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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국가의 정책 결정은 수많은 시민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다. 월급 명세서의 공제 항목, 병원비 부담, 자녀의 돌봄과 교육 조건, 노후의 생계까지, 이 모든 것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 내려진 정책 결정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결정이 어떤 경로로,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정책은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시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실패하면 '시대적 한계'나 '개인의 불운'으로 귀결되곤 한다. 정책의 첫 번째 실패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 저출산 정책의 역사는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박정희 정부가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을 추진한 결과 1983년 합계출산율은 2.06명까지 낮아졌다. 이 수치는 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대체 수준인 2.1명을 이미 밑돌고 있었다. 경고등이 켜진 셈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부를 비롯한 사회 전반은 이를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지 못했고, 관성적인 산아 제한 정책은 무려 13년 뒤인 1996년에야 공식 폐기되었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구조적 문제는 현상으로 고착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비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시기를 놓치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도 성과는 더디고 불확실하다. 2024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5명까지 추락했고,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저출산의 덫'은 그 결정적 타이밍을 놓친 대가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행동을 미루는 관성이 정책 실패의 첫 번째 원인이다. 이는 단순한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정치적 의지의 부재이기도 하다. 문제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빗나간다. 저출산 대책에서 역대 정부가 주로 선택한 방식은 '아이를 낳으면 보상하겠다'는 논리 아래 현금 지원과 출산 장려금, 바우처를 투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산이란 단기적 보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소비 행위가 아니다. 청년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주거 불안, 고용 불안정, 장시간 노동, 사교육 경쟁, 경력 단절에 대한 공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금을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발상은 문제의 본질과 처방을 동시에 그르친 것이다. 이는 비단 저출산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책 전반에 만연한 '단기 성과주의'는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표면적 증상만 다루는 처방을 낳는다. 각종 위원회와 기본계획이 쏟아지지만, 이념과 정권을 초월한 일관성이 요구되는 중장기 과제는 번번이 정권 교체와 함께 폐기되거나 후순위로 밀린다. 5년 단임제라는 제도적 한계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집권 초반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유인을 강하게 만들고, 이는 필연적으로 근본 처방보다 단기 대증요법을 선호하는 정책 문화를 고착시킨다. 정책 실패의 또 다른 핵심 원인은 결정 구조의 폐쇄성이다. 대한민국의 정책은 대통령 비서실, 경제 관료, 소수 정치 엘리트가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대통령 비서실은 공식적으로는 '보좌 기관'이지만 현실에서는 국정의 실질적 컨트롤 타워로 기능한다. '비서실장이 훨씬 더 많은 일을 접한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처럼, 주요 정책 결정은 선출된 내각이 아니라 비선출 참모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당 역시 정책의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한국의 정당은 '정책 비전보다 유력 대선 주자나 계파 수장을 중심으로 결집하며 선거철에만 활성화되는' 가변적 속성을 갖는다. 정책은 정당이 아닌 후보 개인의 캠프에서 급조되고, 집권 후에는 관료 조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가 반복된다. '한국 민주주의에서 정책 정당은 밤하늘의 북극성과 같다'는 어느 학자의 비유처럼, 정책 중심의 정당 경쟁은 지향점이지만 현실과는 여전히 먼 거리에 있다. 결정 과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정책 실패의 책임이 불분명해지는 구조는 더 나은 정책을 향한 학습과 환류를 가로막는다. 정책의 방향이 올바르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정치적 의지가 없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출산율 하락을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삶의 조건 개선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은 분명 진일보한 변화였다. 그러나 선언에 상응하는 실행의 속도와 강도는 미약했다. 장시간 노동 개혁은 기업의 반발을, 주거 문제 해결은 막대한 정치적 비용을, 교육 경쟁 완화는 기득권의 저항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번번이 이 문턱 앞에서 멈춰 섰다. 이익 집단의 압력도 정책의 발목을 잡는다. 노동조합은 여전히 정규직 중심의 이익 대변에 머물러 플랫폼·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고, 언론은 건설 광고 수익과 부동산 플랫폼 운영이라는 이해관계 속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공정한 비판 기능을 상실하기 쉽다. 금융실명제의 사례가 보여주듯, 진정한 개혁은 언제나 기득권의 보호막을 걷어내는 '권력 해체'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거센 저항을 수반하며, 그 저항을 버텨낼 정치적 동력이 없으면 개혁은 미완으로 끝난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책의 당사자인 시민이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는 사실 역시 실패의 근본 원인이다. 