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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케이팝은 복잡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케이팝 산업의 모순과 환멸을 날카롭게 짚어내면서도, 결국 환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고백한다. 넓은 의미에서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 전반을 일컫지만, 보통은 대형 기획사를 주축으로 한 아이돌 문화를 말한다. 한국에서 케이팝의 영향권 아래에 있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케이팝을 부정하며 기묘한 우월의식을 지니기도 한다. 한 마디로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것은 안팎으로 복잡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팬덤 문화가 보여준 광기 어린 사건들부터, 케이팝의 본질처럼 여겨지는 '유사 연애' 그리고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강압적인 도덕적 잣대'까지. 기형적인 특성들이 대를 이어 지속되어 왔기에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는 해외 성과에 집착하며 그를 겨냥한 것이 빤히 보이는 음원들이 차트를 점령하니, 거대 권력관계에 신물이 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복길은 이처럼 딱 잘라 명명할 수 없는 산업의 모순, 애정과 증오, 온갖 담론을 시대를 넘나드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풀어낸다. 치를 떨면서도 연어처럼 돌아올 수밖에 없는 케이팝의 지독한 매력을.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은 무언가에 지독하게 의존하며 견딜 때가 있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케이팝에 저마다의 빚을 지고 있다. 나도 그랬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나락'이라 불리는 길을 가거나, 멤버들이 탈퇴하며 그들을 좋아할 수 없게 되면서, 서서히 '보통의 케이팝'에서 멀어져 갔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이 산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열렬히, 조금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좇으며 작은 멘트와 표정 하나에 일희일비하던 시기를 지나, 가수의 디스코그래피 속에서 내 삶의 궤적과 맞물리는 지점을 발견하며 지금 이 순간의 담백한 즐거움을 누린다.
결국 다들 지우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반짝였던 마음의 진가를 노래 한 소절로 기억할 때가 있다. 어쩌면 케이팝은 '향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 시절, 우리가 그토록 지독하게 미워하고 앓았던 계절을 아름답게 재발견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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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복잡한 액체다. 슬픔의 흔적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마음의 결이 너무도 다채롭다. 노래를 듣다가 벅차오를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이 외에도 단순히 희로애락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이 울음 속에 뒤섞여 있다. 결국 눈물은 끓어오른 감정이 맺힌 물방울인 셈이다. 감정이 어떠한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이는 곧 눈물이 되어 펑펑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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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한때 케이팝을 고백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향한 고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고백. 숨겨두었던 감정의 서랍을 열고, 차마 말로 꺼내지 못한 것들을 비트와 멜로디에 실어 내보내는 행위. 그래서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내미는 일과 같다. 복길의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오래 머문 문장은 역설적으로 가장 평범한 문장이었다. ’노래는 죄가 없잖아요. 그냥 해요.‘ 이 짧은 말 안에 케이팝을 둘러싼 모든 윤리적 딜레마와 감정적 피로가 응축되어 있다. 우리는 케이팝을 사랑하면서도 케이팝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폭력, 착취적 계약, 팬덤의 집단 광기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한다. 그 사랑에 공모의 혐의를 씌우며. 그러나 ' 노래는 죄가 없다 '는 말은, 음악을 면죄부로 삼자는 도피가 아니라, 감정을 죄로 만들지 말자는 선언에 가깝다. 사랑 자체를 심문하는 것은 이미 충분히 상처받은 사람을 두 번 무너뜨리는 일이다. 케이팝은 언제나 과잉이다. 감정도, 서사도, 비주얼도. 그 과잉 속에서 우리는 일상의 적당함이 허용하지 않는 감정들을 마음껏 꺼내놓을 수 있다. 슬퍼도 너무 슬프고, 기뻐도 너무 기쁘고, 분노도 너무 격렬한 케이팝의 세계는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포장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된다. 