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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1927년 스웨덴의 작은 마을 시그투나. 시그투나 인민학교 학생 조선인 최영숙은 인민학교 교장으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시그투나 인민학교 교지에 기고할 글을 써 달라는 것. 스웨덴어를 배우기 위해 1년 간 시그투나 인민학교에 등록하게 된최영숙은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그투나에 사는 조선 사람이라곤 그녀 밖에 없다. “난징에서 상하이를 거쳐 다롄까지, 하얼빈에서 만저우리와 모스크바를 거쳐 스톡홀름까지.” (13쪽) 말 그대로 무모한 모험심으로 시그투나에 와 있다. 떠나온 조국의 상황을 알리는 일. 뜨겁고 까만 커피만큼이나 가슴 뜨거워지는 일이 분명하다. 그러던 와 중에 시그투나 인민학교 동급생 리사의 비밀을 듣게 된 최영숙. “소녀들은 소리 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우리의 인생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갈까?” (38쪽) 라는 질문을 던진다. 스톡홀름 사회정치정책연구소 경제학사에 입학하기 전 시그투나로 흘러 들러 들어온 영숙의 인생은 또다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백년 후에 자유를 위해 맹렬히 싸우려는 한 사람이 역사 속에 있었고, 그녀의 글조선의 청년들 - 1927년 여름. <시그투나링엔 7>이라는 스웨덴어로 쓰여진 이야기가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한다. 최영숙이라는 여성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로 1932년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스웨덴으로 유학까지 갔던 고학력 여자가비참하게 콩나물이나 팔다 죽었다’라는 오명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녀를 비춘 삶이 악의적인 서사로 남았음을 암시한다. 전하영 소설가에게는 최영숙의 삶이 악의적인 서사가 아니라는 걸 지우는 의미있는 작업이 바로 <시그투나>였다. 실제교지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전하영 소설가가 최영숙의 삶을 각색한 내용이다.
취재 차 전하영 소설가는 스웨덴에 머물며 눈부시게 빛나는 멜라렌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녀가 머물렀던 기숙사(지금은 카페로 개조)를 방문하며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느꼈다고 전한다. 전하영 소설가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실은 조금씩 최영숙에게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시그투나>를 읽는 내내, 백년 전 스웨덴의 시그투나에서 외쳤던 조선의 청년들이라는 글은 뜨겁게 조국을 사랑했던 최영숙의 온기가 전해지는시간이었다. 자음과모음에서는 <트리플 시리즈>라고 하여, 작가의 세 편의 소설을 한 권에 모아 소설집으로 만들었다. 작가-작품-독자의 아름다움 트리플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담겼다. 전하영 소설집에는 <시그투나-인도차이나-조용하고 먼> 3편의 소설들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소설은 바로 최영숙이라는 여성의 삶을 다룬 <시그투나>이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소설을 꼽는다면 <인도차이나>라고 할 수 있다. 얼핏 제목과 소재가 따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그녀와 함께 북토크에 동행한 R과의 애매하고도 부적절한 관계를 묘사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차이나>는 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 임수란이 아홉 살 때 엄마를 따라가서 본 최초의 영화이다. 1930년에서 60년 사이의 프랑스령인도차이나를 다루며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로 당연히 아홉 살이 보기에는 부적절한 영상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홉 살 임수란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영화를 보았고 충격에 휩싸였다고 전해진다. 최근, R과의 관계를 눈치챈 사촌조카가 ”남미새“라는 유행어를 가르쳐주며 어안이 벙벙해진다. R과인도차이나라는 영화를 오버랩시키다 보면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 것인지 독자들이 먼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북토크 마지막 부분은 꼭 챙겨 읽으시길. <조용하고 먼>에서는 두 여자의 전화 통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두 여자 윤정과 승혜는 이십 년 전, 연극을 전공한 동기다. 실제로 연극판에 살아남은 이는 처세술이 능했던 한 명이었다. 승혜가 건 전화 통화의 요지는 ”내 아이가 수업 과제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베꼈다. 연극을 공부하던 시절 너(윤정)는 훔친 글로 공연을 했고 그래서 행복했냐는 거다.“ 짧은 통화 속에 이십 년 전 잊고자 했던 윤정의 과거의 모습이 들춰지는 순간이다. 승혜는 다른 사람의 글을 베낀 내 아이가, 조용하고 먼 곳에서 아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화롭게 지내길 바란다며 통화를 마친다. 그것은 곧 너(윤정)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조용히, 멀리 사라져줄래 라고 나즈막하게 읊조리는 것처럼 들렸다. 짧지만 강력하다. 통화를 끊고 윤정은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승혜는 전화 통화로 마음이 시원해졌을까? 승혜의 아이는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여러가지 물음표가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시그투나 #전하영 #자음과모음 #트리플시리즈33 #인도차이나 #조용하고먼 #소설집 #단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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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전하영 소설/ 자음과모음 몇 페이지 되지 않은 짧은 소설. 표지부터 임팩트 있는 《시그투나》. 세 단편이 실려있고 마지막에 에세이와 작품 해설이 있다. 에세이는 다시 소설을 쓰게 된 배경, 최영숙이라는 인물을 떠올리는 저자의 기록물이다. 전하영 작가님 소설은 처음 만났다. 한 문장마다 깊이 있는 고독과 시간이 스며 있다. 가장 인상적인 단편, 소설 속 인물 신여성 최영숙의 삶 그 깊은 내면에 가닿는 마음으로 읽었다. 