선거철에 정책 공약이 쏟아지지만, 그 정책이 어떤 경로로 탄생하고 누가 결정하는지 시민들은 알기 어렵다. 관료 조직의 관성, 재정 당국의 판단, 이익 집단의 압력, 언론의 프레임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과정에서 시민은 점점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정책이 가치 중립적 기술이 아니라 '누구의 삶을 우선 보호하고 누구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치 선택의 문제라는 점에서, 시민의 배제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결함이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시민은 위기의 순간마다 역사를 바꾸는 주체로 등장해왔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2016~2017년 촛불혁명, 그리고 2024~2025년의 '빛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민은 어긋난 역사를 바로잡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러나 이 놀라운 주권 행사는 주로 위기의 순간에 집중되어 있다. 일상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제도적 메커니즘은 여전히 빈약하다. 광장의 민주주의가 일상의 민주주의로 이어지지 않는 한, 정책 실패의 순환은 끊기기 어렵다. 정책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단일하지 않다. 문제를 제때 인식하지 못하는 타이밍의 실패, 증상만 다루고 구조를 외면하는 진단의 오류, 소수 엘리트에 집중된 폐쇄적 결정 구조, 기득권의 저항 앞에서 무너지는 정치적 의지의 부재, 그리고 시민의 배제라는 민주주의의 결함, 이 모든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정책 실패를 재생산한다. 더 나아가 이 실패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시민이 배제되면 진단이 편향되고, 진단이 편향되면 처방이 잘못되며, 처방이 잘못되면 정치적 동력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질문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이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는 순간 삶이 위태로워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올바른 질문만이 표면적 처방에서 벗어나 구조적 해법으로 나아가게 한다. 동시에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혁신이 절실하다. 숙의민주주의, 공론화 위원회, 시민의회 같은 참여 메커니즘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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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왜실패하는가 #이창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이창곤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어떤 기관이든 단체든, 그리고 국가든. 정책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정책이 실효성이 있든 발전적 방향성을 지니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 물론 긍정적이고 건강한, 가치있는 정책들도 많다. 하지만 말 그대로 정책을 위한 정책도 상당하단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다 그만한 목적과 이익이 숨어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정책이 진짜 정책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검증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런 검증 시스템 또한 잘 갖춰져 있는 것이 맞나, 하는 데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동안의 저출산 정책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아이를 낳으면 보상하겠다"는 논리 아래 현금 지원과 출산 장려금, 각종 바우처가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금세 한계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단지 보상을 받기 위해 아이의 생애를 거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49쪽) 그러니까 말이다. 생각이 짧은 나도 단순히 얼만큼의 보상을 받으려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정책이 정책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려면 충분한 숙고와 시장 경제,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인식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일정 부분 정치적인 목적을 밑바탕이 깔고 이루어지는 정책이 많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런 생각이 결국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면도 없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출산 관련 정책은, 단순히 달콤한 사탕 준다고 꼬시는 수준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정책은 결코 여의도의 회의실이나 정부세종청사의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은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싹터 시민의 뜨거운 열망을 먹고 자라며, 주권자의 단호한 의지를 통해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330쪽)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설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여전히 당연하지 않은 채 이어지는 때가 많으므로, 당연한 말을 새삼스럽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왜, 당연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당연히 정책이 일부 몇 명의 머리에서만 나와서 해결될 수만은 없다. 당연히 좋은 정책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집단과 단체, 그리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만들어나가야 할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지점이 쉽게 이어지기도 어렵다. 그리고 어려운데, 우린 또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을 보호하고 그 삶의 질을 높이는 것, 그것이 정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즉,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무한한 의무를 지며, 국민은 그러한 국가를 만들고 감시할 권리를 갖는다.