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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는 대부분 내가 사랑하는, 혹은 가까운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던 때였다. 지금은 그 고통조차 흐릿해진 지난날이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무진장 애썼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노력은 늘 실패했지만 말이다.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타인이란 애초에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이며 누군가를 억지로 이해하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다는 교훈이다.
이런저런 경험의 결정체로서의 나는 이제 적당히 선을 긋고 물러서기를 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도 잘하고, ‘그러시든지’도 잘한다. 이런 태도가 나쁜가. 적어도 나는 평온을 얻었다.
앤드류 포터의 장편소설 『상상 속의 삶』을 읽는 내내, 뒷 내용이 궁금해서 술술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 한켠이 조금 불편했다. 아마도 내가 어렵게 내려놓은 질문을 이 소설이 다시 끌어올리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멀어졌던 관계를, 이 소설은 끝까지 따라가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주인공 스티븐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더듬어 나선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데에도 단계가 있다면, 스티븐은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나아간 사람처럼 보인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과거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사랑과 자신이 아버지에게 품었던 사랑, 애틋함과 그리움, 오랫동안 혼자 간직해 온 죄의식 같은 것이 뒤엉켜 있다. 여기에 우리 정서로는 ‘천륜’이라고 부름직한, 아버지와 자신이 어딘가 깊은 곳에서 이어져 있다는 감각도 더해진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의 삶을 더듬는 것은 단순히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 위기가 닥쳤다고 느끼는 순간,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은 곧 자기 삶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된다. 아버지의 과거를 파고들수록 그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되묻게 된다.
다시 만난 아버지의 모습은 스티븐이 상상했을 가장 두려운 모습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마주한 것은 용기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이해해보려는 그의 시도는 성공했는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의 과정까지 무의미했던 것도 아니다.
나도 때때로 내가 누렸다면 좋았을 삶을 상상해 볼 때가 있다. 그러나 인생은 늘 돌이킬 수 없다. 상상 속의 삶은 내가 누리지 못했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다.’
아버지가 남긴 프루스트의 이 문장은 어떤 의미일까. 기억은 미화된다는 뜻처럼도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낙원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현실을 낙원이라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정한 낙원은 상상 속의 삶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누릴 수 없기에, 이미 잃어버렸기에, 혹은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비로소 낙원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낙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대신, 상실을 품은 채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어른의 인생인가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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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않기란 어렵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써도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비슷한 행동을 한다. 본인은 다르게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제3자가 보기에 그 흔적을 쫓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앤드루 포터의 신작 『상상 속의 삶』은 스티븐으로 하여금 40년 전에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여정을 통해 아버지를 비난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소설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삶의 큰 축이다.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자랐던 과정을 통해 성격이 형성된다. 삶의 방향까지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
스티븐은 아내 앨리슨과 별거에 들어서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되면서도 왜 그는 아버지를 찾으려 하는가. 자기 모습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흔적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가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들을 찾아다닌다. 그들에게 들었던 말은 왜 더 일찍 아버지를 찾지 않았느냐는 거였다. 스티븐은 아버지가 사라진 후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꼈다. 아버지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풍경을 떠올린다.
스티븐에게 아버지는 수영장이 있는 집 뒷마당에서 열린 디너 파티다. 대학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교수와 가족들이 참석하여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파티를 떠올리면 늘 데릭 에번슨이 떠올랐다. 종신교수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집안에 들어오지 않고 카바나에 머물렀던 아버지.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장면들이다. 어머니는 그 장면을 보고 울음을 삼켰고, 술을 마셨다. 어머니를 외롭게 했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흔적을 쫓으려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의 책을 살폈다. 아버지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게 해줄 단서 하나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를 외롭게 했던 아버지, 그러나 뛰어난 대학교수였으며 교수들에게 좋은 동료였다. 종신 교수직에서 밀려나 혹은 다른 이유로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던 듯하다. 무엇보다 스티븐의 말이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소설에서는 스티비 닉스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다소 중성적인 목소리, 몽환적인 목소리를 가졌다. 어렸을 적 스티븐이 좋아했고, 자주 들었던 노래다. 아버지와 데릭 에번슨이 들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스티비 닉스의 음악을 따라 과거의 시간이 흘러간다. 아버지와 데릭 에번슨, 그리고 스티븐의 과거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살아있을까. 아버지의 동료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데 진실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스티븐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비로소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자기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열한 살 스티븐의 눈에 비쳤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이가 된 스티븐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달랐다. 아무래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에게 건넸던 상처의 말, 스스로 용서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스티븐이 아버지의 삶을 상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가 종신교수에 임용되고, 사라지지 않았던, 어머니와 스티븐의 곁에서 함께 살았던 삶이었다. 과거를 바꾸고 싶은 자의 염원이 담겨있는 장면이었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고, 아픔과 상처는 존재하지 않았던 삶을 꿈꾸지만, 결국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는 여정이었다. 그가 따뜻하고도 행복한 풍경이라고 기억했던 모든 장면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가 부모님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알 뿐이다. 불완전함을 간직한 인간이라는 자꾸 잊는다. 