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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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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아Q정전'이 실린 책이 있어 이미 읽었었지만 자세한 해설을 읽고 싶은 마음과 루쉰의 다른 단편들도 읽고 싶은 마음으로 구입했다. 이 책은 <아Q정전>을 비롯 총 8편의 단편을 담고 있고 현직 국어선생님의 해설을 싣고 있어서 독자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루쉰의 단편들을 이해하는 데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데 당시 혁명가들에 대한 일반 민중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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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아Q정전'이 실린 책이 있어 이미 읽었었지만 자세한 해설을 읽고 싶은 마음과 루쉰의 다른 단편들도 읽고 싶은 마음으로 구입했다. 이 책은 <아Q정전>을 비롯 총 8편의 단편을 담고 있고 현직 국어선생님의 해설을 싣고 있어서 독자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루쉰의 단편들을 이해하는 데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데 당시 혁명가들에 대한 일반 민중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고서는 작품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가령 당시 일반 민중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구제도를 옹호하면서 불합리한 관습을 없애려는 혁명가들을 미친 사람 취급하며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처형이 있으면 죽은 사람의 피와 장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미신을 믿고 있어 한꺼번에 몰려들어 혁명가들의 시신의 일부를 떼어가곤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서는 <광인일기>의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생각에 왜 사로잡혀 있는지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광인일기>의 '나'는 중학교 시절 친구였던 모씨 형제 중 한 명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향 가는 길에 모씨 형제 집에 들린 '나'에게 형은 아우의 일기를 보여주며 지금은 괜찮아져 관리가 되기 위해 다른 지방에 가있다고 한다. '나'는 집으로 와 일기를 본다. 그 동생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먹으려 한다고 생각하며 괴로워 한다. 형은 이런 동생을 미치광이 취급하지만 동생은 식인하는 풍습에 대해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으면 고칠 수 있다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람들에게 말한다.


<쿵이지>는 주인공의 별명으로 글 공부를 하긴 했지만 하급시험도 합격하질 못해 생계를 꾸릴 능력조차 없는 사람이다. 글씨를 잘 써 책을 베껴 써 주고 가까스로 먹고 살았는데 그 일도 꾸준히 하질 못한다. 일을 맡겨두면 어느 날 갑자기 책, 종이, 붓, 벼루를 챙겨 도망가버리기 일쑤여서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자 쿵이지는 도둑질을 하기 시작한다. 책에 욕심을 내는 건 선비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책을 훔치는 건 도둑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둑질을 하다 잡혀 다리가 부러지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쿵이지는 격변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구시대적인 인물로 중국의 봉건주의 사상에서 깨어나지 못해 안타깝게 죽음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약>의 라오솬은 아들 샤오솬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죽은 사람의 피를 적신 찐빵을 은화를 주고 산다. 이 죽은 사람은 샤씨네 넷째 아들의 자식으로 감옥에 갇혀서도 청나라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간수에게 말하는 젊은 혁명가였다. 라오솬이 운영하는 찻집의 손님들은 이 혁명가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미쳤다고 말한다. 피를 적신 찐빵을 먹었지만 죽고만 샤오솬의 무덤을 찾은 샤오솬의 엄마 화씨 부인은 그곳에서 혁명가의 어머니를 만난다. 혁명가의 무덤 위엔 누군가 흰꽃과 붉은꽃을 둥근 원을 이루게 해놓았다. 이 혁명가의 어머니는 혁명가가 억울하게 죽은 게 원통해 이렇게 해놓았다고 여긴다.