(141-142쪽)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일들을 우선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를 믿고 지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국가가 내세우고 있는 정책과 방향이 적절한지 알아야한다, 국민이. 잘 알아야 잘 싸울 수도 있고 잘 받아들일 수도 있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이 책에 잔뜩 담겨있는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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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차례의 선거가 지났다. 언젠가부터 선거는 '심판'으로 불리고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투표의 의미를 잘 살려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이 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맞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대체 왜 자꾸 대표자를 뽑는 일이 '심판'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일까.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우리가 심판자로 뽑은 대표자들이 내놓은 정책이 왜 실패하는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정치'라면 우리의 심판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인지 연관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솔직히 읽기 전에는 독서에 왜 실패하는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일상에서 접했던 사회 문제들을 예시로 끌어와 읽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 재밌었다. 왜 이런 시위를 했는지, 어떤 문제를 말하고 싶었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으로 접근했는지, 연결해 읽으니 나에겐 체감되지 않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왜 "노동 빈곤층의 확산, 인구 구조의 급변, 기후위기 대응(246), 국민연금 개혁(120), 의료 개혁(266), 장애인 이동권(53)" 등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가 개선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지 바탕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정책의 효과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최소 10~15년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는 이념과 정권을 초월한 지속성과 일관성이 담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이 폐기되는 우리의 정치 풍토에서, 이러한 '백년대계'를 기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48 / 거시적 문제에 대한 정책 비전을 포함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97 / 가장 뼈아픈 실책은 '선제적 경고'의 부재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내다보고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뒷북만 치는 처방에 그쳤다는 뜻이다. 200" 그동안 치열하게 진영 싸움이 지속되면서 어느쪽이 정권을 잡는지에 매몰되어 있던 우리나라의 현실 상 장기적인 계획과 실행이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눈에 드러나 공론화 된 것으로 한 지역의 성공적인 대표로 자리잡은 표어와 상징물 조차 소속 정당이 다른 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순식간에 폐기해 버리는 치졸한 전임자 공로 지우기, 세금 낭비 같은 것들이 대놓고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 그저 자리 뺏기와 승자 되기에 매몰되어 이미 시민들의 생활에 자리잡은 친근한 이미지마저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을 보면, 시민의 의견과 삶에 대해서 고려하거나 눈치조차 보지 않는 태도가 만연함을 느낀다. 다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가 중장기 전략 연구를 위해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중장기 미래 전략 연구에 본격적인 착수하는 개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 일방으로 기울어진 정책 생태계의 균형을 되찾으려면 정부의 철학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 단체는 스스로 공적 책임을 수용해야 하며, 노동계는 대안적인 정책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사회는 이 거대한 권력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냉철한 감시자로 거듭나야 한다. 258 / 시민이 일상에서 스스로 배우고, 의견을 나누며, 공동체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는 시혜적 정치를 넘어 시민이 직접 이끄는 정치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책 생태계 혁신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356"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의 선택으로 재밌게도 보수 텃밭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진보 진영의 당선자가 나온 사례가 있다. 울산 시도지사 선거의 배경인데 전 당선자가 울산 지역의 버스 노선을 실제 교통상황과 환승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탁상행정으로 개선해 불필요한 환승과 외곽지역에 사는 고령층의 교통 불편이 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생활에 밀접한 문제가 생기가 후보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커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제 1 정책으로 내세운 후보가 당선이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정책을 원하는지, 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의사를 표명하는지 잘 드러난 사례라 생각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집값' 같은 문제로 뭉개고 든 지역도 있지만. 저자의 서문을 읽으며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다행히 다시 안정의 궤도에 올라섰다. 16"는 문장에서 쓴웃음이 나왔다. 책에서도 '2025년 서부지법 폭동(320)'에 대한 예가 있었는데, 이번 선거 이후로 다시 밀집하기 시작한 집단이 2024년 겨울의 밤을 마치 시기하여 따라하기라도 하듯 강남 지역 복판에서 식음료 물자를 받고 방한 용품을 요청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안정의 궤도를 이야기하기엔 이르다. 