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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수십 년간 치유의 현장과 학생들과 맺은 관계, 사회에서 만난 다양한 인연들과 이루어진 생생한 경험들을 담아냈다. 저자는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번은 매듭지어야 할 나이가 되었고, 한의사이자 교육자로서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우리가 거치는 학습과 사회화는 세상의 틀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과정이며, 지식의 축적을 넘어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형태의 인간으로 단련되는 길들여짐이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설파했듯 타인의 인정을 좇는 삶은 종의 목줄에 묶인 삶과 다름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에, 어울림들 속에서 세상을 경험하며 다양한 것을 보태어 삶의 형상과 기반을 갖추어간다.
우리가 성과에 목매는 근본적 이유는 온전한 자아실현보다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상대적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칭찬은 강한 동기부여 요소이지만,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바꾸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소유와 성과가 경험의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삶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다.
삶은 멈춤도 끊어짐도 없다. 주인이 바뀌지도 않는다. 현재를 거듭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인생도, 현재도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인생과 현재를 책임지는 것도 주체가 되는 것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운명이 타고난 명을 따라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흐름 속에서 운명의 방향을 바꿔놓을 ‘인연’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 인연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좌절의 순간에 펼쳐 든 한 권의 책이나 한 줄의 경구일 수도 있다. ‘무엇을 하고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에 집중하고, 삶의 미세한 징후인 ‘기미’를 알아차려 미리 대응하는 자각이 필요하다.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세상에서의 역할이나 지위, 성공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상관이 없다. 세상과 삶을 살아가는 자기의 존재성과 의지와 적절함과 바름을 결정하는 순리가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닮고자 하면 대인이 될 수 없고, 자연을 본뜨고자 하면 대인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살아감이 홀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치 우주가 별들을 품듯, 지구가 만물을 담듯 다른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상태가 ‘큰 사람’이다.p285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자기의 삶을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살아있음이 작은 황홀함으로 채워질 수 있게 되고, 세상과 삶을 연결을 회복하는 도구로 쓸 수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시스템을 벗어나 홀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수많은 관계들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집단은 단절을 시도하고, 소외된 계층은 다른 방식으로 단절을 선택한다. 현실 속에서의 단절은 SNS나 유튜브와 같이 단절된 상태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자연에서 너무 멀어졌고 천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귀한 것을 천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성공이라 믿는다.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였다. 이미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더 빼앗긴다. 가난한 이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고, 안락함을 위해 타인의 삶을 희생시킨다.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난 인간 세상의 부적절한 모습이다. 자연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로 사는 것은 죽은 상태와 다르지 않으니 자연과 연결되어 자연스러움을 흉내 내는 정도의 어른은 되어야 한다.
일상의 수양법으로 명상, 필사, 차 마시기, 산책이 있다. 산책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유이고, 삶에 대한 자율성이며, 인생으로서의 순리를 따르는 일이다. 자기의 자유에 의한 삶과 인생에 대한 사색이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은 세상의 변화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정돈이다. 세상이라는 자기 밖의 길을 걸으면서도 인생이라는 자기 안의 길을 동시에 걸어갈 때, 우리는 단순한 존재를 넘어 진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이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의 지혜를 온몸으로 살아낸 저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하고도 강렬한 인생의 지침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나는살아가는사람인가#박성욱#파람북#인문#책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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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빛나던 자기다움은 두꺼운 집단의식에 덮여 희미해지고,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 진짜 '나'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나다운 게 뭘까? 나답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요즘 이 화두가 대한민국의 트렌드인 거 같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들에 빠진지 좀 됐는데요. 아직 답은 찾지 못했지만 조금씩 나답게 사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읽고 싶었나 봅니다. 박성욱 교수는 경희대 한의과대학교수님으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철학들을 접목시키며 환자들의 병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으신 분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지는 삶' 때문에 병든 사람들에게 그런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을 읽으며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자유, 욕망, 안목, 섭생, 연결. 이 책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삶의 방향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힘은 자유입니다. 외부의 자극이 아닌 내면의 진정한 욕망을 마주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길을 선택하는 통찰이 곧 안목이며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생활 태도가 섭생이고 나로서 바로 설 때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기가 되는 것이 연결입니다.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살아지는 사람인가? 저는 살아지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여정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내가 잘 생각하고 있고, 잘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이런 기분이 나를 더 나답게 하는 거 같아요. 얼마 전 <참교육> 몰아보기를 했습니다. 요즘 넷플릭스 화제작이죠.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중이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이 그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잘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창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표출해야 하는 왕성한 호르몬의 시기에 학교와 학원에 갇혀서 공부만 해야 하는 삶. 그 '살아지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어른 찜쪄먹는 괴물들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서 보는 내내 섬뜩했습니다. 아이들이 아이 답지 못하게 '살아지는 삶'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까요? 