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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기본, "아이들은 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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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값등록금' 반대다! 말을 끝까지 하자면, 반값이 다 뭔가. 등록금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혹은 기업이 원하는 사람, 즉 그들에게 잘 복무할 수 있는 사람을 생산하는 공장(?)이 현재의 대학일진대, 등록금이 웬 말인가 말이다.등록금을 내기는커녕,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쥐어줘야한다!니들이 원하는 사람을 만들고 있는데, 왜 니들은 무임승차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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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값등록금' 반대다! 

말을 끝까지 하자면,
반값이 다 뭔가. 
등록금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혹은 기업이 원하는 사람, 즉 그들에게 잘 복무할 수 있는 사람을 생산하는 공장(?)이 현재의 대학일진대, 등록금이 웬 말인가 말이다.

등록금을 내기는커녕,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쥐어줘야한다!
니들이 원하는 사람을 만들고 있는데, 왜 니들은 무임승차하려고 하니?

나쁜 국가와 기업의 등쌀에 악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이들이, 슬프다...
우리는, 국가와 기업에 요구해야 한다. 
등록금이 다 뭐냐, 학자금을 달라! 

교육의 기본… “아이들은 다 다르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 전성은


“학교교육은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 소질, 관심에 따른 다양한 교육을 해야 한다. 국가는 그렇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것이 국가의 도리다. 그러자고 국가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p.141)


그러나 알다시피, 지금-여기엔 국가가 없다. 국가의 책무, 국가의 도리, 국가의 존재 이유 따윈, 과감히 ‘극뽁’한다. 대신, 기업이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학교교육? 기업국가에게 필요한 건, 사육이다. CEO의 명령에 충실히 복무할.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 소질, 관심은 안중에 없다. 국가가 아니니까. 국가를 빙자한 기업이니까.


제대 이튿날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던 스물 두 살의 대학생이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기 보수작업 중 숨졌다. 그래, 요즘 이슈인 대학등록금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친다. 등록금에 목을 매야 하는 현실. 그 현실이 나는, 모순이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대학(교육)은, 국가나 기업이 써먹을 직업군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 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야하는가.


“21세기 들어와서도 학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직업군의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p.48)


‘반값 등록금’이 아니다. 국가나 기업은, ‘직업교육 훈련비’를 주면서, 그들을 대학에 다니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은 뒷짐 지고, 포퓰리즘(전경련 회장) 운운하는데, 비겁하다. 치졸하다. 그네들의 자제들? 뭐 묻을까 두려운지, 재벌닷컴에 의하면, 재벌 집안 자녀의 40%가 외국 대학을 나오고, 특히 재벌가 20대의 87%가 외국 대학행이다.


등록금 걱정 없는 고관대작의 자제들은 직업훈련 따위 받지 않는다. ‘외쿡’물 먹고, 한국 대학에서 양성된 직업군을 거느린다. 이건, 외피만 민주공화국이지, 왕조 체제다. 그러면서 인재? 거짓부렁이다. 속지마라. 절대 ‘인재(人才)’ 되지 마라. ‘인재(人災)’ 당한다. 한국의 지금 학교는, 아래의 이런 곳일 혐의가 짙다.


“부족(혹은 씨족)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학교가 고대국가로 넘어오면서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 군 지휘관, 고급 관료, 왕조를 지탱하는 종교의 사제를 길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그때부터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배계급을 번성하게 만들고, 학교는 이 지배계급을 유지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p.54)


학교가 불행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것이 지금 이 정권만의 만행은 아니다. 자본(기업)이 날뛰면서 국가가 점차 소멸한 탓이다. 영악한 자본의 술책. 결국 국가는 기업을 선언하고야마는 삽질을 한 지금. 국가는 제도를 잘 만들고 운영하면 될 것을, 그리 못했다. 덕분에 학교(교육)은 수렁에 빠졌다. 평화, 정의, 자유, 공존을 모토로 해야 할 교육의 심장이 멈췄다.


그러니, 이런 예. 지금의 홍익대는 교육의 장이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홍익대 경영진 혹은 재단(기업)은 뒤끝 작렬 지질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집단해고에 반발해 점거농성을 했던 청소노동자들에게, 2억8천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작태. 청소노동자들이 일 하게 해달라고, 그래도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 할 때는 용역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뒷짐 지더니. ‘돈 버는 법’ 혹은 ‘돈 앞에 무릎 꿇는 법’이나 가르치면서 등록금을 내라는 게 말이 되나. 기업이 원하는 역군이 되어가는 그들에게 훈련비를 제공할 일이다. 분노하라!


진짜 학교교육, 아 어떻게 하나, 우리 만나면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이 나섰다. 거창고?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는 제1계명부터 시작하는, ‘직업선택의 십계’로 많이 들어봤음직한 학교다. 전 교장은 1965년부터 거창고 교사로 재직하면서 41년간 교직에 있었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기관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전 교장의 이 말. “한 인간이 국가를 위해 태어났는가, 아니면 국가가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하고 정직한 대답 없이 학교교육을 논할 수 없다.”(p.48) 목적과 본질을 잃고 헤매는 학교교육에 대한 직설, 『왜 학교는 불행한가』(전성은 지음/메디치 펴냄)가 내건 핵심이다. 



