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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삶은 사진 그 자체였을까. 무명으로 죽어 유명해진 예술가는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에 소외된 채 인정받지 못하고 죽었고, 죽은 후에야 가치가 높아졌지만, 아마도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 건 아니었을 거다. 자신이 포착한 세계가 예술로서 인정받지 못할 때에 아마도 많은 작가들이 절망하지 않았을까. 욕망은 때로 예술가의 연료일 수도 있으므로. 대부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이어의 삶은 철저한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보모와 간호보조 등으로 일하면서 은밀하게 자신만의 시간동안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은 순간적 진실들을 그녀는 대부분 인화조차 하지 않았다. 집 없이 떠돌이처럼 남의 집에서 일하며 먹고 사는 처지에 놓인 자신에게, 필름 상자들은 짐 덩어리였다. 결국 보관할 곳이 없어 창고를 임대해 보관하던 중, 사고로 골절상을 당하고, 사진에 대해서는 여전히 세상에 침묵한 채 죽고 말았으니, 그 창고 속의 필름들을 수집해서 행운을 잡은 사람들의 운명은 또 무언가. 세상 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그녀의 작업 하나 하나를 모아놓은 필름 한 상자를 부동산 업자 존 말루프가 경매로 손애 넣었을 때의 가격은 400달러 였다고 하니, 행과 불행의 아이러니는 어쩔까. 책은 그녀의 인생과, 작품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남긴 것이 그저 인화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네거 필름인 것처럼, 책은 그녀가 포착한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포착한 세계 속에 넣었다. 자신의 모습은 거리 곳곳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모퉁이마다 그림자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고, 햇빛 건너 상점 창유리에도,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어느 차창 속에도, 때로 익숙하게 때로 낯선 모습으로, 친구처럼 타인처럼, 내가 바라보는 세계 속에 떠나지 않고 있다. 평생 많은 점의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가 생각난다. 부자로 태어난 그는 거지로 죽었다. 그 조금씩 변화하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면서 순간처럼 지나쳤을 한 사람의 고단한 생이 보인다. 예술가로서의 자기 철학을 버리지 않았기에 조금씩 명예와 돈과 세상이 중요시하는 가치들을 잃어, 초라한 모습이 되어가는 그, 그것을 다시 그림에 담아내고, 후대에 다시 영원히 남을 명작들로 가치매겨진.. 혼자만의 세계에서 그 누구와도 사진에 대해서만큼은 타협하지도 않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삶 자체인 사진을 세상이 매기는 가치로 환산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김영갑 갤러리를 찾는데, 그가 더이상 굶지 않아도 될 때에 죽음 직전에서얻은 저주적 병이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던 자연 그대로의 제주도가 거센 상업화와 관광화의 길로 내몰려 중국인들의 소유지들로 채워지는 모습들을 보면 그의 비극적 죽음과 닮은 것 같아 씁쓸하다. 그의 작품들을 처음 발굴하고, 사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flicker를 통해 지속적으로 알려온 존 말루프가 직접 편집해서 엮은 사진집이다. 큐레이터 작가 앨리자베스 아벤돈의 서너페이지 쪽의 서문 말고는 다른 텍스트 없이 모두 사진이다. 1956년경의 흑백 사진부터1970년대 말까지의 약간의 컬러 사진까지 여러 장소에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들의 모음이다. 흑백 사진이 주는 차분한 대조와 거울과 그림자 속에 투영된 마이어의 모습들이 잔상처럼 머물다 흩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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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한 영화를 통해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그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화가 나오게 되기까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이 앞섰다. 그렇게 호기심을 그저 묵혀둔 채 평소 자주 듣는 라디오 영화 소개 코너에서 대략의 줄거리를 듣고 있으니, 문득 201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되어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영화가 떠올려졌다. 과거에 묻혀 있던 한 인물이 불렀던 노래를 통해 그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표면으로만 존재하던 이름에 인물의 역사와 감정이 덧붙여지는 과정을 거치자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작은 감동을 자아냈다. 평범한 누군가의 삶이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맞춰져 그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만으로도 일반 대중에게 익숙하게 알았지만 잊혀진 스타처럼 느껴지는 그 느낌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올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 영화가 국내에 개봉한지 4개월이 조금 지난 지금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게 오간다.