<고향>의 '나'는 이십년 넘게 떠나있던 고향을 찾아간다. 아름다웠던 고향은 황량하게 변해 생기를 잃어버렸다. '나'를 어머니와 여덟 살배기 조카 훙얼이 맞이한다. 어머니는 룬투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어린시절 아름다운 추억 속에 자리한 룬투는 '다른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 신기한 일들을 가슴 속에 무궁무진하게 간직하고' 있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다섯 째 아들 수이성과 함께 와서 '나'를 나리라고 불렀고 그는 '키가 두 배쯤 자라 보랏빛 둥근 얼굴은 누렇게 변한 데다 주름살까지 깊게 파여' 있는 어려운 처지에 찌들어 목석처럼 변해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황량하게 변한 고향을 어머니와 조카 훙얼과 함께 떠나며 회한에 잠기는데 훙얼은 수이성이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면서 언제 되돌아오냐고 묻는다. '나'는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을 아이들은 살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 <고향>이라는 단편이 가장 좋게 느껴졌는데 어린시절 룬투의 아름다운 모습의 묘사도 좋았고 룬투의 시골생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좋았다. 비록 룬투가 커서는 세파에 찌들고 '나'와 벽을 느끼게 되지만 그 아들의 순수함 조카 아이의 순수함과 앞으로의 세상은 변해서 이들이 커서도 벽을 느끼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을 희망하는 '나'의 모습도 좋았다.


<아Q정전>의 아Q는 자신이 자오 씨네 아들보다 세 항렬이 위라고 말했다가 다음 날 자오 나리한테 얻어맞으면서 당당히 주장하지는 못하는 모습으로 자오 씨인지 불분명하다. 그리고 아꾸이라고 사람들이 부르지만 아는 阿로 정확히 알고 있지만 꾸이의 글자는 알지 못하기에 영어로 'Quei'라고 쓰고 이를 줄여 'Q'라 하기로 한다. 하여 성과 이름 본적과 과거행적이 불확실한 채로 '아Q정전'이 쓰여지게 된다. <아Q정전>은 유명하므로 내용은 생략한다.


나는 아Q에 대한 애달픈 마음과 자신의 이득을 위해 혁명이 무엇인지 잘 알려들지도 않으면서 혁명당에 들려는 모습들이 또한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해설에서 루쉰은 아Q의 모순적인 태도를 통해 강대국들에 의해 식민지가 될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중국의 정신문명이 세계 제일'이라고 믿는 중국인을 통렬히 풍자하고 있다고 한다.


<복을 비는 제사>의 '나'는 제사를 위해 고향에 와있다. 마을의 샹린댁은 고생을 해서 나이보다 더 늙어보이는 여자다. 샹린댁은 우연히 마주친 '나'에게 '선생님은 많이 배운 데다가 멀리까지 다니시니 보고 들은 것도 많으시겠죠' 하며 영혼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고는 샹린댁은 자살을 한다. 샹린댁은 이미 죽은 첫번째 남편의 어머니가 팔서 자기 의사와는 상관 없이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도 오래 가지 못하고 두 번 결혼한 부정한 여자라는 낙인만 찍힌다. 식모일을 겨우 얻지만 주인과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받고 주인댁 제사일은 부정한 탓에 도울 수가 없다. 점점 자신을 놓아버린 샹린댁은 식모일마저 할 수 없게 돼 거지가 되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자살을 한 것이다.


<여와가 하늘을 고치다>는 여와라는 신이 창조를 하는 이야기로 '당대 여러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루쉰이 평소 품고 있던 다양한 생각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노자가 관문을 떠나다> 공자가 노자를 두 번 찾아온다. 첫번째 방문 후에 노자는 기분이 좋지만 두번째 방문 후에는 기분이 좋지 않다. 제자가 물으니 이제 공자가 노자의 뜻을 알아차려 자신을 헤하려 할 것이니 떠나야 한다고 한다. 홀로 푸른 소를 타고 길을 나선 노자는 관문 관리인 관윤희한테 붙잡힌다. 관윤희는 노자를 알아보고 관문 입구로 모셔가 강연을 요청한다. 노자의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강연을 받아적지 못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강연이 끝난 후 노자에게글로 써줄 것을 부탁한다. 노자는 힘들게 공을 들여 나무판에 강의를 적어준 후 겨우 떠날 수 있게 된다. 그가 떠난 후 사람들은 그를 조롱한다.


이는 '당시 중국 사회를 유가와 도가라는 두 개의 사상과 실천 정치에 비유한 소설'이라고 한다. 

