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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조선시대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에 의해 운영되던 사회였다. 명목상으로는 양민(良民)과 천민(賤民)으로 구별되는 양천제(良賤制)가 규정되어 있었으나, 어느 틈엔가 양민들은 지배계층인 양반(兩班)과 피지배계층인 평민(平民)으로 디사 나누어졌다. 그리고 소수의 양반들에 의해 권력이 집중되어, 양반들이 모든 혜택을 독차지하는 ‘양반들의 나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이 조선시대 내내 당쟁이라는 정치 현상을 초래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중앙의 정치권에서는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된 이들이 주요 관직을 장악하고 있었고, 지역에서는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과 함께 오랫동안 해당 지역에서 터를 잡고 지냈던 양반 가문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었다.
이들 양반들을 달리 사대부(士大夫) 혹은 사족(士族)으로 칭하기도 하는데, 중앙에서 관직을 수행하던 이들과 달리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세하던 이들을 일컬어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 칭한다. 이들은 농업이 주된 당시의 상황에서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여 농민들에게 소작권을 통해 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비싼 이자를 부담해야만 하는 고리대금과 아울러 농민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소작료를 통해, 사족들은 농민들이 소유한 토지를 확보하여 농지를 점차 늘려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향촌 사회사’를 다룬 이 책에서, ‘향촌이란 중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지방 군현 단위로서의 범위’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지배세력으로서 이들은 ‘향촌의 여러 조직을 통해 종횡으로 연결되고 중첩적인 혼인 관계를 맺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 향촌에서 재지사족의 존재 양상과 그들의 사회적 위상은 다를 수 있겠으나, 신분제로 운영되던 조선시대의 상황에서 보편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향촌에서의 재지사족의 사회적 위상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주로 영남 지역의 자료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터인데, 조선 전기에 견고하게 운영되던 사족의 향촌 지배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이완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더욱이 소수의 사족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양상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사족 집단 사이에 갈등이 나타나기도 하고, 천민 혹은 양민들의 신분 상승으로 인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근대 전환기에 이르면 ‘사족의 촌락지배가 점차 해체되어감’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근대 이후에도 양반 신분을 내세우면서 향촌에서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며 지냈던 사례들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향촌 사회사를 다루고 있는데, 1부에서는 ‘16,17세기 재지사족의 향촌지배와 그 구조’라는 제목으로 5편의 논문이 배치되어 있다. 양반들이 주도했던 향약(鄕約)과 동계(洞契) 등의 기록을 통해 경북 안동과 상주 지역의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당시 경상도 지역을 비롯한 당대의 일반적인 ‘재지사족의 향촌지배와 그 성격’을 정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조선 후기 재지사족의 촌락 지배와 그 해체 과정’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임진왜란(1592) 이후 흔들리던 신분 질서와 양반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던 상황에 대해서 4편의 논문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7년 동안 이어지던 전쟁으로 인해 신분 질서가 이와되어 가고 있엇으나, 다른 햔편으로 왜군에 맞서 의병을 조직하여 활동함으로써 향촌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던 사족들의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모든 자식들에게 균일하게 상속하던 관행이 맏아들인 장자에게 상속되는 제도로 바뀌면서 이른바 ‘종가(宗家)’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양상이 결국 향촌에서 가문의 영향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실증하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변혁기의 민중운동과 향촌지배층의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2편이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먼저 19세기의 향촌 지배구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리하고 있으며, 또한 동학농민항쟁(1894)으로 폭발한 민중항쟁의 전개 과정에서 향촌의 사족들이 어떠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는가를 조명하기도 한다. 특히 동학혁명 당시 사족들은 지역에 따라 관군과 밀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민군의 입장에서 활동했음이 다양한 자료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활용한 자료가 ‘특정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임을 전제하면서도, 다양한 지역의 자료들을 활용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특수한 사정이라고만 생각하였던 현실이 점차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자료에 입각한 실증적 연구가 조선시대 재지사족들이 향촌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추적하고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