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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읽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설 속의 하석 이야기의 여운이 오래도록 부유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은 원래 이토록 고통스럽고도 고독한 일이던가. 작가 가슴속의 불을 엿볼수 있었다. 겉모습으로는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마음속에 불을 품고 있는 이는 그걸 어떻게 숨길까. 쥴과 프로작과의 대화에서처럼 시로 쓸 수 없는, 소설로밖에 쓸 수 없는 글들이 있을 것이다. 마음속의 불을 토해내려면. 어떻게든 불꽃을 터트려야 하므로.
삶은 참 재미있다. 이처럼 소설속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마치 내가 꿈꿔왔던 혹은 상상하고 있던 삶인듯 대신 살아보는 느끼는 일이기도 하잖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인지도. 열일곱 살의 최하석의 이야기. 세살때부터 자살을 시도했던 아이, 일명 자살 수집가. 그리고 하석이 하는 많은 거짓말들. 하석은 자신의 마음속의 불을 거짓말로 터트렸다.
거짓말은 하석이 살아남게 했다. 삶을 견디는 것이었다. 하석이 했던 수많은 거짓말을 들어보자면 일단 열일곱 살의 그녀 1996년 여름으로 가야한다. 하석은 그날 퇴학을 당했다. 아니 학교를 그냥 나왔다. 하석이 학교를 뛰쳐나와 느리게 가는 비둘기를 타고 왔더니 기차역에 엄마 미구 씨와 아빠가 나와 계셨다. 부모님은 하석이 퇴학을 당해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 원래 그런 분들이었다. 자신을 특별하게 챙기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는, 어딘가의 선을 그어놓고 있는 듯한.
하석은 자신을 '자살 수집가'라고 칭한다. 노트에 각종 자살 방법을 써놓고 오려붙여 자살 방법들을 모색했다. 하석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거짓말을 택했다. 진심을 말하기보다는 거짓말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책을 좋아하는 소녀. 책을 읽는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친구랄 만한 게 없었던 하석은 책을 읽으면서 친구를 발견했다고 느꼈던 것. 마음속으로는 다른 아이들을 무시했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던 소녀 하석.
그 여름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겁많은 '자살 수집가'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짓말로 견뎠다. 이제는 안다. 이런 거짓말은 나쁘다는 것을. 하지만 나빠서 더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다. (17페이지)
그나마 하석에게 친구랄 수 있었던 건 인터넷 채팅을 하게 된 프로작이었다. 얼굴을 알지 못하고 그저 밤시간에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던 이였다. 때로는 진심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는 듯 했지만 하석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이 내어주는 따스함이 아니었을까.
태어났을때부터 거짓말을 하게 된 하석의 이야기는 가슴에 묵직한 여운을 주었다. 하석이 읽었던 책들의 목록. 작가가 가진 문장의 힘. 진심을 감추려 택했던 거짓말이 그녀를 한층 성장시켰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볼수 있었던 하석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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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겁많은 ‘자살 수집가’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짓말로 견뎠다. 이제는 안다. 이런 거짓말은 나쁘다는 것을. 하지만 나빠서 더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다.’ (17쪽)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감추는 방법은 많다. 모든 걸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은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어떤 이는 손을 주머니에 넣기도 하고 어떤 이는 거짓말이라며 상대방을 혼란시킨다. 피하고 싶은 상황에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했다면 거짓말은 나쁜 게 아닌 좋은 것이다. 이처럼 거짓말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경계에 놓이기도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낸 이가 있을까? 그것이 어떤 거짓말이든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다.
여름에 태어난 돌이라는 뜻을 가진 열일곱 살 소녀 최하석에게 거짓말은 자신을 지질 수 있는 거대한 갑옷 같았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거짓말에 의지해 존재했던 시절 1996년의 이야기다. 할머니라 할 수 있는 화가 엄마와 목장 주인이지만 목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아빠는 하석에게 화를 내지 않는 부모였다. 최재인이란 인기 많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 언니가 있었지만 하석이 태어날 즈음 죽었다. 약한 심장으로 태어나 수술을 했고 세 살 때 쥐약을 먹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 역시 하석에서 무언가 숨기는 게 있었다.
