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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의 노예가 된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를 상실했다.'
"'목적의 노예가 된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를 상실했다.'" 내용보기
🔻이 게시물은 #도서약방 (@doseo.yackbang ) 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_- '목적의 노예가 된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를 상실했다.'- '모든 행위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목적이 불분명한 시간은 ‘낭비’라는 이름으로 규탄받는다.'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왜
"'목적의 노예가 된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를 상실했다.'" 내용보기

🔻이 게시물은 #도서약방 (@doseo.yackbang ) 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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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의 노예가 된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를 상실했다.'

- '모든 행위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 '목적이 불분명한 시간은 ‘낭비’라는 이름으로 규탄받는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왜 그걸 해?”라는 질문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어다. 


공부를 왜 하는가? 취업을 위해서. 

운동을 왜 하는가? 건강을 지키거나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쉬는 것은 왜 하는가? 다음 날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우리는 행동에 명확한 이유나 ‘목적’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며, 

쉼조차 ‘재충전’이라는 생산적 목적으로 포장해야만 마음을 놓는다.


일본의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이 책에서 바로 이 당연해 보이는 상식에 날카로운 균열을 낸다. 저자의 철학 강의는 이러한 현대인의 근본적인 강박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모든 행위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환원되는 사회는 과연 자유로운가? 

도파민과 성과 중심의 강박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작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에 이어, 이번에는 자본주의와 관리 권력이 인간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가 바로 이 ‘목적과 수단의 논리’임을 파헤친다.


책의 1장에서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이 던졌던 논란의 화두를 재조명한다. 당시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지고의 ‘목적’ 앞에서 기본권과 이동의 자유 제한은 너무나 당연하게 수용되었다.

저자는 아감벤의 지적을 인용하며 현대 사회가 인간의 다채로운 삶의 양식을 모두 벗겨낸 채 오직 생물학적 생존만을 최우선시하는 ‘벌거벗은 생명(nuda vita)’으로 우리를 축소시켰음을 비판한다.


🔖"생존 외에는 어떤 가치도 갖지 않는 사회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존이라는 절대적 목적이 주어질 때 시민들은 권력의 통제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저자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대통령 긴급명령과 수권법이 남용되다가 끝내 나치즘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던 역사를 상기시키며, 행정권이 입법권을 넘어설 때 발생하는 위험을 경고한다.


이 경고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를 목도했던 한국의 현대사에도 서늘한 혜안을 제공한다. ‘목적’만 정당하다면 수단의 폭력성이나 자유의 제한을 너무 쉽게 용인하는 사회는, 언제든 예외상태가 일상화되는 전체주의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목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를 경유하며 ‘목적 없는 수단’과 ‘놀이’의 개념을 제시한다.


벤야민이 말한 프롤레타리아적 총파업처럼, 어떠한 요구 조건(목적)을 내걸고 협상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존의 정당화 체계 자체를 중단시키는 ‘순수한 수단’에 주목한다. 또한 목적을 벗어나는 경험, 즉 사치와 낭비, 그리고 규칙 자체를 즐기는 ‘놀이’야말로 목적 중심의 자본주의와 관료제에 균열을 내는 가장 유쾌하고 강력한 저항임을 역설한다.


🔖"자유는 목적에 저항한다. 자유는 목적을 거부하고 목적을 피하고, 목적을 넘어선다." 


우리가 목적이라는 잣대를 치워버릴 때, 

비로소 행위 그 자체의 기쁨과 진정한 자유가 숨 쉴 공간이 열린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맴돌았던 구절은 들어가는 말에 등장하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우리는 목적이라는 말 없이는 무언가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 목적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 자체가, 듣는 사람에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접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충격이 밀려왔다. 

나 역시 "목적을 검토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목적 없이 살라는 건가? 

그럼 무기력하게 방황하라는 뜻인가?' 하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목적 없는 삶은 곧 '낙오'이자 '실패'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자라난 나에게, 

목적을 의심하는 철학적 태도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며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목적'의 대부분은 사실 내 내면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들기 위해 주입한 '타인의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사법 권력의 무력함과 권위에 대해 아렌트의 사상을 끌어와 설명하는 부분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법 권력이라는 것이 사실 삼권 중 가장 약한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권력에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아렌트는 지적합니다." 


물리적 힘(행정)도, 법을 만드는 힘(입법)도 없이 그저 판결만 내리는 사법권이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신전 같은 웅장한 건축물을 필요로 했다는 직관은, 오늘날 권력의 균형이 무너지고 행정권이 비대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기틀이 얼마나 위태롭고 섬세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왜 무엇인가 해야 할까》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일상의 '효율'과 '목적성'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고갈시키고, 나아가 정치적 민주주의까지 위협하는지 파헤치는 생생한 현실 철학이다.


책을 덮고 난 뒤 번역가의 마지막 질문이 묵직한 추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우리는 지금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매일 아침 '오늘 해야 할 일(To-Do List)'을 채워 넣으며 불안을 달래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잠시 멈춰 서서 아무런 목적도 없는 '불요불급한 시간'을 누려보라고, 바로 그 무목적의 자리에서 진짜 삶과 자유가 시작된다고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다.


끊임없이 "너는 왜 그것을 하느냐"고 묻고 이유를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존재하는 순간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의 주권을 되찾고, 나아가 민주주의라는 일상을 지켜내는 가장 아름다운 저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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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 2026.08.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