나는 케이팝 앞에서 무장해제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허상일지라도, 허상 안에서만 진짜가 될 수 있 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복길이 말하는 '비장미'는 미학적 취향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형식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동방신기의 〈Rising Sun(순수)> 앞에서 느끼는 압도감은, 그 노래가 얼마나 완성도 있는 음악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노래가 얼마나 과감하게 불완전한 감정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는가의 문제다. 기도하고, 저주하고, 중얼거리다, 절규하는 노래. 논리적 서사 없이 감정의 연쇄만으로 이루어진 그 노래는, 오히려 그 비논리성 덕분에 삶의 어떤 진실에 닿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도 사실 그렇게 생겼다. 슬픔이 분노로 변하고, 분노가 허탈함으로 가라앉고, 허탈함이 다시 어떤 결의로 굳어지는. 논리가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다. 케이팝이 그 엉망진창의 감정 지도를 음악이라는 형식 안에 담아낼 때, 듣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세상에 이름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나만 이렇게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다. 비장함은 또한 연대의 언어이기도 하다. 광장을 가득 메운 응원봉의 불빛이 아름다운 것은, 그 빛들이 각자의 절망과 슬픔을 숨기면서도 함께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복길의 표현처럼, 빛이 어떤 절망 을 감추고 있는지 말하지 않고 희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장함은 그 절망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형식이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워질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비장해지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경건해진다. 케이팝 산업이 만들어낸 폭력의 목록은 너무 길다. 불공정한 계약, 통제되지 않는 팬덤의 집단적 광기, 아이돌을 향한 테러와 살의, 조직적 성범죄 게이트. 그 목록 안에는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지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그 어디에도 완벽히 위치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다. 케이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지만, 케이팝의 구조가 만들어낸 폭력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된 사람들. 우리는 피해자이기도 하고 방조자이기도 하며 때로는 가해의 분위기를 묵인한 공범 이기도 하다. 복길이 베이비복스 이야기를 꺼낼 때, 나는 한동안 멈추었다. '꺼져라'라는 연호를 들으며 공연했던 그들. 죽은 동물의 사체를 담은 택배를 받았던 그들. 그 폭력이 가능했던 것은 특정한 몇 명의 악인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제거해도 좋다’ 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었고, 그 분위기를 만든 것은 침묵하거나 외면한 수많은 우리들이었다. 살의는 극단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라는 복길의 통찰은 케이팝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역시 케이팝이다. 씨스타의 〈Give It to Me〉가 통속적인 삶의 고뇌를 홀가분하게 날려버리는 방식으로, 아웃사이더의 <외톨이>가 무거운 소외감을 무대 위에 올려 해방감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케이팝은 상처를 주는 동시에 그 상처를 언어화하고 형식화하고 함께 노래하게 만든다. 케이팝을 사랑하여 상처 받고, 그 상처를 또다시 케이팝으로 어루만지는 이 순환이 어쩌면 케이팝이 가진 가장 인간적인 속성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음악으로 시대를 감각하는 내면의 연표가 있다는 복길의 말처럼, 나 역시 특정 노래를 들으면 특정한 시간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음악은 시간을 저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다. 멜로디 하나가 수십 년 전의 냄새와 온도와 감정을 고스란히 불러낸다. 그래서 어떤 케이팝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이 된다. 복길 이20년 만에 처음으로 <Rising Sun(순수)>을 들으며 그 공백을 채웠듯,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비워두었던 연표의 칸들을 언젠가 마주하게 된다. 거부감으로, 두려움으로, 혹은 그냥 게으름으로 외면해두었던 음악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선명 하게 들려오는 순간. 그 순간은 단지 음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시간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케이팝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산업이냐 예술이냐, 윤리적 소비가 가능한가, 팬덤은 문화인가 병리인가. 그 질문들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복길이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이것일 테다. 