지난 6월2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왜 학교는 불행한가』의 저자 전성은 교장와 독자들의 만남이 있었다. 학교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교육은 어떡해야 하는가, 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전 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 이 글을 다 읽고, 다시 생각해보자.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이고,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국가 지배 권력이 교육을 강제한 이유


소설가 이명행의 서평이 우선 낭독됐다. 그 서평을 요약해보자.


책의 제목은 ‘왜 학교는 불행한가’이다. 학생이 불행한 이유를 알면서도 낯설었다. 이 책은 국가 지배 권력이 교육을 강제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일반인에게도 조금 더 큰 틀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잘못된 근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하다. 국가의 융성함이 나의 발전의 근원인가? 나의 발전이 국가의 융성함의 기초인가? 국민교육헌장이 이해되지 않는다. 국가를 이루는 개체들이 잘 돼야 국가가 잘 되는 것 아닌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왜 국민교육헌장은 말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두 번째 질문이 정답이다.


학생들 모두를 경쟁으로 내몬 체제가 지금 더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양한 교육 현안은 각 교육 주체 간 힘겨루기 문제이지, 효율의 문제요, 돈의 문제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139페이지에 나온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정권에 기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희망이 있다. 이 책의 생각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면 역사는 바뀔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날은 올 것이다.


“개개인의 생긴 모양, 신체적 특성, 종족, 목소리, 언어, 성격, 예술적 감각, 정신적 태도, 습관 등 뭐가 달라도 다르다. 바로 이 다른 점이 그 사람만이 갖는 가치다. 학교교육은 이처럼 각각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교육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교가 있어야 한다. 종류도 다양해야 하고, 학제도 다양해야 하고, 교육 방식도 다양해야 하고, 교육과정도 다양해야 한다.”(p.139)


아이들, 다 다르다


전성은 교장의 분명한 교육관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다 다른데 획일적인 평가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교육의 진짜 목적이 아니다. 즉, 그에게 ‘각기 다름’은 학교교육의 출발점이었다.


만 22세, 열혈남아 전성은이 교단에 처음 섰다. 아버지(전영창 교장선생님), 홍종만 교감선생님, 원경선 이사장님으로부터 공통적으로 들었던 것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런 놈, 저런 놈 있는 거야.” 그 말을 유난히 많이 하셨단다.  


“아이들은 다 다르다, 는 가르침을, ‘아하 그렇구나’하는 걸, 그 분들이 돌아가실 때 즈음에서야 알았다. 인간은 정말 다 다르다. 도덕, 가치관, 현재 모습도 다르다. 그 다른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부부도 오래 살면서 다른 것을 받아들인다. 하물며 아이들과 함께 있는 학교에선,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다르다. 허나, 많은 사람들은 잘못 말한다. 틀리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도, 잘못된 언어 사용을 한다. 뜻이 통하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때론 이것이 우리의 현 상황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환경. 틀리다고 말함으로써, 옳음이 있음을 상정한다. 옳거나 틀리다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은 경쟁을 내면화하고, 서열을 매긴다. ‘틀리다’라는 흔한 잘못된 언어 사용은, 어쩌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의 결과인 것은 아닐까?


국가도, 학교도 인간을 위해 있는 것


전성은 교장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종교도 인간을 위해 있는 건데, 국가도, 학교도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무엇을 위해 있는가 생각해 보라. 제도, 가치, 체계를 위해 인간이 태어나는 건 아니다.”


그는 교육혁신위원장 시절의 이야기를 잠시 꺼낸다. 당시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교육 운동을 전개하는 교육계 후배들, 학교교육을 걱정하는 학부모들 등을 종종 만났다. 헌데, 조금씩 서로를 알면서 멀어졌다. 제도의 문제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달랐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교육부), 학교, 평가기구가 평등한 관계를 가져야 평등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제도의 문제였다.


“학교교육이 내걸었던 교육의 목적, 즉 인재 양성은 정의, 자유, 공존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가진 인간을 길러낸다는 의미에서 ‘평화 추구’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통치 계급이나 식민통치국가를 위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뜻이 아니었다.”(p.75)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보다는 지엽적인 문제로 싸움을 했다. “예를 들어, 나이스(NEIS)는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울 문제는 아니었다. 교육부가 이런 싸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면 제도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의구심을 가졌다.”


교육혁신위원장을 하면서 그런 의구심이 맞다, 는 확신을 가졌다. 학교-행정-평가의 삼각구도가 서로를 견제하고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제도다. 그런데, 문제는 평가기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교육부가 이를 맡음으로써,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다는 문제였다.


“독립적인 민간 평가기구가 있어서 교육부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학교도, 교육기관도 마찬가지다. 교장도, 선생도 평가를 받아서 결과를 놓고 개선점 등을 토론해야 한다. 교육선진국은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 삼각구도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학생들이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제도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삼각형 구조란 학교 행정 평가가 각각 독립하면서 서로 돕는 구조를 말한다. 국가는 학교에 대해 평가권을 가지고 통제한다. 지시한 다음 지시한 대로 실행했나를 평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당근과 채찍을 쓰는 정책으로 학교를 통제한다. 이 평가는 민간 평가 전문기구에 넘긴다. 그리고 상과 벌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조언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pp.156~157)


전 교장이 책을 쓰고 싶은, 책을 써야했던 이유였다. 제도의 문제. 모든 문제에 학교교육이 만병통치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중요한 것은 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운영하는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할 것. 전 교장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랬다. 바보야, 문제는 제도야. 학교는 행복해져야 한다. 지금 직업교육 훈련소로 기능하고 있는 대학은 등록금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뭣보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을 소외하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다. 극뽁!