원조 셀피로 불리며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던 사진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한 청년에게 발견되어 그녀의 삶이 건져지듯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기까지 극적인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녀의 필름을 처음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존 말루프는 원래 시카고에 관한 역사 책을 쓰고 있었다. 지나간 역사를 알기 위해 오래된 사진을 찾아다니던 그는 한 경매장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을 발견하게 되고, 경매에 낙찰되어 필름을 훑어보지만 자신이 쓰려는 책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한동안 그 자료들을 박스에
담아 창고에 넣어두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필름들이 이대로 묵혀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에 그는 혼자서
스캐닝 작업에 들어갔고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전시를 기획하게 된다. 전시회가 생각
이외의 호응을 얻게 되자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작까지 이어지고, 그 이후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된다. 현재 그의 목표는 비비안 마이어를 역사 책에 넣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 기존 미술협회에서 그녀의 사진들이 가진 가치를 인정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길거리 사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사진은 전문가의 평가를 넘어 대중의 지지를 얻어 책과 영화를 통해
그가 지닌 힘을 증명해가고 있다.
비비안 마이어가 찍은 사진 중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 셀카를 중심으로 엮어낸 이번 책에서는 그녀가
살았던 도시의 거리 모습과 그곳에 사는 이들의 일상에 비친 작가의 모습을 통해 20세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정사각형 프레임 안 어디에서든 그녀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어딘가 걸쳐져 있는 그림자, 거울이나 유리 같은 상점 쇼윈도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찾는 것도 작은 유머를 선사한다. 짧은 커트머리에 큰 키, 다부진 표정에서 다소 남성적인 느낌이 드는
비비안의 모습은 그녀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드러내는 것도 같다. 자신을 찍은 사진 속에서도 표정은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무표정한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엿볼 수 없다. 보여주려는 의도가 없어서일까, 그녀의 모습은 일상 곳곳에서 포착된다. 요즘은 여러 소셜 앱을 통해서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과 머문 장소를 생중계하듯 올릴 수 있어서인지 언젠가부터 사진 안에는 감성보다도 자랑거리가 담긴 경우가 흔하다. 지금은 너무 많은 사진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어 정말 괜찮고, 좋은
사진을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없이 그저 취미생활로 50년 동안 15만
장 이상의 사진을 찍은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런 물음에서 시작한 영화가 바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이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영화도 찾아보길 추천한다.
프레임 안에는 그녀가 가진 사진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약간의 유머, 그들을 이해하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 사진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평생을 보모나 가정부로 살아간 그녀이기에 거리의 사람들 중에서도 ‘비극’을 품은 사회의 낮은 이들에게 더 많은 프레임이
할애된다. 내 가족의 추억이나 개인적 기억이 담겨있는 장면보다도 이름 모르는 무수한 삶을 끊임없이 포착한
그녀의 사진을 보면 ‘참여자’보다는 ‘관찰자’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빛이나 구도, 인물을 담아내는 타이밍 같은 사진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비비안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좋은 사진이라는 생각과 누군가의 예술적인 시각을 빌려 볼 수 있는 순간이 감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우리가 비비안 마이어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사진들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의도나 생각은 영원히 묻혀 알 수 없고, 그녀 삶의 빈 공간은 나의 상상과 추측으로 마음껏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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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안 마이어 ] 책 제목이자 그녀의 샐프 포트라이트의 사진집 이기도 하다 , 미국 1950년대를 배경 으로 한 흑백 사진의 묘미가 참으로 낯설게 다가욌다. 기록으로는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라고 되어 있지만 당시 로는 드물게 항상 카메라를 지니면서 길거리 사진을 찍어나 자신을 배경으로 한 사진 또한 빼 놓지 않고 있다라는 점에서 유독 그녀의 작가 정신이 돋 보이기도 하다.
