 사이 균형이 이루어지자, 비로소 진정한 '조화'가 탄생했다.


 p.241 이 신은 위협적이다. 그리고 정통의 위협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증상에는 영혼의 호소가 들어 있다. 그림자가 난무하는 지금, 억압과 배제가 아니라 디오니소스 힘을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이 강력한 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야만에서 벗어나 인류가 도약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일 것이다. 신의 선물인 풍요의 뿔은 모두를 비옥하게 할, 결코 망각할 수 없는 힘이다.



 신화는 분명 오래된 이야기이다. 보편에 기대어 설명하는 데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이성과 논리의 세계의 현시대의 '남성성'에는 남신들의 속성과 그들의 이미지를 통해 참조할 모델을 잃어버린 채 안팎으로 터져나오는 폭력만이 남아있다. 모호함과 감정의 오염을 거부하는 명료한 이성과 논리의 세계는 들끓는 감정과 카타르시스, 부드러움과 유기적 자연의 이미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물리적 '남성'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인간에 내재된 남성성의 문제다. 신화가 유비하는 인간사, 신들의 세계로 전해지는 인간 내면의 추동과 갈등을 통해 엿보는 억눌린 무의식과 원형 이미지는 다시금 차가운 이성의 세계에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 본질에 가장 가까운 서사의 세계가 그 해답으로 가는 문을 살그머니 열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p.91 취약함과 수치심을 수술하듯 제거하거나 깊숙이 묻어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노력은 상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장애물을 항구적으로 만들 뿐이다. (...) 상처도 결점도 추함도 열등감도 없어 보이는 삶을 원한다는 것, 이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창조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참자기가 되는 길은 있어도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p.252 디오니소스를 몸의 영성이라 했다. 의례를 통해 몸의 감각을 일깨워 신적인 합일에 이르는 것은 신을 경배하기 시작하던 선사시대부터 있어 온 한결같은 인간의 염원이었다. 이를 상실한 우리는 두려움과 열망, 충동과 금기의 반목과 갈등을 각자 내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경험한다. 신화는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수록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해 준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s*****7 2026.04.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