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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일상 깊숙이 들어온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보 검색, 의사결정, 창작 활동까지 AI가 함께하는 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삶과 신앙』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을 설명하거나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AI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신앙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저자는 AI가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정체성과 책임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인간은 무엇인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와 같은 신학적 질문을 현대 기술 환경 속에서 새롭게 풀어냅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이 AI를 무조건 경계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하느님이 주신 지혜로 기술을 분별하고 선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AI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궁극적인 진리와 지혜는 여전히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기술 의존이 심화되는 시대 속에서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또한 이 책은 공동체적 신앙의 중요성도 다시 상기시킵니다. AI가 개인화된 경험을 강화하는 시대일수록,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와 나눔이 더욱 소중해진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기술이 제공할 수 없는 ‘함께함’의 가치가 신앙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AI 시대의 삶과 신앙』은 기술과 신앙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익한 안내서입니다. AI를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하느님 중심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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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어떤 영역이든, 가장 핫한 주제가 됐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일에도 AI가 빠지면 뒤쳐지는 느낌마저 든다. 기업에서 투자 유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AI'라는 단어가 붙지 않으면 관심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어떻게든 AI와 연관을 지으려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잘 사용되지 않은 도구는, 유용한 도구가 아닌 섬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요리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칼이 유용한 도구지만, 범죄를 의도한 사람에게는 무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AI 시대의 삶과 신앙> 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AI에 관한 지식을 알려준다. 어떻게 탄생했고 발전했는지 그리고 장점 등을 알려준다. 빼놓을 수 없는 인간과의 비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이 부분이 흥미롭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력, 이해력, 의지력 이 세 가지가 인간 정신의 삼중 구조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인간 정신의 세 가지 능력은 '존재로는 하나이고 관계로는 셋'이라고 말한다.(p62 참고) 이 말에 따르면, 인간 정신에서 의지력은 기억력, 이해력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특성이기 때문에 AI는 결코 인간의 정신과 동일시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AI는 의지력을 발휘할 욕구가 없기 때문이다. (p87 참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해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이성'과 '지성'이다.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이해력은 이성과 지성 두 가지 방식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AI는 이성의 방식만 갖췄을 뿐, 지성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p66 참고) 따라서 AI를 '인공 지능'으로 부르는 것은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인공 이성'으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 설명한다. AI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의지력 부재, 지적 호기심의 부재, 상식의 부재, 감정의 부재, 학습된 내용에 관한 비판 능력의 부재 등을 설명하고 있다. 종교 영역에서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말한다. AI는 선과 악에 대한 분별 능력이 없다. AI가 삶과 고통, 죽음에 대한 빅 데이터 학습을 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통해 종교적 경험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의지력의 부재도 AI가 가진 가장 큰 한계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AI는 가톨릭 교회에서 전혀 적용할 수 없을까? 아니다. '교회법' 영역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성경 번역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교회의 역사적인 문헌들(교부 문헌, 공의회 문헌 등)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는데도 AI는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교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불러일으키진 못해도, 일부 활용이 가능하다. (p104-109 참고) AI로 인해 발생될 심각한 문제들도 언급한다. 이미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문제는 인간이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에덴동산의 사건이나 바벨탑 사건이 대표적이 예이다. 인간은 계속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인공 지능의 개발과 사용을 규제하는 구속력 있는 국제 조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현실적이면서 강력한 방안이다. 