“학교는 사회의 상식에 순응하여 그 사회의 기준에 맞춰 성공하는 개인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p.100)


학교교육을 묻고 답하다



아이들 모두 다르다는 말씀, 구구절절 맞는 것 같다.


책에선, 재능, 소질, 관심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그것들은 다름의 극히 일부다. 모든 인간은 삶의 기쁨과 신비를 느끼는 게 다 다르다. 사람은 나만 느끼는 신비, 그걸 추구할 권리가 있고 추구하게 돼 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세 가지를 해줘야 한다는 걸 말한 거다. 인간의 다름은, 책에서 다 말하지 못했다.


“학교교육에 있어 아이들은 각자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것을 ‘섬김의 교육’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주는 일이 학교교육이 학생을 섬기는 방법이라는 말이다.”(p.66)


대학생이다. 제도가 문제라는데 공감이 간다. 그렇다면 학교 내부의 장애물은 뭐가 있을까?


학교를 지배하는, 명령하고 결정하는 권력구조의 최상부는 교육부나 교육청이다. 학교는 거의 결정권이 없다. 그런 구조에서 사립은 이사회, 공립은 교육청이 있다. 학교에는 교장, 교사회, 학생회장, 반장 등이 있는데, 역시 같은 구조다.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는 따라야 하는. 수직적 권력구조가 관료화 돼 있다. 학생은 그런 구조에서 맨 아래다. 그러니 아이들은 안팎으로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구조다.


학교가 불행하다는 말은 선생, 학생 모두 다 불행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와 관계가 있다. 모든 인간이 삶의 기쁨을 느끼고 맛보는 것은 자유와 역시 관계가 있다. 수직적 사회에서는 자유가 제한되고, 자기만이 원하는 기쁨과 신비를 누리려다가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어떠한 다름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법적 대우를 받고 존엄성을 침해받지 않을 자유에 대해, 학교교육은 수호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p.120)


삶의 기쁨과 신비를 느끼려면 모험도 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학교는 안전만 추구하려는 것 같다. 대다수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으려면 어떡하면 좋을까?


제도적으로 보면, 학교는 결정권이 없다. 학교 내부도 권력 체계가 있고, 사고가 나면 책임을 지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말단이다. 생각해봐라. 우리나라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 봤나? 명령에 의한 수직적 체계에서 말썽이 생기면 위는 안전하고 잘리는 것은 아래다. 원인은 학교 관련법에 있다. 책임을 학교로 돌려선 안 된다. 학교와 관련된 권력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아래로부터는 할 수 있는 건, 꿈을 갖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면 된다.
 



중학교 교사다. 40여년을 교직에 있으면서 좋은 교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 후배 교사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오랜 경험에 의하면, 우리는 저항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문제는 저항해서도 안 되는 게 있는데, 그게 교육과 종교라고 생각한다. 직접 싸울 것이 있고, 직접 싸워선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우선, 가치관의 문제부터. 교사로서는 직접 싸우는 것으로는 효과가 약하다. 간접 싸움이 중요하다.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교장도 나쁜 교장이 있고, 좋은 교장이 있다. 괜찮은 교장 밑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교장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런데 못된 교장 밑에서는 안 그런다. 권력구조 속에서의 싸움은 간접싸움이 낫다. 이게 내 생각이다.


정치가들이 썩었으면 교육가도 다 썩었다. 어느 특정 집단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교육사를 보면, 조용히 싸운 사람들에 의해 교육이 사부작사부작 개선됐던 것 같다. 요란하게 교육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에 의해 교육이 따스해지고 깨우친 것은 아니다. 고민하면서 교직 생활하면 좋은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대안학교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 심성을 바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이들 심성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대개 독재자들이 심성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이 인격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학교교육을 못 믿고,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착각이 될 수 있다. 내 생각은 그렇다.


“학교교육은 어떤 의도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할 수는 있으나,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일은 하지 못한다.”(p.100)


지금과 같은 제도권 교육이라면, 홈스쿨링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도덕적으로 높다거나 낮은 건 아니다. 학교는 나쁘고, 홈스쿨링은 좋다? 이런 것도 위험하다. 나는 홈스쿨링을 찬성도 반대도 않는다. 시골에도 홈스쿨링을 한다는 경우가 있는데, 본 받을만하다, 잘 하고 있다는 데를 아직 못 봤다. 최소한 내 경우엔 그렇다. 그러니 그냥 학교를 보내라.


지금, 교사나 학부모, 학생의 역할은 어떠하면 좋을까?


지금과 같은 권력구조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싸운다. 권력이 한 쪽으로 치우쳐서 발생한 문제다.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데, 힘을 지향해서 그렇다. 이것이다, 라는 방법은 없으나, 방법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사들은 갈수록 고민을 많이 하는데, (교육 현장을) 떠나지만 말고 계속 고민하고 만나다 보면 개선의 여지가 나온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프로그래밍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도 변화의 바람은 분다. 그걸 믿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인류 평화다. 지배와 억압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일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정의다. 불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반역사적인 불의다.”(p.80)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j******2 2011.08.07.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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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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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정말 공 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마다의 타고난 소질이 다르고,  각자의  성격이 다름에도 학교 교육은 다름을 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거 내 학창시절과 외적으로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사고의 틀은 그대로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좋아하는 분야가 따로 있음에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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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정말 공 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마다의 타고난 소질이 다르고,  각자의  성격이 다름에도 학교 교육은 다름을 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거 내 학창시절과 외적으로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사고의 틀은 그대로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좋아하는 분야가 따로 있음에도 모든 아이들은  경쟁 속에서  등수만을 위해   점수를 올리기 위한 암기식 공부만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자신있게  다른 길을  가지 못하는  나의 결정이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테두리 안에서 그저 머물러 있을 뿐,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다. 