하기사 요즘 같은 인터넷 , 휴대폰 셀카가 보편 화된 세상에서는 , 셀카봉리라는 전대 미문의 ? 마술 작대기를 가지고서 친구들과 혹은 나 자신이 스스로를 아무 장소와 시간에 구속 받지 않고 , 유트브나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당시로는 흑백 인화 필름이나 인화조차도 귀한 시절이었을 터이니 , 그녀가 평생 찍어 남겼던 약 총 50만장의 사진 중에서 15만장정도의 네거티브 필름이 있다라는 사실 또한 놀라웁다. 1926년생이던 그녀의 운명은 2009 년에 운명 하기 까지 오직 일상의 사진 활영에만 신경써온 덕분에 기록이 되었고 , 셀프 포트라이트의 원조가 되었다....
지금부터 약 50여년전의 세월은 흑백 무성 영화의 시기를 거쳐서 유성 영화 흑백 필름에서 1070년대 들어서 컬러 필름이 보급 되는 시기 여서 그런지 몰라서 , 사진집의 군데 군데 날짜가 표기된 시점을 추척 하자면 1970년대는 대부분 흑백과 컬러 필름이 공존 하면서 영상을 만들어 욋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사진집을 보노라면 , 당시의 거리 풍경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 보는 작품도 있었고 , 매 장 마다 그녀의 간접적인 피사체가 느껴 지는 것은 어쩌면 , 자신 만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 었을가 ....
세월이 그렇게 지나서도 세상에 잘 밝혀지지 않은 것 또한 그녀만이 가지고 있었던 내성적인 성향과 , 기록 위주로의 자료 보관에 철저한 습관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아물든 , 여려가지 많고핞은 예술 작품들이나 사진집들을 종종 볼 기회가 있지만 , 이런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 하고 , 남에게 언젠가는 알려지게 되는 , 작품속에 자신의 모습이나 그림자등의 흔적을 남겨 놓는 것은 어쩌면 , 자신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사람들로 부터 영원히 기억 되기를 원하는 작가의 간절한 염원은 아니 였을까 ....
현대 세계에서는 이젠 사진 은 ? 생활속의 한 부분이 되었고 일상이다. 필픔이 아까워서 20장 컬러 카메라를 장수를 세어가며 또한 친구들과 포즈를 취해 가면서 추억의 사진을 찍어 보았던 40-50 세대들의 혹은 그이상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하나의 사치품 이기도 한 기계이다.
비비안 마이어 가 많이 애용 하고 사용 하였던 사진기는 6 x 6 cm 크기의 인화지를 출혁 하는 롤라이 롤렉스라는 타입의 카메라라고 한다. 이 기계 또한 그녀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영면 하고 있음을 한편으로 회상이 된다.
미국 , 그리고 시카고라는 도시와 뉴욕의 여러 곳 , 당시로도 패션 이나 유행 , 사람들의 팬시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 도시의 1950 년대의 계절은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동족 상잔의 비극이 벌어지는 전쟁통인 것이다.
1950 년대를 관통해서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로 이어 지는 그녀의 사진 기법은 조금씩이나마 사물의 위치를 바꾸는 것에서 피사체와 햇살을 받는 조영의 차이 ,그리고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감안한 사진 찍기에는 어쩌면 그동안의 전문가 적인 스킬도 성장 하였으리라고 보여 진다.
마지막으로 그리 길지 않은 사진만의 내용으로 된 책자 이지만 , 그 속에 담아 내었던 당시 도시의 사람들과 거리들 , 가게들 , 아이들과 그림자 햇살 들에서 정적이지만 시간을 거슬로간 타임머신 여행을 가진 듯한 느낌 이었다...
