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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Innocence『거울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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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무척 친근한 작품이다. 반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조금 생소하다.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분명 같은 앨리스가 등장하지만 다른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전개 방식 또한 다르다. 그 이유는 작가의 의도에 있다. 전작은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를 원하는 환상적인 이야기였다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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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무척 친근한 작품이다. 반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조금 생소하다.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분명 같은 앨리스가 등장하지만 다른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전개 방식 또한 다르다. 그 이유는 작가의 의도에 있다. 전작은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를 원하는 환상적인 이야기였다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현실의 모순을 기저에 깔고 있어서일 거다. 좀 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집필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접근하기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물론 이것도 말 그대로 '그저 단순하게만' 접근하면 어려울 게 없다. 거울 나라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반대'의 개념만 갖고 있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굼벵이 같은 나라구나. 여기선 보다시피 같은 곳에 머물러 있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싶으면 적어도 이것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51쪽

 

거울 나라는 모든 것이 반대다. 매일같이 보는 거울, 그것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비추고 있다. 하지만 실제 방향으로 보자면 반대의 개념으로 읽힌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그런 작품이다. 우리 시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건 '거울'의 반대 습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반대'에만 집중해서 읽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언어유희의 세계에 정신의 혼미함을 경험했다.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번역판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아무리 잘 번역한 글일지라도 원문의 적확함과 뉘앙스와는 거리가 있을 테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 간혹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안타까움을 표출하게 된다.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루이스 캐럴이 대학 총장 리델의 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다른 점은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작가의 목소리를 좀 더 투과했다는 정도다. 어른들의 눈과 사상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이들의 관점, 아이들의 시각에서는 무한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통용되기 어려운 것도 아이들의 세상, 시각, 관점에서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루이스 캐럴은 그것을 동화라는 장치로 십분 활용했고 말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거울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 된다. 조금 희한한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거듭할수록 그곳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곳이니까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재밌지 않은가. 현실의 부조리를 청개구리(거울, 반대)의 습성으로 표현해낸 발상이 말이다. 과연 이 작품이 아이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적합할까, 생각해보지만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아니 반대로 생각해 보면 잔머리 굴리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대로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라면 더 정확하게 모순의 본질을 캐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온갖 풍파에 찌든 어른이라면 잔머리 굴리기에 빠쁠 테지만.

 

Return to Innocence

 

어릴 적에 친할머니께서 집에 오시면 항상 나와 주무셨는데 어린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옛날 옛적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희미한 수면등만 켜진 방안에서 이불에 폭 파묻힌 내 배를 둥근 원을 그리며 쓰담 쓰담 해주시면서 고릿적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할머니의 읊조리는 목소리에 이내 쌔근쌔근 잠이 들거나 어떤 날은 더 해달라 조르기도 하며 깊은 밤을 보냈던 유년 시절의 기억.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그때를 떠오르게 했다. 단순히 동화라서가 아니다. 루이스 캐럴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이야기여서도 아니다. 동화의 탈을 쓴 어른의 세계, 즉 지혜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들었던 어른들의 이야기도 그랬다. 거의 교훈적인 의미로써 바르고 착한,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어른의 뜻이 내포돼있었음을 이제는 아는 나이이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나는 잠시 여러 생각에 빠진다. 아이들에게는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 모자란 것, 어른이 되면 퇴색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 바로 순수성이다. 아이들의 눈에는 이상하지만 어른의 눈에는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세계. 모순과 부조리를 아이의 눈에 투영함으로써 그것을 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한 게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동화를 읽고 한없이 뻗어 나가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건 어쩌면 나는 이미 너무 자란 어른이 되어버려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순수함을 논하는 것일지도.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게 되면 항상 하게 되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적합하게 표현한 작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바로 그런 작품이고 말이다.

 

 

 

 

w*****8 2015.09.28. 신고 공감 18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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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세상의 꿈같은 시간. 『거울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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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마주 보고 서 있을 때 내 얼굴을 보면서 방향을 생각하곤 한다. 내가 오른손을 뻗어 만지는 얼굴을, 거울 속 나는 왼손을 뻗어 앞으로 향한다. 거울 속에서 내 손이 튀어나와 나에게 닿을 것 같지만, 내 얼굴까지 닿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은 의미 없을 것 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알아왔고, 익숙해진 앎이니까. 그저, 이렇게 마주 보고 서 있으니 반대의 개념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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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마주 보고 서 있을 때 내 얼굴을 보면서 방향을 생각하곤 한다. 내가 오른손을 뻗어 만지는 얼굴을, 거울 속 나는 왼손을 뻗어 앞으로 향한다. 거울 속에서 내 손이 튀어나와 나에게 닿을 것 같지만, 내 얼굴까지 닿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은 의미 없을 것 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알아왔고, 익숙해진 앎이니까. 그저, 이렇게 마주 보고 서 있으니 반대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구나 싶을 뿐이다. 거기서는 왼쪽, 여기서는 오른쪽. 또 다른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반대의 시선을 두고 보면 헷갈리지는 않겠지.