‘거짓말도 멋지지만 때로는 멋진, 거짓말보다 더 멋진 진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진실은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거짓말의 편인 것이다.’ (96쪽)
한은형은 단편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와 마찬가지로 평범을 거부하는 인물과 독특한 문장을 내세운다. 하석은 또래 10대와는 달랐다. 이상하게도 습관처럼 거짓말을 하는 하석은 위태롭기는커녕 당당하고 자유롭다. 남자와 함께 잤다는 이유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와서도 다르지 않다. 한 번쯤 죽고 싶은 생각을 품은 아이들과 달리 구체적으로 자살하는 방법을 모은다. 모든 걸 책으로 배우고 익혔다. 선생님과 수영 강사를 유혹할 정도로 대담하다. 어른의 잣대로 보면 되바라진 아이다. 그럼에도 나쁜 남자에게 끌리듯 묘하게 하석에게 빠져든다. 당연 친구도 없고 PC 통신에서 만난 ‘프로작’이 유일한 소통 상대다. 무관심처럼 여겨지는 부모님의 이상하고 불편한 사랑에 대해서도 죽은 언니와 자살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열일 곱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어른들의 세계와 세상의 모든 게 시시해 보이는 시절, 죽음만이 내 존재를 확인시킬 수 있다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것 말이다. 재인이 그랬던 것처럼 하석도 죽음을 꿈꾼다. 죽음이 존재와 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라 믿는 것처럼 거짓말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현실을 부정할 수 있고 새로운 진실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싶은 열망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석은 무엇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뒤늦게 알게 된 죽은 언니가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엄마라는 사실일까? 아니면 자살 수집가로 위장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일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면 언니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니의 첫 자살 시도도 열일곱 살 때였다. 나는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를 넘기면 죽지 못할 거라고 여겼을 거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잘 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춰야 한다. 낡기 전에 사라져야 한다. 완결된 이야기에 뭔가를 더 붙이는 건 억지로 늘려놓은 대하소설이나 다름없으니까.’ (203쪽)
1996년에 열일 곱 살이었던 하석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시절의 거짓말은 여전히 존재한다. 거짓말이 없었더라면 하석은 어느 순간 사라졌을 테니까. 어떤 단어는 하나의 시절을 대신하기도 한다. 하석에게 거짓말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10대의 방황이며 자아인 것이다. 그리고 한은형에게 거짓말은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 더 붙이자면 여름도 소설일 것이다. 단순히 하석(夏石)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거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한은형에게만 속한 여름과 진실 같은 거짓말을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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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서모임 덕분에 많은 책을(?)읽고 있다 이번에 읽은 거짓말이란 책은 성장소설이자 이런 성장기를 한 번쯤 꿈꿔왔던 사람들이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인 것 같다. 주인공은 사춘기 16살 소녀, 거짓말을 하면서 죽기전에 자신이 하고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상상해가면서 읽었다. 기억에 남는 구절은 “어떤 투명함은 하나의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이다. 주인공이 학교에서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때 나온 부분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거짓 없이 얘기하라 했지만 진짜 진실을 말하게 되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거짓말로 둘러대며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 여기서 작가는 뭔가 진실이 모든이들에게 도움이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될수도 있다라는 얘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그 입장에 대입해봤을때 주인공은 많은 거짓을 말하지만 그 상황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나서는 그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비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자라면서 정도는 약하지만 작은 거짓말쯤은 하나씩 해봤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거짓말은 누구한테나 살면서 필요한 것라 느꼈다. 시간나면,, 읽어볼만한 소설,, 나 혼자 이해하는 것보다 사람들이랑 이야기해보면서 생각치 못했던 반전도 알게되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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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한은형 작가의 '거짓말' 그 여름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짓말 17P 중) - 공감 알에서 깨어나기 위한 시간. 나는 나의 유년기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을 맞닥뜨렸을 때 (대충 중,고등학생 시절이란 뜻이다) 내가 처음으로 가진 욕구는 인정받는 것이었다. 낯선 사람들 혹은 낯선 사람들보다 더 아픈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를 위해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허세도 부리고 거짓말도 했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 있으니 나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받음으로써 나의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애썼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하석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모 평론가의 '위악의 상투성을 거절한 자리에서 투명하게 돌출하는 자기 배려의 순진성' 부분에 나는 깊이 긍정했다. 하석은 순진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반대로 자기자아에 상처가 많은 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순진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무심한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그녀가 거짓말을 사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릴 줄 아는 그녀가, 명확한 취향과 자기행동에 대한 정확한 사유를 가진 하석의 행동들이 오히려 하나의 딱딱한 '알'처럼 느껴졌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녀의 일대기들이 부담스럽다거나 상투적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적었다. 누구나 사는 방식은 다르니까. - 뭐야 이건 하지만 하석에 대한 나의 공감과 몰입은 에필로그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이걸 신선하다고 해야할까 유쾌하지 않은 거짓말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이 모든 게 다 거짓말이라고? 에필로그 속 어른인 '하석'의 말을 듣다보면 유년기의 '하석'은 그저 그 시절을 나기위한 또 하나의 거짓말일 뿐이다. 토론을 할 때의 나는 '어른 하석'을 진실이라 믿고 이 이야기는 다 뻥이라고 토로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냥 믿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어른 하석' 과 '유년기 하석' 중 어느 누구도 내게 어떤 이야기가 진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거짓말인지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저 '스트리퍼 하석' 보다는 '평범한 주부 하석'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현실이기에, 그녀를 더 믿게 된 것이다. 실제로 스트리퍼인 하석이 너무나도 평범한 나를 위해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너무나 폭력적으로 그녀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나 때문에,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또 한번 거짓말을 한 것일지 모른다.
