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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속에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SNS를 넘겨보며 나만 빼고 다들 근사하게 사는 것 같아 울적해지거나, 마음의 공허함을 쇼핑 결제창으로 채워본 적이 있다면 이미 에마 보바리의 마음을 알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단순히 옛날 프랑스 여인의 철없는 일탈을 다룬 고전이라기 보다 끊임없이 자극을 쫓지만 끝내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공허한 방황을 정확하게 겨냥한 거울 같은 소설이다. 주인공 에마의 비극은 엄청난 악행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착하지만 재미없는 남편,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시골 생활은 에마에게 감옥과 같았다.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불꽃 같은 사랑을 원했고, 멋진 상류사회에 속하길 바랐다. 그래서 현실을 도피하듯 위태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눈이 뒤집힐 만큼 화려한 옷과 가구들을 사 모은다. 하지만 자극은 짜릿한 만큼 빠르게 식었고,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와 파멸뿐이었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에마를 섣불리 동정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저 꼼꼼한 문장을 통해 그녀의 허영과 불안을 가만히 보여줄 뿐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 일상의 지루함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에마의 비극은 환상이라는 신기루에 취해 진짜 내 삶을 팽개칠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담담하지만 아주 서늘하게 경고하고 있다. 밑줄 P. 82 엠마는, 평범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런 파리한 삶들이 추구하는 희귀한 이상에, 단번에 도달했음을 느끼고 내심 만족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라마르틴 시의 푸념 속으로 빠져들었고, 호수 위에서 들려오는 하프 소리, 백조들이 죽어 가며 부르는 모든 노래, 하늘로 올라가는 순수한 처녀들, 그리고 골짜기에서 울려오는 영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이런 것들에 싫증이 났고,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처음에는 타성에 젖어서, 나중에는 허영심으로 계속했고, 마침내 마음이 진정된 것을 느끼고 놀랐으니, 이마 위의 주름이 사라지듯 마음속 슬픔도 사라진 것이었다. P. 84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서 오는 불안, 아니 어쩌면 이 남자의 존재가 야기하는 거북함은, 장밋빛 날개를 가진 커다란 새처럼 무한히 열린 시의 하늘에서 맴돌듯 이제껏 어딘가 머물러 있던 그 황홀한 정열을 마침내 자신도 가지게 되었다고 믿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고요함이 그녀가 꿈꾸었던 행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P. 136 지평선 저 끝에, 다다르면, 아르괴유 숲의 떡갈나무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불규칙하게 길고 붉은 줄이 쳐진, 생장 언덕의 급경사면들이 바로 앞에 보인다. 그것은 빗물이 흘러 내린 자국들이고, 회색의 산 절벽 위에 선명하고 가는 줄로 그어진 이러한 벽돌빛 색조는, 그 너머 주변 지역에 흐르는 철분을 함유한 여러 샘들에서 온 것이다. P. 207 그 어디론가, 아주 멀리, 도망가고 싶은 유혹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곧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심연이, 암흑에 가득 싸인 채 입을 벌 렸다. P. 474 그는 마차를 따라다니며 짤막한 노래를 불렀다. 종종 화창한 날의 열기는 어린 소녀에게 사랑을 꿈꾸게 한다네. 그러고는 새들과 태양 그리고 나뭇잎 이야기가 이어 졌다. P. 501 이런 삶의 결핍감, 그녀가 의지하는 것들이 순간 썩어 내리는 이 느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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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의 교리에 어긋나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재판까지 열린 소설이지만, 현대의 관점으로 읽으니 금기보다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상을 추구하는 현상에 초점을 두게 된다. 모든 인물이 흥미롭지만, 자극적인 스토리의 주동자인 만큼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엠마다. 나는 그녀가 수동적인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자신의 낭만을 좇기 위해 '행동'으로 삶을 개척한다면, 엠마는 주체성을 갖기보다는 그 낭만이 자신에게 찾아오기만을 바란다. 그런데 엠마의 이야기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주변인들이 그녀를 부추기게 만든 사실이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녀가 결혼한 이후 주변인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왜 그토록 낭만을 갈구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데,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시어머니의 간섭, 현실에 안주하는 마마보이 남편의 무능과 방관이 그녀의 우울과 권태를 키웠고, 결국 그것이 치명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번외로 계속해서 환상을 좇는 현상을 보바리즘이라고 하는데,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소설에서 탄생한 심리학 용어다. 사디즘, 나르시시즘처럼 특정 작품 속 인물을 모티브로 한 단어가 있다는 것은 그 통찰이 현대까지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졌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주었던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 체감할 수 있다. #도서제공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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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그동안 ‘불륜 소설’로만 알고 있던 《마담 보바리》를 새로 나온 열린책들 판본으로 읽었다. 