 

    자는 시간도 부족한 아이들,  학교에서는  등수로  평가되는 아이들,  그저 공부 잘하고 못하고가 가장 우선시 되는 현실에서  늘  아이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아침이면  학교에 가기 위해  아이를 깨우고,  늦은 밤까지  시험공부나 수행평가,  과제물을 준비하는 아이를 보지만 쉽게 하지말고 그냥 자라는 소리를 할 용기는 없다.  아니라는 생각은 아이들을 보면서 늘 가슴으로, 머리로  떠도는데  현실과 타협하며 그렇게  매일이 지나가고 있다.  언제쯤 달라질까 생각해보지만, 아직은 그럴 조심이 보이질 않는다.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인 '정성은' 선생님이  저자이신  [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읽으면서  너무도 공감하는 마음이었다.  그동안 안타깝게 생각해왔던 많은 학교 교육의 문제,  교육 정책에 대한  고민들이  책 전체에 담겨 있다.  거기에  과거 거창고등학교 재임 시절의 여러가지 교육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던 부분들도 포함되어  있어,  조금 더  전문적인 교육의 현실에 대해  알아갈 수 있기도 했다.  특히 교육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느낀  내용 중에  '이미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절대화하고 있었다. 다른 의견은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최근에  지역에서 열리는 토론 수업으로 교육 문제에 대한 토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우선 강사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필란드의 성공적인 교육 사례에 대해  배우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등수가 없는 학교,  아이들이 잘하는 분야를 밀어주는 학교,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보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금을 투자해   모두가  함께 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교육 정책,  그리고 결국은  그 모든 결과가  오히려  더 높게 평가되고 있는  다양한  결과물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분위기,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배우게 되었다.  얼마나  부럽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모두 4부에 걸쳐서 학교란 무언인가, 를 시작으로  학교 교육의 목적,  교육 제도, 교사나 학생의 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학교의 탄생과정과 교육 정책 등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되어야 하며, 아이들은 다루어질 대상이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학생은 아동이고, 아동은 인간이다. 아직 어린 나이의 인간이다. 어른이 되기 전 단계에 있는 인간이다. 이 아이들은 학교교육이 섬겨야 할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  (  본문 p 51 )

 
YES마니아 : 골드 n***r 2011.06.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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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본분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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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란 무엇인가? 무슨일을 해왔고 또 하고 있나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하나   학교는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왔는가? 한 아프리카 부족에서 부족과 싸움이 일어났을때 마을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 삼한 시대에 소년들을 훈련 시켰던 성인식이라고 부르는 부족 사회의 이러한 일들이 학교의 기원 후대 화랑제도는 잘 알려진 일종의 사관학교 원광법사가 지었다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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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란 무엇인가?

무슨일을 해왔고 또 하고 있나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하나  

학교는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왔는가?

한 아프리카 부족에서 부족과 싸움이 일어났을때 마을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

삼한 시대에 소년들을 훈련 시켰던 성인식이라고 부르는 부족 사회의 이러한 일들이 학교의 기원

후대 화랑제도는 잘 알려진 일종의 사관학교

원광법사가 지었다는 화랑교육의 다섯가지 기본 이념인 세속오계

화랑은 귀족의 아들만을 모아 훈련시킨 교육 철저한 고위 관료 양성 교육

이집트와 중국,인도에서도 비슷한 교육제도가 이미 고대국가시대에 있었고 흔히 스파르트식 교육이라는 것도 훈련 종목들을 보면 창던지기,활쏘기 말타기 ,레슬링,권투 등 모두 군사훈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4천년 전 고대 이집트이 파라오 라고 불리는 왕은 태양신의 아들

파라오는 죽으면 다시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태양신 "라"를 섬기는 종교가 있었고  이 종교를 운영하기 위한 사제가 있었다

왕의 치적을 기록하는 사람도  왕을 자문하는 고급 관료와 세금을 걷기 위해 글을 쓸 줄 알고 셈을 할 수 잇는 세무 공무원도 있었다 이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했고 이교육은 왕이 독점했고  왕이 설립하여 왕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이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학교교육의 시작은 이러한 이유로 국립으로 시작하였다

고대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립학교가 학교 교육의 기원이었다

일본인이 이공계와 의대를 나중에 세운 이유는 조선을 통치하는데 부려먹을 조선인 법조인은 필요했으나 이공계의 기술은 나누고 싶지 않았기에 각도에 공업고등학교를 세워 공장에서 부려먹을 하급 기술자만 양성했다

서울대학교의 전신은 경성제국대학

일본이 조선의 성균관을 대신해 세운 대학

이 대학은 누구를 위해 세운 대학인가

일본이 식민통치 수단의 하나로 경성대학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명부닝야 조선사회의 문명 수준 향상 이었으나 그것은 겉치레에 불과 서울대의 기원은 진리 탐구가 아니고 조선 통치를 위한 보조수단 경성대학의 법과 대학출신들이 일본 총독부와 법원의 관료가 되어 한 일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일이었지 친일파를 잡아들여 감옥에 보내는 일을 했던 게 아니었다