'봉건 사회의 계급적 압박과 서양 열강을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삶이 황폐해진 민중들에게는 유가와 도가 같은 사상은 억지로 참고 견뎌야 할 고통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글들이 쓰여지던 시대는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님에도 식인 풍습이 남아 있어 죽은 사람의 심장과 간을 파먹거나 피에 찐빵을 적셔 먹으며 병이 낫기를 기원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격변하는 사회에 봉건주의 사상과 불합리한 관습에 얽매여 있는 민중의 삶은 시대와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에서 오는 민중의 삶의 슬픔과 설움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꼭 관습만이 아니더라도 불합리한 일을 겪는 이웃을 외면하는 현대에도 볼 수 있는 삶의 비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o********o 2014.03.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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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 정전]-문학이라는 창날로 낡은 세계와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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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함께 마무리한 책은 바로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 루쉰의 대표적인 작품 8편을 담은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 시리즈 37번째 도서 <<아Q 정전>>이다.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할 만큼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하단다. 그런 탓인지 이 작품에는 그의 사상이 많이 드러난 듯 보였고, 결코 읽기 쉬운 내용들은 아니었다.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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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함께 마무리한 책은 바로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 루쉰의 대표적인 작품 8편을 담은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 시리즈 37번째 도서 <<아Q 정전>>이다.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할 만큼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하단다. 그런 탓인지 이 작품에는 그의 사상이 많이 드러난 듯 보였고, 결코 읽기 쉬운 내용들은 아니었다. 현직 국어 교사의 꼼꼼하고 풍부한 해설을 담은 [<<아Q 정전>> 제대로 읽기]가 아니었다면 작품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한 읽기'에 만족해야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부록이 내가 이 시리즈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아무런 생각 없이 '혁명'을 지지하는 아Q의 모습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미군을 대표하는 S소위의 비위를 맞추는 채만식 <미스터 방>의 방삼복이라는 인물과 비교하는 식의 작품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넓혀주는 설명 방식은 특히 마음에 든다.

 

<<아Q 정전>>에는 루쉰의 대표적인 작품 광인 일기, 쿵이지, 약, 고향, 아Q 정전, 복을 비는 제사, 여와가 하늘을 고치다, 노자가 관문을 떠나다 등 총 8편이 수록되어 있다. 봉건 제도의 폐해를 고발한 [광인 일기]는 피해망상류의 병을 앓고 있는 모 씨 형제의 동생의 일기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일기 속에는 옛날부터 내려온 식인의 관습을 버리고 참다운 사람이 되기위해 고쳐나가자와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는 봉건 관습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이 구습이 아이들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모름지기 사천 년간의 식인 이력을 가지게 된 나는, 처음에는 몰랐을지라도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참다운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사람 고기를 한 번도 먹은 적 없는 아이가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본문 29p)

 

격변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조롱당하는 지식인을 풍자한 [쿵이지]는 글을 잘 알지만 하급 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한 게으른 쿵이지가 봉건주의 사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혼란을 겪은 채 죽음에 이르는 인물로 등장한다. 혁명가에 대한 중국 민중의 두려움과 증오심을 나타낸 [약]은 죽은 사람의 피와 장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미신으로 아들의 폐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처형당한 혁명가의 피를 묻힌 찐빵을 구하여 먹이는 라오솬네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아들 샤오솬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광인 일기]와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였는데, 설명에 의하면 루쉰은 샤오솬의 어머니를 통해 주제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렇게 설명을 함께 들여다보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앎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루쉰의 결연한 의지와 희망을 엿볼 수 있다는 작품 [고향]은 이십 년 넘게 떠나 있던 고향을 찾아온 주인공이 어린시절 친구였던 룬투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친구였던 그를 나리라 부르는 룬투가 그릇과 접시를 몰래 숨겨 놓은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주인공은 아이들이 자신과 같지 않음을 바라는 내용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자 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도 같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만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본문 72p)

 

 