60여년전 과거의 기억들을 사진 만큼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 하며 그리고 그녀를 추모하며 글을 마칩니다. .< 책력거99 >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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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처음 보았을 때 포트레이트가 과연 뭐지? 했지요. 찾아보니 초상이나 인물사진을 말하더군요. 그리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포트레이트로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기는 작업들을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볍게 생각하는 포트레이트는 작업실에서 예쁘게 사진을 찍으면 쉽게 예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껍니다. 얼마 전에도 비비안 마이어 책을 보면서도 특별하게 눈에 가는 사진은 역시 그녀의 모습이 담긴 셀프 포트레이트가 제일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나름 사진을 찍어볼 때 비비안 마이어가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를 따라 해보고자 맘을 먹었지만 그녀처럼 멋스럽게 사진이 나오지 않더군요. 사진을 찍을 때 생각하게 됩니다. 그녀처럼 멋스러운 사진을 한번 찍어 보기위해 그녀처럼 연습을 해보는 나의 모습을 보게되니깐요. 책에서 소개된 그녀의 무심한 듯 찍은 그리고 뚫어지게 날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작품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림자 하나의 표현에서도 나를 표현할 줄 알고 그 속에 비친 작은 표면에 나의 표면상이 비춰지게 효과를 볼 때 지금처럼 한 번에 여러 장 찍어 예쁘게 찍힌 사진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한번으로 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그녀의 능력은 보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녀가 찍은 사진은 50년 동안 15만장 이상의 사진이라고 하니 얼마나 수많은 사진을 찍은 걸까요? 궁금증에 나눠봤어요. 1년 동안 3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으며 하루에 적어도 8장 이상을 찍었습니다. 보통 요즘은 하루에 사진 몇 백 장을 찍기도 합니다. 그냥 대충 찍어도 디지털카메라로 필요 없는 사진을 쉽게 메모리에서 지워 버리면 되고 맘에 안틀면 다시 찍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필름카메라로 쉬지 않고 틈만 난다면 그녀는 사진을 찍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그것이 열정이었고 사랑 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생을 마감하였고 그리고 몇 년 뒤에 그녀의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에 그녀가 그냥 이렇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주변의 이야기로 그녀의 삶을 기록을 남기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비친 그녀는 무표정이지만 그 속에 열정이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하나하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그녀의 셀프 포레이트는 감탄을 하게 됩니다. 창문의 유리창에서도 거울 속에서도 그림자 속에서도 그녀의 모습이 녹아있음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이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진 속에서 무언의 대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 봅니다. 가끔 나의 모습을 기록할 때 멋스럽게도 가능하지만 비비안 마이어처럼 조금은 시크하고 그 속에 나의 숨은 표정을 보면서 그 속의 느낌에 빠져 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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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윌북에서 출간한 「Vivian Maier, 나는 카메라다」를 통해 비비안 마이어와 그녀의 사진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사진 중 거울, 반사경, 상점 유리창 앞에서 반사된 빛 때문에 얼굴이 선명하지 않은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들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었다. 50년 동안 15만 장의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거의 인화하지 않은 신비한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그녀의 삶과 마음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녀의 셀프 포트레이트일 것이다. 윌북에서 그녀의 셀프 포트레이트만을 묶어 앨범 느낌의 책을 내 놓았다.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게 된 나에게는 너무나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 그녀가 정사각형 프레임으로 구도를 잡을 수 있는 롤라이플렉스를 언제나 들고 다녔음을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사하는 사람의 손에 들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p. 71)에는 유머와 호기심이 담겨있다. 마이어는 평소에 좀처럼 웃지 않았다는데, 사진으로 웃음을 표현한 것일까? 수많은 그림자 자화상(pp. 6, 34, 37~44, 60. 62~65, 84~85, 88~95, 105, 115)은 그녀를 더욱 신비롭게 한다. 셀프 포트레이트는 작가가 자신과 자기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대변한다는데, 그녀는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빛과 그림자로 생각한 것일까? 존재하지 않은 듯 존재하는 그 무엇! 그녀는 우울하고 냉담하며 동시에 직설적이고 성마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마이어는 좀처럼 다른 사람과 사진을 찍지 않았다. 가끔 사진 속에 아이들이 등장할 뿐이다. 이렇게 독립적인 사람이 찍은 자화상은 강력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 마이어의 사진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대한 애착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전문사진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자신을 알아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마이어는 그저 세상과 자신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은 것 같다. 그녀에게 사진 찍는 일은 인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며, 세상과 공감하는 행위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에는 향수를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특별해져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홀로 찍은 사진에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 책 맨 마지막 사진(p. 118)을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편집자 존 말루프가 이 사진을 마이어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분류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그녀의 그림자조차 없지만 세상과 자신을 빛과 그림자로 묘사한 마이어라는 무명의 사진작가를 독자에게 충분히 각인시켜주는 사진인 것이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존재 한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나는 비비안 마이어다. 나는 카메라다’라고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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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포스를 풍기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여기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무뚝뚝하고 뚱한 표정의 키가 크고 짧은 머리의 여자가 화면의 위쪽이나 자신의 사진기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에는 거울이나 유리창 등이 많이 등장하면서 그곳에 비친 자신을 찍어낸다. 유리창 안쪽의 모습과 자신이 비친 모습이 겹치면서 특별하고 인상적인 화면 구성을 만들어낸다. 거울이나 유리창은 서로를 비추고 비춰내면서 몇 겹의 잔상을 한 화면에 모두 담아낸다. 그 순간과 공간이 갖는 깊이가 남다른 포스를 풍긴다.