부모가 되어 공부 잘하는 기계를 낳은 건 아니잖아요? 병든 괴물 같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대에 서 있는 거 같아서 착잡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지고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그 기준 때문에 수많은 상처를 가슴에 묻고 묵묵히 패배자로 살아지는 중이죠. 이젠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내 안목을 기준 삼아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 책이 정답을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나 지금 나답게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좋은 질물을 하게 하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고 믿습니다... 삶의 방향을 잃은 분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분들 나답게 산다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 분들에게 이 책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첫 발을 디디게 해줄 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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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그는 좋은 대학을 나와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지만, 언젠가부터 알 수 없는 편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어쩌면 그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타인에 의해 살아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으로 행복해질 권리와 의무와 책임이 있고, 그것이 인생이 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행복보다 삶과 성공에 대해 고민하고, 병이 생기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 법을 고민하다가, 자기다운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중략) 우리는 그 획일화된 가치와 목표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의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연으로 우연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자기다운 삶이 확장된다. 이를 통해 결정당한 삶에서 나다운 삶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p.11~12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수십 년 동안 진료실과 강단에서 수많은 환자와 학생들을 만나온 한의학자인 박성욱 교수의 통찰이 담긴 에세이로, 타인의 시선과 평판, 세상의 획일적인 가치관에 맞춰 사느라 자기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남들 기준에 맞춰 '살아지는(결정당한) 삶'에서 벗어나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나다운) 삶'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를 위해 동서양의 철학적 통찰과 한의학적 지혜를 융합하여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다섯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먼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유'를 얻어야 하며, 세상이 주입한 가짜 욕망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본연의 '욕망'을 마주해야 하며,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르고, 마음의 병이 몸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섭생'의 태도를 갖추어야 하며, 내가 나로서 온전히 바로 설 때 비로소 타인, 세상과 건강한 '연결'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타인에 의해 '살아지는 삶'을 멈추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야만 진정한 치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외부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 사회적 통념이나 학습된 관념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비롯된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하는 의지가 바로 자유이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삶이란 다름 아닌 '자기다운 삶'이며, 자유로운 사람이란 '자기답게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p.28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와 타인의 평판에 얽매여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노예의 삶과 다름이 없습니다. 억압이 없는 환경에 살고 있을지라도,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통념에 갇혀 살고 있다면, 그건 '자유'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만의 속도와 색깔로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욕五慾은 불교 전통에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 개념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인 재욕財慾, 아름다운 용모나 이성에 대한 탐닉인 색욕色慾,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식욕食慾, 세상의 인정과 칭송을 바라는 명예욕名譽慾, 편안하게 잠자고 쉬고 싶은 수면욕睡眠慾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은 우리의 눈과 귀를 바깥으로 향하게 만든다. 더 많은 재물, 더 자극적인 쾌락, 더 높은 명성 등 외부의 대상을 소유하거나 성취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는 마음의 작용이다. 오욕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즐거움이지만, 지나치게 빠져들면 만족함에 머무르지 못하고 끝없이 갈증을 낳는다. p.88
우리의 눈과 귀를 바깥으로 향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욕망, 내가 가진 통장의 잔고, 타인의 시선, 음식의 맛, 세상이 부르는 이름, 육체의 편안함까지, 외부의 대상을 통해 얻는 만족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더 크고 강한 자극을 원하는 것처럼, 욕망이라는 것은 만족함에 머무르지 못하고 끝없는 갈증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죄악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동력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고, 위대한 성취를 이루게 하며,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온 강력한 에너지로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욕망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더 많은 것을 끌어와 채우려 하지 말고, 내 안의 중심을 단단히 잡을 수 있을 때, 끝없는 갈증에서 벗어나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기답게 선택하고 결정했는가이다. "나는 사람들이 더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안목이란 정해진 방식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내가 걸어갈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안목이 곧 운명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스스로에게 중요한 가치를 분별하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이 바로 자기만의 안목이다. 결국 얼마나 '자기답게'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p.144
삶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내린 결정들이 모여 나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가지 않는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기 마련, 그러니 적절하게 결정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후회를 줄일 수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 중 "사람들이 더 적게 간 길"을 택한 것은,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유행이나 정해진 답을 따라가는 대신, 내 마음이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속삭이는 길을 알아채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습니다. 남들이 정해준 길을 갈 때는 실패의 핑계를 외부에 돌릴 수 있지만, 내 안목으로 선택한 길에서는 오롯이 자신이 결과와 마주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나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지 대신, 나만의 안목으로 나의 삶을 채워가는 것은 어떨까요?
