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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하루 -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 <오전의 고양이> p.43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를 살피고 이끈다. 반려는 결코 일방적인 보살핌의 관계가 아니다. ⠀ p.62 그리고 가장 깊은 평화는 우리 사이에 있다. 반려동물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동물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을 가졌고 어떤 점이 못났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충분한 신뢰가 쌓인 이후에는 무한한 믿음과 애정을 품은 채, 그저 함께 있고 싶어 할 뿐이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서로의 방식을 따르기를 종용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이해되지 않는 채로 놓아 둔다. ⠀ p.73 사랑받기 위해서, 함께 있기 위해서 두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힘껏 용기를 내는 것. 이 간단하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법을 언제나 동물에게서 배운다. ⠀ <오후의 식물> p.141 어느 날부터 나는 식물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식물을 떠나보낸 경험이 쌓이면서 돌보는 책임을 느끼는 것도, 식물의 죽음에 무뎌지는 것도 싫었던 걸까. 다시 친구의 질문을 떠올려 본다. 함께 살던 식물이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러게. 나도, 그저 흔들리며,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 p.157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돋아나고 우글거리는 활력. 이러한 활력에 주목하지 않고 인간의 과학적 계산과 선의만을 중시한다면, 그런 방식의 재야생화는 자연을 무분별하게 가지치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전한 곳에 자연을 격리하고 보호하는 통제가 아니라, 언제나 자연에 속하는 사람이 자연 속에서 안전과 자유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 자연을 밀어내고 지은 터전이 아니라 자연과 뒤엉켜 살아가는 오두막처럼, 모두가 자신의 일상에서 그런 균형을 조금씩 함께 찾아가기 시 작할 때 시신이 묻히지 않은 곳에서도 풀에 윤기가 돌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죽음 위에서 살기보다,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살기 위해. ⠀ <저녁의 강아지> p.308 인생 전체를 되짚어 봐도 이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은 개의 생명을 어떻게든 더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능한 한 고통 없이 지내다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기를 기원하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 p.319 어떤 종이 되었든 오랜 세월 동물과 함께 살아 본 사람이라면 그들 역시 우리처럼 섬세한 감정과 풍부한 개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배우고 또 배우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는 흔히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서로를 돌보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에서는 고양이, 식물, 개와 함께 살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양이 3마리와 함께 살아가는 김영글 작가님, 식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안희제 작가님, 그리고 오랜 시간 반려견과 함께하며 이별을 준비하는 정우열 작가님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비슷하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우리는 다른 생명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 특히 김영글 작가님의 고양이 이야기를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지내는 초롱이가 떠올랐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아무리 오랜 시간 함께 지내더라도 고양이의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밥을 챙기고,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무수한 사진을 찍으며 오늘도 무사히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반려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관계가 아니라,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 없는 믿음과 보이지 않는 신뢰로 이어진 관계. 그래서 반려의 시간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 안희제 작가님의 식물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평소에는 식물을 그저 집 안을 꾸미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기 쉽고, 꽃다발 하나를 건네는 가벼운 선물 정도로 여길 때도 있다. 하지만 식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작은 화분 하나에서 시작된 관심이 거리의 나무와 주변 생태계로까지 확장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올해 식목일을 맞아 나 역시 나비난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방 한켠에 올려두었을 뿐인데 초록빛 생명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삭막했던 공간에 생기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물은 언제 주는 것이 좋을지, 햇빛은 얼마나 보여줘야 할지 하나하나 찾아보며 정성을 쏟고 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물을 주고 잎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아니었다. 