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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는 단정했고, 책 크기는 손에 포옥 잡혔다. 제목을 한참 바라보았다. 『한글의 한 끗』.
책 앞부분에서 작가는 외국인의 질문에 답하며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한국어의 어감 차이와 특징을 깨닫는 순간, “뇌의 어떤 구석에 불이 켜지는 듯한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는 그 희열을 함께하고 싶어 책장을 넘겼다.
첫 장의 요리와 관련된 어휘들은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딱딱한 설명문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작가의 성향이 드러나듯 쉽고 간결하면서도 흐름이 좋은 문장들이 이해를 도왔다. 그러다가 잠깐 멈칫하고 웃게 되는, 작가만의 진솔하고 조금은 엉뚱한 글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찐 계란’의 사전적 애매함에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고백, ‘구워삶다’에서 시작해 ‘날로 먹다’에 이르기까지 식재료나 음식 입장에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울 것 같다는 상상 같은 대목에서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작가의 브런치에는 글과 그림을 함께 실은 글도 있던데, 다음 책에서는 날로 먹히는 스시나 구워삶아지는 계란이 비명을 지르는 그림도 기대해 보아도 될까?
나는 글이란 설명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가영 작가의 글은 내게 ‘보여주는 글’에 가까웠다. 귤껍질을 벗기는 동작 하나를 설명할 때도, 손끝이 어디로 들어가고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장면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읽는 동안 자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버티다·견디다·참다: 비슷하지만 다른 자세」를 읽을 때는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작가 본인에게 삶이란, 우리의 인생이란 버티는 것인지, 참는 것인지, 견디는 것인지 말이다.
「고민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실관계는 정직하게 진술합시다」에서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솔직함이 무례가 될 수도 있다는 아찔한 에피소드에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런 와닿는 예들로 강의한다면 분명 재미있는 강사로 호평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시간을 잊고 쭈욱 읽어가다가 「억울한 활보」에서는 아예 초초단편소설을 만난 기분이었다. ‘활보’와 언중이 법정에서 마주하는 장면이라니. 작가의 소설책도 기대해 본다. 「결제와 결재, 이제 헷갈리지 마세요」 속 사원과 과장의 메신저 대화도 재미있었고, 「라면 먹을래요?」에서 상우와 은수의 예를 지나며 “‘~을래요?’에는 상대의 마음속으로 성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는 작가의 문장 앞에서는 책 제목처럼 ‘한 끗’과 ‘결’을 생각하게 되었다.
「결과만 묻는 사회에서 이유를 말하는 언어」에서는 언어가 사회를 비춘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이유를 설명한다는 건 결국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작가의 사유 앞에서, 읽는 내내 끄덕끄덕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에서는 가볍고 웃기는 듯하다가 훅이 들어온다. 공동생활체 중심이었던 옛날의 ‘우리’와 개인주의가 발달한 현대의 ‘우리’를 생각하며, 오늘날의 ‘우리’가 때로는 ‘우리 fence’처럼 외부를 차단하는 벽이 될 수도 있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리고 우리 곁의 미국, 일본, 중국 외에도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들에게 손을 내밀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따스한 온도를 느꼈다.
「조건의 문법」에서 Backstreet Boys의 ‘As Long As You Love Me’를 예로 들며 부모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떠올리는 작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커다란 한 끗 차이, ‘은/는’」을 읽을 때는 작가에게 한 가지 건의하고 싶었다. 조사 ‘은’의 최고봉은 역시 “애는 참 착혀.”가 아닐까 하고. 그 밖에도 늙은 호박은 열매가 맺히자마자 늙은 호박이라니 하며 재미있어하는 부분, 빨래가 아니라 발레를 하는 건장한 남학생, 어금니 꽉 깨물었던 디케이러 에피소드, 언어의 호흡, “사장님, 저는 됐거든요.” 같은 대목들이 계속 생각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법이나 단어의 설명 못지않게 작가가 어떤 예를 들지 기다리는 재미가 컸다.
읽는 동안 많이 웃었고, 배웠고, 느꼈고, 생각했다. 결국 이 책에서 ‘한 끗’이란 한국어의 한 끗이자, 문화의 한 끗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달되는 마음의 결을 짚어내고 톺아보는 한 끗이었다.
은수가 상우에게 했듯, 이 리뷰의 마무리도 이렇게 하고 싶다. “당신도 이 책 한번 읽어볼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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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뱉던 말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이 표현, 맞는 걸까?' '왜 이렇게 쓰는 거지?' 책을 읽는 내내 익숙하게 써온 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게 됐다. 무심코 지나쳤던 한국어의 결들이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딱딱한 문법책을 기대했다면 좋은 의미로 배신당할 것이다. 임가영 작가의 문체는 가볍고 유쾌해서 마치 재치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듯 술술 읽힌다. 언어 이야기가 이렇게 에세이처럼 읽힐 수 있구나, 하는 작은 놀라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낯섦'이었다. 매일, 수십 번씩 쓰는 한국어인데 이 책을 통해 처음 보는 언어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익숙함 속에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니. 우리말을 조금 더 애정 있게 바라보게 해준 책이다. #우리말 #한글 #한국어 #한끗 #추천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