우리의 사랑을 모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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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복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펑펑. 복길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나를 울리고 나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국뽕이란 단어가 생겨나고 방역이란 말 앞에도 K가 붙는 때가 있었다. 뭐든 K가 붙으면 괜히 뭉클하게 되고 어깨가 높아지고 또, 내가 그 관계자일 리가 없는데 그냥 나도 그 K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레 목소리도 커지고. 당연히 K-드라마, K-푸드에 K-팝이 붐이었고, 그런 붐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며, 언론에서도 기타 다양한 방식으로도 그 위세를 강조하고 했다. 그 중 K-팝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힘이 막강했고, 세계적인 음악 순위에도 곧잘 이름을 올리는 걸 보며, 우리의 것이 그만큼 인정받는 수준이 되었구나 싶어 더 자랑스러워하곤 했다 케이-팝(K-pop) 명사 (음악) 현대 한국의 대중가요를 다른 나라의 대중가요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케이팝 스타.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의 수도 함께 늘고 있다. 사전에 나와있는 정보다. 역시, 상대적으로 우리의 것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하는 용어였다. 이러니, K의 일원이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또 쉽사리 그 일원에서 벗어날 일은 없겠다 싶다. 그런 케이팝이다. 늘 케이팝은 '듣는 음악'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7쪽) '듣는 음악'이란 표현이 신선했다. 듣기만 하기 위해 음악을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생각해봤다. 언젠가부터 소비되기 위한 상품으로 인식되었고, 그런 상품으로서 더 높은 가치를 두기 위한 화려함이 늘 동반되었다. 나의 덕질 시절에도, 우리 아이들의 덕질 시절에도. 잡지에 나온 사진을 잘라 친구들과 나눠가지고, 콘서트장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이에 다가가 보고 싶어하고, 앨범과 굿즈를 사고 모으며 방 벽에 그들의 사진을 도배해놔야 좋아한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듣는 음악'이라니. 이미 이쯤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노래 한 소절만 떠올리고 거기에 얽힌 추억이 줄줄 딸려 나온다. 그 감상을 하나하나 낱낱이 추궁해야만 비로소 노래를 "들었다" 말할 수 있다. "아, 케이팝이요? 진짜 흥미로운 음악이죠" 하고 교양 있는 웃음을 짓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이야기다.(69쪽) 그럼 그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노래만 들어도 그 노래와 관련한 이야기를 친구와 끝없이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노래에 한창일 때의 그 시절을 소환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노래에만 빠져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마주친 노래를 만나게 되면, 그 노래를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들고 반가움의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는 건, 우리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린 이미 '듣는 음악'을 실현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2NE1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건 사랑과 그리움을 대충 뭉뚱그려낸 응원의 표현도, 순진한 바람도 아니다. 정말로 나는 2NE1이 영원할 줄 알았다. 아이돌 그룹 안과 밖에 맞물린 수많은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영원'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부직없는 개념인가 싶지만 적어도 2NE1에겐 그게 가능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뭔가 멋있는 말을 인용해야 하는데 떠오르는 것은 오직......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결국에 넌 변했다는 가사......(172-173쪽) 우리가 바라보는 아이돌이란 세계는 그저 겉으로 포장된 모습의 일면일 뿐이고, 그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일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짐작만 할 뿐 그 실체를 알 수 없으니, 그 안에서 아이돌은 또 음악은 어떻게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지 알 길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간섭,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여러 논리가 얽히면서 마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을 것 같은 아이돌의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과 쓸쓸함을 짐작만 할 뿐이다. 알려고 들면 충분히 알 수 있을테지만, 어쩌면 살짝 눈 감고, 노래를 통해 전달받는 그 최종적인 행복감만을 위해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노래를 노래로만 즐기고 싶은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일로 삼는 편이 낫다'라는 선생의 조언이 반쯤 실현된 상황에서 나는 이제 체념을 해보려고 한다.