안희제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내가 나비난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 역시 나비난 덕분에 이전보다 조금 더 주변을 살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마지막에 만난 정우열 작가의 반려견 이야기는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고, 사실 읽는 것이 힘들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언젠가 다가올 이별까지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마주하면 쉽게 담담해질 수는 없다. 어쩌면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외면하고 싶어 하는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기록들은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일상을 나누었던 소중한 존재를 떠올릴 때, 행복했던 기억보다 먼저 슬픔이 밀려올 것만 같아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끝이 없을 것이라 믿어서가 아니라,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다. 끝을 알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반려인의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고양이와 식물, 그리고 강아지의 이야기는 서로 달랐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 [반려인의 하루]는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 *본 도서는 을유문화사(@eulyoo)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반려인의하루 #반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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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털이 날리는 건 지저분해서 질색하던 엄마와 겁이 많은 나의 성격 탓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짧게나마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삶의 궤적 안에 들였던 경험이 몇 있다. 다세대 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 위층 주인집에서 도둑을 막기 위해 1층 마당에 개 한 마리를 들인 것이었는데, 그 집 소유의 개였지만 우리 집에서 밥을 주고 살피는 일이 많아 '우리 개'처럼 느껴지는 아이였다. 상자에 담겨온 작은 강아지 시절을 시작으로 금세 자라 성견이 된 '누렁이'는 어느덧 목줄을 끊고 대문 밖을 나가거나 마당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동물을 전혀 만지지도 못하고 무서워했기에 하루는 대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오는 누렁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 뛰어 도망갔고, 그런 나를 보고 같이 놀자는 줄 알았는지 자꾸만 따라와 눈물을 쏙 뺀 기억이 어제 일 같다. 줄에 묶여 있을 때는 가끔 더운 날 수도를 틀어 물을 뿌려주기도 하고, 소꿉놀이할 때는 꽃 등을 짓이겨 만든 걸 밥이라며 먹으라고 내밀기도 했는데 무섭게만 느껴지던 그 강아지와의 시간은 조금씩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병에 걸려 팔려간 것을 알게 되었는데 빈집만 남기고 인사도 못한 채 누렁이와 헤어진 그날은 꽤나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내 인생에 반려동물은 없다고, 한 생명을 책임지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여전히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종을 넘어 나와 감정을 나누고 삶의 시간을 공유했던 그 특별한 경험은 부인할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반려동물 하면 떠오르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요즘은 식물을 키우는 스스로를 '식집사'라 표현하며 반려 식물이라 칭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다른 생명체를 자신의 삶과 일상에 들여 함께 살아가고 돌보는 매일은 사람끼리만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는 서로 대화를 할 수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반려인의 하루》의 세 작가는 각각 고양이, 식물, 개를 돌보는 과정 속에서 이들과 공존하는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글이지만 하나의 목소리로 전하는 '반려'의 진정한 의미, 그 안에 담긴 책임과 응답,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만날 수 있었다. 1부는 김영글 작가와 길고양이 출신의 세 마리 고양이 요다, 모래, 녹두의 이야기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독립성이 강한 고양이들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고양이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이지만, 작가는 그 차이를 이해하거나 소통하려 애쓰기보다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대한다. 보통 반려동물을 대할 때 '길들인다'는 표현을 많이 쓰기도 하는데, 작가는 반려 관계에 대해 타자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를 통해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임을 몸소 느끼게 된다. 