메인 소설 속 하석은 말한다. '거짓말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다.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는 눈에 나를 유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거짓말 139P 중) 그렇다면 도대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누구일까. 어른인 하석일까 유년기의 하석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하석은 그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혼자서 이야기를 완결짓고는 그렇게 가버렸다. -야 나도 에필로그 쓸 줄 안다 그래서 프로작은 그런 하석을 향해 넌 좀 '마요네즈'를 바를 필요가 있겠다고 말한 게 아닐까.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나의 자의식을 위한 부드러운 마요네즈는 맛있는 버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 이게 리뷰인지 독후감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독후감 같다구요? 아닙니다. 이것은 리뷰입니다. 리뷰인 것 같다구요? 아닙니다. 이것은 독후감입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기가막힌 문장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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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문장] -마카레나가 나오면 세상이 돌았다. 나도 돌았다. 정말이지 돌고 싶었다. -사라진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쩔수 없이. 살아있다는 것은,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사라진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자 중에는 문(?) 이라는 게 있다. 벌겋고 퍼런 빛 문이다. 벌겋고 퍼런 빛이라는 건 어떤 걸까? 화려한데 슬픈 느낌일까? 곱기만 한 색깔은 아닐 것 같다. [책에 대한 감상] 어렵다.너무 어렵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못했다. 도입부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사물들에 대해서 나열하듯이 설명을 하는데, 작가의 표현이 마음에 들어 술술 읽어나갔다. 하지만 그때만 약간 흥미가 있었고, 점점 갈수록 읽어지지않았으며, 결국 나는 소설 자체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못했다.(제대로 안 읽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 뒤부분의 추천글을 읽고나서야 이 책에 대해서 이해할 수있었다. 추천글 중에서도 두개의 자아를 읽고나서야 ‘아..’ 하고 조금의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며.. 추천글을 읽기 전까지의 토론내용과 추천글을 읽고 나서야 토론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충격 또 충격! 내가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니,.. 작가한테 속은 기분이었다. 이책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위에서 살짝 언급했던 작가의 표현이다. 다양한 사물과 풍경을 사용해서 주인공의 생각을 나타낸다.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비유를 사용한. 표현 맛집이라고 칭하고 싶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기억에 남는 발제] -하석은 왜 솔직이란 말을 싫어했을까? : 사람들이 말하는 솔직함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기준을 잡아놓고 솔직함을 원하기 때문에( 답을 정해놓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솔직함은 거짓말과 같으므로.. 석이는 솔직이란 단어를 싫어한 것으로 보인다. -하석의 자의식에 언니의 자살이 영향을 받았을까? : 언니의 자살에 가려져서 사랑을 못받았기 때문에 석이의 자의식이 형성된것으로 보인다. 물론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하얀거짓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 만장일치! 필요필요필요! 꼭 필요하다.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경우, 굳이 나를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경우, 무례하게 말 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회사를 다녀야하니까, -영재씨는 도대체 무슨 존재일까? 초반부에 왜그렇게 많이 나왔으며, 뒤부분에는 왜 존재감이 없어진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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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한은형, '거짓말' 친구를 잘 둔 덕에 어찌하다 보니 2019년 11월부터 '지식확장모임'이라는 독서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번 모임이 4회차 모임이었는데, 토론만으로 지나친 책들이 생기는 게 아쉬워서 리뷰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 소설에 대해 했던 생각을 세 가지로 정리해본다!
1. 에필로그가 핵심이다!! 에필로그에 작자의 의도가 있었다. 꼼꼼한 독자가 아니라서 이 부분을 그냥 넘겼다가 혼자서 이상하게 이 소설을 이해하고는..... 독서토론에 가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그냥 모임원들과 좀 이해가 다른가 하다가 내가 핵심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이렇게 나 혼자의 이해로는 부족하기에 독후활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을 품고.. 이 자리를 빌려.. 독서모임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ㅋㅋ 그러나 Tip!!! 핵심일지라도 절대 내용을 읽기 전에 먼저 읽어서는 안 되는 부분!!