여기에 더해, 교회에서 해야할 방안으로 제시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용처럼, 중요한 대응 방안이라 공감한다. "교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되 여러 기적들을 강조함으로써 하느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은 AI 시대의 도래에 따라 급속도로 유물론적, 무신론적 분위기의 침공을 받고 있는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대응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p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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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근본적으로 AI를 추구하기 위해 태어났다. 튜링 머신에서 다트머스 회의까지, 컴퓨팅의 역사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기계로 구현하려는 시도의 역사였고, 오늘의 생성형 AI는 그 본래 목적이 마침내 가시화된 것이다. 그 분야 안에서 일하면서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앙인으로서, 물리학자 사제가 쓴 이 책에 기대가 컸다. 기술과 신앙의 가치가 동시에 흔들리는 시기에, 두 세계를 모두 아는 사제가 어떤 길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4장 'AI와 인간의 비교'에 있다. 저자는 두 교부의 틀을 순차적으로 적용한다. 먼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정신의 구조를 기억력(memoria), 이해력(intelligentia), 의지력(voluntas)의 삼중구조로 파악했다. AI는 기억력에 해당하는 데이터 처리에서는 인간을 압도하지만, 그 기억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는 이해력과 자유롭게 나아가는 의지력은 갖지 못한다. 이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더 정밀한 칼날을 제공한다. 이성(ratio)은 전제에서 결론으로 나아가는 추론적 사고이고, 지성(intellectus)은 존재의 근원과 제일 원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AI는 전자의 극한에 도달할 수 있으나 후자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 구분이 나에게는 예상 밖의 방식으로 유효했다. 나는 현재의 트랜스포머 기반 LLM이 AGI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본다. 토큰 확률 예측이라는 자기회귀 구조는 ratio의 탁월한 구현이지만 세계 모델을 갖추지 못한다. Constitutional AI처럼 원칙을 부여하는 방식도, 칸트의 용어를 빌리면 규제적(regulativ) 원리에 머물 뿐 존재를 구성하는(konstitutiv) 차원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아퀴나스의 ratio/intellectus 구분과 정확히 겹친다. 이 책 덕분에 내가 매일 다루는 SOTA 모델의 위상을, 그것이 아무리 인상적이더라도 ratio의 극한이지 intellectus의 시작이 아니라는 좌표 위에 놓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5장에서 AI의 장점으로 제시한 '탁월한 기억력'이라는 규정은 재고가 필요하다. 현행 LLM은 데이터를 축어적으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파라미터에 통계적 패턴으로 분산 인코딩할 뿐이며, 컨텍스트 윈도우 밖의 정보는 유지하지 못한다. 외부 검색을 붙여야 비로소 기억에 유사한 기능이 가능한데, 그것도 검색이지 기억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점을 명확히 했다면 4장의 논증이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AI가 기억력조차 인간의 memoria와 범주가 다르다면, 거기서 이해력과 의지력으로 나아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분이 나의 두려움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AGI 낙관론자들이 말하는 한 자릿수 연차 이내의 도달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ratio와 intellectus의 경계가 과연 지금처럼 선명할 것인지.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지만, 그 믿음이 기술적 논증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그래야만 한다는 신앙적 희망에 기반한 것인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세워준 이정표는 분명하다. 이성과 지성은 다르다는 것. 그 차이를 아는 것 자체가, AI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이미 하나의 응답이 된다는 것. 물리학자 사제가 놓아준 이 이정표에서부터, 나머지 길은 우리 각자가 걸어가야 할 몫이다. 신앙인이자 컴퓨터공학자로서의 나에게는 그 몫이 더 길게 느껴진다. #AI시대의삶과신앙 #김도현신부 #생활성서 #생활성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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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편리한 AI시대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두렵기까지 한 요즘... 무심코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 넌 뭘 하고 싶은 의지가 있긴 한 거니? " 넌 무엇이 궁금해? 너는 호기심이 있기나 하니? " 보통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 넌 감정이 없어서 말하기 싫어." " 네가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점은 무엇이니? 이런 질문을 하루 종일 받는다면 나는 어떠할까? AI의 한계점 앞에서 이런 질문들은 인간을 매우 당황스럽게 한다. AI와의 간극은 점점 줄어들지 모르지만 교회...신앙안에서의 간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의 109페이지를 빌려서 나눠본다면 이렇다. 교회는 AI시대의 도래를 심각하게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AI자체가 교회에 직접적인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AI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AI의 발전에 비례해 신앙과 종교적 감각을 잃어 가면서 무신론적 과학 만능주의의 영향하에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되어있다. 154 페이지를 살펴본다면 현재 교회가 가장 심각하게 대응해야 할 점은 AI그 자체보다 AI시대의 도래와 함께 점점 세를 얻어 갈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라는 표현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금 이 순간 교회의 적절한 응답과 결단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에서 저자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알고리즘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키는 길과 AI를 인간의 삶에 유용한 도구로 적절히 활용하는 길.... 우리는 어떤길을 선택해야 할까요?의 이 어려운 질문을 조심히 내 앞에 내려 놓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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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인간이 지닌 정신의 능력을 기억력, 이해력, 의지력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고 전합니다. 