언어를 넘어선 감각으로의 소통, 그리고 고요한 평화 속에서 꼭 모든 것을 이해하고 매 순간 함께 하지 않아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따로 또 같이의 관계 맺음을 보여주었다. 2부에서 안희제 작가는 집 안에서 키우는 식물에서 시작해 곤충, 이끼, 거리의 나무까지 관계의 범위를 확장한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과 달리 식물은 '생명'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에 이들을 죽게 하더라도 죄책감을 갖거나 돌봄에 있어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죽은 화분을 문밖에 내어놓거나, 싫증이 나면 다른 이에게 나눔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식물을 단순한 취미나 인테리어 요소로 바라보는 요즘에 이를 함께 책임져야 할 반려의 존재임을 강조한다. 식물을 돌보는 과정 속에서 따라오는 벌레나 이끼, 온·습도의 영향 등 식물과의 관계를 인간 중심적인 시선이 아니라 환경과 공동체로 번져가며 나만의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특별한 경험을 소개했고, 돌봄과 응답을 통해 일상의 조건을 재구성하는 그의 매일 속에서 고작 풀이나 나무, 화분 정도로 사물화했던 식물의 '반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3부는 정우영 작가와 그의 반려견 풋코, 그리고 그가 구조한 유기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와 스무 해를 함께한 반려견 풋코와의 마지막 시간을 기록하며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묵직하게 다룬다. 병원 치료와 수액 주사,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떤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라는 반려 관계의 무게감을 일깨우며, 반려동물과의 죽음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과정으로서 조명한다. 조금씩 생명이 꺼져가며 마지막을 향해가는 반려동물과의 작별은 작가뿐 만 아니라 반려인들 누구에게나 커다란 절망으로 다가오겠지만, 이런 이별로 사랑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나에게 남아 스며드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처음에 이 책을 펼칠 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반려 경험과 즐거웠던 추억을 담아낸 가벼운 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함께 사는 존재가 아니라, 짝이 되는 동무로서 책임과 응답을 요구하는 세 작가의 글을 모두 읽고 나니 내가 알고 있던 '반려'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인간이 동물 혹은 식물을 돌보는 행위가 아니라, 이들을 돌보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한 작가들의 경험은 책임감이라는 무게 때문에 반려동물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는 이들의 죽음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 텐데 이조차 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사랑으로 해석하며 혐오와 배제 등 타자와의 관계보다 개인주의적인 것에 더 집중하는 요즘에, 인간이 아닌 존재와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는가를 각자에게 묻는 기록이기도 했다. 반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곱씹으며 고양이, 식물, 개와의 관계를 통해 타자와의 공존, 책임, 사랑을 탐구한 작가들의 삶이 참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미리 걱정하느라, 혹은 일방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를 거둔다는 생각에 외면했던 건 아닌지 새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독서였다. 돌봄과 책임을 넘어 타자와 공존하는 삶을 배울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응답하고 책임지는 '짝'으로서 반려와 사랑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일부러 곁에 반려 존재를 들이지 않더라도 타자의 반려동물이나 식물에, 길에 심어진 나무나 풀 한 포기에서도 의미를 찾게 만들어주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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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반려인의하루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을유문화사 아주 어릴 때, 생명들에게 유독 마음이 약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집에서 몇 번 강아지를 키웠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와 동생들은 꼬물꼬물 움직이는 꼬순내가 나는 그 아이를, 우리만 보면 뒷발로 사람처럼 일어서 앞발을 공중에서 휘이휘이 젓던 기다란 털북숭이 생명체를 사랑했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먹고, 자고, 싸는 행위를 동반한다. 어린 우리가 직접적으로 강아지들의 케어에 관여한 부분은 없었을 것이다. 부친의 잦은 부재로 인해 모친이 아이들의 밥을 챙기고 똥을 치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개집이 텅 비어 있었다. 유치원생이었나,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나. 뽀삐가 사라졌다고 숨이 넘어가게 울며 좁은 골목길을 뛰어다녔던 기억. 엄마는 그때 뭐라고 설명했더라? 