2. 인생에서 거짓말은 필수!! (스포 주의!!!) 사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거짓말이 눈에 더 들어왔었다. 부모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였고, 전학 간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학교에 대해(의도가 없었을지라도) 거짓말을 했다. 또 학교의 친구들은 멀쩡한 사감 선생님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거짓말은 주인공(혹은 작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모임원들과 거짓말이 옳지 못한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가벼운 거짓말의 경우 상대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지만, 그 무게가 커질수록 옳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면, 거짓말 그 자체보다는 그 무게가 무거워지지 않게 경계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동경이 우리를 살게 한다! (스포 주의!!!!) 내 삶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부분 말이다. 나름 인생을 후회없이 살고 있다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사실 마음이 힘들 때는 늘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동경을 마음 속에 품고, 그런 내 생각을 비슷하게 표현하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찾아 듣고는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동경이 현재의 나에게 힘을 줄 때가 있다. 실컷 그 동경을 품어보고,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해 후회의 감정도 느껴보고, 아주 가끔은 눈물도 흘려본 후에, 나는 다시 치유가 되어 내 삶으로 건강하게 돌아온다. (그런 부분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아마 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풀어놓은 이야기 또한, 작가 자신에게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의 동경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문학의 허구성이), 작가에게 거짓말을 아름답게 만든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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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일시: 20.02.21.금 (*리뷰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음) 처음에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후반부에는 개인적인(지극히) 이야기를 해줬는데, 나에게는 많이 어려운 책이었다. 거짓말을 허언증이 있는 아이처럼 계속하는데, 그것을 자신은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거라는 '나'의 자기합리화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독서모임을 통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하석이는 정말 마음이 힘든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혼내지도 않고, 칭찬도 하지 않는 부모님이 오히려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낀게 아니였을까 하는 모임원들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나를 정말 사랑하냐고 남자친구에게 매일 확인하고 물어보던 내 모습이 떠올라 하석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는 칭찬을 하지 않지만, 항상 언니가 잘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부모님에게 언니보다 더 관심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혹시, 도입부 내내 나왔던 '영재'씨가 아빠는 아니었을까?) 부모님이 먼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하석이도 비교대상이 "언니"가 아니라 "엄마"로 생각하며 거짓말쟁이로 자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인정욕구가 많은 아이가 아니라 솔직한 사람으로 꿈을 꾸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하얀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하얀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는. 부모님의 거짓말이 하석이의 거짓말을 낳게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본 내용의 나의 느낌이다. 마지막에 충격적인 것은 이 내용이 또하나의 작가의 글이었다는 것이다. 에필로그를 보고 난 후,(사실 독서모임 전까지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 도서 내용의 관심도와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다.(정뚝떨...) 현실의 자신과 자신이 되고 싶은 특별함과의 괴리에서 오는 차이. 자신이 되고 싶은 욕망을 글로 풀어낸 것만 같은 글이였다. 특이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든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든가 평범하지 않게 살고 싶었는데(일탈)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였던(?) 나로써는 이런 작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글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너무나도 비추한다. 마지막에 정뚝떨... ㅠㅠ 하지만 에필로그를 제외한다면, '하얀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은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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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죽음이후 우는 사람이 싫어서 누군가 난처하거나 울거나 하면 대충 봐주는게 자신의 몫이었던냥 ~사실은 이건 너무해! 죽은 언니가 살아있는 나보다 힘이 세다니, 하면서 투덜 투덜 거릴 일였는지도 모르는데, 어느 때부턴지 알아서 잘 참고 알아서 잘 하는 아이를 보면 위태위태하다가도 이내 그 배려에 길들여져버리고 안심을 해 버리곤 한다. 아이는 그 몫이야말로 자신이 할 수있는 최선이라도 되는 냥 진짜 껍 대기가 되서는 속이 비칠 만큼 투명해진 다음에야 아, 내가 투명인간 노릇을 해 온 거구나 하고 알게 된다. 그 쯤에서 어른들에게 반항을 할 라 치면 어른들은 자다가 귀싸대기 맞는 심정이 되고 만다. 네가 스스로 자처해서 알아서 한 일이잖니...... 하고, 설사 그랬다 치자.그러지 않아도 된다.네 잘못이 아니니, 네가 눈치를 보고 사랑을 받기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는 거란다. 하고 얘기를 해 주는 누군가가 하나 쯤은 꼭 있어얄 텐데..이 세상은 신기하게도 그런 데서 꼭 눈을 감는다. 알아서 하겠지 ......하고, 그러다 아이가 절박해지고 가정이 많이 손 댈 수없이 망가진 후에나 소문처럼 그 집에 ...세상에 ..그런 일이...하면서 말들만 난무하게 되는 거짓말 같은 이 세상 구조를 나는 몇 번이고 봐와서...이 작고 조그만 위악덩어리를 보자 ..눈을 어디에 두고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 모르겠 더라 하면...