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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우리나라의 부모들과 다르지 않은 러시아의 부모들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처음엔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직업상 본의 아니게 이 책을 1년에서 1년 반에 한 번씩 읽게 되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부분, 새로운 생각, 새로운 느낌이 든다. 아마도 그런 책을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
책은 한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대학 공부를 하는 동안 멀리 도시에 나가있던 아들. 그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3년 만에 돌아오는 것이다. 3년 만에 보는 아들에 대한 생각으로 아버지는 다소 긴장하고 흥분된 상태로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리고 드디어 아들이 도착하고 아들 곁에는 친구 바자로프가 함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배경은 19세기 중후반의 러시아이다. 유럽의 중심지들보다 늦은 산업혁명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시민 혁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전제정권에서 더없이 피해를 보고 있는 농민들과 농노들. 유럽에서부터 밀려드는 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해 차르는 농노 해방(1861)을 단행한다. 어느 나라이건 위에서부터의 개혁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래 민중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중심으로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노들은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지만 땅을 살 만한 돈도, 사지 않고 다시 빌려 좀 더 나은 생활을 꾸려나가기도 힘들다. 책은 그런 19세기 중후반의 러시아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원제는 <아버지들과 아들들>이다. 그러니 어떤 한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가 아닌, 세대와 세대 간의 충돌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다. <아버지와 아들> 속 네 주인공 파벨과 니콜라이, 아르카디와 바자로프는 둘둘씩 각각의 세대를 대표하면서도 이 네 명은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며 러시아 속 다양한 군중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가장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인물들은 파벨과 바자로프이다. 전제 국가 당시 러시아의 귀족을 대표한다. 낭만과 예절, 지켜야 하는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 등. 파벨과 반대쪽에 서 있는 바자로프는 일명 허무주의자이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 무언가 개혁이 필요하다고는 느끼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며 모두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자. 바자로프는 사실과 증명된 것이 아닌 것은 믿지 않는다.
"우리 같은 구시대 사람들은 네가 말하듯 신앙처럼 떠받드는 원칙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거든. 그런데 너희가 그 모든 것을 다 바꿔 버렸어. 그래도 너희 나름대로 잘 살겠지. 우린 그저 너희를 지켜볼 뿐이고....... "...41p
반면 니콜라이는 아버지이지만 어느 정도 개방되어 있다. 아들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생각을 쫓아가려 마음을 연다. 다만 그 간극을 줄일 수 없어 가슴아파 할 뿐이다. 아들 아르카디 또한 젊은 혈기로 바자로프의 사상에 동화되어 들떠있지만 곧 자신만의 생활과 생각으로 돌아와 가족을 아끼게 된다. 그 외에도 <아버지와 아들>에는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여성들의 인권을 지키는 선봉장에 선 듯 행동하지만 게으르고 행동하지 않는 쿠크시나나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며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오딘초바 등. 이반 투르게네프는 이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그대로의 러시아를 재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훌륭한 작품이다.
바자로프와 아르카디의 세대인 청소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두 인물에 동화되어 공감한다며 읽으면 좋으련만, 사실 이 작품을 잘~ 읽기란 쉽지 않아서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아버지들의 세대와 아들들의 세대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그래서 징검다리 클래식이 좋다. 뒷부분의 지식배경과 작품 해설을 읽다보면 이 작품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 이 <아버지와 아들>은 부모와 아이들 세대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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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고전 문학을 많이 읽어온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은 실로 처음 접한 듯 하다. 학창시절에는 비록 읽어본 적이 없지만, 이 고전을 읽으면서 한때 '아들(딸)'이었고 이제는 '아버지(어머니)'가 되어 읽게 된 것이 오히려 이 고전이 주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자식이었을 때는 부모와의 세대 차이를 느꼈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과의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좋은 작품을,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뒤늦게 읽었을 때 보통 아쉬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 작품은 지금에야 읽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계속될 주제인 '세대 차이'에 대해 정면으로 다룬 이 고전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이킨 작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현직 국어 선생님의 해설에 의하면, 사회 변혁을 꿈꾸면 혁명가들과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던 귀족들의 격돌을 떠올리게 하며 나아가 귀족 계급 출신 자유주의자와 잡계급출신 민주주의자의 대립으로까지 보여지기에 많은 소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라는 설명을 덧붙히고 있다.
