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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의 '모나돌로지'에 대한 번역과 주해!
"라이프니츠의 '모나돌로지'에 대한 번역과 주해!" 내용보기
지난해에 학교에 철학과의 강좌를 위해 이정우 선생님을 모신 적이 있다. 선생님은 먼 길을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강연이 시작하자 마자 순식간에 강연장을 압도하셨다. 칠판에 이론적인 부분을 그려가면서 당신의 말에 모든 학생들이 숨죽여 경청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선생님이 얼마나 깊이 공부를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많은 질문과 선생님의 답변에서
"라이프니츠의 '모나돌로지'에 대한 번역과 주해!" 내용보기
지난해에 학교에 철학과의 강좌를 위해 이정우 선생님을 모신 적이 있다. 선생님은 먼 길을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강연이 시작하자 마자 순식간에 강연장을 압도하셨다. 칠판에 이론적인 부분을 그려가면서 당신의 말에 모든 학생들이 숨죽여 경청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선생님이 얼마나 깊이 공부를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많은 질문과 선생님의 답변에서 순전히 저작들만으로 알려진 선생님의 이론적인 부분들을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알고 있음을 보고 놀랐다. 그만큼 철학책으로는 흡입력이 있고, 또한 문장이 간명하고 좋아서,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이 책은 선생님의 네 번째 강의록이다. 3권에 이어 라이프니츠를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 "모나드론"의 강독을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이 '단자론'이라는 이름으로 전집에 끼여 번역된 적이 있으나, 오역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주해와 함께 라이프니츠 사유의 정수를 맛본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완결적이기도 하지만, 강의록 1-3권을 통해서 읽어보면 또 다른 면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일찍이 연구하셨던 푸코나 들뢰즈의 저작을 충분히 읽은 후에 다시 읽어본다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특히 들뢰즈의 "굴곡"이나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가 대표적이다) 선생님의 연구서가 계속 나와서 우리나라에도 독창적인 철학의 기반이 닦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라이프니츠에서의 형상이란 결국 빈위들의 계열체입니다. 그런데 그 빈위들의 계열체는 그냥 어떤 구조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펼쳐지려는 힘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죠. 요컨데 모나드란 계열체이자 힘입니다. 계열체인 한에서 지각 작용을 하는 것이며, 힘인 한에서 욕동 작용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라이프니츠의 경우 힘이란 외재적인 것이 아니라, 실체 그 자체와 거의 동일시될 수 있는 근본적인 것입니다.
e****l 2001.07.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주름, 갈래, 울림] - 완전한 존재를 향한 여정
"[주름, 갈래, 울림] - 완전한 존재를 향한 여정" 내용보기
리처드 바크의 한 소설에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비행사의 이야기가 있다. 전 세계를 돌면서 그는 그에게 ‘예정되어 있는’ 반쪽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그녀가 자신의 반쪽임을 알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것을 알 수 있기나 할까? 나를 무한히 분석하면 그리고 내가 만난 그 누군가도 무한히 분석하면 이 만남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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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바크의 한 소설에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비행사의 이야기가 있다. 전 세계를 돌면서 그는 그에게 ‘예정되어 있는’ 반쪽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그녀가 자신의 반쪽임을 알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것을 알 수 있기나 할까?

나를 무한히 분석하면 그리고 내가 만난 그 누군가도 무한히 분석하면 이 만남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무한히 분석할 수 없죠. 그러니까 경험에 기대게 된다는 거에요. p.135

라이프니츠는 그에게 이러한 만남이 내속되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예정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우발성’은 인간의 능력으로 분석할 수 없는 무한 분석 명제일 뿐이다.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는 계속해서 ‘경험적으로’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야 할 것이다. 다만, 라이프니츠를 따라가다 보면 대책 없이 황당한 낙천주의적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원래 신의 오성 속에서 수많은 가능 세계들이 설계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세계에요. 그런데 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 세계는 아직 설계도예요. 건물이 아니고. 현실화된다는 것은 곧 설계도가 구체화된다는 것, 즉 시간, 공간, 물질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 그런데 신의 오성 속에 있었던 무수한 디자인들 중 하나만이 바로 이렇게 현실화된 것이라면, 도대체 왜 이 세계가 선택된 것일까요? p.158

라이프니츠의 대답은 역시 낙천적이다. 바로 이 디자인이 최선의 디자인이기 때문이라는 것 (라이프니츠의 세계론은 마치 평행우주론과 와인버그의 ‘인류원리’라는 현재 우주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처럼 최선으로 디자인된 세계에서 자신의 반쪽을 찾고 있으니 곧바로 반쪽을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서글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반대의 예정도 가능한 것 아닌가? 다시 말해, 반쪽을 찾다가 어느 날 자신이 그 반쪽을 만나지 못하게 ‘예정’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그에게 욕동작용이 있는 한 그가 반쪽을 만나게 되리라는 ‘예정’이 좀 더 확실하다.

한 지각으로부터 다른 지각으로의 변화/이행을 수행하는 내적 원리의 활동 - 건물을 보았다가, 그 아래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지각에서 다른 지각으로 계속 옮겨다닐 수 있는 힘, 곧 주름을 펼치려는 힘, 이것이 욕동입니다. p.75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모나드가 분명한 지각들을 가지는 한 그에 능동성을 귀속시키고, 모호한 지각들을 가지는 한 수동성을 귀속시킨다.” 그가 욕동을 통해 좀 더 분명한 지각을 갖는 한 그에게 반쪽을 만나리라는 예정은 좀 더 확실할 것이다. 이정우의 분석과 달리 어쩌면 이 지점, 스스로 자신에게 내속된 질적 여럿을 경험적으로 파악하되 무한에 의해 한계 지워지는 지점에서 근대적 실존성, 능동성이 파생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는 판단해야 한다. 그 예정을, 그 운명을,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고독을 이기고 계속 반쪽을 찾아나서야 한다.

각 모나드가 우주 전체를 표상한다면, 원칙적으로 각 모나드는 최고로 완전합니다. 우주 전체를 표상하니까 각 모나드가 그 안에 무한을 머금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각 모나드는 신성을 띱니다. p.224

“실체/실재를 찾는 형이상학이 그 무엇도 참되고 말하기 힘든 상황에서 탄생한다”(p.18)는 저자의 말처럼 비록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적 모나드론 역시 근세가 소멸하는 변혁기가 깊숙이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다. 당시 그와 실질적 대척점에 있었던 뉴턴의 기계론은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는 밖에 존재하는 뉴턴의 신의 의지와 신성을 모나드 안으로 불러들이고 싶었다.

그렇다면, 신성을 띤 우리 모나들에게 탄생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전적인 탄생이나 완전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들은 영혼의 분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생이라 부루는 것은 발생/펼쳐짐이자 생장일 뿐이며, 죽음이라 부루는 것은 접힘이자 쇠퇴일 뿐이다. ξ73

비행사는 결국 ‘반쪽’을 찾았다. 그 ‘반쪽’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곁에서 다른 반쪽을 찾아 헤맨 자신을 지켜봐주었던 오랜 친구였던 것. 이것은 어리석은 여정이었는가? 물론, 아닐 것이다. 비행사는 자신의 반쪽을 찾았다. 그것은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의 미세지각들을 통합하여 명료하고 분명한 지각을 체현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접힘이나 쇠퇴가 아닌 발생/펼쳐짐이자 생장의 삶을 통해 좀 더 능동적이고 완전한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m*******d 2011.09.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