(308쪽) 어쩌면 내가 눈감고 노래를 노래로만 남겨두려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전문으로 파고드는 일이 좋은 결과만을 안겨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이 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추억 한바구니 꺼내놓는 호사를 누려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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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 <펑펑> 한줄평 : 내 안에 케이팝은 영원히! 저자 복길의 케이팝 연대기를 담은 책. 케이팝 러버라 그런지 이 책에 눈길이 안 갈 수 없었다. 같은 케이팝 덕후로서 공감이 되는 이야기도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케이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케이팝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잘 모르는 시절의 케이팝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어서 색다르고 신선하기도 했다. 이 책과 함께 케이팝 추억여행을 떠나보시길! 케이팝을 들은 지도 벌써 약 15년이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케이팝을 들으며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아이돌 음악) 어느 그룹에서 새로운 노래가 나왔다 하면 들어보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라 하면 무조건 들어보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케이팝에 대한 흥미도 약간은 떨어진 건지 내가 스스로 찾아듣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팝송, 제이팝 등등 다른 나라,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는 횟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다. 그럼에도 내가 케이팝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추억' 때문이다. '의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신곡들도 들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기적으로 2,3세대 아이돌 음악들이 생각나서 찾아 듣곤 하는데,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어떻게 그 많은 노래들을 잊지도 않고 기억하는지 신기할 정도... 음악이 이 시대의 타임머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듣기만 해도 그 시절의 추억과 풍경, 심정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때론 울컥하기도 한다. 많이 좋아했어요...★
"나는 케이팝을 사랑한다. 그러니 이 돌이킬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나는 기꺼이 폭주족이 되어야 한다." #펑펑 #복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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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낮으로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쪽이 더 광신도 아닌가? 이 아이돌이란 사람들은 자기가 파는 환상에 도리어 자기가 묶여 있는 상태란 거다.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이 환상이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54" 그러니까 좀, 무서워요. 무서운 것이다. 지하철 1호선 광인과 케이팝을 연결 시킬 수 있는 사람의 케이팝이란 뭘까. '펑펑'이 정말 좋았다. 재미로 따지자면 올해 벌써 6월인데, 그 전으로도 후로도 '펑펑'을 넘어설 콘텐츠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거야, 싶다. 너무 재밌긴한데 한편으로는 수치스럽다. 어릴적에 익혀둔, 봐선 안되는 간행물을 슬쩍 몰래 넘겨보고 안본척하던 스킬을 써서 몰래 봐야 할 것 같은 책이다. 읽다가 혀를 여러번 빼물고 내두르고 씹어야 했는데 하나같이 강렬한 감각들이 휘몰아쳐댄 탓이다. '거울 치료를 위해 태극기부대를 찾아가(26)'는 이 판에는 대체 어떤 자만이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은 알지만 이 극단의 방법을 스스로에게 쓸 줄이야. 지금은 괜찮으신지 안부를 묻게 된다. 혹 독을 독으로 치료하려다 중독된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되고. 사실 평생에 있어 케이팝 소비를 해왔겠지만 진짜 '소비'를 한 적은 없다. 저자가 '듣는 음악'을 주장한 것과 비슷하다. 들어왔지만 보고 소비하는 것에 더 집중된, 전복된 듣기처럼. 소비없는 소비를 한 라이트팬은 어릴 적엔 잡팬으로 불렸고 나이들고 나서는 머글이 되었다. 유재석의 멜론 탑100 귀 이야기에 맞아, 내가 그래! 하고 무릎을 쳤다. 물론 요즘은 아이돌 노래는 잘 듣지 않을 나이까지 됐다. 케이팝의 띵곡은 90년대에 이미 완성되었지, 안경 척! 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그 시절엔 대중가요를 잘 몰랐으면서도. 그렇지만 평생을 봐온 케이팝 휀걸들의 삶이 바로 내 친구이고 이웃의 이야기여서 '펑펑'을 읽으며 약간이나마 공감하고 또 대리 수치도 느낄 수 있었다. " 케이팝의 진정성은 누가 뭐라 해도 무대로 완성 되는 법이다. 76" '펑펑'의 케이팝 역사가 너무 찐해서, 찐이라서, 읽다보니 그냥 아는 것을 쓴 것인지 쓰기 위해 알아간 것인지 궁금해졌다. 