나도 한때는 사진기를 들고 이것저것 많이 찍어볼 때가 있었다. 요새 제법 많이 갖고 다니는 DSLR 카메라 같이 거창한 건 아니었다. 단지 중고로 산 흔한 디카였다. 그래도 사진을 찍는 재미에 흠뻑 빠져 이런저런 사진들을 많이 찍어댔다. 나중에 사진을 더 찍고 싶어서 미러리스급 사진기를 사기도 했지만,,, 결국 무거워서 자주 갖고 다니지는 못했다. 그때 휴대하기 편한 디카의 가벼움을 깨달았고 다시 가벼운 디카를 샀지만,,, 요샌 휴대폰 사진의 화소도 높아지고 바로 꺼내서 찍기에는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더 높았다.
어쨌든 그 당시에 사진을 찍으면서 셀카보다는 내 그림자를 더 많이 찍었다. 그래서 비비안 마이어가 자신의 그림자를 많이 찍은 것을 보고 반가움이 일었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그림자를 찍는 것일까? 그림자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하늘에 태양이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이질적이고 불안정한 존재처럼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로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매일 깨닫게 해주는 존재가 아닌가.
비비안 마이어처럼 나도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친 모습, 사진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많이 찍었다. 거울이나 유리창이 만들어내는 형상의 겹침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모습은 뭔가에, 아니 그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그 모습이 좋았다.
디카와 DSLR 카메라가 대중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특기나 직업 외에도 취미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스마트폰의 화질이 좋아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간편하게 그 순간의 미학에 빠져드는 것 같다. 이제 거울을 보는 것보다 셀카를 찍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고 느낄 정도다.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분위기 좋은 곳이나 음식 사진을 올리기 위해 더 열심히 찍고 있다. 이렇게 가볍고 자기 만족의 사진을 찍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사진 한 장 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는 작품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작가 중 한 명인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그 시간의 찰나를 잡아 채는데 천재적인 작가였다. 취미로 찍는 사진이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한 자기만의 철학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 찍는 취미와 프로 작가의 경계점에 서 있었던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들을 지금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녀는 자기 만족을 위해 몇 천 장의 사진을 찍어 댔다. 그 사진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모두 인화해 놓은 것도 아니었을 정도로 사진 찍는 것 자체를 즐겼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에는 자신의 내면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무심하고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시선,,,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단호한 의지,,, 하지만 한 편으로는 삶의 고단함과 허무함이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을 찍으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평생 사진 찍는 것을 혼자만 즐긴 비비안 마이어. 그래도 자기 만족이었던 사진으로나마 세상에 무언가 흔적을 남긴 그녀를 보면서 나도 다시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사진의 화면 구성을 더 공부해 보고 싶어졌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느낌을 나만의 방식으로 잡아내고 싶다,,, 여운이 남는 사진이다.