세대 차이를 앞세운 작품 속 갈등의 축은 사상·계급 갈등으로까지 의미를 넓혀 나간다. (본문 346p)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키르사노프는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 돌아올 아들 아르카디를 기다리는데, 아르카디는 친구 예브게니 바실리치 바자로프와 함께 오게 된다. 아르카디는 바자로프에 대해 자연과학 계열을 전공했으며 허무주의자라고 소개한다. 니콜라이와 함께 살고 있는 형 파벨은 그런 바자로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두 사람의 격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여튼 내가 보기에, 우리 식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같은 구시대 사람들은 네가 말하듯 신앙처럼 떠받드는 원칙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거든. 그런데 너희가 그 모든 것을 다 바꿔 버렸어. 그래도 너희 나름대로 잘 살겠지. 우린 그저 너희를 지켜볼 뿐이고……. 전에는 헤겔주의자가 납시더니만 이젠 허무주의자로구나. 바닥도 없는 텅 빈 허공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본문 40,41p)
바자로프와 아르카디는 무도회에 초대를 받고 그곳에서 시골 대지주인 미망인 오딘초바를 만나게 되는데, 아르카디는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만 오딘초바는 바자로프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아르카디는 그녀의 여동생 카챠와 가까와지게 된다. 사랑의 감정을 허황된 감정이라 생각하고 오딘초바를 떠났던 바자로프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다. 결국 바자로프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답답함에 또다시 부모 곁을 떠나게 되고 니콜라이의 후처인 페니치카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를 알게된 파벨과 결투를 하다가 파벨에게 총상을 입힌 후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 장티푸스 환자의 시체 해부에 참여했다가 감염이 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는 저런 애송이들보다 우리가 더 옳다고 확신하네. 말투야 좀 구식일지 몰라도, 우린 저따위 뻔뻔스런 자만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 요즘 젊은 것들은 왜 저렇게 오만불손하지 몰라." (본문 91p)
"하지만 이 나라의 곪아 터진 종기에 대해 입으로만 떠들어 대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천박한 독단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이죠. 결국 이 나라 지성인들, 즉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이니, 무의식적 창조니, 의회 정치니 하면서 쓸데없는 일에 사로잡혀 떠들어 대고 있다는 것을 작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따위 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당장 먹어야 할 빵이 문제인데요. 조잡하기 짝이 없는 미신이 숨통을 조이고, 회사는 하나둘 무너져 가고, 농민들은 술값이 될 만한 것이면 뭐든지 끌고 나가 술집에 처박힌 채 정신이 빠질 때까지 마셔 대는, 이런 판국에 말입니다." (본문 85,86p)
<<아버지와 아들>>은 세대차이, 우정, 사랑, 부모와 자식의 애증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담아내고 있다. 1856년, 농노 해방의 바람이 불던 러시아의 농촌과 소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대간의 갈등은 2016년 지금의 갈등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요즘 애들은'이라는 단어를 들어왔고, 이제는 그 단어를 말하게 된 것처럼 세대간의 갈등은 오랜 끝나지 않는 숙제가 아닐까 싶다. 친구의 아버지를 '시대의 뒤처진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한다미로 건달이죠, 귀족입네 하는' 이라고 표현하는 허무주의자의 대명사인 바자노프는 '요즘 애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귀족주의적 삶에 빠져 있는 파벨은 구세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두 사람의 갈등이 펼쳐지는 장면은 웃픈 느낌을 준다. 더욱이 바자로프가 사랑에 빠지면서 그토록 비판했던 구시대적인 인간이 되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부모와의 세대 차이를 느끼며 비판했던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부모와 닮아가는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사상, 개념의 갈등보다는 지극히 생생한 삶의 장면을 담아낸 듯 해다. 현직 국어 선생님의 풍성한 해설이 있어 이 작품의 배경 및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인 내 아이가 읽는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오롯이 아들의 입장이 되어 작품을 이해하게 될까? 이처럼 이 고전문학은 세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영웅이 되길 자처하는 바자로프마저 시대적 모순에 속한 '광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 함부로 희망과 이상, 진보를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일까? 쉽게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버리는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투르게네프의 시선이 더없이 집요하고 섬세하게, 그래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 35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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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푸른숲주니어
오십이 넘은 나이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책을 읽으려니 살짝 쑥쓰럽기도 하지만, 그저 이과생이었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너무 허접한지라, 더 늦기 전에 읽어보는 것이 나을 듯 싶어서 용기를 내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각각 고3과 중3이라 입시에 치이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읽어온 책도 많고 지금도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은 우리 아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지난 시절 책이 없어서 못읽은 것이 아니라 책보다 다른 것에 한눈을 파느라 책 읽을 시간을 못 가진 나로서는 반성도 해본다. 이 책,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문학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19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 “사회적인 문제가 찌꺼기 없이 완전히 예술로 승화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허무주의’라는 용어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반항의 아이콘 ‘바자로프’를 낳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러시아
문학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역시 푸른숲의 징검다리 클래식은 청소년들에게 문학을 접할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로 충분하다는
생각한다. 2016.5.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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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러시아 사회의 갈등이 드러난 문제작>
정말 오랜만에 러시아 문학을 접하는 것 같다. 그것도 투르게네프의 작품 <아버지와 아들>로 말이다. 사실 학창시절에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한작품 밖에 읽지 못했기에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그의 대표작인 <아버지와 아들>을 접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원래 제목은 <아버지들과 아들들>이었단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당시의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모습이 작품속에 드러난 작품으로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적인 상황과 신구세대의 갈등이 담긴 문제작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에 나가 공부를 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들, 그 아들은 나의 뒤를 이어서 일을 하겠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나타난 아들이 이제 자신은 컸으니 자신의 인생을 가겟다. 상관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상처받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비단 19세기 러시아의 상황에서만 아니라 전 인류를 통틀어 발생하는 보편적인 일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기득권과 그렇지 않은 세대간의 갈등을 통해 사회는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진화해 가는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아들의 모습은 지금 상황에서 만나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군의관 출신 아버지 아래서 풍요롭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아들 바자로프와 그에 비해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또 한명의 아들 아르카디. 이 둘은 자라난 환경은 다를 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새로운 시대에 품는 열정과 동경은 동일한 것일지 모른다. 바자로프와 아르카디의 모습은 보면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헤세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떠오르기도 했다. 친구간에는 누군가 영향을 주는 인물과 그 영향을 받는 인물이 있다. 두 사람 가운데는 자신의 의지가 확고한 바자로프가가 강하게 느껴진다.