너도 똑같아! 그럴 하석의 목소리가. 위악스레 머리를 울리곤 해서... 이 책도 읽고 노트를 한지는 상당히 여러 달 되었다. 이제서야 ..몇 자 끄집어 낼 만큼의 용기를 낸다. 어린 것들이 가진 상처를 나도 그만큼 같이 받아서 어쩌지 못한 시간였노라고 해야겠다. 같이 흔들리고 같이 위선에 위악에 억척을 부린 시간들이 버거워서 ...그만 내려 놔야지..어떻게든, 그리고 같이 걷자 해봐야지... 어제는 울었지만 물 속에 잠긴 채 소리를 내지 않을려고 발장구를 치며 오늘은 또 햇살아래 말갛게 웃으며 안녕 ~!하자고. 그런 심정으로 끄적끄적 ...하석의 기억을 불러와 본다. 때론 애들보다 어른들의 엄살이 더 심하다는 걸 미안하게 생각해. 너도 아픈 일였는데 무시했다는 것 그걸 알아야 하는데 말야...... 어른이 되어도 잘하는 일 로 잘해서 보상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그게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젠 알아. 그치만 뭐 , 어쩌겠어...너도 나도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 상처는 털 고 일어나자.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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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고등학생 여자아이 최하석이다. 여자아이다. 읽는 내내 이 아이의 생각의 한계가 없음이 부러웠다. 나는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라고 해도 그냥 가르쳐주는 것에 반감없이, 의문도없이 앉아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바보처럼.. 스폰지처럼.... 무조건 흡수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기준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 어른들의 기준에서는 문제아가 된다. 선생이라고 해서 어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똑같은 기준으로 아니, 어쩌면 더 엄격한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런 선생과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선생의 마음에 드는 아이들은 좋은 학생으로,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문제아로 낙인 찍힌다. 하석이는 공부는 잘 하는 우등생이었고, 우등생들만 모인다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대형사고를 친 덕에 학교를 거절하고 자퇴한다. 학교가 자기를 거부한게 아니고 자기가 학교를 거절했다고 말하며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하석이가 자퇴하게 된 사건에 대해 하석이는 선생들에게도 반성문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만 했다. 하석이의 대답 속에는 하석이가 과연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도 없었으며 또 아무 잘못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생각 속에서 하석이는 이미 큰 사고를 친 문제아가 되었던 것이다. 옷을 다 벗은 채로 남자아이와 커텐을 덮고 잤다. 선생들은 물었다. 남자애와 잤냐고. 잠을 잤으니 잤다고 대답했다. 차라리 남자애와 '섹스'를 했냐. 라고 정확히 물어보았으면 하석이는 대답했을 것이다. 아니라고. 어른들의 기준으로 질문하는 선생들과. 아이들의 기준으로 대답하는 학생. 그렇지만 그 대답이 지극히 어른스러웠던 하석이. 강자의 판단에 반항하면 할 수록 더 큰 처벌과 책임만 따를 수 밖에 없는 약자. 과연 하석이가 한 '잘못'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어른들의 몰상식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한 아이를 문제아로 만든건 아닐까? 여기서 과연 거짓말을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 아이로 만든이는 누굴까. 그렇게 학교를 거부한(나온) 하석이는 모든 상황과 사물에 대해 자신의 시선으로 설명한다. 그 시선이 고등학생이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이미 너무 어른의 시선으로만 사물을 바라보고있어서인지 참 독특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이런 생각들의 나열이다. 예를 들면, 통일호와 비둘기호 이야기?? ㅎㅎㅎ 아.. 정말 너무 웃겼다. 학교를 자퇴하고 나온 하석이는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보려고 기차역에 간다. 가서 역무원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 웃겼다. "세 시간 걸리려면 뭘 타야 돼요?" 남색 모자를 쓴 역무원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니?" "세 시간이 넘게 걸리면 안 돼요." 어쨌거나 오늘 밤에는 돌아올 수 있어야 했다. 역무원은 난처할 때 짓는 표정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를 가는데?" "저도 알고 싶어요." 역무원은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 것 같았다. "비둘기호나 통일호를 타라고 그랬어요." "뭐 탈래?" "통일호가 비둘기호보다 천천히 가요?" 역무원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 "비둘기가 느리다고요?" "응" "무슨 새가 그래요?" 통일보다는 비둘기가 빠를 것 같았는데. 역무원은 내가 향할 역을 정해줬다. 문산역. 그곳은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반환 지점이기도 했다. "돌아올 때도 똑같이 걸리는 거죠?" 역무원은 또 한숨을 쉬더니, 웃었다. "우리 역에 도착하는 막차가 23시 30분이야. 걱정 마." 우리 역? 우리 집도 이상한 말이지만, 우리 역이라니.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도 쓰는 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코미디 소설도 아닌데 엄청 웃었다. 빵! 터졌다. ㅎㅎ 웃기면서도 말하는 뜻은 진실된다. 생각도 깊다. 통일보다 비둘기가 빠를 것 같은데 왜 비둘기호가 통일호보다 느리냐는. 이렇게 웃긴 아이의 꿈은 무엇일까. 이 아이의 행복은 무엇일까. 하석이의 꿈은 자살이다. 자신의 태생을 알고 자살하고 싶어하는건지. 끝없이 이어지는 구속 속에서 정말 참 자유를 얻고 싶었던 건지. 죽음이 과연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는 어떻게 믿게 된건지. 심장이 좋지 않아 어렸을 적에 큰 수술을 받아서 가슴 한 가운데 보라색 선이 있어서 죽음을 더 가까이 느끼고 있었던건지. 왜그렇게 죽고 싶었을까. 이 아이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미구씨'라고 부른다. 아빠는 또 아빠라고 부른다. 이 집안에서 집사역할을 하며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저씨는 '영재씨'라고 부른다. 온 가족은 '영재씨'가 없으면 집안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예술가 엄마 덕에 부유하게 자란 하석이는 어렸을적에 죽었다던 '언니'의 기일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미리부터 이럴거라는, 출생에 비극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고 살아서 죽고 싶었던건가. 아니면,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엄마, 아빠의 자식에 대한 욕심을 버린탓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부모의 무관심속에 하석이는 끊임없이 죽음을, 자살을 연구한다. 겁이 많아 자살할 용기가 없을 것 같아 자신을 죽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를 찾기도 한다. 