이 작품의 표제작인 [아Q 정전]은 작가가 이 작품을 어떤 형식으로 쓰여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결국 작가는 성과 이름, 본적뿐만 아니라 과거 행복도 불확실한 아Q에 대해 정전 형식으로 쓰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것으로 당시의 틀에 박힌 규범에 과감히 문제 제기를 하고 비판을 가하는 행동이었다고 한다. 아Q는 그만의 독특한 정신적인 승리법으로 스스로 노예임을 인정하지 않다가 돈, 여자를 갖고자 가짜 양놈을 찾아가 굽신거리는 노예근성을 보여주었는데, 아Q는 낡은 세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민중의 자화상을 그린 인물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루쉰은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어 가는 아Q와 같은 인물이 이십 년 뒤에도 다시 나타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아Q를 죽이는 무심한 눈빛도 여전히 존재할 거라고 여겼다(본문 215,217p)고 하는데, 작가는 이렇듯 작품을 통해 현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이외에도 [복을 비는 제사]에서는 유교 중심 사회의 폭압에 희생당한 가련한 여성 샹린댁의 삶을 통해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지식인의 나약함을 비판했으며, 인류를 창조한 여와 신화의 이야기를 본떠 만든 [여와가 하늘을 고치다]를 통해 현실을 꼬집었고, [노자가 관문을 떠나다]를 통해 봉건 사회의 계급적 압박과 서양 열강을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삶이 황폐해진 민중들에게는 유가와 도가 같은 사상은 억지로 참고 견뎌야 할 고통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본문 232p).

 

 

<<아Q 정전>>은 서울대학교에서 선정한 '꼭 읽어야 할' 인문 고전 중 하나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접하는 것은 부끄럽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는데, 부록을 통해 설명이 아니었다면 작가 루쉰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세상의 부조리에 맞선 비판이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루쉰의 가정 환경이나 작품을 쓰게 된 배경, 중국의 시대적 상황 등을 수록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는데, 이는 고전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고전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 줄 듯 싶다. 서양의 고전에 익숙했던 터라 중국의 고전은 다소 생소한 느낌이었으나, 다양한 작품을 읽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13년의 마지막을 함께 한 작품으로 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읽고나니 표지 삽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다. 표지는 루쉰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우월주의와 노예근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이중성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아Q 정전' 본문에서 발췌)



s*****2 2014.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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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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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는 극우 편향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지만 중국에서도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루쉰의 작품이 새 교과서에서 빠진 사실을 두고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루쉰은 중국 사회에 대한 예리한 성찰을 한 작가로 유명하지만 교과서에서 삭제한 이유는 100년전의 문어체와 구어체가 뒤섞여 학생들에게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사를 접하고 루쉰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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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는 극우 편향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지만 중국에서도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루쉰의 작품이 새 교과서에서 빠진 사실을 두고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루쉰은 중국 사회에 대한 예리한 성찰을 한 작가로 유명하지만 교과서에서 삭제한 이유는 100년전의 문어체와 구어체가 뒤섞여 학생들에게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사를 접하고 루쉰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정말 어려운 줄 알고 아큐정전을 쉽게 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푸른숲주니어에서 펴낸 ‘아Q정전’은 표지에서부터 뭔가 메시지를 담은 듯한 느낌을 주어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문장자체가 어렵지 않아 루쉰이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일시에 날려주었다.

이름마저도 자세히 알 수 없어 ‘Q'라는 익명을 넣고 , 위인전도 평전도 전기도 아닌 정전이라니...점점 아큐라는 인물에 대해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의 캐릭터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고 아큐의 최후도 허무하기 짝이 없어 책장을 덮고도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아큐는 도대체 출신은 어디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도 없었는데다가 무슨 일을 당해도 늘 자기 식대로 합리화도 잘한다. 실컷 두들겨 맞고도 술 한잔에 그냥 기분이 풀리는 단순한 캐릭터기도 했다가 어쩌면 뭔가 비밀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을 들게도 하는 다소 엉뚱한 캐릭터였다.