* 네이버 책좋사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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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해도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때마다 찍어대는 셀프포트레이트. 일명 셀피. 우리나라는 십년도 더 전 캠의 보급일 때부터 셀카족이 급증했던 것 같다. 얼짱각도까지 생겨나고 예쁘게 나오는 법칙도 있어서 하나같이 똑같은 포즈,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넘쳐났던 때가 있다. 나 역시 정말 많은 셀카, 비슷한 셀카를 많이 찍었고 내 홈페이지에 올리곤 했다. 셀카를 예술의 하나라고 생각한 적은 없고 내 모습을 남기고 싶은 의도보다 예쁘게 나온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예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픈 마음 말이다. 심지어 포토샵을 이용해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들어 내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보니 이제 인터넷상에 왜이리 쌍둥이들이 많은지. 이런것들도 다 남의 눈에 좋아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비비안 마이어는 달랐다. 그 많은 셀피를 찍었음에도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혼자 간직했다니. 성곡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비비안마이어의 사진들. 비비안마이어 셀프포트레이트 책을 통해서 보게 되었는데 흔하게 찍던 셀카를 이렇게 예술적으로 담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따. 누군가는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누군가는 남에게 보이고 싶어서 찍는 사진. 비비안마이어는 사진을 찍는 자체를 즐겼던 것일까?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 누구와 함께 찍지도 않고 늘 혼자만의 거울이나 그림자를 통해 자신을 남긴 비비안마이어. 비밀스런 생애와 함께 그 수많은 사진의 의미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 길이 없다. 책머리나 저마다의 평론가들이 추측하는 바들도 있지만 비비안마이어는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속에 들어가고싶지 않았을까 한다. 그 무표정에서 아무에게도 억지로 맞추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치길 원하지만 그만큼 고독하진 않았을까. 비비안마이어가 생전에 물 위에서 사진활동을 했더라면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예술은 예술가의 생애, 비밀스런 스토리에 한층 더 높은 예술로 떠오르는 것 같다. 예술가의 생애 자체가 예술이라고 할까. 한장한장 넘길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셀프포트레이트. 비비안마이어의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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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처음 소개했던 책인 <나는 카메라다>를 읽고 그녀의 사진과 삶에 무척 관심이 가서 사진전에도 혼자서 다녀왔었다. 인화도 되지 않은 상태로 필름에 담겨진 수만장의 사진들은, 수수께끼같은 궁금증만 가지게 되는 우리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디서 어떻게 사진수업을 받았는지 조차 알수 없는 그녀였지만, 그녀가 담은 수만장의 사진은 구도도, 담겨진 자연스러운 모습들도,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너무나 대단한 가치를 지난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특이한 또 하나..그녀가 60년 후를 내다보기나 한 듯이 찍어놓은 셀프포트레이트들은 우리를 정말 놀라게 한다.
그 누구도 그녀가 사진을 찍는 사람인줄 몰랐었다. 하지만 그녀는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다. 보모일을 하면서 자신이 번 돈을 전부 투자해서 필름을 사고 사진관련자료들을 모으고 그걸 모아놓기 위해서 창고를 대여해야 했던 그녀는 결국 돈이 없어 자신의 사진들마져 지키지 못한채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진들을, 평생 오직 카메라가 낙이였고 전부였던 그녀가, 말년에 돈이 없어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사진들을 빼앗길때의 그 심정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 책에는 셀프포트레이트들만 담겨있다. 전에 읽었던 책에서나 사진전에서도 볼수 없었던, 정말 많은 셀프포트레이트들이 들어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지어진다. 어찌 이런 구도로 여기서 이렇게 찍을 생각을 했을까.. 기발한 그녀의 생각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서 내게 미소를 안겨준다. 하지만 늘 무표정한 그녀의 모습이 마음을 딱딱하게 만든다. 왜 단 한번도 웃지 않았을까...왜 좀 다른 포즈는 취할수 없었을까... 그래도 그녀의 이런 셀프포트레이트 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더욱 오리무중의 궁금증으로 우리들에게 남겨졌을 것이다.