물론 윤 정부 기간 동안 다방면으로 손을 댄 문제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멈춰질 수 있어 다행이었으나 불거져나온 분열과 갈등, 혐오는 진정되지 못한 상태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어둠은 빛의 그늘 아래에서 짙게 꿈틀거리고 있고,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궤도는 흔들리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시민의 감시와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해 극복해냈다는 성과도 잠시, 그 어떤 이성과 사리도 경제/돈의 만능주의 앞에서는 쉽게 힘을 잃는다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탈력감을 느끼게도 된다. '정책이 왜 실패하는가'를 이해하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왜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그 안에서 정당, 언론, 지식인, 사회단체, 시민 등 구성원들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살피며 감각의 균형을 새롭게 잡을 수 있었다. 급변하는 기술의 발달, 양극화와 분열 앞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를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공부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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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 저자는 전 한겨레경제사회원구원장 겸 논설위원으로 이 책,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는 2022년 6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연재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2026년 현재 시점에서 전면 재구성 및 보완한 책이다.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가 끝났다. 나는 급변하는 시대에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여 미리 방주를 만들어 대한민국 국민을 건져낼 정치인에게 투표했지, 그들이 속한 정당의 파벌싸움을 지지하기 위해 투표한 것이 아니다. 그 방주는 온전히 정책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정치인의 화려한 수사나 몸짓이 아니라, 실제로 입안되고 집행되는 정책이야말로 그 정치가 지향하는 철학의 결정체다.”(p.18)이기에 “정치는 정책이고, 정책은 정치다.”라는 저자가 도달한 명제에 공감하는 바다. 이제는 당선인들이 내건 공약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닥친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정책들을 수립하고 제대로 수행해나갈지 지켜볼 차례다. 책 표지의 검은 테이프 세 개가 인상적이다. 엑스자 테이프는 실패한 정책을, 찢어진 테이프는 중단된 정책, 오래되어 쭈글쭈글한 테이프는 때늦은 정책을 시각적으로 웅변하는 듯하다. 우리는 정책이 실패했거나, 중단되었거나 뒤늦은 정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정책이 베일에 싸인 블랙박스와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은 대통령, 비서실, 경제 부처, 정당, 국회 같은 권력의 정점부터 시민단체, 노동조합, 사용자 단체, 이익집단, 대학교수, 언론과 시민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를 움직이는 모든 행위자를 입체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저자는 왜 수많은 정책이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실패를 거듭하는지, 왜 정작 정책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은 철저히 배제되는지 그 구조적 모순의 민낯을 밝힌다. 또한 권력과 책임,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적 과정으로서의 정책'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총 4장으로 1장 ‘정책의 정치학: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오작동’에서는 뒤늦은 문제 인식으로 결국 인구 비상사태를 초래한 저출산 정책과 같은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오작동 지점을 짚어낸다. 2장 ‘무능한 정점 혹은 위대한 조율사: 최고 결정자의 일그러진 초상과 책임의 무게’에서는 최고정책 결정자로서 대통령이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과 대통령비서실의 비대한 권력, 그리고 예산집행에 있어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전 기재부, 경제 부처의 권력을 비판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왜 기재부를 분리해 상호 견제를 시도하는지 그 배경이 되는 부분이다. 3장 ‘칼날 위에 선 시민사회 정책 행위자들: 책임, 역할, 그리고 변화의 모색’에서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의 위기, 배제당하고 고립된 노동조합, 의협 같은 이익 집단의 포획 현상과 지식인들을 분석한다. 마지막 4장 ‘정책 생태계의 혁신과 뉴비전을 향하여’에서는 '뉴비전 2045'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야를 불문하고 역대 정권이 지지율 때문에 시급한 정책을 미뤄온 예시였다. "정책적 본질이 윗선의 정치공학에 매몰될 때 개혁의 골든타임은 사라지고, 그 유무형의 손실은 오롯이 시민들의 노후 불안으로 전가된다." (p.126) 제때 수립하지 못한 정책은 온전히 국민의 고통이 된다. 노동조합에 대한 부분도 눈에 띈다.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일은 대개 구경꾼의 몫, (...) 우월한 자원과 수단을 가진 강자와 맞서는 약자라도 구경꾼들이 호응하고 편들어주면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p.245) 이 문장을 인용하며 저자는 과연 한국의 노동조합이 국민이라는 구경꾼들의 호응을 불러모을 의지와 역량이 있을지 질문한다. 아스팔트 투쟁만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을 움직일 정책이라는 ‘정교한 돌팔매’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온 국민이 삼성 편을 드는 이런 신기한 나라에서 노조는 답이 없을거라 판단했던 나에게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 부분이었다. 대학교수와 언론이라는 정책행위자에게는 직업과 소명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는 난제가 있다.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정치적 이론을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정치적 영향을 많이 끼치는 집단이기에 더욱 기대가 크며 실망도 크다. 