그러면서도 아큐는 자기의 잘못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과부나 여승에게 수작을 걸어놓고도 도무지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서 뻔뻔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하루 날품을 팔면서 살아가는 아큐는 술한잔을 마시면 그저 행복하고 어쩌다 속없이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싸움질도 해가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커녕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해석하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는 모습에서 어이가 없기도 했고 아 저렇게 살 수도 있는구나 싶기도 했다. 남들의 눈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논리도 없고 합리화할 명분도 전혀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실컷 두들겨 맞았을 때도 자신을 팬 사람들이 더 바보라는 결론을 내릴 정도이니 어쩌면 복잡한 내면을 가진 우리보다 오히려 속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루쉰이 중국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 모조리 드러낸 작품인데 근대화와 혁명이라는 역사의 큰 물줄기속에서 어리석은 인간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가를 한번쯤 생각하게 했다.

정말 별다른 이유없이 사형대로 끌려가는 아큐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자에게는 덤비지 못하면서 약자에게는 강해 보이고자 한 모습은 비겁함 그 이상도 아니었다.

루쉰의 의도가 어떠하든간에 나는 아큐의 모습에서 비겁하면서도 자기 합리화에만 능숙한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j*****6 2014.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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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세계에 머문 이 시대의 아Q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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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세계에 머문 이 시대의 아Q들에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고전이 너무도 많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하고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외적인 요인은 알아도 실체를 대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번 책에서도 느끼게 되었다. 루쉰의 <아Q정전>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얼마전 루쉰의 다른 작품을 읽었기에 그의 작품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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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세계에 머문 이 시대의 아Q들에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고전이 너무도 많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하고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외적인 요인은 알아도 실체를 대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번 책에서도 느끼게 되었다. 루쉰의 <아Q정전>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얼마전 루쉰의 다른 작품을 읽었기에 그의 작품 경향에 대해서 엿보기는 했지만 이번 책에서는 해설을 통해서 훨씬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아서 고마웠다.

 

배경지식 없이 작품을 읽었다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앞섰을 것 같다. 사람을 잡아먹는 <광인일기>나 신화적인 요소가 있는 <여와가 하늘을 고치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궁금했던 <아Q정전> 등 솔직히 중국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써는 생소한 면이 적지 않았다. 물론 비슷한 면도 있겠지만 가장 다른 것은 역시 국민의 성향?과 가치관 같은 것의 차이때문이기도 하다.

 

<아Q정전>에서 정전은 바르게 쓴 전기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아Q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아Q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상한 알파벳꼬리를 이름에 달고 있을까?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듯해서 이름도 기억되지 않는 인물이지만  어찌보면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물이 되기도 하기에 그에 대한 정전을 쓰지 않고는 안되었음을 짐작하게도 한다.

 

다른 작품을 제외하고라도 <아Q정전>의 아Q만으로도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보잘 것 없는 인물임에도 거들먹거리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강자에게는 굽신거리는  인물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하찮게 지내면서도 자신의 정신세계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묘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아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 아Q. 루쉰은 그런 아Q를 통해서 당시 중국인들의 모습을 대변하고자 했다고 한다. 서구 열강의 침략 속에서 겉은 서양의 것을 따라가고 당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중국이 세계최고라고 생각하는 중화사상 , 그러한 모순된 중국인들의 모습이 아Q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아Q외에 이를 대하는 마을사람들의 태도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겉으로 보잘 것 없다고 업신여기던 아Q가 마을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나리에게 따귀를 맞았기 때문에 아Q마저 존경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또한 마지막 사형대에 오른 아Q를 향해 행사를 구경 온 듯한 사람들의 차갑고 냉정한 시선, 그 시선으로 죽기 직전의 아Q를 또 한번 죽이는 묘한 집단적 군중심리.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동반되는 것이 훨씬 작품이해에 도움을 줄 듯하다. 당시 중국은 신해혁명을 치르는 시기였다. 황제 중심의 전제주의 국가에서 혁명을 통해 국가를 세우는 시기, 모든 나라는 혁명의 물결로 들뜨고 이에 동조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로 양분되지만 그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거의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혁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엇이 바뀌는지에 대한 기본 지식도 관심도 없이 우르르 휩쓸리는 때였다. 루쉰은 그런 무지한 대중을 깨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아니다..설마 내가?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자신의 사회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게 득이 되는지의 여부만 따지고 주변에서 말하는대로 그대로 휩쓸려가고 그것만이 진실인 듯 생각하는 아Q와 같은 인물이 지금 이 시대에는 없을까?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해설을 통해 당시 중국의 상황은 물론 국민개몽과 낡은 시대 사상에 맞섰던 작가의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작가로서 루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도 조금이나마 알겠다. 루쉰의 이런 사상에 영향을 받은 당시 우리나라의 작가들에 대한 설명도 있기에 그들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생긴다.