이후에도 그렇게 몇 마리의 강아지가 우리 집을 스쳐갔고 나는 여전히 그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 강아지를 집에 들인 것이 내 선택이 아니었다는 변명으로 충분히 아이들의 케어가 가능했던 시기에도 아이들을 방치했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그 아이들의 새까맣던 눈동자가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한 생명이 한 생명과 함께 한다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단단히 각오를 했더라고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단순히 반려동물, 반려 식물을 들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의 많은 것들과 반려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 세 분의 저자가 그 부분을 짚어주셔서 자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다양한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닿고 인간의 자만으로 더 이상의 잘못은 저지르지 않으며 공존하는 세상으로 더 나아가길 빈다. 21~22p 오전의 고양이 이름을 지어 준다는 것은 누군가를 세상의 일부로 승인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대상과 나를 연결하는 마음의 동아줄을 더 단단히 쥐는 일이다. (중략) 누군가에게 이름을 준다는 것은 계속해서 말을 걸기로 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 같이 있겠노라는 약속이다. 문득 전에 없던 묵직함을 안고서 고양이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119p 오후의 식물 손에 물과 흙을 묻히며 매일 식물들을 들여다보다 보니, 거리의 나무들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는 내가 항상 한 번씩 상태를 살피는 나무가 몇 그루 있다. 어느 날, 그중 한 나무의 가지가 모두 잘려 있었고, 그다음에는 밑동만 남아 있었고, 이제는 밑동마저 다른 풀들로 가려져 버렸다. (중략) 나는 가로수를 '동네 나무'라고 부르고 싶다. 동네에 사는 나무도 동네 사람들이 함께 책임져야 할 '반려의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쁘게 다듬어진 식물 말고도, 우리가 누비는 거리의 '미관'을 위해 마구잡이로 잘려 가며 빛 소음 매연 공해에 시달리는 동네 나무들도 우리와 언제나 함께해 왔다. 이렇게 반려 식물의 개념을 확장하면, 우리는 집 안을 넘어 거리의 흙과 그곳의 벌레들, 나무들이 마주하는 공해와 폭력적인 가지치기라는 더 넓은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중략) 이렇게 다양한 존재들과 연결되면서 나는 고작 한 손바닥만 한 작은 생명과 함께하는 일도 내가 살아가는 생태계 전체에 관련된 꽤 많은 책임을 수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237p 저녁의 강아지 중 사람이 죽음을 맞으면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와 반겨 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꽤 위로가 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중략)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사람이 전 생애 동안 몇 마리의 (반려)동물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었든, 그러는 동안 아마도 그 몇백 배, 몇천 배 이상의 동물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잡아먹고, 잡아먹기 위해 고통스럽게 키우고, 그러다 수틀리면 구덩이를 파서 포클레인으로 밀어 넣고, 그래도 어떻게든 먹겠다고 또 키운다. 바다는 이난의 잠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낸 쓰레기로 가득해서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뱃속에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을 가득 담은 채 죽어 간다. 만약 우리에게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꿈에 그리던 반려동물과 재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전에 마땅히 우리가 도륙 한 수많은 동물을 먼저 만나 빚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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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하루⠀ #을유문화사⠀ #김영글_안희제_정우열⠀ ⠀ ⠀ 이 책은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세 명의 작가가 각각 고양이, 식물, 강아지를 키우는 반려인의 일상을 담아낸 에세이다. ⠀ ⠀ 책을 읽는 내내 '어쩌면 이렇게 내 이야기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결혼 전에는 친정에서 강아지를 키웠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베란다에서 상추, 방울토마토, 고추 같은 채소를 정성껏 키워 수확해 먹는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마흔이라는 나이와 코로나가 겹쳐 마음이 갈팡질팡 우울하던 시기, 기적처럼 아기고양이 '마리'를 구조해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내 삶이 이 책의 세 갈래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 ⠀ 처음 마리를 데려올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일, 바로 이 아이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내가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낸 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솔직히 마리가 우리 집에 온 후로도 한동안은 아이가 너무 작고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언젠가 마주할 그 마지막을 생각하면 지레 슬퍼지곤 했다.⠀ ⠀ ⠀ 🐱"내게 깊은 위안을 주는 건 아픈 결말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다."⠀ ⠀ 이 책의 띠지에 적힌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반려인들의 숨겨진 마음이 아닐까. 