그들의 공론장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에 부딪혀온 우리나라가 이제 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권자로서의 시민이 나설 때이다. 나처럼 "정치가 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늘 의문과 답답함을 품고 있었던 주권자 시민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정책은왜실패하는가#이창곤#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2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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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선거공약과 떠들썩한 선거유세는 투표 당일이 지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수그러든다. 마치 단기 이벤트가 치뤄진 것처럼. 유세의 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현재의 정치는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이 무거운 질문의 블랙박스가 되어줄 책이 바로 이창곤의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다. 선거가 끝나도 시민들의 삶은 매일 이어진다. 그리고 정책은 시민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때로는 평범한 시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들이 불쑥 등장하곤 한다. 뒤늦게 비판 여론에 밀려 사과와 함께 철회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허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고민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시민의 상식과 이토록 괴리되어 있다면, 과연 그들이 우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장의 목소리와 동떨어진 탁상공론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황당함과 무력감의 근원을 이 책은 정면으로 파고든다. 책은 한국 정당 정치가 마주한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의 정당은 이념과 정책 경쟁보다 선거 승리에 집중하는 ‘포괄 정당’의 성격이 강해졌고, 그 결과 시민의 요구를 반영할 정책 논의의 장은 점차 약화되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책 의제를 장기적으로 고민하기보다 선거 주기에 맞춰 급조된 공약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앙대학교 장훈 교수가 한국의 정책 정당을 두고 “밤하늘의 북극성과 같다”고 표현한 대목은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특히 정치인들 스스로 정책 역량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채 관료 조직과 사적 캠프에 의존하는 구조, 그리고 입법보다 시행령에 기대는 ‘시행령 정치’가 반복되는 현실을 정책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우리가 종종 마주하는 황당한 정책들은 개인의 실수보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패를 멈추기 위해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먼저 선거만으로 시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는 통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투표만으로는 정치 구조를 바꾸기 어렵고, 시민의 참여는 선거일 하루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전 과정을 꾸준히 감시하고 평가하는 시민적 참여가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저자는 시민 참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도 지적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선거 중심의 정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권력 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만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방향성에는 공감이 가면서도 다소 원론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정책 정당의 육성, 권력 구조 개편, 시민 참여 확대 모두 중요한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를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경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제시된다. 특히 해법의 상당 부분이 정치권의 의지와 제도 개혁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기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정치 구조를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저자가 지향하는 종착지는 명확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책은 정부와 국회, 사법부 같은 제도권 권력과 정치인, 교수 등 일부 엘리트 집단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주변부에서 이를 견제해 왔지만, 정작 시민은 완성된 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를 넘어 모든 주체가 상호 소통하고 견제하는 유기적인 ‘정책 생태계’의 구축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격렬한 소수의 독재를 넘어, 침묵하는 다수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낼 것”이라고 표현한다. 책은 단순하게 정책 실패의 사례를 나열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의 문제를 추적하고, 시민이 정치와 정책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선거가 끝난 다음 날에도 왜 우리가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가 투표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의적절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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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어김없이 돌아온 선거철, 곳곳에 익숙한 수사와 깊숙이 숙이는 미소들이 지겹게도 보인다. 이 구태의 정점이자 꽃이라 할만한 것은 이번에도 벽보와 현수막에 큼지막한 글씨로 박힌 각종 선언과 치적행사일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시민의 발이 되겠습니다. 시민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공약 이행이 어떻고, 저떻고… 이에 시민들은 말한다. 