울부짖지 않아도 고통은 존재하고, 침묵 속에서도 진실은 흐른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기나긴 겨울밤에, 그녀는 많이 울었다. 몰래, 매일, 혼자서.”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인간이 견뎌야 하는 외로움의 무게가 전해진다ㅠㅠ 자유는 제도나 문장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고통을 통과하며 존재의 결을 자각하는 순간에 찾아온다고. 작가는 감정의 결을 아주 섬세하게, 약하지 않게 그려낸다. 혼자 우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를 깨달았다는 대목에서, 고독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역사의 잔향으로 확장된다. 1926년의 겨울 스웨덴으로..... 《조용하고 먼》은 두 여자의 전화 통화 내용으로 이어진다. 제목 시그투나가 주는 상징성은 뭘까? 단어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그것은 결국 우리 각자의 내면에 남겨진 이름 없는 상처와 기억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과 대면하게 된다. 책의 힘은 거창한 서사나 극적인 전환에 있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순간들, 말하지 않은 말들, 멈춰버린 듯 보이나 사실은 흔들리는 시간들에서 나온다. 작가는 흔들림의 가운데서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흔들림이며, 흔들리는 것이야말로 삶이다”라는 메시지를 들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톡홀름의 근교에 위치한 시그투나, 지도에서 찾아봤다. 큰 호수와 아기자기한 건물들, 한적함을 느낄수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라고 한다. 호수가 너무 예쁘다. 박물관도 있는데 꼭 가보고 싶다. 마음은 이미 북유럽에 가있다.....^^ #시그투나 #전하영 #트리플33 #고독의기록 #여성서사 #기억의문장들 #자유의형태 #침묵의언어 #감정의여백 #문학이살아있는곳 #책속의여자들 #한국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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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멈추어 있던 시간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 문장이 내 마음에 정확히 닿았다. 누군가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부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들은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은 그걸 붙잡고 있는 내가 서글플 때도 있고 놓아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플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꿈이 머물고, 미루어지고, 꺾이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의 마음도 함께 비춰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고독이 낯설지 않았다. 꿈은 언제나 가장 외로운 자리에서 자란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읽는 내내 나는 ‘내가 품었던 꿈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그걸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한때는 너무 선명하고 뜨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모습이 달라지고 결국엔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로 밀려난 꿈들. 나는 그 꿈들을 여전히 품고 있다. 놓지 못해서가 아니라, 차마 놓을 수 없어서. 책 속 인물들도 나처럼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기대, 시대의 압박, 사회의 무게, 자신이 스스로에게 걸어둔 굳은 약속 속에서 꿈을 조정하고, 포기하고, 미루고, 다시 붙잡는다. 그저 숨 쉬고 버티고 다음을 생각하는, 아주 인간적인 무게로 서 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꿈을 이야기하면서도 꿈을 찬양하지 않는 태도. 꿈을 포기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시선. 그리고 언젠가 다시 손을 뻗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남겨두는 여백.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울컥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화려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미 그 언저리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꿈을 되살려주지도 않고, 잊게 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을 그 속의 꿈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했다. 나는 아직 내 꿈을 끝내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지연된 꿈이라고 해서 사라진 꿈은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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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이 책의 제목인 시그투나에 대해 찾아보게 되면 스웨덴 스톡홀림 주변에 있는 작은 도시라고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 더 자세히 알아보니, 지금의 스웨던의 수도는 스톡홀림이지만, 과거 스웨던의 첫 수도가 시구투나라는 사실을 토대로 이 책을 열면, 시그투나 - 인도차이나 - 조용하고 먼 의 순이지만,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세로쓰기와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순서가 아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아가게 책의 순서를 배치한 점을 눈에 띠는 독특한 점이다. 