학교는 철저히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

학교의 역사를 보면 대학이 제일 먼저 생겼고 초등학교는 맨 마지막에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아래 19세기말에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소크라테스 예수,중국의 공자 같은 분들의 경우 그분들이 제자들을 모아 가르친 일도 교육이기는 하나 학교 교육은 아니었다 공자나 부처, 예수와 소크라테스 같은 분들이 제자들을 모아 가르친 사립교육은 국립교육에 대한 저항으로 역사가 나아갈 방향 진리를 찾는 순례로써 시작되었다

그분들 교육의 특징은 통치 계급을 위해 필요한 인재의 양성이 아니었고 어지러운 세상을 평안케 하는 길 곹 진리 탐구가 교육의 목적이었다 사립학교는 그 기원과 성격을 볼 때 그분들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다

로버트 오웬이라는 스코틀랜드의 한 방직공장 지배인이 1800년경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모아 밤에 글을 가르쳤고 가난한 아이들이 자라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사회악이 된다고 믿고 그들에세 생활환경을 개선해 주고 글을 가르치게 되며 빈곤과 사회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산능률이 오른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일이 알려지자 아이들의 행복보다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간단한 읽기,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일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초등교육의 시작이 된다

영국에서 초등학교가 생겨나자 프러시아에서도 뒤질세라 모든 아이들에게 초등교육을 시키는 이른바 초등 교육의무제도실시 경제적으로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독일에서도 당시 모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 초등교육이 역사 속에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명치유신이후 서구 문명을 따라잡기 우해 온 힘을 기울이면서 초,중등교육 시작

아이들을 사랑해서 무지로부터 해방시켜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려는 배려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일본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동경제국대학을 키우는 일 그다음이 전국적으로 공업기술고등학교를 세워 기술자를 길러내는 일

학교는 필요와 목적 운영에 있어 그 출발부터 철저하게 통치 집단에 의한, 통치 집단을 위한, 통치 집단의 기관이었을 분 아이들을 위한 기관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신교육이 시작된 배경은 더 비극적이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망할때까지 이땅에 태어난 아이들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라고 교육기관을 만들어 교육을 한 적이 없었다 조선시대 때 지방마다 향교라는 학교가 있었으나 그나마도 양반의 아들만 다닐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공맹의 도라고 해서 위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쳐 왕조와 귀족과 양반의 사회를 위한, 철저한 남존여비의 가부장제 사회를 위한 교육을 했을 뿐

충과 효라는 이름으로 지배계급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만 가르쳤다

조선을 끝장내고 이땅을 차지한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의 일본 식민지화를 목적으로 조선의 향교를 대신해 서구의 학교 교육제도 이식

그렇게 해 생겨난 것이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중학교 {5년제로서 지금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해당} 그리고 서울대학의 전신인 경성대학이었다

우리나라의 어느 군을 가든 제일 오래된 고등학교는 농업고등학교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군의 군청 공무원 대부분이 농고출신이었던것도 일제 학교교육 정책의 결과

군과 읍에 있는 인문고등학교는 대부분 한국전쟁이후에 생겨났다

조금 더 똑똑한 아이들을 위해서 각 도에 상업고등학교를 하나씩 세웠고 일제강점기 때 상고를 나오면 복식부기를 할 수 있어 큰 회사나 은행의 직원이 될 수 있었다

현대의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햇는가 박정희 정권 때 경상남도 구미 만자공업고등학교가 마산에는 여자실업고등학교가 세워졌고 경상남도 교육청이 도내 중학교에 지시하여 상위 5%이네에 드는 남학생과 여학생들을 보내도록 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다 그 학교에 보내진 아이들을 위해서 한 일은 분명 아니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학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직업군의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는 늦었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해야 할 시점에 도달

한 인간이 국가를 위해 태어나는가 ? 

국가가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존재해야하는가?

이문제에 대한 분명하고 정직한 대답없이 학교 교육을 논할 수 없다

전자든 후자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분명히 하고서야 교육학이 성립될 수 있다

 

인간은 역사 속의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는 인간관 위에 학교 교육이 행해져야 한다

학생은 아동이고 아동은 인간이다

아직 어린 나이의 인간이다

어른이 되기 전 단계에 있는 인간이다 이 아이을은 학교 교육이 섬겨야 할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국가보다 종교보다 그 어떤 가치 체계보다도 소중한 가치 초월적 존재다

신도 섬긴 존재다

이러한 교육적 인간관 위에 학교교육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의 십계

 

 

이달의 사락 k*****6 2014.02.05.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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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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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우연히 전성은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보게 된 "왜 학교는 불행한가"는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오랜 고민과 40여년간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사실 교육 문제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빠지지 않고 대두되지만, 지협적인 해결책만 내놓은 채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늘상 거리가 있어왔다. 이 책은 현재 학교 교육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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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우연히 전성은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보게 된 "왜 학교는 불행한가"는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오랜 고민과 40여년간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사실 교육 문제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빠지지 않고 대두되지만, 지협적인 해결책만 내놓은 채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늘상 거리가 있어왔다. 이 책은 현재 학교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짚어보고 앞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문제를 인식하기 위해선 먼저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학교가 어떤 정치 제도, 경제 제도하에서 생겨났으며,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살펴보면 지금의 학교가 어떤 역사적 토대위에 세워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근현대까지 학교교육의 존재 이유는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양성에 있었다.