뻥 치시네! 진작 물었어야 했다. 숱하게 물어온 말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왜 정치인들의 것이 되었는가?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째서 만년 탁상공론에 허울대잔치가 되는가? 선거는 정말 주권행사의 장이 되고 있는가? 청장님, 시장님, 의원님, 각종 '님'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의탁하거나 넘겨주는가? 철마다 내세우는 각종 정책은 시민의 삶과 어떻게 유리되고, 그 결과 정책은 어떻게, 언제, 왜 실패하는가? p.54 정책 의제는 단순히 '선택된 사회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주체, 곧 결정자가 우월적 힘을 바탕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구성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들이 특정 사안을 공식 의제로 설정하고 해결 과제로 선언할 때, 사회 문제는 비로소 정책 의제로서의 생명력을 얻는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뜨거운 여론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어도 정책 주체가 이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현상'으로 남을 뿐이다. p.79 오늘날 국민은 정책의 결과만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무엇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고 싶어 하며,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정책의 시대는 저물었다. 국민과 함께 설계하고 검증하는 정책만이 살아남는 시대, '열린 정책 생태계'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전략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되는 자리에 국민이 주권자이자 권력의 원천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양당제로 이분된 국가, 실제 삶과의 괴리가 커져만 가는 각종 정책들, 허울뿐인 성과발표와 바닥을 치는 정치 신뢰도까지. 저자가 말하듯 정책은 선택된 아젠다인 동시에 결정권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구성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정책의 대상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 동시에 '결정권자'의 주의와 실천 의지가 개입된 결과라는 뜻이다. 위기상황마다 발등에 불 떨어진듯 잠시 모였다 이내 심드렁한 냉소주의자로 흩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는 데에는 정당, 정치구조, 의사결정체와 시민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뿌리깊은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말할 수 없다. 설령 누군가 진짜 국민, 진짜 성원이라는 교묘한 호도로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전용한들 반박조차 쉽지 않을 뿐이다. p.155 정당이 정책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근본적인 배경에 대해 장훈 중앙대 교수는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을 짚는다. (…) 정당이 시민의 일상적인 요구와 삶의 현장에서 유리된 채 엘리트 중심의 정치 게임에 함몰되면서, 정책을 매개로 한 시민과의 접점을 잃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관료 중심의 폐쇄적 정책 결정 구조'가 정당의 입지를 좁혔다.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이 청와대와 경제 관료의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구조 속에서, 정당은 정책의 주도자가 아닌 사후 추인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p.201 과연 우리 사회의 싱크탱크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권력의 입맛에 맞춘 '답정너' 식 보고서를 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하지는 않았는가? 싱크탱크는 모름지기 당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이념의 벽을 넘어 대안과 해법을 치열하게 논쟁하는 '사상의 용광로'이자 '정책의 산실'이어야 한다. 긴 겨울을 지난 이후, '권력의 추가 기운' 것이 확실해지자 거대양당과 선출직 출마자들 모두가 저마다 '빛의 혁명'을 찬사하고 포섭하려 안간힘이다. 정치권력이 인기몰이로 결정된 지 오래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저자가 반복해 말하듯 오늘날 정책이 현실성도, 정의도 잃은 채 이권놀음이 된 것은 결국 제도권의 정치와 정치의 언어, 그리고 그 필요성과 실질적 권력이 시민과 유리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정책결정권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권력을 독점코자 하는 자들이 시민에게서 거세하고 싶어하는 것 또한 시민의 정치참여와 정책관심도라는 뜻이기도 하다. 선거철이다. 우리는 지지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진정으로 정치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제야말로 정치를 주권자의 것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그 지난한 과정은 여전히 시급한 일로 우리 앞에 남아있다. 선거가 시작되었다.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서둘러야 할 때다. p.24 정책 오작동의 핵심은 시민과의 '단절'에 있다. 투표를 마친 시민은 정작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그 빈자리를 특정 이익 집단의 논리나 관성적인 행정이 채우면서 정책은 생명력을 잃는다. 이러한 제도적 결함과 불통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투표함 너머의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한다. 시민의 일상이 정책에 끊임없이 반영될 수 있는 열린 공론장을 마련하고, 단순한 다수결을 넘어 깊은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숙의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357 시민이 스스로 학습하고 의견을 나누며 공동체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넥스트 민주주의' 의 모습이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 결정해주는 시혜적 정치는 이제 끝났다. 이제 정치는 시민이 이끌고, 권력은 그 길을 닦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는 비로소 수사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의 것'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