언젠가는 이별이라는 아픈 결말이 올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 ⠀ ⠀ 🐶반려동물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동물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을 가졌고 어떤 점이 못났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충분한 신뢰가 쌓인 이후에는 무한한 믿음과 애정을 품은 채, 그저 함께 있고 싶어 할 뿐이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서로의 방식을 따르기를 종용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이해되지 않는 채로 놓아 둔다. (p.62)⠀ ⠀ ⠀ 실제로 나는 가끔 남편에게 "우리 가정의 평화는 고양이가 지킨다"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다. 사춘기 아들과 한바탕 대립을 하고 나면, 들끓는 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혀 주는 것은 언제나 고양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슬그머니 다가와 귀여운 엉덩이를 내 다리에 들이밀며 기대오는 아이. 그 작은 몸짓이 주는 위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 ⠀ 🪴낭만화를 경계하려 하지만 비인간 생명과 관계를 맺는 일에는 여전히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이 있다. 고양이, 개, 식물은 서로 전혀 다른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과 짝을 이룬 세 작가의 글에는 한 가지 공통된 정서가 흐른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감각, 반려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일 뿐이 라는 깨달음이다. (p.11)⠀ ⠀ ⠀ 내가 마리를 구조해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마리가 내 우울함을 돌보고 우리 가족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책의 말대로 반려란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돌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경이로운 과정이다.⠀ ⠀ '반려인의 하루'는 그런 반려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게 만드는 따뜻한 책이었다.⠀ ⠀ ⠀ #을유문화사_서평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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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닿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나의 모든 순간에는 늘 강아지가 있었다. 나에게 강아지는 동물이 아니라 언제나 당연하게 곁에 존재하는 가족이었다. 한 존재를 키우고 보살피는 시간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은 뜻밖에도 내가 경험한 가장 거대하고 순수한 사랑이었다. 대가 없이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온기, 그것은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사랑의 정점과도 같았다. 을유문화사의 <반려인의 하루>는 이처럼 반려인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는 가장 애틋하고 다정한 감정들을 정확하게 길어 올린다. 평생 강아지만을 가족으로 둔 애견인의 시선에서, 책 속에 담긴 고양이 반려인과 식물 반려인의 이야기는 특히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형태와 방식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무해한 존재를 향해 마음을 다하고, 그들로부터 삶을 버텨낼 위로를 얻는 본질은 결국 모두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의 다정한 일상부터 언젠가 마주해야 할 상실의 두려움까지, 서로 다른 반려인들의 하루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곁에 있는 존재를 향한 애정은 더욱 깊어진다. 지치고 팍팍한 하루 끝에 내 반려 동물이 내어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는 이들에게, 혹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명을 돌보며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반려인들에게 이 책은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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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 사실 요즘 키우고 있는 반려고양이가 많이 아프답니다. 약 두달쯤 전에, 한달쯤 시간이 남은 것 같다고 시한부선고를 받았어요. 그 와중에 을유문화사에서 《반려인의 하루》 서평단을 신청받는다고 하여 신청하게 되었답니다.
반려동물들과 인간의 삶의 시계는 다르게 흐르지요. 2012년부터 함께한 저희집 고양이는 이제 14살을 꽉 채웠습니다. 아주 조그마할때부터 키우기 시작했어요. 건강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밥을 안 먹고, 화장실도 잘 못가고, 먹어야하는 약들이 늘어나고, 아침저녁으로 피하수액을 맞춰야하는데, 이젠 반항조차 미미해지니 아주 속이 말이 아니더라구요.
아이의 마지막을 준비해야하는데, 그 준비라는 것이 사실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매일매일 무너지기 마련이더라구요. 하루는 좋고, 하루는 안 좋고, 아침엔 괜찮았다가 점심엔 안 좋았다가.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읽어 내려갔습니다.
오전파트가 고양이 집사파트인데, 어쩜 이리 모든 반려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계신지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공감 많이 하면서 읽었어요.