한 순간에 가족 3명을 잃고 새로운(?) 1명을 갖게된 하석이. 엄마, 아빠, 언니인 줄 알고 살아온 하석이에게 출생의 비밀은 엄마, 아빠, 언니를 한 순간에 없애버리고 다른 새로운(?) 엄마가 생겼다. 하석이가 언니라고 믿고 살아왔던 그 언니가 엄마란다. 엄마였단다. 하석이의 엄마는 자살했다고 했다. 아니 엄연히 말하자면 사라졌다고 했다.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심장에 문제가 있어 온 몸이 파란 하석이를 낳자마자 사라졌다고 했다. 글 속에서 하석이는 그래서 내가 그렇게 자살이 하고 싶은걸까. 엄마의 피가 내게도 반 섞였으니 나도 자살하고 싶은걸까. 하며 생각하기도 한다. 하석이는 무엇에서 자유롭고 싶었을까. 학교? 가족 아닌 가족? 아빠도 없고 누군지 모르는데다가 엄마마저 자기를 낳자마자 버리고 사라져버린 이상한 가족? 비정상적인 나? 문제아인 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책을 많이 읽으면서 점점 생각이 많아지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자유다. 생각의 자유. 행동의 자유. 그러나 남의 생각에, 남의 행동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유. 다. 과연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를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이 없으면,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없으면 과연 내가 자유를 찾기나 할까? 그땐 또 '정'이 그립다고 외로워하겠지. 인간은 '함께'살아야 하는데. 라고 불평하면서 말이다. 혼자 있을 땐 외롭다 말하고 같이 있을 땐 자유하고 싶다 라고 불평하는 나. 우리. 하석이가 궁금하다. 2번째 심장 수술이 잘 끝나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이야기도 끝이났는데 말이다. 하석이는 거짓말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화를 내지 않고 참아내는 이유가 내가 희생정신이 투철하거나 내가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거짓말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다.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는 눈에 나를 유기(遺棄)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자존감이 강해서 누가 뭐라고 해도 화가나지 않는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화가 나지 않은 척하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다.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한 잘못을 자신에게 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그렇게 하석이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였다. 거짓말은 결국 나 스스로가 아니라 어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이 아니면 어른들을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편견은 아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그러면서 거짓말했다고 벌을 준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어른들의 기준이. 편견이. 그런 기준과 편견이 만든 이 세상이 무섭다. 그런 세상에서 자유롭고 싶다. 하석이처럼. 추천의 말에서 책에 대한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세살 때였다고 한다"라는 문장을 태연하게 말하는 아이. 지루한 걸 끔찍해하고, 거짓말하는 순간 통쾌함을 느끼는 아이. 그 이면에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주인공은 수영을 배운다. 발장구 백 번. 수영 강사는 그렇게 말한다. 거짓말이란 것은 이 아이에게 발장구 백 번과 같은 것 아닐까. 물에 뜨기 위해 계속 발장구를 쳤듯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했으리라. 아이들이 살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하지 않는 세상. 그런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고 또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발췌] =================================== 나는 속으로는 누구보다 불량했지만, 겉으로는 불량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양아치보다 학교에 가는 양아치가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경우다. 담배를 피우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에 갔다가 걸린 적도 없었다. 이런 것들로 불량도를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지. 특별해 보이려는 애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특별해지고 싶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폭주하는 것도, 질주하는 차들 사이로 막무가내로 길을 건너는 짓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게내들이 왜 그러는지 알았다. 자기들이 세상에 복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런 건 좋지 않다. 본인만 피곤하고 귀찮아질 뿐이다. 복도에 앉아 있는 것이 나를 굽히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교실에 앚아 있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불투명한 사람이 좋았다. 어떤 투명함은 하나의 폭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솔직함을 자부하는 사람의 귓가에 이 말을 속삭여주고 싶었다. '당신의 전부를 알고 싶지 않거든.' 겉과 속이 같은 사람만큼이나 못 미더운 사람은 없었다. 저는 문제아입니다, 라고 쓴다면 이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들께서는 흡족하실까요? 하지만 저는 문제아가 아닙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저를 문제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무엇보다 문제아라는 단어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문제아'라는 말은 나타내지 못합니다. 저는 정박아입니다. 정신이 박약해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감각이 부족한 사람일 따름입니다. 그게 죄가 되는 걸까요? 오히려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건 아닐까요? 저는 사회적 약자니까요. (반성문의) 마침표를 찍고 나니 35매였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복수하려던 마음이 다 사라져버려 다시 이 멍청한 학교에 잘 다닐 것만 같았다. 선생 눈에 드는 학생이 아니면 '빠가'가 되는 학교, 자기보다 못한 애를 찾아내 자신의 '빠가스러움'을 은폐하려는 애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말하는 선생들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위험했다. 비에게 더 두들겨 맞고 싶었는데 그쳐버렸다. 나무 아래에서는 비가 오래 내린다. 비가 그쳐도 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려고 나무 아래를 걸어 다녔다. "세 시간 걸리려면 뭘 타야 돼요?" 남색 모자를 쓴 역무원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니?" "세 시간이 넘게 걸리면 안 돼요." 