의학도를 꿈꾸는 바자로프는 과학적인 사실이 아닌 대부분을 다 부정한다. 또한 권위와 당연시 되던 사회적 원칙도 부정하다. 그래서 허무주의자라는 별칭도 받게 되는 인물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더 강력한 사실을 추구했던 그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얻고 버리고 그리고 사실을 확인하는 삶을 택한다. 그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그의 행보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낀다. 그에 비해 아르카디는 바자로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삶을 인정하는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면이 강하다.
당시의 사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변화하는 러시아 사회를 담아내고 그 가운데서 갈등하는 두 세대의 모습을 담아냈기에 문제작이라는 칭호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보여지듯이 아들의 세대라고 해서 모두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기성세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두 미래에 대한 열망과 동경이 있기에 조금씩이라도 변화하는 삶을 택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이라면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는 아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머물기를 갈구하는 아들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립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고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지금도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기에 같은 고민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읽게된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에서 제공하는 작품 해설과 배경 설명은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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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으로 청소년 문학작품을 접해봅니다. 표지가 주는 무거움은 있는 반면 정통 문학을 제대로 접해줄 시기가 된 청소년들에겐 제대로된 문학작품을 만날 기회가 된답니다. 고전문학을 깊있게 섭렵해볼 기회가 되었지요. 아버지와 아들은 징검거리 클래식 제 40권째책이에요. 이반 투르게네프 작품으로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문학작품을 선보이고 있답니다. 그녀의 눈빛은 거침없이 담대한가 싶다가도, 낙심한 것처럼 깊은 시름에 잠겨있었다. 한마디로, 수수께끼 같은 눈빛이었다. 그녀의 혀가 공허한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을 때도 눈빛만큼은 뭔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이처럼 표현력이 남다른 책이랍니다. 문학작품은 한가지 설명에도 이렇게 섬세한 표현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꼭 읽게 되는거 같아요.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의 현실을 알려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귀족주의, 허무주의 사상을 끌어내는가 하면 러시아의 농노 해방 전후의 사회상까지 담아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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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그 아들 친구의 시선에서 지금도 느껴지는 <<세대차이>>라는 단어를 떠오르며 슬몃 웃음도 지어보게 되구요. 주인공이 누구에게로 촛점이 맞춰졌을까 잘 감이 안오기도 했어요. 아버지와 아들이니 아르카디와 아버지의 갈등인가 싶다가도 의대생으로 자신이 농민들보다 우월하다는 믿음하에 일방적인 그들을 계몽대상자로 바라보는 아들의 친구 바자로프일까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여러 갈등요소를 복선으로 깔아놓은 투르게네프 덕분에 이책은 읽는 재미가 곳곳에 숨어 있어요. 그들의 마지막 죽음까지 알려주니 꽤나 긴 책이라도 볼 수있을지 모르겠네요. [고대에도 '요즘 애들'이 있었다.] 라는 부록편의 작품해설집은 꽤나 더 흥미롭더군요. 푸른숲의 징검다리 클래식은 이렇게 여운이 남는 책이랍니다.
농노들에 대한 지식을 선보이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아버지에게도 신 지식인임을 내세우며 바른말을 내 뱉는 아들과 친구의 말은 보수주의자들을 좀 맹렬하게 나무라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단순한 개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신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아들과 노년층의 대표주자로 나서는 아버지를 끌어내 사회모습을 자못 재미나게 세계명작을 좀더 깊이있게 그리고 좀더 섬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된거 같아요. 논술대비로 청소년들이 문학작품을 찾을때 읽어보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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