오후파트는 식물 집사 파트인데, 식물들의 생명력과 생태계 공존과 같은 것을 조금 더 고민해볼 수 있는 파트였습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사람위주로, 동물을 키운다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동물에 가깝게, 삶을 고민하게 됩니다. 식물 또한 그런 것 같아요. 식물을 키워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보는 세계가 다른 느낌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저녁파트는 강아지 집사의 파트입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쓰셨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진도가 제일 느리게 나간 파트에요. 지금도 다시는 반려동물 키우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여유가 된다면 임시보호까지는 해보자 라는 생각을 같이 하고 있어요. 내 삶에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온 아이를 보내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새로운 아이를 받아들이고 또 보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지 고민이 되어서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안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들은 뭐... 알아서 해봅시다....
아무튼, 한바탕 울고나면 위로를 받는 느낌을 받잖아요? 그래서 이 에세이가 제게는 위로였습니다.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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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공존하는 삶과 이별에 대한 단상>
«반려인의 하루»는 <시사IN>에서 약 2년간 연재한 칼럼 '반려인의 오후'를 다듬고 몇 편의 글을 보태 엮어낸 책이라고 한다. 세 명의 저자가 각각 고양이, 식물, 개를 반려하는 삶을 통한 사유를 담아냈다. 자신과 자신의 반려를 넘어선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의 의미, 상실과 연대, 법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반려인의 관점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의 제목과 소개를 접했을 때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두 마리의 나이 든 고양이와 여러 종류의 식물을 반려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소위 말하는 '집사'의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의 일상이 궁금했던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책을 읽으며 내가 기대했던 대로 공감하며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반려인의 삶을 통해 그들이 사유한 반려라는 말의 의미, 만남과 이별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남과 함께 시작되어 이별하기까지의 공존의 이야기는 비슷한 일상을 더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살아갈 수 있게 하고, 내 삶 속에 직간접적으로 들어와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생명들에 관해 더욱 깊게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 준다. (서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와 함께 하기 위해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 또한 사랑의 한 형태라면 우리는 매일 인간과 비인간을 가리지 않고 어쨌든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상실에 대한 것 또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그 과정과 이후의 삶을 미리 대비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이지만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우리 집에 있는 식물들은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존재들이라 사실 죽음으로 이어지는 노화의 측면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반평생을 식집사로 살았지만 식물을 금세 초록별로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경우가 여전히 있으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평균적인 생의 총량이 인간보다 아득히 짧은 네 발 가족들의 경우엔 어느 순간 나이 듦과 이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우연히, 어쩌면 운명처럼 나에게 오게 된 새끼 고양이들은 함께하는 동안 대체로 건강했지만, 만으로 16살이 된 지금은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다양한 증상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매일같이 잘 오르내리던 침대에 올라가려다 뒷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던 날이나 사냥놀이를 하며 점프 한두 번에 가쁜 숨을 몰아쉬던 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고양이들의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상태를 살피는 나날이 이어지며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커져만 갔다. 죽음이 연상되는 확연한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면 고양이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마음으로 집 안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찾아다녔다. 