두께에 한 번 놀라고, 600개가 넘는 방대한 주석에 또 한 번 놀라고. 주석은 당시 풍습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고, 특히 이 책을 둘러싼 문학스캔들에 대한 내용과 검열 재판 당시 삭제된 부분을 본문에 기호로 표시한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 사랑이란,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요란한 천둥소리 번개와 함께,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며, 하늘로부터 삶 위로 몰아친 폭풍과도 같은 것으로, 삶을 뒤엎어 버리고, 나뭇잎이 뜯겨 나가듯 의지를 뿌리째 뽑고 마음을 송두리째 심연 속으로 몰고 가는 것이리라. (p. 192) 결혼이라는 구속과 반복되는 일상,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엠마는 사랑과 사치를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꾼다. 새로운 장소와 화려한 물건, 그리고 자신을 열렬히 사랑해줄 남자가 지금의 삶에서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사랑도 오래가지 못하고, 엠마가 꿈꾸었던 해방은 결국 또 다른 권태와 실망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엠마의 비극은 자신의 삶을 바꿀 힘을 끝내 자기 안에서 찾지 못한 채 타인이 자신을 완전히 해방해주기를 바랐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구원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엠마의 끝없는 히스테리를 이해할 수 없다가도, 당시 여성에게 허용된 삶의 범위가 매우 좁았다는 것과 작품에서 보여지는 폐쇄적인 시골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읽는 동안 엠마의 권태와 무기력, 신체적 쇠약에 대한 묘사가 너무 세밀해서 놀랐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우울증과 신경증 증상을 정말 사실적으로 포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소설 전체가 한 폭의 풍속화이자 만화경처럼 느껴졌는데, 촘촘한 묘사로 당대 지방사회의 풍경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방식이 무척 취향이었다. 오랜만에 읽은 고전소설에 푹 빠져 읽었다. 600쪽이 넘는 분량이었지만 이틀 만에 읽어버릴 만큼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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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마담보바리 # 서평단 왜 우리는 현실의 벼랑 끝에서 수만번 이상에 추락하는가, 추락의 끝에서 엠마 보바리를 만나다. 📗『마담 보바리』_귀스타브 플로베르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대표작,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이자 고전들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 작품이 어떤 인간성을 이야기 하고 있을지 궁금해 읽게 되었다. 💭 마담 보바리, 엠마 보바리는 어떤 사람인가 욕망이 강했던 사람인 것 같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원하던 사람.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보다 이상을 좇던 사람이다. 현실 위에 위태로운 이상의 성을 쌓아 올리고는 현실에 눈 감고 있는 느낌이 났다. 또한 현실과 이상이 충돌할 때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 우리는 왜 엠마를 비난하는가 엠마의 현실 도피 태도, 회피 성향, 충동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의 부족함이 그녀를 비난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행태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이상을 좇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그 결과를 충분히 책임지지 못하는 모습 역시 답답하게 다가온다. 또한 되돌리고 뉘우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다시 그런 선택을 함에 있어 비난을 할 수 밖에 없다. 💭 그럼에도 왜 우리는 엠마를 이해하는가 엠마를 이해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품은 이상이 생각보다 허황되지 않기 때문이다. 품격을 갖추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보았을 법한 욕망이다. 물론 이것이 엠마의 비도덕적인 행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만 그녀의 욕망 자체는 충분히 공감 가능한 것이었다. 다음 이유는 그녀 개인뿐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엠마 곁에는 그녀를 붙잡아 주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또한 부모는 그녀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결혼을 선택했고, 그 결과 그녀는 준비되지 않은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운이 나쁘게도 그녀의 선택에 그건 전혀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더불어 작품의 배경이 된 당시 사회는 여성의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보바리 부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엠마가 얼마나 답답함을 느꼈을지도 생각이 들면서 위태로운 감정이 든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이상의 꿈에서 살아가는가. 마담 보바리를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번 그다음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이상을 좇는 법뿐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법도 일깨워 준다. 