그녀 자신이 담은 그녀의 사진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거 같다. "내가 궁금해요? 난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나를 남겨둘 방법을 고안해 낸거죠.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으니까요..그런데 그시대에도 셀프사진를 찍나요? 그분들도 나처럼 찍어줄 사람이 없는 건가요? 그사람들도 외로운가요?" 이렇게 말을 전하는거 같다. 자신의 사진 한장 담아줄 사람도 없이 카메라와 살다가 간 그녀...그녀의 셀카는 외로움을 표현하는 그녀만의 방식이었고,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간절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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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고급 사진첩을 연상시키는 표지와 제본이 '갖고싶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 매혹적인 사진들이 다시한번 소유욕을 자극하는 책이다. 이토록 창의적이고 고혹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사진에 남긴 그녀,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일까? 1926년 뉴욕에서 출생해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친구인 사진가 잔느 베르트랑의 집에서 성장했다고 알려진 비비안 마이어는 1949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 이후 50년 동안 무려 15만장의 사진을 찍었다. 놀라운 점은 이 사진들 중 일부 흑백사진만을 인화했을 뿐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수께끼같은 그녀의 삶과 사진들에 답이라도 하듯이 자기 자신의 흔적은 많은 사진 속에 남겨두었다. 이 책은 비비안 마이어와 그녀의 사진에 대한 짧은 글이 실려있긴 하지만, 그녀의 사진 중 특별히 그녀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들만을 모아놓은 사진집이다. 대상을 가장 잘 찍는 방법은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자기 자신만큼 자신을 잘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한 가장 잘 알고있는 대상이니 말이다. 화가의 자화상을 통해 화가의 자아을 읽어내듯이 사진집을 넘기며 그녀를 읽어내려 해본다. 무엇때문에 비밀스럽게 사진활동을 계속했을까? 보여주기 위해 찍는 일반적인 사진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찍은듯한 사진은 얼마나 다를까? 오직 찍는다는 행위만이 소중했던 것일까? 이런저런 궁금증은 사진을 넘기면서 조금씩 가라앉고 그저 경탄과 차분함만이 남는걸 느꼈다. 때론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기만 한 시선과 마주치게 되고, 때론 여러 도구를 이용해 배경 속에 자신을 담아내는 독창성에 놀라게 되고, 때론 그림자찾기 놀이처럼 즐겁기도 했다. 엿보거나 흘끔거리는 느낌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태도에서 꼿꼿함과 비타협적인 성격이 보이는 듯 했다. 다양한 시도가 포함된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자신 속에 공존하는 다양한 모습을 사진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재로 비비안 마이어는 여러개의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슬쩍 자신의 그림자를 끼워넣어 당시의 생활상이나 계절, 자연을 표현하고자 했던 모습도 찾을 수 있었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찍는 사진과는 너무나도 다른 시작점을 지녔던 그녀의 사진들, 그 결과물 역시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의 사진에서만 읽어낼 수 있는 탁월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멋진 사진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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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가 참 유행이다. 요새의 셀피는 어디가서 무엇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자랑이라는 개념도 크지만 본인의 모습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비비안 마이어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평생동안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었다. 셀카라고 하면 즐겁지만 아무도 찍어주지 않는 사진,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데 자랑하고 싶어하는 느낌이 담긴 자아가 충만한 사람들많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녀의 셀프 포트레이트는 아, 셀카가 이렇게도 많은 의미를 지닐 수 있구나 하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평생동안 찍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필름을 이사를 할 때 마다 거대한 산처럼 옮겨다녔다고 한다. 그녀가 전업 사진 작가로서가 아니라 보모로서 평생을 살아갔고, 보모로 생활을 해나가면서 작가로서 그 사진들을 인화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안정적인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말년에는 거의 노숙자에 가깝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필름들을 꼭 가지고 자신의 인생이라 여기며 지니고 있었다고 하니, 생활의 불우함과는 달리 그녀의 예술혼은 쉬이 꺼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사고로 죽었고 그 이후에야 필름들이 세상에 공개된다.
그녀의 셀피들은 참으로 독특했다. 지금 보기에도 너무나 '스타일리쉬'한 예술성이 넘치는 사진들이라고나 할까. 그림자로서 등장하기도 하고, 신체부위의 일부만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키가 크고 균형이 잘 잡힌 그녀의 몸은 여성의 몸이라고 보기에도 남성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그림자로서 사진을 찍을 때 (특히 중절모와 함께) 중성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사진에 의외성을 더한다. 그녀 자체가 모델이었고, 뮤즈였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녀의 그림자는 사진에서 독특한 자아를 뿜어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치게 하거나 그림자로 비치게 하는 모습 등 '오늘'을 살아가는 셀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따라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그런 예술성있고 역동적인 사진들이다. ^^ 한참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 보고 싶고, 영화로도 그녀의 삶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한번쯤 가서 관람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