아이들을 마주하며 함께하는 날들의 소중함과 행복을 만끽하기보다 아직은 상실하지 않았다는 안도감만을 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어느 날엔 죄책감 비슷한 감정과 함께 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행복으로 충만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우열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상실 이후에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뤄야 할지를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함께했던 시간만큼 슬픔이 큰 것은 당연하고, 그 슬픔을 충분히 애도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나를 그토록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슬픔에 매몰되기보다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즐겁게 추억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은 애도의 방식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상실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반려인의 하루»는 반려가 취미나 위안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세상을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반려하는 삶을 통해 공존의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사유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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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반려를 통해 삶을 배우는 이야기 『반려인의 하루』 이 책은 고양이, 식물, 개와 함께 살아가는 세 명의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1부 김영글 오전의 고양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하기 2부 안희제 오후의 식물: 함께 숨을 나누는 마음 3부 정우열 저녁의 강아지: 사랑한 뒤에 남는 것들 1부에서 김영글 작가는 길고양이 출신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 요다, 모래, 녹두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의 삶을 유지한다. 에피소드 중에서 호칭에 관한 이야기에 공감하곤 했는데.. 아니 왜냐하면 나 또한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는 아닌데 엄마라고 해야 할까.. 누나라고 하기엔 또 이상하고.. 3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나는 우리 집 고양이에게 그냥 '나'이다. 내가 해줄게~ 나야~ 내가 왔어~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는.....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호칭에 관한 고민과 질문이 좀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2부에서 안희제 작가는 반려 식물의 이야기를 담았다. 식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확장되는 관계들이 인상 깊었다. 식물 반려에 대해서 이렇게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어서 새로웠고 신선해서 좋았다. 작가님처럼은 깊이는 아니지만 나는 그냥 꽤 오래 키우고 있는 '장미허브'가 있는데... 작은 화분 하나로 들여왔었는데 이제는 네 개의 화분으로 늘어났다. 선물받은 아프리카 제비꽃이라는 '바이올렛' 화분도 몇 년째 키우고 있고~ (꽃이 정말 귀엽고 예쁨.. ㅋ)
왁!! 저희 집도 그래요... 바이올렛 화분 받이에 새싹 하나가 났는데 도통 뭐인지 모르겠는 요즘이랍니다... (내가 뭘 먹었더라....ㅋㅋ) 그리고 3부에서는 정우열 작가님의 반려견 풋코와 다른 유기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풋코는 스무 해를 살았고 작가와 풋코의 시간들을 기록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려동물과의 삶에 던진 묵직한 질문들에는 먹먹해지기도 했다. 병원 진료,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 등.. 단순히 귀엽고 예뻐서 키우는 존재가 아닌 반려의 의미를 역시 잘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제법 묵직한 메시지에 많은 생각이 들었던 이야기.
고양이, 개와 함께 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고민이고 걱정이다. 이 친구들하고는 내 의지가 아닌 각자의 이유로 얼떨결에 같이 살고 있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이내 이 친구들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언젠가 올 그 나중의 순간이 벌써 무섭기도 한데.. 아프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일 줄 알았는데.. 묵직하면서도 다시 한번 '반려'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있다면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D #반려인의하루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을유문화사 #에세이 #을유문화사_서평단 #도서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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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완독한 책. 고양이, 식물, 강아지와 함께 사는 세 집사들의 이야기다. 평생을 반려견들과 함께 했다보니 자연스럽게 개집사 이야기가 가장 궁금했는데, 의외로 식집사가 가장 흥미로웠다. 무언가 새로운 생각의 문이 열린 듯한 감흥이다. 반려 동물이란 무엇인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나누고, 이름을 붙이고, 가족처럼 살아가는 존재다. 그간 반려란 개와 고양이, 동물의 영역에만 속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자 안희제의 글이 나의 ’반려‘에 대한 범위를 넓혀준다. 관심을 기울이고 돌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관계라는 점에서 식물 또한 반려가 된다. 인상 깊은 것은 반려의 감각이 식물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탁 트인 시야를 위해 길가의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떤 반응을 해왔던가. 한강에 앉아있을 때 만난 무당벌레, 산책할 때 마주친 거미들은 또 어땠는가.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리라. 안희제의 글을 통해 그 또한 한 생명임을, 길가의 나무가 말라 죽는 것 또한 한 생명이 저무는 일임을 깨닫는다. 반려라는 감각이 동물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자연 전체로 확장되는 경험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묘한 부끄러움이다. 반려견을 사랑하고 유기동물을 보면 마음이 쓰이지만 동시에 고기를 먹는다. 