고전인 만큼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이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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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열린책들 이 작품이 이토록 막막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연코, 이들의 절망에 대단한 비극적 지점이랄 것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숨막히게, 끝을 알 수 없이, 어쩌면 영영 변하지 않은 채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평범하고 초라해빠진 매일들이 늘어서있다. 별처럼 빛나고 우아하게 흩날리는 이상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한데 도무지 닿을 수 없다. 아등바등할 것도 없고, 달라질 것도 없다. 누군가 차라리 연극적으로라도 나쁘면 나을 일이다. 밍밍하고 쿰쿰한, 낡아빠지고 칙칙한, 눅눅하게 사방을 감싼 일상. 어떤 순간에는 제법 즐거웠다. 또 어떤 날에는 나름 애도 썼고, 빛나는 기억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일상의 냄새에 묻혀 빛바랜 과거,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절망이 되었을 뿐. p.43 그렇게 그는 순종하게 되었다. 그러나 욕망의 대담함이 자신이 선택한 처신의 비굴함에 저항했고, 그녀를 만나는 것을 금지당한 대신 그녀를 사랑할 권리를 얻은 것이라는 일종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위선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p.129 이런 비참함이 계속되려는 것인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인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다른 어느 여자들보다 못한 것이 없었다! (…) 그녀는 하느님의 불공평함을 원망하며, 벽에 머리를 기대고 울었다. 떠들썩한 생활, 가면무도회의 밤들,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그러나 그것이 틀림없이 가져다줄 방자한 쾌락과 온갖 격정을 선망했다. 기실 '허영 넘치는 여성의 파멸'과 그 곁의 성실한 남성(으레 수수한 남편이기 마련인!)의 슬픔이라는 주제는 딱히 낯설 것이 없다. 그럼에도, 물론 '보바리즘'이라는 진부한 해괴를 탄생시키긴 했지만, 이 작품이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 욕망과 현실이 충돌하고 괴리되는 데서 자라나는 절망감을 지독히도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리라. 누구라도 '이것은 절대로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언할 수 없을 만큼. 엠마를 보라. 그의 '자기파괴'가 이토록 서럽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덕적으로는 얼마든지, 쉽게 단죄할 수 있겠으나 내도록 그 심경을 들여다보고 그려본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하기를 주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선망한 화려한 생활과 격정 넘치는 사랑은, 어쩌면, 온갖 예술과 근대의 환상이 모두의 것, 자연스럽고 당연한 권리이자 인생의 꽃인 양 그려온 것이 아니던가. 그를 동경하고 갖지 못해 좌절하는 인간에게, 그 마음이, 대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p.71 결혼 전에는, 그녀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사랑에 응당 따라야 할 행복이 오지 않으니, 잘못 생각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엠마는, 책에서는 그렇게도 아름답게 보였던, 희열, 정열, 도취 같은 말들이 실제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었다. p.233 그녀는 남편에 대한 혐오를 연인을 향한 갈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증오를 새롭게 뜨거워지는 애정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폭풍은 휘몰아쳤고, 정념은 재가 되도록 타버렸기에, 그리고 아무런 구원도 오지 않고, 해는 조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온 사방이 캄캄한 밤이었고, 그녀는 온몸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무서운 한기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떨고 있었다. 이 현재-아님에 대한 갈망은 비단 엠마 보바리만의 고통이 아니다. 이 작품을 가득 메우는 것은 권태와 무력, 충동과 분노인 동시에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욕망과 구역감이다. 경련이고, 죽음이고, 충돌이다. 독자는 묻게 된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리곤 깨닫는 것이다. 당시 처벌과 검열의 이유를. 당대 '도덕적 판단'에 따라 검열된 문장들이 복원된 완전판의 모습은 그간의 '걸작 고전'에 걸맞게 다듬어 선보여졌던 내용과는 퍽 차이가 있었다. 한층 관능적이었고, 소용돌이치는 갈망의 매혹이 생생하게 그려진, 놀랍도록 섬세하고 정교한 비극, 광기, 좌절. 지독히도 아름답고 허무한 순간마다 독자는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단정하고 비극적인 기존의 『보바리 부인』을 엄중히 꾸짖던 이들은 언젠가의 고매한 의식 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풍속과 교양의 꺼풀을 벗겨낸 곳에서 마주하는 통속과 모순을. 그렇게 보바리-즘을 새로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p.584 달빛처럼 하얀 새틴 로브 위로 물결무늬가 어른거리며 떨렸다. 엠마는 그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샤를르에게 그녀는, 몸 밖으로 퍼져 나와, 주위 사물들 사이로, 침묵 속으로, 밤 속으로, 지나가는 바람 속으로, 피어오르는 습기 찬 향내 속으로 힙쓸리며 형체 없이 뒤섞여 스러져 가는 것 같았다. p.610 「그래요, 이제 당신을 더는 원망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는 엄청난 말, 단 한 번도 입에 담아 본 적 없는, 한마디를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게 운명 탓이지요!」 이 운명을 이끈 장본인 로돌프는, 그가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치고 어지간히도 너그럽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좀 비루하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