섭생攝生은 세상에서가 아니라 자기와 인생에 진짜 귀한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잃어버린 것, 살아감에 쫓겨 잊어버린 것, 자기로서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것을 찾고 키워가는 기술이다. 섭생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본질을 잃지 않게 하는 인생에 대한 진심이다. (중략) 섭생이란 나의 삶과 생명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끌어안아 지혜롭게 다스리는 기술이자 태도이다. p.229
살다보면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욕망을 쫓느라 나만의 안목을 흐릴 때도 있습니다. 이때 실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기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자기 본질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섭생입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나를 온전히 지켜내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요. 섭생은 단순히 오래 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주어진 생을 하루하루 충만하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자유를 지키는 것입니다. 거창한 성공이나 세상의 인정이 없을지라도, 나의 생명과 일상을 온전히 내 것으로 끌어안고 다스릴 수 있을 때, 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 모든 여정은 결국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거대한 바다와 하나가 되는 길, 즉 '연결連結'의 회복이다. 세상 속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고, 건강한 욕망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길을 찾으며, 깊은 안목은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고, 최고의 섭생은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p.278
'나다운' 삶은 고립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고립된 섬을 넘어 '우리'라는 거대한 바다와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섰을 때, 타인 그리고 세상과 건강하고 깊은 유대감을 맺을 수 있으며, 진정한 연결 속에서 행복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나 혼자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님을 깨닫고,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저마다의 안목과 섭생을 지닌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안전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지요.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30년 가까이 진료실과 강단에서 수많은 환자와 학생들을 만나온 한의학자인 박성욱 교수의 통찰이 담긴 에세이로, 타인의 시선과 평판, 세상의 획일적인 가치관에 맞춰 사느라 자기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남들 기준에 맞춰 '살아지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를 위해 동서양의 철학적 통찰과 한의학적 지혜를 융합하여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다섯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먼저 타인의 평판에서 벗어나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유'를 얻어야 하며, 세상이 주입한 가짜 욕망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본연의 '욕망'을 마주해야 하며,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르고, 마음의 병이 몸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섭생'의 태도를 갖추어야 하며, 내가 나로서 온전히 바로 설 때 비로소 타인, 세상과 건강한 '연결'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타인에 의해 '살아지는 삶'을 멈추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야만 진정한 치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꿈오리 한줄평 :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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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돌아가는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늘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를 고민한다. 파람북에서 출간된 박성욱 작가의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바로 그 고민의 출발점을 뒤흔드는 책이다. 저자는 동양고전의 지혜를 빌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고질적인 불안과 고립감의 원인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책은 우리가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단한 자기다움을 회복하여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묻는다. 소유와 경쟁 대신 공존과 상생을, 고립 대신 따뜻한 연결을 제안하는 이 책은, 쉼 없이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을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존재에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그 이름은 한결같이 지속되는 이름은 아니다. 『도덕경』 1장 한결같이 지속되는 본질은, 바라는 바가 없으면 그 묘함을 볼 수 있지만, 바라는 바가 있으면 바라는대로 보이게 된다. 『도덕경』 1장 있음과 없음이라는 것은 생겨남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어려움과 쉬움은 이루어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며, 긴 것과 짧은 것은 형태를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높음과 낮음은 기울어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며, 음악과 소리는 조화로움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앞과 뒤는 따라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다. 『도덕경』 2장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은 이름을 짓고, 기준을 정하고, 무언가를 규정하고 분류하는 일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무언가를 명확히 규정해야만 사회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생활 규범이 되었고, 신분 체계나 사회적 지위가 되기도 했다. 형태가 무엇이든 이러한 ‘개념화’와 ‘분류’ 덕분에 인류는 혼란을 줄이고 사회 질서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확실히 대상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행동의 기준을 정하는 행위는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이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주어진 이름과 기준에만 맞춰 살아가야 할까? 편리를 위해 만든 ‘이름’이라는 틀은, 역설적으로 대상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당장 나의 삶만 보아도 그렇다. 딸을 키우는 나는 사회로부터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표가 나라는 존재의 전부를 규정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 ‘ㅇㅇㅇ 매니저’라는 명함을 내미는 직장인이다. 그뿐인가. 친정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내 어머니의 ‘딸’이라는 이름표로 갈아입는다. 