어쨌거나 오늘 밤에는 돌아올 수 있어야 했다. 역무원은 난처할 때 짓는 표정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를 가는데?" "저도 알고 싶어요." 역무원은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 것 같았다. "비둘기호나 통일호를 타라고 그랬어요." "뭐 탈래?" "통일호가 비둘기호보다 천천히 가요?" 역무원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 "비둘기가 느리다고요?" "응" "무슨 새가 그래요?" 통일보다는 비둘기가 빠를 것 같았는데. 역무원은 내가 향할 역을 정해줬다. 문산역. 그곳은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반환 지점이기도 했다. "돌아올 때도 똑같이 걸리는 거죠?" 역무원은 또 한숨을 쉬더니, 웃었다. "우리 역에 도착하는 막차가 23시 30분이야. 걱정 마." 우리 역? 우리 집도 이상한 말이지만, 우리 역이라니.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도 쓰는 걸까. 나는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일종의 '외모 지상주의자'다.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면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외모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남자가 낀 이어폰에서 새어 나온 소리였다. 내 귀까지 찢어버리려는 걸까? 그 순간, 사람들이 메탈이란 음악을 듣는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 자체가 분노인 사람들이 더 큰 분노를 들으면서 자기 분노를 삭이려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자기를 다독이려고 듣는 것이었다. 남의 큰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는 것처럼. 카토를 '자유를 위하여 삶을 거절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거부가 아니라 거절이다. 나도 학교를 거부한 게 아니라 거절한 것이었다. 나를 거부한 학교를 거절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까? 정성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그 정성에는 '내가 이만큼 정성을 들였으니 이 정성은 인정받아 마땅해'라는 당당함이 있었고, 그것을 모를 만큼 나와 아빠가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피차 힘들었다. 식탁 위에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누구보다 잘한다'라는 마음을 재료로 해서 만든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1등주의자'의 폐해였다. 아빠와 나는 지쳐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칭찬이라든가 헌사, 입발린 관용구들을 모조리 동원하면서. 평상시의 우리 집이 그리웠다. 아침에는 시리얼이나 커피 한 잔을 마셨고, 모두가 집에 있는 날이면 밖에 나가서 사 먹는 게 우리의 방식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애를 쓰거나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그래서 미안하게도 고맙게도 만들지 않는 것. 교장이 자랑스러워하는 기둥은 이 학교가 얼마나 허술한지 상징하는 것 같았다. 파르테논 신전 기둥이 이오니아식인지 코린트식인지도 모른 채, 여섯 개의 기둥을 세우면 파르테논 신전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미구 씨 말이 맞았다. 돈이 많다고 옷을 잘 입는 건 아니다. 돈이 많다고 그럴듯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을 마구 쓴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건물을 보니 울고 싶어졌다. 거기에는 어떤 철학도, 미학도, 윤리도 없었다. 마음이 어두워졌다. 옷을 이상하게 입은 사람을 봤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됐다. 옷은 갈아입거나 버리면 되는 것이다. 건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것은 거짓으로 점철된 벽돌 덩어리로 보였다. 엉터리 거짓말 같았다. 냄새나고, 서툴고, 남의 걸 흉내 내고, 아니 심지어 제대로 흉내 내지도 못한..... 그런 거짓말들은 거짓말 전체를 능욕한다. 거짓말은 그럴듯해야 한다. 말이 되어야 한다. 아름답다면 더 좋다. 내가 생각하는 거짓말은 그랬다. 거짓말주의자에게도 도덕이 있는 것이다.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나는 무거운 그림자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그림자를 맡아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었다. 그림자는 불행을 빨아들이는 솜 같아서, 계속 끌고 다니면 손쓸 수 없이 무거워지고 만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림자 자체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일을 예방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간을 내놓고 다니는 토끼 신세가 될 수 있다. 소중한 것은 가지고 다니면 안 된다. 용왕에게 뺏길 수도 있고, 칠칠맞게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자기만 찾을 수 있는 곳에 숨겨두어야 한다. 거짓말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다.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는 눈에 나를 유기(遺棄)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자존감이 강해서 누가 뭐라고 해도 화가나지 않는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화가 나지 않은 척하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다.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한 잘못을 자신에게 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나는 마음을 찢어놓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비참하거나 슬프고,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는 이야기. 제대로 된 이야기라면 기쁨에는 슬픔이, 슬픔에는 기쁨이 깃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를 어찌할 수 없다. 남편이 초인종을 누르건 말건 침대에 누워 있고만 싶고, 잠에서 깨어 젖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의 뺨을 때리고 싶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몇년만 숨어 지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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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의 <거짓말>을 읽는데 하나 네 생각이 계속 나는 거 있지. 이 소설에 너랑 동갑내기 친구가 등장하거든. 봄에 네가 학교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고도 아직 답장을 못했네. 작년에 내 말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너를 본 뒤로 내 의도와 달리 잔소리나 상처가 될까봐 말을 아끼게 돼. 그래서일까 소설 속 엄마와 아빠가 딸을 대하는 태도가 한편으론 이해가 됐어. 사랑인 줄 알고 연신 들이미는 마음이 때론 숨통을 틀어막기도 하니까.