이것은 제국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근본적으로 교육의 목적은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화를 위한 학교교육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의 학교교육 정책과 각 학교의 운영 원리, 마지막으로 교사로서의 책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교육을 일신의 성공과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국가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목적으로 이용해왔다. 그것에 젖어 별다른 비판의식없이 오랜 세월 내면화해왔었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 교육의 방향이 어디로 나야가야 할 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계속적으로 제기 되어왔던 교육 문제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었던 것은 기본적인 교육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지에 대한 제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나에게 가장 큰 울림으로 와닿았던 것은, 교사가 검은 것을 희다고 가르치거나, 흰 것을 검다고 가르치지 않기위해선 끊임없이 정치, 경제, 사회,문화, 종교를 보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이것은 교사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학부모도 또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때라야만 그 자녀을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문제가 더 강렬하게 부각되어 나에게 인식되어진 것은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 학부모 할 것없이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우리의 씨앗인 아이들이 커서 만드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어른인 우리가 옳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l*********e 2012.01.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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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학교의 한줄기 희망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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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은 불행한가” 이 물음은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며 내가 나에게 묻던 질문이다. 커피를 다섯 잔이나 마셨는데도 잠을 이길 수 없을 때, 신나게 놀러가는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서러워 울면서 집에 오던 길에서, 나는 생각했다. 학생은 불행해야만 하는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행복은 숫자에 불과한 성적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이 이 책에 있었다.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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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은 불행한가이 물음은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며 내가 나에게 묻던 질문이다. 커피를 다섯 잔이나 마셨는데도 잠을 이길 수 없을 때, 신나게 놀러가는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서러워 울면서 집에 오던 길에서, 나는 생각했다. 학생은 불행해야만 하는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행복은 숫자에 불과한 성적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이 이 책에 있었다. 학창시절 숨이 막힐 정도의 답답함을 느끼게 했던 것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200페이지 정도 밖에 되는 않는 얇은 책에는 막힌 마음을 뚫어주는 시원한 내용도 있고,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를 깨닫게 하는 내용도 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감탄이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주입되어지는 지식을 받아들이고 모범이라는 틀에 맞추어 개성은 누르고 평범을 좇아야 했다. 이런 시절을 거친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며 배신감을 느꼈다. 저자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는 학교의 실체를 마주하며 학창시절 내 전부였던 존재에 대한 허무함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현대문화까지도 이어져온 우리 대 그들의 구조, 지배하는 우리와 교육이라는 형태로 통제 당하는 그들의 양분화된 구조에서 깨닫지도 못한 채 감시,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학교란, 필요와 목적, 운영에 있어 그 출발부터 철저히 지배계급의 통치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곳일 뿐, 아이들을 위한 참된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역사 속 여러 형태의 학교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20세기에 들어 법률적 평등이 이루어져 학교교육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원시 부족 공동체 사회의 기능으로 돌아간 듯 보였지만 결국에는 학력에 따라 직업군이 생기며 새로운 계급을 형성했다. 이는 단지, 신분에 따른 카스트 이데올로기에서 능력 이데올로기로 대치가 되었을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제도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의 의미추구와 외부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상대적으로 돈을 잘 버는 소위 우월한 직업을 가진 새로운 상류사회가 잘난 사람은 돈을 많이 번다는 Taken-for-granted, 즉 문화적 당연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인재양성이라는 학교교육을 통해 정당화 하며 새 계급 형성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 것이다.

 

저자가 꼬집은 학교교육 이념의 문제점에 깊이 동감한다. 저자는 현재 학교교육의 이념을 인재 양성론과 도덕교육론을 들며 이 두 가지 모두 허상뿐이라고 주장한다. 통치계급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과 통치집단을 위한 질서를 절대가치의 도덕으로 가르치는 현재의 교육은 일제강점기 시절 정의, 자유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노래하지 못하도록 교훈과 교가를 정직, 성실, 근면, 극기, 정숙 등으로 낭만화하여 우리나라의 영혼을 빼앗는 것과 같은 것이고 이런 교육은 히틀러유겐트와 가미가재 특공대를 낳은 교육과 같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중.고등학교의 두발 자유화 문제가 떠올랐다. 학생이었던 시절, 학생들이 염색, 파마를 하는 것이 어째서 학업성적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머리를 기른다는 것이 학생에게 있어 얼마나 나쁜 일이기에 선생님은 가위로 머리를 자르거나 벌점을 부여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서 까지 규제를 하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이 문제의 답이 책에 있었다. 두발 규제에 있어 사실상 파마, 염색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배하는 계층에게 있어선 자신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어기는 것은 통제 매커니즘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소한 부분에서의 통제라도 무너지면, 결국은 현재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통제와 감시가 붕괴되어 기득권을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지막 장의 교사의 길 학생의 길에서 나는 왜 내가 교사가 되려 하지 않았는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부모님을 어려서부터 교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 만남이 오늘날과 같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학생에게 사상과 신앙을 주입해서는 안되고, 편애하면 안되고, 끊임없이 전문성을 길러야 하는 참된 교사의 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다. 그저 가르치고 평가하는 교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고 장차 이 나라의 미래가 될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조력자의 역할이 나에게는 너무 무거운 일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올바른 교사가 나아갈 길에 대해 꼼꼼하게 일러주고 있다. 사랑과 희생으로 학생을 평등하게 대하며 자율을 주어 그들이 주체성을 갖게 한다. 또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교사로서의 책임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막중한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직업이다. 미래에 교사가 될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의 글에 감명을 받고 감탄했지만, 저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학교교육의 개선을 사회 제도의 개선보다 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상 교육의 변화가 힘을 가질 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합리적이다. ,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직업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구조적으로 직업의 우위를 없애고,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런 변화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학교교육이 바뀐다 한 들 아무 소용이 없다. 평화와 공존을 강조하는 학교와 이에 모순 되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며, 학교를 제외한 사회 곳곳에서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결국 학교도 다시 불행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아낌 없이 조언을 해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학교마저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했지만,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은 나에게 경쟁만을 가르치시지는 않았다. 이런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불행한 학교에 한 줄기 빛이 있다고 생각한다.