오소녀(124), 거북이 빙고의 숨은 리스너(223) 디테일에 깜짝깜짝 놀랐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 걸스데이 여자대통령'은 왜 없지?) 저자는 얼마나 케이팝에 인생을 갈아 넣은 것 입니까. 돌보다 더 오래도록 그 바닥에서 구르며 산업 그 자체가 되어버린 휀 더이상 걸도 아닌 늙크크의 슬픈 초상("아줌마, 언제까지 케이팝 판에 기웃거릴 건가요?" 213)이 여기에 있었다. 문장이 괜히 비장해지는 것이 '펑펑' 읽다가 얼마나 케이팝 보법에 절여진 건지 감도 안온다. (그런데 소녀야 언제까지 젊을거니? 내년에도 젊어? 후년에도 젊을꺼니? ... 그렇겠지. 좋겠다 소녀야 아줌만 갈게 넌 평생 케이팝 하렴.) 얼마나 위험한 책인지. 솔직히 재밌게 읽기는 했는데, 주변에 읽어보라고 꼭 소매넣기 찔러주고 싶은 책인데, 읽을때는 혼자서만 몰래 읽고 싶은 그런 책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의 이야기를 풀면서 "닥쳐 제발... 넌 수치심이란 것도 없니? 30"했다지만 그쪽도 신화 누드집 돈 모아서 사봤다는 얘기 했잖아요. 칼머리(40)얘기하면서 이반 문화 오픈했잖아요. 왜 케이팝 얘기하면서 귀여니랑 김종국을 안양의 소울(246)로 묶냐구요. 읽으면서 왜인지 수치스러움으로 고통받는 독자도 배려 좀 해주시겠어요? 과거는 다 불태워 묻어버리기로 사회적 합의를 하면 안될까 싶었다. '펑펑'에는 정말 다양한 곡과 가수들이 솔직하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재밌는 점은 묘하게 샤이니에게는 낯을 가린다는 느낌이 든다. 짐승돌엔 덕질하면서 '누난 너무 예쁘다'며 노래하는 소년과는 좁히지 못하는 거리가 있다니, 오히려 불미스럽다. 암튼 '하투하팬 7명, 이즈나팬 7명, 미야오팬 7명, 리센느팬 7명 도합 10명인 세계관' 속의 우리 케이팝 휀걸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시라. 고일대로 고여진 휀걸끼리 독서모임 혹은 싸움이든 할 말이 가득 쌓일만한 콘텐츠 아닐까. 솔직히 머글 눈에는 그저 웃기고 재밌는 추억은 방울방울이었는데 찐팬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면이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떤 역사는 누구의 입장에서 쓰여졌는지에 따라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비장). 다른 사람 후기랑 저자 북토크 현장이 이렇게 궁금한 책은 또 처음이다. '펑펑'은 북토크라기 보단 팬싸라고 해야되는게 아닐까. 책 사면 저자 포카라도 랜덤으로 증정하라! 여담이지만 덕질에는 뭘 잡고 시작하냐에 따라 소나무 같은 취향이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평생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슴돌이었는데 요즘은 코르티스가 늙크크의 눈에 밟힌다. 갈아탈수도 있나? 빅히트도 다시보면? 이런 흐름 어색하지 않은 분이라면 '펑펑' 꼭 읽기, 약속. '펑펑' 읽고 다른 사람 후기 궁금해서 찾아왔으면 같이 감상 달려주기 입니다. 꼭. 케이팝 좋아하시면 '펑펑'하세요. 재밌으니까.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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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은 비주얼이 중요한 아이돌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케이팝에 대해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을 구분하자는 나의 주장은 (...) 그저 내 삶에 대한 울분이자 자학”(p.13)이라고 솔직하게 시작하는 복길의 일기이자 대중문화비평서이다. 한마디로 케이팝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 모순에 상처받은 한 개인의 애절한 자기고백이자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들은 신나는 비트에도 불구하고 애절한 가사를 가진 케이팝처럼 전체적으로 ‘슬픔’이라는 정서가 깔려있다. 저자가 2019년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선보인 케이팝 디제잉 공연의 기획 역시 ‘슬픔의 케이팝 파티’였다. 케이팝, 그러니까 아이돌 산업, 소속사 자본의 논리와 환상을 소비하는 팬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감정을 그 당시 시대의 맥락과 함께 녹인 글들이다. 문장 중에 은어가 제법 많아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응답하라 1997’에서 정은지 배우가 HOT 콘서트장에 가서 춤추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읽히는 책이다. 적어도 초반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음악이라는, 큰 감성의 맥락으로 퉁쳐버려 한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던 신세계 영역의 글로 읽히기도 했다. 내가 오디션 심사위원이라 친다면 “이 복길 연습생, 나에게 인지도도 없었고, 뭔가 기본이 없는 B급 같았는데 뭔지 모를 매력 터지는데?” 아무튼, 저자의 전작 <아무튼, 예능>을 통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문법을 선보인 글쟁이이기도 하다. 이 책은 6년만의 신간으로 2023년부터 3년간 〈씨네21〉에 연재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쓰였다. 총 4부에 걸쳐 익숙한 케이팝 가사들을 소제목 삼아 저자의 자전적 경험 속 케이팝의 기억을 서술한다. 저자가 선곡한 음악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경험까지도 함께 편집하여 독자와 교감하는, 글로서 케이팝을 디제잉하는 글이랄까. 예를 들어, 아웃사이더의 ‘외톨이’ 가사를 읽으며 쓰레기가 쌓인 집에서 은둔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청하의 롤러코스터를 선곡하며 같이 알바하던 B가 “언니 저 이제 죽고 싶을 때마다 ‘후렌치 에볼루션’ 탈거예요.”