소설을 읽다 찌는 듯해 실내기온을 체크해보니 32도야. 이 온도는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수치거든(34도를 찍고 여름이 가더구나). 숨이 턱턱 막히는 가운데 글쎄, 찬물로 샤워해도 무방한 시간이 끝나 가구나 싶더라. 소설속 소녀가 계속 죽을 생각을 하는데도 결국은 빠져나갈 시간이고, 지나고 나면 찬물로 샤워하던 시절로 기억될 거라는 생각이 들대.
주인공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고 이름도 특이해. 최하석. 소설이 그렇잖아. 밋밋하고 평범한 사람은 비중이 없어. 사실 아이를 낳지 않았던 게 아이가 자라 고작 내가 될까봐 두려웠거든. 이 말은 자라면서 삶의 엉성함과 모순,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모의 한계를 보고 삶에 염증을 느꼈다는 증명인 셈인데, 사람이 참 이상도 하지. 자기는 그래놓고 소녀들을 보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단정해버려. 소녀들의 자살충동, 성애, 어른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접할 때면 누가 볼세라 부정하기 바빠.
열일곱 살이면 어엿한 독립체로 인정해야 하는데 나부터가 안 그러잖아. 작년에 두 팔 벌린 치킨상자 사건도 그렇고 인제 휴양지에서의 언쟁도 그래서 빚어진 일이니까. 그래도 '목까지 잠근 추리닝을 입은 사감'은 아니고 싶어. 그러려고 노력해. 내가 크면서 눈치 챘듯이 너도 나의 모순과 한계를 직감적으로 알 텐데. 너에게 적어도 답답하고 지겨운 사람은 아니어야지.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너의 진학 결정은 실로 충격이었어. 집 앞에 명문여고를 두고 멀리 떨어진 남녀공학을 선택했을 때 막아야 한다는 감정이 앞섰고, 좀 지나서야 네 인생이니 네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게 맞다는 이성이 고개를 들더라. 면밀히 말해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 걸음을 찾는 게 삶인데 꼭두각시처럼 너를 앞세워 조종하려하다니.
네가 했던 “왜 내가 이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건데”라는 말이 정확히 나를 겨냥한 말이 아니라 전반적인 너의 속앓이와 스트레스를 표명한 걸 잘 아는데도 내심 섭섭하더라. 첫 조카인 네가 나를 넘어섰으면 하는 바람, 그것이 엄연한 기대이고 내 욕심이었던 거지. 진짜 사랑은 믿고 기다려주는 건데. 마음만 앞서서 주고 싶은 대로 주려했으니 그럼 안 되지.
내 걱정과 염려를 진화시키려는 듯 너는 흥분된 어조로 고등학교 생활을 말해왔지. ‘재미있다’는 말에 안도하기보단 어떻게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수 있지, 얘가 제정신인가 싶더라. 편지에서 학교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특별활동들로 바쁜 너의 활기찬 숨소리가 들려 생각을 고쳐먹었지만. 무엇보다 “이모, 나는 꿈이 없어. 다른 아이들은 길을 척척 찾아가는데”라며 의기소침했던 네가 꿈을 찾았다니 덩달아 마음이 개여. 그 길이 비록 쉽지 않고 멀더라도 기뻐서 신나서 하는 여정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조금은 더 이모가 큰사람으로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어느새 몸도 나보다 자라 내가 안기는 느낌이 드니 이를 어쩌지. 너도 <거짓말> 읽어보면 알겠지만 주인공의 말이 오락가락해. 선호하는 것과 혐오하는 것을 분명히 가르고 구분짓지만 어느 부분에선 경계가 애매해지고 뒤집혀. 자기소신과 철학을 찾아가는 중이기에 그런 궤변조차 귀엽게 들려. 귀여운 시간이야.
주인공이 문학을 친구 삼다 인간 친구로 그 폭을 넓혀 '인간 프로작'을 만나니까 기뻐. 저렇게 해박하고 고급진 취향을 지닌 조카가 있다면 어떨까 아주 잠시 상상해봤는데... 아마 별로겠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함께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하는 너의 성향과 에너지가 좀더 끌리네. 바다처럼 푸르게 찰랑거릴 너의 오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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