채식주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천할 자신은 없다. 그러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고 만다. 물론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식의 사랑과 실천이 존재하니까. 그럼에도 문득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섞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끝까지 원칙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동물권과 환경 문제 역시 그들 덕분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이 책은 동물권이나 채식주의를 논하는 과격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삶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평소 의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반려란 결국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찾아올 병과 노화, 상실까지도 함께 감당하는 일. 그런 의미에서 반려는 특정 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고, 그 존재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태도 말이다. 단순한 반려동물 에세이가 아닌,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반려의 범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생명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들었다. 길가의 나무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충분히 값진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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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제대를 하고 집에 와보니 작고 하얀 동생이 하나 생겼다. 동그란 구체의 얼굴에 비해 몹시 큰 두 눈에는 낯선이에 대한 불안함이 가득했다.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와서 우리가 모르는 아픔이 있는 것일까. 이리와 보다 저리가를 더 잘하던 토리. 아직도 터덜터덜 돌아가던 그 작은 뒷모습이 선명하다. ⠀ 토리를 만나고 2년이 채 되지 못했을 때 또 다른 동생이 하나 더 생겼다. 부모와 형제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씩씩하게 살아남아 동물병원에 있던 러시안블루 미노. 아기 때 하늘 색 눈동자가 푸른 별 같았다. 어찌나 사람을 잘 따르는지 자고 있으면 어느새 침대 내 옆으로 뛰어올라 내 손바닥을 베고 몇시간을 배를 드러내놓고 쿨쿨잤다. (몇시간이었던 이유는 온 식구들 곁에 가서 자야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합방의 문제를 생각해보지도 못할만큼 순했던 토리와 미노는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 했다. 다들 동안이라 마지막까지도 애기같았다. 겉으로는 나이듦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둘 모두 사진으로, 메모리스톤이라는 이름의 반짝이는 돌로 남아있다. ⠀ #반려인의하루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은 반려견, 반려식물, 반려묘를 키우는 세사람의 짧은 글들이 모여져 있다. 3마리의 길냥이 출신 고양이, 여전히 푸르르며 수확의 기쁨도 느끼게 해주는 식물, 반려인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19살 노견. 그들과 함께한 삶의 순간순간을 코로나시기부터 글이 엮여 하나의 책이 완성되는 최근의 근황까지 담겨있는데,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반려인들에게는 마냥 반갑지 않다는 것을 같은 반려인이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뤄진 상실감은 너무 큰 슬픔이 아니라 공감의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 나도 두 동생을 떠나보냈을 때 이제 다시는 안키운다. 또 보낼 생각하니 엄두가 안난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가에는 고양이 하나 강아지 하나가 또 있다. 고양이 ’라지‘는 토리 미노와 함께 있었던 막내였지만 지금은 최고참이 된 녀석이고, 막내 강산이는 이제 갓 세살이 된 왕성한 활동성을 보여주는 녀석이다. 본가네 갈 때마다 엉덩이를 내 허벅지에 올리고 모른척 앞만 보고있는 강산이와 자다보면 어느새 옆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는 라지를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 물론 또 키우고 키우지 않고는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떠나보낼 때의 슬픔만을 크게 여기기에는 그들에게 받은 기쁨과 따뜻한 온도, 사랑과 충만함이 너무나 크다. 슬픈 이유도 그들에게 받았던 것들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라는 단어로 바뀐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일방적 돌봄이 아니라 쌍방의 돌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라며 물도 주고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놀아도 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화장실도 치워주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준 조건없는 무한한 애정과 기대는 마음이 나를 의미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해줬다. 그것으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었고, 지나가는 강아지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낼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헤어짐의 아픔은 내 몸에 이렇게 눈물이 많았나를 확인할 수 있을만큼 아프지만 그래도 함께했던 것을 후회하게 하지 않는다. 함께했던 그 순간의 힘으로 앞으로도 살아낸다. 이 책은 그렇게 점점 흐려지고 있던 반려들과의 일상을 다시 떠올리고 지금을 담아내고 그로인해 조금은 덤덤한 인사를 비로소 보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플 줄 알면서도 기꺼이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함께 보듬어져 가야할 함께 살아가야할 반려들의 이야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