(p.133)라 말하는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아가 '슬픔의 케이팝 파티'를 운영하며 겪었던 분투기와 그 과정에서 마주한 연대기를 요약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케이팝 문화를 '철저히 설계된 사랑의 볼모'로 규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팬들이 느끼는 감정만큼은 결코 허상이 아닌 '진짜'라고 긍정하는 대목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뒤통수 맞아가며 자책과 회피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끝내 음악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케이팝을 즐기는 모든 리스너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당신의 인생에서 특별한 BGM이었던 케이팝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케이팝을 들으며 현타 오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 날, 새로운 케이팝을 흥얼거리는 케이팝 덕후들에게는 더욱 추천한다. 케이팝에 대한 의리를 계속해서 다짐하며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될지도. #펑펑#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2기#복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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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장르를 사랑하는 건 각오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케이팝은 우리 곁에 있었지만 늘 배신했고 즐겁게 만들었다. 완벽한 성숙도 영원한 의리도 보장하지 않지만,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늘 케이팝을 담아두고 있었다. 시스템의 기만과 얄팍한 상술, 때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환멸을 일으켜 눈물을 펑펑 쏟아지게 만드는 세계다. 이 지독하고도 모순적인 케이팝을 이야기하자면 ‘슬픔의 케이팝 파티’ 기획자, 복길 작가의 신작 <펑펑>을 펼쳐보는 것을 추천한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말이다. 언젠가 팝송만 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 책을 들여다보니 실은 단 한 순간도 케이팝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엑소의 세계관 엑소더스를 유랑하며 〈피터팬〉의 영원을 믿기도 했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차마 음악은 미워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펑펑>은 케이팝의 화려함을 찬양하거나 냉소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했던 기억과 그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들을 차분히 들여다본다. 이 책은 케이팝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다. 힘들 때는 위로가 되어주었고, 즐거울 때는 두 배의 기쁨을 얹어주었던 음악. 그러나 그 사랑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영원을 약속하던 노래도, 무대를 채우던 사람도, 팬의 마음도 끝내 변하고 흔들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책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순간이 모두에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특정 아이돌의 이름과 무대, 팬덤 문화에 대한 기억은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 기록하는 것은 특정 팬덤의 역사가 아니라 그 시절을 반영한 노래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문득 재생하게 되는 마음의 흔적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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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아이돌 좋아하세요? 케이팝 좋아하세요? 소녀문화, 빠순이, 오빠부대… 내 가히 여자됨의 구렁텅이를 지나온 평생토록 시도했으나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케이팝, 개중에서도 아이돌 팬 흉내다. 왜 팬-되기가 아닌가, 하면, 말 그대로 흉내, 정상성 위장을 기도한 가장마저도 처참한 실패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케이팝(과 그 요소들)에 대한 사랑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내도록 이해 불가한 열정과 한데 뭉뚱그려진 선망 반 실패 반의 흔적으로 남아왔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지 않은가? 이러게나 소비자와 그 대상을 주권과 착취의 어드메로 뒤섞어놓는 산업이 없다. 개인의 존재 자체를 이미지화해 모든 요소를 상품으로 내거는 일 또한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 아니던가. 전제왕권기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놀라운 일이다. 분석과 조롱, 상징화와 납작 눌린 일반화의 양면을 오가는 케이팝, 그리고 그 팬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p.54 케이팝 팬들은 아이돌을 향해 사랑과 영원을 맹세하고 그 충만함을 즐기며 커뮤니티를 이룬다. 동시에 그들은 그 맹세 속에 애정, 질투, 집착, 광기에 이르는 갖가지 감정을 쏟아부은 뒤 그것을 멋대로 배합해 오직 자신만 이해하는 사랑의 법칙을 만든다. 