이에 맞춰 인공지능 역시 세 가지의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기억력과 연산 능력 측면에서는 이미 AI가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하지만, 결핍이나 의지력이 없는 AI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나머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을 객관적이며 철학적으로 설명하면서, AI가 가진 현실적인 한계와 문제 또한 제기합니다. 인간이 AI를 도구로써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은 결국 AI를 사용하는 우리 인간에 달린 것은 아닐까요. 온라인과 SNS에 익숙한 교회의 청소년, 젊은이들과 AI를 올바로 사용하길 원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인공지능 시대와 신앙생활의 방향을 잡아가길 희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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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AI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가톨릭 신앙인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 교회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더 나아가 그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마음가짐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AI 시대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 앞에서 신앙이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전에 저자인 김도현 신부님께서 쓰신 '과학과 신앙 사이'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김도현 신부님은 현직 가톨릭 사제이시며,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신 분입니다. 또한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뒤 사제 서품을 받은, 국내에서 매우 드문 이력을 지닌 물리학자 신부님이십니다. 과학과 신앙을 동시에 깊이 있게 연구해 온 분이라는 점에서 그분의 책은 늘 신뢰를 주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는 빅뱅 이론을 통해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들이 정확한 값으로 맞아떨어져야만 현재의 세계가 가능했다는 점을 설명하며, 이것이 오히려 하느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창조를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철학적·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과학과 신앙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며, 어떤 저명한 과학자도 완전히 규명하지 못하는 빅뱅의 원인과 같은 문제 앞에서 신앙은 과학에 의해 무력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보여준 책이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바로 그 김도현 신부님께서 집필하신 AI 시대의 삶 속에서 신앙이 차지하는 의미와 영향력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초반부에서는 인공지능의 역사와 기술적 원리, 과학적 배경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어서 과학이나 기술 분야의 기초 지식을 얻기에도 매우 유용합니다. 단순히 신학적 주장만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AI의 메커니즘을 먼저 이해하도록 돕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학적 토대 위에서, AI가 할 수 있는 것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AI가 결코 할 수 없는 영역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 역시 할 수 없는 영역은 무엇인지를 신학적으로 성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신앙 고백이 기술 문명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기계와 인간의 차이점이 단순한 계산 능력이나 데이터 처리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성, 자유의지, 사랑, 책임, 초월성에 대한 열림과 같은 차원에 있음을 성찰하게 합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에서 신앙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목이나 표지만 보면 가톨릭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들만을 위한 책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미래학적 성격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AI의 작동 원리와 발전 과정을 이해하게 해 주는 과학 교양서적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종교, 기술, 철학을 융합하여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적 깊이 또한 지닌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철학과 과학 철학의 관점에서 통찰력을 넓혀 주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저자이신 김도현 신부님께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시기 때문에, 단순한 신학적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물리학적 세계관과 기술 문명의 흐름 속에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분석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독자의 종교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사고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정신적 기준을 세워 주고,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분들은 물론이고, 개신교를 포함한 모든 크리스천에게 이 책은 AI 시대 속에서 교회의 신앙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정신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AI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시대가 더욱 본격화될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 단순히 기술을 소비하는 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인간의 존엄과 신앙의 가치를 지켜 나갈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AI 시대를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사고의 깊이를 더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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