 

h*****8 2012.1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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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학교는 왜 그렇게 사람을 힘들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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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역시 학교 때가 제일 좋았다 싶지만,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즐거웠던 건 친구들하고 어울릴 수 있어서 였다. 학교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을 준 적은 없었던 것.학교가 나에게 가르 쳐 준 것은 정글과도 같은 교실 생태계와, 몇 점 되지도 않는 점수에 쫓겨 영혼이라도 팔듯 안절부절 못했던 것과, 교사라는 절대 권력자를 뒤에서 흉보면서 처벌이
"그러게, 학교는 왜 그렇게 사람을 힘들게 했을까" 내용보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역시 학교 때가 제일 좋았다 싶지만,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즐거웠던 건 친구들하고 어울릴 수 있어서 였다. 

학교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을 준 적은 없었던 것.
학교가 나에게 가르 쳐 준 것은
정글과도 같은 교실 생태계와, 몇 점 되지도 않는 점수에 쫓겨 영혼이라도 팔듯 안절부절 못했던 것과, 교사라는 절대 권력자를 뒤에서 흉보면서 처벌이 무서워 복종하는 비굴함 같은 거였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학교라는 곳은 비굴한 소시민 키워내기 양성소 같은 곳이었다. 
이제 학교는 나와 별로 상관없긴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왜 우리나라 학교는 이 모양인지 내심 궁금했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는 이런 질문에 답을 꽤 명확하게 제기해 주었다. 
국가가 나라를 위한 도구(소위 '인재')를 뽑기 위해 학교를 세웠고,
자연스레 학생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되었으며,
이를 강화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국가를 위해 국민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학교를 위해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반성)

생때같은 젊은이들의 정신을 키워내고, 침해하고, 파괴하기도 하는 학교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뒷 부분에는 거창고등학교 이야기와, 올바른 학교를 만들기 위한 대안이 나와 있는데, 
이 부분은 학교 관계자나 교사들에게 유용할 것 같았다. 

책도 그렇게 두껍지 않으니, 술자리에서 뻔한 말로 대한민국 교육현실 개탄하기 전에 
교양삼아 읽어볼만 하다. 

l****a 2011.05.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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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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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참여정부 시절의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2년간 역임했다는 전성은 선생님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권력기관의 통치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이 제대로 설려면 탈 권력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 그래서 자율과 평등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사랑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말이 공감이 간다. 정말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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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참여정부 시절의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2년간 역임했다는 전성은 선생님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권력기관의 통치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이 제대로 설려면 탈 권력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 그래서 자율과 평등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사랑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말이 공감이 간다. 정말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고 하는 말 교육부 장관 못 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교육부 장관이 되서 좀더 제도적으로 우리나라 학교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l******t 2015.08.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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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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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이 생겨난지가 이제 겨우 백여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학교라는 기관이 수천년전부터 이어져온것처럼 생각하고, 학교는 무조건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차에, 어쩌면 그렇게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분이 그런 내용을 책으로 냈을까 하는 놀라움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과연 우리는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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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이 생겨난지가 이제 겨우 백여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학교라는 기관이 수천년전부터 이어져온것처럼 생각하고, 학교는 무조건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차에, 어쩌면 그렇게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분이 그런 내용을 책으로 냈을까 하는 놀라움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7~8살이 되면 무조건 학교에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각자 가진 개성을 키워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것인가? 등의 고민을 하다보면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면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또 발생한다. 대안학교, 홈스쿨링 등등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어떤 방법도 100%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다고 그냥 제도권 교육에 내 아이를 맡기기에는 너무 불안하고 내키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가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육기관이건 대안학교건 홈스쿨링이건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면 각각의 단점들을 cover할 수 있을것 같다. 그런면에서 이책의 저자나 선친의 경우는(책 내용만 두고 볼때) 정말 존경받을만 하고 훌륭한 스승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의 욕망이나 욕심이 아닌, 진정 학생 개개인 한사람을 위하는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했던 여러 사례에 감동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선생님을 만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공공연한 촌지 소문, 다른 좋지 않은 소문들 때문에 솔직히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이런분들을 비롯하여 교육자로서의 소명과 양심을 가지고 헌신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을거라 믿는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개개인의 개성과 장점을 인정받으며 소질을 계발하고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통해 성인이 된 후에도 아름다운 사회와 조국을 만들어 살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은 내용도 좋고 구성도 좋고 분량도 적어서 읽기가 참 쉽고 유익했다. 자신이 믿는바를 실천으로 옮긴힘의 위대함을 느꼈다. 요즘들어 많은 교육관련 서적을 읽었는데, 개중에는 말도안되는 이상주의, 실현불가능한 대안, 저자 본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주장들이 담긴 책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믿고 있는바를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실천했다는데 정말 큰 의의가 있겠다. 학교 인가를 반납할지에 대한 고민과 결정과정에서 힘든 결정을 하고 신념대로 추진한결과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문고등학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명문고의 기준이 명문대를 얼마나 많이 들어가느냐로 결정되며 이런 기준은 역대 교장선생님들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진정한 교육자, 선생님, 스승들이 더 많이 나올수 있는 사회, 그러한 선생님을 통하여 더욱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배출되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수 있는 사회가 될 수는 없는것인가...