 

단순히 작품만 실어놓은 것이 아니라 현직 국어교사들이 작품의 해설과 더불어 작품 이해에 필요한 적지 않은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해주고 중고생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만족감을 줄 책이다. 개인적으로 하드커버가 아니라 손에 쥐기 편한 사이즈라서 가방 속에 넣고다니면서 지하철 안에서 부담없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를 통해서 그동안 못보고 지나친 고전에 대한 관심도 생겨난 듯하다.



c******u 2014.01.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Q정전] 혁명의 시작
"[아Q정전] 혁명의 시작" 내용보기
고등학생이라면 읽어야할 고전 중 하나인 아Q정전. 아Q정전의 작가 루쉰(노신)은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 사회를 신랄하게 묘사하고 비판하였다. 현실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그런 현실에서 그치지 않고 미래의 긍정적인 변화와 그 이상의 동경을 표현하였다. 루쉰의 작가 의식은 정말 멋있는 것 같다. 루쉰의 '현재의 우리들의 문학 운동에 대하여' 라는 기록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고
"[아Q정전] 혁명의 시작" 내용보기

 고등학생이라면 읽어야할 고전 중 하나인 아Q정전. 아Q정전의 작가 루쉰(노신)은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 사회를 신랄하게 묘사하고 비판하였다. 현실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그런 현실에서 그치지 않고 미래의 긍정적인 변화와 그 이상의 동경을 표현하였다. 루쉰의 작가 의식은 정말 멋있는 것 같다. 루쉰의 '현재의 우리들의 문학 운동에 대하여' 라는 기록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 작가란 그 어떤 인물을 그리든, 그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자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에 '민족혁명 전쟁'이란 꼬리를 달고 그것을 기치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있는 것은, 작품 뒤에 붙인 슬로건이 아니라, 그 작품 속에 깃들여 있는 진실한 생활, 눈부신 투쟁, 약동하는 맥박, 사상과 정열이기 때문이다 "

 

 문학을 도구로서 사용하지 않은 모습은 정말 멋있는 것 같다. 루쉰의 여러 작품 중 제일 유명하고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예리하게 모습을 그려낸 아Q정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루쉰은 정확한 이름도 없는 농민 아큐를 통해서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큐는 신해혁명이라는 사회가 변화되는 시기에서도 자기기만에 빠진채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만 채우고자 한다. 작가는 아마도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이며 반식민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중화주의라는 자국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중국의 전국민을 비판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을 보면 아큐는 도둑으로 몰려 총살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웨이주앙 사람들은 옛방식대로 참수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너무 싱겁다며 불만을 가졌다. 이 모습을 보면 여기서의 개인은 사회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 따라 자신도 함께 변화하기 보다는 자신의 인식은 변화되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작가는 아큐를 주인공으로 하여 중국 민족의 최대 약점인 정신 승리법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아큐에게서 나타나는 부정확한 현실 인식, 자기 기만, 강자와 약자 앞에서의 태도 차이, 노예 근성을 일컫는 아큐 정신을 통해 이 것은 아큐라는 어떤 한 개인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민족 모두의 모습인 이 아큐정신을 비판 하고자 한 것이다.

 

 중국의 시대상 뿐만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관계까지 깊숙하게 파고들면서 신랄하게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한 루쉰. 즉 개인이 바뀌지 않고서는 사회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큐를 통해 내세우면서 혁명을 자처한 것이다.

 

 자신은 문학을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 다고 했지만 이런 루쉰의 문학을 보고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인식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변화를 늘 슬로건으로 내세우지만 그런 변화는 늘 겉모습을 치장하기에만 바쁜 것 뿐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아큐처럼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채 비극적인 결말만 낳게 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4 2014.01.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