이처럼 상황마다 나를 지칭하는 파편적인 이름표들만으로 나의 본질을 온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름은 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그 존재의 역할을 단편적으로 고정해 버린다. 그리고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 고정관념이라는 부정적인 반대급부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극에 갇히는 순간,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할 때 우리는 이유 없는 불안감이나 죄책감마저 느끼게 된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한결같이 지속되는 이름은 없다"고 통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은 여러 이름을 동시에 지니며 다양한 역할을 하지만, 특정 이름에 갇히는 순간 그 존재의 다채로움과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진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이라는 이름표가 개인의 모든 면을 규정하고, 심지어 그 역할을 벗어날 때 불안감이나 죄책감마저 느끼게 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름에 잡혀 대상에 대한 선입관이 생기거나, 의도나 욕망이 개입되면 이름과 대상을 동일시하는 잘못이 일어날 수 있다.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인 이름 때문에, 오히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 050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 개념을 정의하고 만들어낸다. 개념화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단순화하고 구조화하는 인식의 도구인 것이다. ‘아름답다’, ‘선하다’, ‘크다’, ‘작다’와 같은 표현들 모두 존재를 이해하고 분류하기 위한 인식의 도구들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개념화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흐리고 왜곡하는 결과를 자주 보게 된다. 단순화된 그 틀이 때로는 존재의 본래 모습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개념은 분류를 낳고, 분류는 차이를 만든다. 이렇게 생긴 차이를 불필요한 평가와 차별로 일어가는 일이 쉽게 일어난다. ‘도덕경’에서는 개념과 분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 059 비단 이름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개념화’하는 일 역시 서늘한 부작용을 낳는다. 개념은 분류를 낳고, 분류는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떠한 것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이면에는 ‘추함’이 동시에 생겨난다. 어떤 행동을 ‘선하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와 반대되는 행동은 고스란히 ‘악’이 된다. 일단 사회적으로 개념이 합의되고 규정되면, "과연 그것이 진짜 아름다운가? 착한 행동이 맞나?"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는 이런 규정들은 사실 그 당대의 관념과 욕망에 의해 결정된 것들이 대다수다. 노자의 말대로 '바라는 바(의도와 욕망)'가 개입되어 세상을 보기 때문에, 본질이 왜곡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개념과 규정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곤 한다. 멀게는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재판에 대한 당대의 찬사가 후대에 이르러 가장 잔혹한 악행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가깝게는 과거의 기준에 묶여 현재 우리의 삶을 억죄고 있는 오래된 법 조항이나 규제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대에는 질서를 위한 최선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낡은 틀이 되어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을 짓누를 뿐이다. 인문학책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삶은 짓밟고 올라서는 경쟁이나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축적하는 소유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이라고 말이다. 수많은 이름표에 갇혀 세상이 나눈 이분법적 기준에 헐떡이며 '살아지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 틀을 깨고 나와 단단해진 자기다움으로 세상과 따뜻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을 살 것인가. 내 가슴에 붙은 수많은 명함과 이름표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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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즘 읽을만한 책으로 인문학 도서를 추천해 보려고 한다. 늘 인문학 책을 추천할 때면 조심스럽고, 워낙 재미있게 읽는 소설이나 에세이와는 다르게 성찰이나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고 재미없다는 느낌이 강해서 인문학 책을 추천할 때 늘 그렇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문학 도서의 매력을 점점 알아가게 될 것이니 젊은 시절부터 접해보면 더욱 좋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이나 20대 책으로 추천, 자기 성찰의 성장 에세이로 기록한다.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 책은 박성욱 교수의 인문 에세이 책으로 파람북 출판사의 2026년 신간도서다. 부제로 '우리는 길을 잃을 자유와 길을 만들 권리가 있다'라는 메시지가 이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늘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인문 에세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며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수십 년간 환자와 학생들을 만나는 박성욱 교수가 전하는 자기 성찰은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게 보였던 책이었는데 읽기 시작하니 끄덕이며 읽게 되고, 성공과 경쟁의 틀안에서 나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또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며 바쁘게 달려갔는지 정작 내가 머물러 잠시 생각해 보니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떠오르게 하는 인문학 책으로 추천한다. 에세이 책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에서는 과연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 살아내는 사람인가를 물으며, 지금의 삶은 내가 선택한 삶인가를 생각하며, 다양한 질문과 생각을 돕는 책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잊고 있던 나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출판사 파람북에서 출간한 인문 에세이로 치열하게 달려왔지만 무엇이 남았는지 고민하며 스스로의 삶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 책은 분명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속도로 맞춰 걷게 할 것이다. 삶이 답답하고 나의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 책을 서평 하며, 이 책이 우리에게 완벽한 길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스스로 찾아가도록 해주기에 자신의 삶을 나아갈 용기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인문학 책이다. (자세한 책사진과 글&영상은 블로그에서 확인가능합니다.)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 중요한 건 나만의 길을 찾는 거니까.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자유를 누리자. 삶에 정답은 없으니까! -지유 자작 글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