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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인 지금도 여성들은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가부장제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남성 중심의 사회는 여성들에게 수많은 경계를 만들어 왔다. 과거에 비해 그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경계 자체도 흐려졌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주어진 경계 안에서,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은 근대의 여러 여성들이 법정과 일터, 가부장제와 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경계를 넘으려 했던 시도를 보여준다. 흑인 노예 출신으로 여성·흑인·노예라는 삼중의 경계를 넘어야 했던 비르지니, 이슬람 문화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딸로서 여성에게 주어진 경계를 넘은 누리예 울비예,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가부장적 경계를 넘어 여성의 생식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려 했던 독일 여성들의 노력, 가정 밖으로 걸어 나와 일터에서 또 다른 경계와 마주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어머니라는 역할과 남편의 부속물로 규정된 여성의 지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엘리너 래스본, 제국주의가 규정하고 강요한 경계에 맞선 여왕 라나발로나 1세, 부유한 미국인이었지만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경계를 넘어 아프리카와 연결되었던 에슬란다 롭슨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흑인, 서양, 근대, 이슬람 문화권 등 이들이 살아간 환경과 조건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와 다르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여성이라는 공통점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넘어 같은 방향을 보여준다. 흑인 여성 비르지니가 고군분투했던 이야기가 결국 남성 변호사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전달되었다는 점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남편 없이 독자적인 법률 행위를 하는 데 제약을 받았던 한국 여성들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오늘날 한국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 대리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회에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과도 겹쳐 보였다. 가정에서 아들과 딸을 양육하는 방식의 차이를 2000년 이후에도 직접 경험했던 나는 누리예 울비예의 이야기에 특히 공감했다. 내가 고향을 떠나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 주어진 ‘딸이라는 경계’를 넘기 위해 먼저 투쟁했던 선구적인 친척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비예 역시 오스만 제국의 황실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곳에서 얻은 기회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울비예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누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모습은 먼저 기회를 얻은 나 역시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당위성과 용기를 갖게 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여성의 재생산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관련 입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수십 년 전 독일 여성들의 움직임이 오늘날 한국에서 이어지는 논의와 맞닿아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독일의 선례를 통해 한국 여성들도 자신의 성과 재생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더욱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한편 출산을 선택한 여성을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도 모성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마련되어 왔다.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모성보호시간, 육아휴직, 아동수당 등의 제도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기 위해 사회·경제적 삶을 포기해야 했던 과거를 극복하려는 장치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변화의 단초를 남성에게 종속된 아내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여성이 독립적인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냈던 엘리너 래스본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당시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필요한 개혁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그 기여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이 가정을 벗어나 직장에서 일하게 된 이후에도 새로운 경계가 만들어졌다. 특히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종의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환경미화원, 급식실 노동자, 콜센터 직원 등 여성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은 업무의 중요성과 노동 강도에 비해 여전히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책에서 다룬 사무직의 여성화와 그에 따른 임금 하락의 문제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사례는 여성의 임금이 낮은 이유를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 일이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논리를 넘어,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 구조 자체를 살펴보게 한다. 라나발로나 1세의 이야기는 제국주의 침략의 시대에 잊힌 여성 지도자의 대응 전략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는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맞서 외세를 이용하고 개혁을 시도하며 통치자로서 생존을 모색했다. 남성 통치자들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다양한 정책과 개혁을 시도했던 것처럼 여성 통치자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능동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학교 역사 교육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마다가스카르의 라나발로나 1세의 통치는 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응과 저항이 남성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에슬란다 롭슨의 연구 역시 인상적이었다. 에슬란다는 흑인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통해 미국과 아프리카 사이에 존재하던 사회·경제적 경계를 넘어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같은 흑인이라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있었기에 현지 여성들의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탐구할 수 있었다. 그의 기여가 종종 남편의 이름 뒤에 가려졌다는 점은 아쉽지만, 동시에 여성의 시각과 경험이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질문과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책 속 여성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경계를 넘어섰다. 이들은 주류 역사 서술이나 학교 역사 교육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지만, 이들과 같은 수많은 여성의 행동이 모여 오늘날의 사회를 만들어 온 큰 흐름에 기여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지역적·문화적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경계가 존재하며,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경계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견고한 경계 앞에서 그것을 넘으려 했던 근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 역시 아직 남아 있는 경계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경계를 넘어설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삶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경계를 넘어섰던 여성들을 역사 속에서 다시 발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저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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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글 중 가장 흥미로웠던 '19세기 마다가스카르 메리나왕국과 라나발로나 1세(이성재)' 남편이자 선왕(라다마 1세)의 개화정책과 정반대로 강력한 반유럽, 쇄국 정책을 추진했던 라나발로나 1세(1828~1861 재위)의 연구가 서구의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으나 최근에는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재조명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가혹한 공포정치를 실시했던 그녀의 통치에는 왕위 계승 과정에서의 처절함, 제국주의적 침략으로부터 마다가스카르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라나발로나 1세가 죽은 후 35년이 지난 1896년, 그녀가 끝내 지키고자 했던 조국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저자의 이런 맥락에서도 인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비르지니 재판 사례로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 노예제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여성노예가 법정에서 싸우는 법(권윤경)' 과거 역사가들의 여성 노예 해방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주인과의 감정적, 성적 유대로인한 해방의 용이성'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노예 해방에 대한 프랑스 학계의 연구는 프랑스 법원의 해방 전통과 이를 이끈 이장베르, 가틴, 뒤팽과 같은 백인 남성들을 인권 선구자로 추앙하는데 함몰되어 있었다. 이 두 가지를 경계하며 전개되는 글은 자유를 열망했던 흑인 여성 노예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서양 근대사 속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2026년 여성들의 삶을 견주어 보았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고(특히 '낙태'와 '사무직의 여성화') 생각했지만, 자유에 대한 의지를 실천한 여성들의 모습에서 제자리 걸음일지라도 계속 걷고 있는 생동감을 느꼈다.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더 적극적으로 기념해야할 이유를 찾게 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