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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는 랩을 잘한다. 라임도 잘 맞추고 생각나는 말을 금방 노래로 만들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재미있는 재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성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지오를 놀리는 말까지 랩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성이는 재미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랩을 듣는 지오도 재미있었을까? 나는 『그런 사과 필요없어』를 읽으면서 내가 장난으로 한 말도 듣는 사람에게는 장난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지성이는 지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오는 착하고 말투도 차분하지만 눈물이 많았다. 피구를 하다가 공에 맞고 울자 지성이의 4학년 때 친구였던 지영이가 지오를 달래 준다. 지성이는 그것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 지오를 놀리는 노래를 만든다. 결국 선생님에게 걸려 사과 편지를 쓰게 되지만 지성이는 자기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광고에서 본 인공지능 ‘앵 작가’에게 사과 편지를 써 달라고 한다. 나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지성이가 좀 얄미웠다. 지오를 놀린 사람은 지성이인데 사과는 앵 작가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앵 작가는 금방 그럴듯한 편지를 써 줬지만 지오가 그 편지를 읽자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존댓말과 반말도 이상하게 섞여 있었다. 지성이는 편지를 건넸으니 사과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오는 사과를 받은 기분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더 기억에 남은 것은 그다음이었다. 지성이는 학원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다. 아이들은 지성이에 대한 사실이 아닌 말까지 하고 지오와 지오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한다. 버스에 탄 지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 아이들의 말과 자신이 지오를 놀렸던 랩이 겹쳐서 들린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지성이가 처음으로 자기가 했던 말을 듣는 사람의 자리에 서 본 것 같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놀릴 때는 한마디 장난처럼 느껴져도 그 말의 주인공이 내가 되면 전혀 다르게 들릴 것 같다. 지성이도 다른 아이들이 함부로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지오에게 했던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앵 작가와 대화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았다. 지성이는 앵 작가의 엄마 아빠 이름이 연구원이라고 하자 “이상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앵 작가의 눈이 조금 빨개진다. 지오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이상하다는 말을 하자 앵 작가에게 문제가 생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지성이는 사람을 자기 기준으로 너무 쉽게 ‘이상하다’고 정하는 것 같았다. 지오가 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지오의 어머니가 베트남 사람인 것도 이상하게 보고, 앵 작가의 가족도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것은 누가 정하는 걸까? 나와 다르면 이상한 걸까? 내가 지성이에게 “너는 랩으로 친구를 놀리는 이상한 아이야.”라고 말한다면 지성이도 기분이 나쁠 것이다. 지성이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자기가 속상해지고 나서 조금씩 달라진다. 나도 친구와 이야기하다 장난으로 놀릴 때가 있다. 나는 재미있어서 한 말인데 친구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이 정도 가지고 왜 그러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 필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가볍게 말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말을 한 사람의 마음보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이 더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지성이는 앵 작가가 써 준 글을 그대로 내는 대신 앵 작가의 질문에 자기가 직접 답하면서 다시 사과 편지를 쓴다. 그러면서 지영이가 왜 자신과 멀어졌는지도 알게 된다. 지성이는 게임을 하면서 거친 말을 자주 했고 지영이는 그런 지성이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것이다. 지성이는 지오 때문에 지영이를 빼앗겼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말도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이 부분이 지성이에게 꽤 충격이었을 것 같다. 계속 다른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았는데 자기에게도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왜 『그런 사과 필요없어』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과 편지에 어려운 말이 많이 들어가고 문장이 멋지다고 좋은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사과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하는 말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때문에 친구가 상처를 받고 나서 멋진 사과 편지를 쓰는 것보다 처음부터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말을 하기 전에 매번 오래 생각할 수는 없다. 친구와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장난이었어.”라고 끝내기보다 내가 한 말을 친구의 자리에서 한 번 들어 보고 싶다. 만약 이 말을 누가 나에게 했다면 나는 웃었을까? 웃을 수 없다면, 친구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성이는 자기 랩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려오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나는 가능하면 내 말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알아차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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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편지 써 줘.” 