 

모든 것이 현실과 반대로 돌아가는 세계를 그린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일상에서 보는, 익숙하게 거울 앞에 서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거울에 비추는 나, 가끔은 반대 방향에서 대화하듯 보고 있는 쌍둥이 같은 모습에 피식 웃음도 나게 하는 엉뚱한 호기심 같은 생각들. 그게 전부였다. 뭐, 별거 있나, 매일 보던 거울인데... 그런데 거울 속에서 보는 거울 앞의 세상이 궁금했던 앨리스는 손을 뻗고 거울 속 세상으로 들어갔다. 무언가에 홀리듯 그 호기심에 손을 뻗어 거울에 닿고, 빨려 들어가듯 거울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거울 속에서 자신이 있던 공간을 봤다. 반대되는 모습들과 처음 보는 듯한 낯선 경험이 앨리스의 시선에 잡힌다. 거울 속에서 보면 모든 것이 반대방향이다. 모든 것이 저쪽 세상과 반대의 개념으로 흘러간다. 앨리스가 항상 지켜보기만 했던 모든 것의 뒤쪽에서 보이는 거다. 아,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지만 그런 흥미로움도 잠시. 거울 속 세상은 그냥 멈춰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듯 모든 게 거울 앞의 세상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앨리스가 경험한 거울 속의 세상은 상상력이 지배하는 곳 같았다. 체스판의 말이 영역 다툼을 하듯 달리고 넘어지며 가끔은 쉬고, 흰옷에 때가 묻기도 한다. 동식물들이 말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하면서 인간생활의 다른 버전을 보는 듯했다. 영역 다툼을 하듯 싸우고 경쟁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친 듯이 달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적인 모습까지 그대로 비춘다. 특히 붉은 여왕이 앨리스의 손을 잡고 쉬지도 않고 뛰는 장면에서는 눈길이 오래 머문다. 그렇게 숨이 가쁘게 달렸는데, 달려도 달려도 계속 같은 자리라고 말하는 여왕의 모습에서 서글픈 현실을 한 번 더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달렸는데도 제자리, 주변의 것들과 속도라도 맞추려면 그렇게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협박 같은 목소리, 결국 옆의 것과 맞추기 위해 그렇게 달려 제자리라도 지킨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는 듯했다.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힐 것 같은 먹이사슬의 섬뜩함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 반대로 돌아가는 듯한 그 세상도 별것 없구나. 다르면서도 똑같네.

 

앨리스는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자기와 붉은 여왕이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거라곤 붉은 여왕의 손을 잡고 달렸다는 것과 쏜살같이 빠른 붉은 여왕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려고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붉은 여왕은 "더 빨리! 더 빨리!"라고 계속 소리쳤다. 앨리스는 더 빨리 뛸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숨이 차올라 입 밖으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48~49페이지)

 

특히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묘사할 때면 집중하고 읽게 된다. 여기서 보는 거울과 거울 속에서 보는 여기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인 거다. 예를 들면 이번 주 수요일에 감옥에 있는 왕의 사자는 다음 주 수요일에 재판을 받고, 다다음주 수요일에 죄를 저지른다. 만약 다다음주에 왕의 사자가 죄를 짓지 않는다면? 이라고 붉은 여왕은 웃으며 말한다. "그럼 훨씬 좋겠지. 그렇지 않니?"’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면, 거꾸로 흐르는 시간의 계산과 법칙을 머릿속에 품고 이 소설을 이해하려 애쓰게 되는 거다. 케이크를 자르고 조각이 되면 각자의 접시에 나누어 먹는 게 아니라, 접시를 들고 있으면 이미 조각난 케이크가 놓여 있는 것. 자르기 전의 온전한 몸체가 아니라 잘린 것의 역방향으로 가면 온전한 몸체가 있게 흐르는 시간의 방향. 자칫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저 ‘다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이렇게 흐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시간이 이렇게 작용한다면? 이라는 의문을 품고 읽게 되지만 흥미로운 것 또한 사실이다.

 

거울 속 세상으로 뛰어든 앨리스를 통해 보게 하는 많은 것이 다양해서 다른 삶의 모습들을 경험하게 하고, 닮아서 비슷한 우리 삶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 뼈 있는 말들로 반대편의 세상을 흥미롭게 지켜보게 한다. 전혀 다른 세계의 모험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동식물들을 만나게 하면서 다름을 인정하게도 되는 것. 가치관의 변화가 세상 논리를 변화시킬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말장난 같은 문장의 박자가 밝고 경쾌하면서도 무게를 잃지 않는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도 더 많이 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면서, 지금과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주저하고 있다면 한 번쯤 앨리스의 꿈같은 이 모험에 동참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의 삶에서, 현실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볼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대개는 얼굴을 보면 알아볼 수 있어요."

"바로 그게 마음에 안 들어. 네 얼굴은 다른 사람하고 똑같잖아. 눈도 두 개고 또…… (엄지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면서) 가운데 코가 있고, 그 밑에 입이 있지. 다들 생김새가 똑같아. 만약 두 눈이 코 옆에 붙어 있다거나 맨 꼭대기에 입이 있다거나 하면 알아보기 쉬울 텐데."

앨리스가 반박했다.

"그럼 이상해 보일 거예요."

험프티 덤프티는 눈을 감고 말했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145페이지)

 

 

n******i 2015.09.16. 신고 공감 3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