각자의 제목의 출간순서는 시그투나가 제일 늦지만, 이게 제일 먼저 배치했다는 점, 그러한 점에서 나는 이 책이 꿈이야기에 대해 지연되었지만 찬란하고 그것이 변질되어 파괴되었다는 흐름이 마치 스웨던의 첫 수도가 시그투나로 시작했지만 그것이 이제 지금의 스톡홀림으로 바뀐 것처럼, 변질되어서 결국은 시그투나의 수도로써의 기능이 파괴되었다는 뉘앙스로 나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보통의 단편소설들이 모호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에게 열린결말을 보여주고 독자들은 그 후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나름인데, 여기서 시그투나의 경우, 열린결말이지만, 사실 하나의 루트로 귀속된다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 루트로 읽지 않게 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보내 우리에게 적극적 관찰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끔 구성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실존한 인물인 최영숙(1906~1932)에 대해 교과서에 배운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이자 신여성의 삶을 산 사람들을 잘 모르지만, 실제 스웨덴까지 유학한 한 여성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들고는 읽어나가지만, 그녀가 변함없는 그곳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끝맺음으로 최영숙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면 그녀가 길게 살지 못하였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다 잊어버리고는 변하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그 시대상, 편협된 기사로 낙인을 찍어서 우리에게 찜찜한 기분을 안겨다주고 있습니다. 인도차이나파트에서는 임수란이라는 작가와 R이라는 영화 제작자간의 볼륜 느낌의 로맨스를 보여주면서 당황스럽게 읽게 되었다. R이라는 사람의 무신경함이 매력으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든다. 조용하고 먼에서는 오래 전에 표절한 사람과 그것을 폭록한 사람 사이의 대화를 담은 부분이며, 팝콘이 있었다면 먹으면서 이야기를 즐기기에는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싸우다가 조용하게 전화가 끊기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 느낌이 강했다. 종합적으로 10점 만점에 10점을 줄 수 있는 소설이었고, 단편소설을 좋아하시면 추천드리는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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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시그투나>라는 제목이 입에 붙지 않았다. 무슨 뜻일까? 알아본 바에 따르면 스웨덴 스톡홀름 주변의 어느 작은 도시라고 한다. 이 책에는 왜 이런 낯선 도시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것일까? "때로는 소설의 내용보다 소설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 지가 더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이십 년 전 스무 살이었던 사람들과 백년 전 스무 살이었던 사람이 나란히 놓이 이 소설집처럼." (p146, <해설;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 평론가의 해설처럼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무언가 서로의 연결점이 있어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듯 모를 듯 잡힐 듯 날아갈 듯 그런 상태로 남았다. 세 편의 단편이 엮인 이 책은 발표된 순서로보면 책의 배열과 역순이다. <조용하고 먼> <인도차이나> <시그투나> <조용하고 먼>에서는 오래 전 표절한 사람과 그것을 폭로한 사람간의 전화 통화 내용이 나온다. '똥 싼 놈이 성낸다'고 나,윤경,는 신경질적으로 폭로자인 승혜의 전화를 받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같은 곳을 바라보던 이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그 길에서 다 떠났다. 승혜는 묻는다. "내가 다 망친걸까?" 나도 나에게 묻는다. 그녀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인도차이나>에선 영화화된 작품으로 일약 인기 작가가 된 나,임수란,와 영화감독 R이 지방 소도시로 북토크에 참석하는 길에서의 반나절을 이야기한다. 거한 낮 술로 인해 늦을 듯 도착한 북토크 현장에는 R과 그에게 무언가 맺힌 것이 있는 듯한 남자,명일,이 마주한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지만 무언가 형사사건이 발생했을 것만 같은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이 단편의 끝은 아까의 승혜의 질문만큼이나 뜬금없는 나의 독백이 이어진다. "R의 주저하는 목소리가 바로 뒤편에서 들렸다. 아무런 옠측도 대응도 준비하지 못한 목소리. 영원히 증발해버릴 나의 과거. 나의 노스탤지어. 바닥에 쓰러진 채 나는 울부짖었다. 그러면 악몽에서 깨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아빠가 나를, 우리 여자들을 두고 영영 떠나버린 다른 어떤 날과 마찬가지로." (p099) 이 대목에서 내 궁금증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R이 나의 노스탤지어라는 말인가? 사람의 죽음은 슬프겠지만 나에게서 보여지는 저 울부짖음은 꽤나 애증의 무언가로 비친다고 할까... <시그투나>는 구한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유학한 최영숙이라는 실재 인물을 다룬 이야기. 귀국 후 그녀의 활동은 왜곡되고 감추어져 그저 '콩나물, 배추 파는 인텔리'의 이미지만 최근까지 이어져왔단다. 그에대한 작가의 반발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영숙이라는 사람을 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기억하고 있을까 싶다. 작가는 이런 저런 배경 설명없이 이 소설을 통해 최영숙이라는 사람의 왜곡된 평가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짧은 단편 소설 속에서 그 속에 감추어두었을 작가의 생각과 고민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본다. 왜 저렇게 말을 하는 걸까 하고 말이지. 단편 소설의 묘미이자 매력이자 단점이다라고 생각되는 이런 결론의 모호함은 책을 덮고 표지를 바라보게 만든다.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 그리고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또 한 사람... 뭐가 그렇게 궁금해? 정말 궁금해? 궁금하면 ... 얼만지?... 알지??? #시그투나 #전하여 #자음과모음 #매일책읽기 #독후감쓰기 #도서리뷰 #서평단 #한국소설 #트리플시리즈 #이건장편소설일까 #지연된꿈 #꿈이야기 #찬란한꿈 #변질된꿈 #파괴된꿈 #나에게묻는질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