지성이는 지오에게 사과편지를 써야 하자 인공지능 사이트 ‘에고’의 앵작가에게 부탁한다. 앵작가는 금방 사과편지를 만들어 준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평소에 AI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과도 다른 사람에게 대신 써 달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지성이는 지오를 싫어한다. 원래 친했던 지영이가 5학년이 되면서 지오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지성이는 지오가 자기 친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지오를 놀리는 노래까지 만든다. 그러다 선생님께 걸려 사과편지를 쓰게 된다. 하지만 지성이는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대신 앵작가에게 부탁한다. 앵작가가 써 준 편지는 그럴듯했지만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 있어서 다시 써야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지오가 그 편지를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잘못한 친구가 AI에게 “사과편지 써 줘.”라고 해서 나온 글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나는 별로 받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 편지에는 친구의 글씨는 있을지 몰라도 친구의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성이가 처음부터 상황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성이는 지오가 지영이를 빼앗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지영이가 지성이와 멀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성이가 욕을 자주 하고 행동을 거칠게 해서 지영이가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성이가 먼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런데 AI는 지성이 대신 그 사실을 깨달아 줄 수 없었다. 아무리 멋진 사과문을 만들어 줘도 지성이가 왜 미안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 사과는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사과는 ‘미안해’라는 말을 잘 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앵작가도 사과문, 반성문, 사과편지를 대신 써 달라는 부탁을 너무 많이 받으면 두통을 느낀다는 점이다. 심지어 에고 사이트가 폐쇄되고 뉴스까지 나온다. AI가 두통을 느낀다는 설정이 신기하면서도 웃겼다.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사과와 반성까지 앵작가에게 자꾸 떠넘겼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만약 AI가 진짜 말을 할 수 있다면 “왜 네가 잘못하고 사과는 내가 해야 해?”라고 따질 것 같았다. 지성이가 좋아하는 쏘쏘의 말도 기억에 남았다. 처음에는 랩과 음악은 자유라고 했지만, 나보다 약하고 힘든 사람을 저격해서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한다. 지성이가 지오를 놀리는 노래를 만든 것도 지성이에게는 장난이나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노래를 듣는 지오에게는 상처가 된다.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도 무언가를 남긴다. 그래서 잘못된 말을 했다면 그 뒤의 사과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나는 지성이 아빠가 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는 글도 재미있었다. 아이들은 ‘심심한’이라는 말을 우리가 흔히 쓰는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다’는 뜻으로 생각해 수군거린다. 하지만 여기에서 ‘심심한 사과’는 마음 깊이 사과한다는 뜻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사과에서는 단어 하나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어려운 말을 정확하게 사용해도 마음에도 없는 사과라면 좋은 사과는 아닐 것이다. 반대로 조금 서툴게 써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직접 쓴 글이라면 받는 사람에게 더 잘 전해질 것 같다. 결국 지성이는 자기 힘으로 사과편지를 쓴다. 그 편지를 읽은 지오는 울면서 사실 자신과 지영이는 지성이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에 앵작가가 써 준 편지와 마지막에 지성이가 직접 쓴 편지가 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편지는 문장을 AI가 만들었지만 마지막 편지는 미안한 이유를 지성이가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평소 AI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본다. 모르는 단어를 찾거나 궁금한 정보를 알아볼 때는 정말 편리하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일에 AI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AI가 잘하는 일이 많아진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까지 전부 맡겨도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때는 더 그렇다. 만약 내가 친구와 싸우고 사과편지를 써야 하는데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AI에게 사과편지를 통째로 써 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쓴 글에서 이상한 문장을 찾아 달라고 하거나 맞춤법을 물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왜 미안한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내가 생각해서 써야 한다. 그건 AI가 아니라 잘못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을 보고 ‘사과가 왜 필요 없다는 거지?’가 궁금했다. 이제는 어떤 사과가 필요 없다는 뜻인지 알 것 같다. 잘못한 사람의 마음은 빠져 있고 멋진 문장만 들어 있는 사과라면 나도 그런 사과는 필요 없다. AI는 내 문장을 고쳐 줄 수 있다. 맞춤법도 알려 줄 수 있고 더 좋은 표현도 찾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친구에게 정말 전해야 하는 한마디까지 대신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적어도 이 말만큼은 내가 직접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