j******s 2011.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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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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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한참을 물끄러미 있어야 했다. 늘 생각하던 것들. 그것들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못한 내 생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기억해 내고 보편화 되기까지는 너무 먼 이야기 같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학교가 이땅에 온갖 핍박과 위기를 넘기며 1956년부터 존재해 왔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희망을 건넨다. 私學은 권력에 장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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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한참을 물끄러미 있어야 했다. 늘 생각하던 것들.

그것들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못한 내 생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기억해 내고 보편화 되기까지는 너무 먼 이야기 같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학교가 이땅에 온갖 핍박과 위기를 넘기며 1956년부터 존재해 왔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희망을 건넨다.

私學은 권력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국공립학교의 대안이어야 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교육의 정의가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가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우리들의 대한민국에서 바로

교육인재양성의 서글픔을 만나는 것같다.

사명감과 같은 소명의식이 적어도 교육자에게는 필요한 것인데 그렇게 나아가지 못한 직장개념으로 전락해버린 교육현실이 씁쓸하다.

그저 통치계급의 하수인 역할에 그칠 뿐인 현실에서 마주하는 한계를

과연 그들은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당장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런 물음에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인데...... . 왜 학교에 다녀야 하지?

막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의 학교 교육에서 그 아이가 얻은 것은?

친구들, 사회생활에서 만나지는 관계, 지식?

열여섯이 되도록 학교와 함께 생활하면서 얻은 경험들이 약보다는 독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아이를 두고 모험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없는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나의 선택이 아이의 선택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살아가야할 미래이기에.

다만 이 여름 아이에게 기회를 건네본다. 학교를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스스로 가두어 놓고 있는 분노들이 밖으로 터져 나와 깨어졌으면 싶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어 자신의 목소리로 소리칠 수 있으면 싶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는데, 기다리는데

아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자율의 의미를 너무 일찍 건넨 후유증같기만 한데, 아이는 자율이 오히려 고통인 듯하다.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래는 것이 이 땅에선 그렇게도 힘겨운 것인가 싶다. 아이가 불행하다면 학교를 왜 보내야 하는가?

 

'아이는 스스로 큰다'는 루소의 철학적 발언에서 난 벗어날 수가 없으니.

 

i******i 2011.06.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학교가 불행해 지지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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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나는 현 시대의 정신과 세계관, 그리고 우리가 당연시 하던 것들이 과연 옳를까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많이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배우고 있고, 배워야 하는 위치에서, 나 자신에게서는 그에 대한 만족스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지금의 시대의 화두인 '긍정의 힘'에 대해서도...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동일하게 신통찮은 답을 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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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나는 현 시대의 정신과 세계관, 그리고 우리가 당연시 하던 것들이

과연 옳를까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많이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배우고 있고, 배워야 하는 위치에서, 나 자신에게서는

그에 대한 만족스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지금의 시대의 화두인 '긍정의 힘'에 대해서도...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동일하게 신통찮은 답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최그에 출간된 "긍정의 배신"이란 책을 통해서 마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듯

그간 하고 싶었던 말과, 정리되지 않던 생각, 그리고 전혀 몰랐던 새로운 통찰들을

깨닫게 해주었었다.

 

그런데 전성은교장선생님의 "왜 학교는 불행한가?"는 "긍정의 배신"처럼

내가 교육학과 학교교육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고, 또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잠깐 내용을 살펴보면, 거창고의 전 교장인 전성은 선생님... 그리고

소위 명문으로 통하는 거창고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다.

 

그저 단순하게 거창고의 이력이며, 전성은교장의 인생노정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책제목 그대로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이 왜 불행한지를 우리 과거의 역사, 즉 조선 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육이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근거로 잘 전해해주고 있다.

 

그리고 거창고... 거창고에서 만났던 선생님들, 전성은 선생님 자신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대한민국 교육의 방향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대안을제시해주고 있다.

 

교육철학이니, 교육의 방향, 대안... 이런 용어를 사용했지만

책 내용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술술 읽어내릴 수 있고, 책이 작고 얇기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나갈 수 있는데, 나도 줄치고 여백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을 필기하고서도

세시간도 안되어 다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는데, 대한민국에 전성은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많다면,,,

이렇게 교권이 땅에 떨어지지도,,,, 책에서 계속해서 강조했던, 경쟁사회가 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교육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행위의 최종목적도 돈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런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운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책을 덮으며, 나도 이런 참 스승을 만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나라도 그런 스승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단

생각이 밀려온다.

 

참교육, 참 스승... 그리고 우리 안에 왜곡된 교육에 대한 관점을 깨닫고 시력교정을 원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1 2011.06.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