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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이 책의 글자는 전부 읽었지만, 이 책을 온전히 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어도 내 이해의 수준이 책의 서문 격인 <초대의 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깨달음은 당혹스럽다. 게다가 저자들은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굳이 음악가가 아니어도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듯이, 전문 과학자가 아니어도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음악가가 아니지만 교향곡을 충분히 즐기지만, 이 책은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인용문 바로 앞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 바란다”라는 문장을 간과했다. 물리학, 그중에서도 입자물리학의 발전을 개관하고 있다. 입자물리학은 몇 권의 책을 읽었어도 물질의 구분부터 끔찍하단 생각을 해왔다. 저자들은 그 이름들이 자의적인 것을 인정하면서도(이를테면, 양성자와 중성자를 바꿔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이런 용어쯤은 다들 알잖냐는 식으로 쓰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처럼 단순한 세계가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처럼 복잡한 세계가 없다. 굳이 구분해서 이해하자면, 물리학자는 세계의 본질을 단순성에서 찾고, 생물학자는 다양성에서 찾는다고 생각해왔는데(아주 거친 구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물리학자에 대한 고정관념도 버려야할 듯 싶다. 그럼에도 책의 제목은 “Grace in All Simplicity”로 지었다. 저자들은 이 복잡함이 아주 단순하다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다 읽고 다시 <초대의 글>을 읽었다. 이 글이 얼마나 이 책을 잘 설명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 지대 깊은 계곡에서 번개를 이용하여 원자를 쪼개는 실험을 하는 장면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원자핵을 발견한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실험실, 1차 세계대전에 죽은 헨리 모즐리의 주기율표에 대한 놀라운 아이디어를 만난다. 그리고 찰스 윌슨이 안개가 잔뜩 낀 스코틀랜드의 최고봉 벤네비스산 정상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만든 안개상자로부터 시작해서 온갖 입자의 흔적을 찾아낸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는 쿼크까지 이어지는데, 쿼크 정도는 알 만하다. <초대의 글>에는 맵시쿼크, 반맵시쿼크 정도만 언급하고 있지만, 본문은 훨씬 어지럽다(적어도 나에게는). 폴 디랙의 반입자, 양자전기역학, 에미 뇌터의 물리계의 대칭과 보존법칙, 볼프강 파울리의 배타원리, 그리고 이어진 뉴트리노에 대한 예측과 엔리코 페르미의 이론,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시작된 초전도 현상에 관한 연구, 힉스 보손에 대한 예측, 이런 입자에 대한 예측을 실험을 증명하기 위한 CERN과 같은 기관, LHC와 같은 장치들, 우주의 팽창에 대한 이론 등등. 이런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전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의미 있게 읽은 게 있다. 그건 이 책에 밥(로버트 칸)과 크리스(크리스 퀴그)의 개인적 경험이 잔뜩 담겨 있다는 점이다. 1940년생이 저자들은 입자물리학이 막 전성기로 접어드는 시절에 연구 생활을 시작했고, 환호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놀라운 순간도 함께 했던 연구자들이다. 그들의 스승, 상관, 동료, 혹은 부서의 구성원 등 그들과 함께 연구했던 이들 중에는 노벨상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아쉽게는 밥과 크리스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많은 부분에서 밥과 크리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이 책이 단순히 (입자)물리학의 발전을 다룬 역사책과는 다르다는 점이 바로 이런 면이다. 특히 6장의 <혁명!>이라는 제목의 장에서는 1974년 11월 11일의 일을 밥과 크리스의 시선에서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 그날은 쿼크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증명되었음이 선포된 날이다. 이 장을 읽으면 두 저자가 얼마나 흥분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는데, 더불어 벤 리(이휘소)에 관한 이야기도 꽤 자세히 쓰고 있다. 저자들은 이 때의 흥분과 더불어 과학에서의 혁명적 순간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놀라운 결과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여기에는 고지식함도, 기존의 질서에 대한 맹신도 없다. 모름지기 과학이란 서로 무관한 현상들을 우표책처럼 모아놓은 박물관이 아니라, 통일된 주제 안에서 다양한 지식(또는 관찰 결과)을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이끄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을 ‘경험’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입자물리학에서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 너무 좋은 것’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187쪽) 이런 과학의 속성에 대해 조금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