최애가 혐오 발언을 일삼을 땐 적당히 타일러서 훈방 조치를 했다가도 연애 정황이 포착되는 순간 즉시 사형선고를 내려 버리는 독재자의 율법이다. 욕망을 억압하며 만든 환상이 가장 기괴한 형태의 사랑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p.57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 상대를 소유하거나 파괴하는 탐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환상 뒤에 숨긴 내 질척이는 갈망과 웅크린 결핍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인간을 욕망한다면 그것을 더욱 세심히 돌봐야 한다. 거창한 말들로 관계를 정의하지 말고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걸 자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치심과 죄책감, 그럼에도 일상 전반에 뿌리내리는 사랑, 내 입장에서는 생판 모르는 남에 대한 그 피같고 살같은 사랑은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앞서 말한 그 여자됨의 구렁텅이를 지나오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어느정도 나의 일면을 지배하는 물음이다. 어느 정도냐면, 마음 같아선 붙잡아 가둬놓고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을 때까지 쥐어짜가며 물어보고 싶을 만큼. 이 물음은 필연히 케이팝 산업이 무엇을 셀링하는지, 무엇에 기반하는지, 같은 이유로 어떤 이유로 사랑받고 확산되는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여자아이 집단'에 온전히 소속된 적 없던 나의 두려움은 세계적 인기를 끄는 가사와 퀴어니스의 차용을 교묘히 파고드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지지 기반으로 역전되지 않았는가? 그때의, 지금의 사람들은 누구를, 무엇을,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가히 사랑의 불나방. p.110 여자임에도 여자를 흉내 내야 했던 순간들, 여자답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틀린 여자'가 되었던 순간들이 자신이 '여자'임을 설명해야 하는 여자를 통해 해방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수치심과 나의 수치심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여장 여자'로서 그와 같은 수치심을 공유한다고 주장하며 그를 통해 정상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계책을 세운다. 세상 모든 걸 저 좋은 대로 끌어다 쓰는 '진짜 여자'만의 얄밉고 오만한 특성대로. p.166 자두의 무대에서 엽기적인 것은 오직 하나. 그 거추장스러운 콘셉트를 두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그의 엄청난 성량뿐이었다. (…) 맙소사. 자두는 엽기가 맞았다. 세상이 그를 엽기라 부른 것은 형광색 천 쪼가리를 두른 외형이 아닌 이 기운 때문이었겠구나. '상식적이지 않고' '거부감이 들고' '받아들이기 힘든' 그 모든 요건을 충족한 엽기, 아니 여자로서의 기운. 오해를 무릅쓰고 단언하자면, 케이팝 팬들은 어떤 식으로든 미친 자들이다. 광인이 아니고서야 그런 걸 그렇게 좋아할 리가 없다… 견고하게 합의된 비-정상에서 안착한 자들만이 그를 향유할 자격을 갖는다. 개중 경계가 흐려지는 자와 '일코' 얼굴을 완벽히 갈아끼우는 자로 나뉠 뿐… 이라고 하면 이제 나는 전방위 공격에 두들겨맞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치고 광적이지 않은 게 어디 있단 말인지. 게다가 그 '판'이 온전히 관심과 열정에 뿌리에 둔 자본(혹은 그 역)이라면 더더욱. 사랑해서 미치고, 미친 사랑을 한다. 모욕과 수치를 열광과 자기이해로 역전하는 희한한 세계야말로 케이팝과 그 팬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백하자면, 첫 페이지부터 기가 쫙 빨려서 전심전력으로 덮어버리고 싶었다. 만일 내가 좋아하는 것, 예를 들면 책을 주제로 하는 이런 책이 나오면 절대 읽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공감성 수치와 고통을 직면할 재간이 없으므로. p.78 혹은 우리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살아남아 다시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 사랑이 만든 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곧 사랑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철저히 설계된 사랑의 볼모가 되어 자책과 회피를 반복하다 몇 번이고 무너지는 사람들. 그러나 광적이고, 자멸적이며, 폭력적일지라도 결코 가짜이지 않은 그들의 사랑. p.217 수치심을 알고 품위를 지키는 건 반론의 여지 없이 그냥 좋은 일이다. 부끄러움을 알고 행동을 제어하는 건 인간다운 일이니까.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에 수치심을 알고도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머물게 된다. 많은 사람이 '길티 플레저'라 이름 붙인 그 불쾌한 낮잠 같은 상황 말이다. 케이팝을 듣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상황 속에 제 발로 갇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을 덮으며 깨달은 두 가지가 있다. 책으로는 이만한 도파민을 뽑아내기가 책 팔아 부자되기만큼 어려울 것이며 만약 나온다면 안 읽을 재간 또한 없어 필연히 '길티'에 몸부림치며 슬픔의 OO파티를 벌이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뒤죽박죽 감상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이 시대의 사랑과 수치, 폭력은 분리되지 않는 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나 또한 어느 면에선가는 이 해괴망측하고 질척질척한 사랑에 허우적대고 있다는 말이다. 