비로소 그는 삶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좀 더 나다운 삶에 매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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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정말 오랜만의 장편이었는데 첫 장편보다 훨씬 좋았고 작가의 다른 단편집들과 같은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와인 째즈 수영장 미국의 느슨함 모든 느낌들이 그대로 느껴졌고 그 안에서 희미한 기억들과 살아보지 못한 존재하지도 않은 삶의 상실에 대한 감각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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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어머니의 일기를 읽어보다가 겪은 일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었다. 일기의 절반 정도는 알고 싶은 내용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쯤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고 앨리슨은 말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이미지가, 적어도 자신이 늘 간직했던 어머니의 이미지가 축소되고 변했다고 느꼈다고 했다...” (p.11) 위의 문장들은 소설의 첫 번째 문단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녀는 나의 아내인데, 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하는 나의 프로젝트 진행을 두고 위와 같이 경고한다. 이 문구를 보자마자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굳게 닫힌 내 사무실 맨 아래 서랍에 놓인 십여 권의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일 년 하고도 이 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지만 나는 그 다이어리들을 읽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 앨리슨은 요즘 내가 그렇게 불행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와 관련한 풀리지 않은 의문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늘 그것이 문제였다고 대답했다. 생각이 어디로 흐르든 결국에는 언제나 그 문제로 돌아간다고...” (pp.211~212) 소설 속에서 나의 아버지는 내가 십대 초반이던 무렵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대학 교수였고 종신직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에게는 약간의 조현병 증세가 있었고, 커밍아웃하지 않은 동성애자였다. 엄마는 그 사실을 알았고 나도 은연 중에 느끼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의 상대는 데릭 에번슨이었고 그 또한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아버지를 심사하는 이들도 아버지에 대해 알았다. “...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 그리고 이십대와 삼십대 시절 내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내게 아이가 생겨서일 수도 있고, 세월이 흘러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 모두 타고난 결함이 있기에 이기심이나 그른 결정, 잘못된 판단과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아팠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후의 긴 세월에 대해서는 설명하기도 용서하기도 더 힘들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해냈다. 아니, 용서하지는 못했더라도 받아들이긴 했다―그 세월은 내게 수수께끼이며, 그래서 내가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pp.291~292) 아버지는 심사에서 탈락한 이후에는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렸다. 자신을 탈락시킨 이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자신의 학생들이 집회를 열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한탄하였고 때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교수직에서 당장 물러나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어린 나를 데리고 파티에 갔고 나를 잊었다. 엄마는 이를 용서하지 않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아예 사라졌다.
“... 나는 내가 대체로 이성애자라고 꽤 확신하지만 차우를 추억할 때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는 내 첫사랑이었다고. 내가 욕망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절에 처음으로 욕망했던 사람이었다고. 차우에게는 영혼의 동반자로서, 가장 친한 친구로서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앨리슨 역시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이―있었지만 문제는 그가 실재하지 않았다는 것, 혹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현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점점 더 내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 믿을 수 없는 기억의 산물,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라 원했던 것의 이상화된 모습이 되었다. 그는, 우리가 죽은 이들을 두고 종종 그러듯이, 기억 속에서 미화되었고, 그래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되었다.” (pp.332~333)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든다. 과거의 나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는 이들은 사라진 아버지와 고통 받는 어머니 그리고 친구인 차우이다. 소설 속의 나는 아직 2차 성징이 시작되기 전이거나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보여진다. 어렴풋하게 아버지의 성정체성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차우를 향한 자신의 어떤 욕망을 그것에 겹쳐 보려 하는 것도 같다. 결국 차우와는 헤어졌고, 나중에 차우가 십대 중반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아버지가 느긋하고 쾌활했다고 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수줍고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유머 감각이 탁월한 너그러운 사람인데, 다른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도 데릭도 사랑했고, 학생들도 나도 사랑했지만 우리모두에게 각기 다르게 행동했다. 우리 모두가 아버지의 다른 면을 보고 퍼즐의 다른 조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 중 누가 아버지의 진정한 면을 보았을까? 글쎄, 바로 그것이 항상 의문이었다.” (p.406) 소설은 당시 아버지와 교류하였던 아버지의 친구들 그리고 아버지의 동생을 만나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버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나는 그 작업을 완수하였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아버지가 남긴 것들은 있지만 아버지는 이제 없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고 났더니 더욱 아버지가 남긴 다이어리를 펼칠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낙원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버지는 서재 책상 앞 벽에 프루스트의 다음 구절을 적은 작은 쪽지를 우리에게 남겼다. 진정한 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다. 나는 언제나 이 구절을 어머니와 나에게 남긴 사과라고, 자신이 우리를 저버렸음을 인정하는 글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것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남겼을 가능성도 있다.』 (p.423)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 민은영 역 / 상상 속의 삶 (The Imagined Life) / 문학동네 / 442쪽 / 2026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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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스티븐의 아버지는 어릴때 갑자기 사라졌는데 중년이 된 스티븐은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보기로 결심합니다. 아버지를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남겨진 기록들을 들춰보며 아버지의 삶을 알아갑니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담담한 작가의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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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재밌는데 뒤로 갈수록 약간 처지다가 잔잔한 여운으로 끝남. 킬링타임으로 읽어보면 좋을 거 같은 드라마틱하게 큰 사건이나 반전이 있지는 않아서 그냥 잔잔하게 읽기 좋음 아버지 개인의 행동이 다른 모든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