평생을 궁금해했던 어떤 '사랑'은 이런 형태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언젠가 보았던 말처럼, 사랑을 쪽팔리게 하는 OO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자여, 두려워 말고 힘차게 전진하시라. 티켓값은 비싸고 영통은 짧습니다. 우는 건 끝나고 트위터에 움짤주접까지 다 올리고 하세요... p.26 자신의 사랑과 그 사랑의 좌절을 살피는 그의 태도는 얼마나 성숙한가? 대상이 남기고 간 분노를 어루만지는 것까지가 사랑이라니. 케이팝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좆같지만 사랑한다는 말로 얼버무리곤 했던 나는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과 마주한 한 사람의 용기 앞에서 눈부신 모멸감을 느꼈다. p.257 실제로 케이팝은 흑독한 아카데미 시스템을 제외하면 지금 한국 사회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으며, 이미 해외 시장이 조성된 산업이 한국을 닮아야 할 이유도 없다. (…) 지금 우리에게 케이팝은 '자원'이 아니라 우리가 묵인한 사회의 병폐와 우리도 몰랐던 사회의 매력을 다양한 각도로 투영해 볼 수 있는 프리즘이다. 이 프리즘 앞에 서서 다같이 머쓱하게 웃어보자. 그것은 '가짜'가 '진짜'가 되어버린 웃지 못할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스처일 것이다. #펑펑 #복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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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물론 그것은 마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게 하고, 집 안 곳곳의 공간을 침범해 가족들의 눈총을 받게 하고,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몰입하게 만들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덕질의 대상이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지, 망치러 온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 잠시라도 행복했다면, 그래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덕질의 대상은 각자 취향에 따라 무궁무진하지만,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케이팝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케이팝을 바라보는 가장 내밀하고도 뜨거운 시선을 보여준다. <아무튼, 예능>이라는 책으로 만났던 복길이 6년 만에 펴내는 신작 산문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23년부터 3년간 〈씨네21〉에 연재한 ‘슬픔의 케이팝 파티’에 음악을 듣고 현실을 살아내며 벼린 최신의 사유를 더해 완성되었다. 저자는 케이팝 디제잉 공연 ‘슬픔의 케이팝 파티’의 기획자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케이팝 덕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대중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수준높은 통찰도 함께 보여준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케이팝 역사에 이름을 남긴 케이팝 아티스트와 그들의 곡을 아우르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 문화는 환상을 사고 파는 일이다. '환상을 사고파는 일'은 거짓말로 유지된다. 아이돌과 팬은 '우린 서로를 사랑하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피상적인 합의 위에서 관계를 맺는다. 대다수 케이팝 팬은 이 합의를 믿고 따르지만, 그들 중 일부는 왜 그래야 하느냐며 저항한다. 그렇게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아이돌은 그 환상이 깨지지 않아야 먹고살 수 있으니 어떻게든 자신의 진짜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팬은 거기에 같이 장단을 맞추지 말고 계속해서 내 욕망을 추구해야 한다. 팬들은 케이팝의 주체이자 객체다. 아이돌을 향한 사랑으로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발벗고 나서지만, 동시에 산업이 설계한 판 위에서 움직인다. 저자는 줄곧 케이팝의 즐거움을 예찬하면서 동시에 케이팝의 유해함도 지적한다.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면서, 케이팝이라는 산업 전체를 통찰하기도 한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토대로 케이팝을 현상이자 문화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케이팝을 들으며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렸던 역사를 털어놓는다. 기쁠때, 외로울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도 노래 가사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와 닿았던 적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아이돌 콘서트에 가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방송을 챙겨보며 투표를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케이팝은 일상 속 시간을 함께한 추억이자 기억이다. 오늘도 운동을 하며, 출근을 하며, 케이팝을 듣고 있는 당신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애정과 애증 사이, '케이팝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