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제공
때로 현대의 SF와 사실주의는 상당히 닮아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세상에 존재하면서 때로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행동한다. 또는 현실적인 세상을 배경으로 굉장히 비현실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에 실린 단편들도 그런 틈새가 잘 드러나 있었다. 어느 단편에서는 로봇이나 인간 멸종을 그려내기도 하고 어느 단편에서는 난민이나 장애인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이혼」이 굉장히 재미있었고 가장 매력적이었다. 에이든의 행동이나 벨리사의 감정, 로봇(안드로이드?)의 인간적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해주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와중에도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에이든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는 시민단체들의 묘사였다. 로봇을 질투하고 시기했으면서 막상 로봇과 이혼하기 싫은 늙은 여성이 나타나자 그 로봇에 이입해서 구해 주고 싶어한다거나, 그걸 위해 로봇을 만든 회사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남성 모욕 사례를 찾아내는 ‘일부 남성’들의 단체. 이 단편은 SF가 아니라 필히 리얼리즘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 페이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한참이나 깔깔 웃었다. 이렇게 세련된 풍자라니! 정광모의 글은 시민 복지를 위해 광장에 현수막으로 걸려야 마땅하다.
「멸종을 기록하는 방법」은 흥미로운 동시에 다소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느 지구의 미래, 긴꼬리원숭이족이 진화해 ‘긴꼬리족’이 문명을 이룩한다. 연구원 카말이 고대 지성체는 짧은 꼬리나 맨 엉덩이였을까 궁금해하는 순간부터 도자기 판을 해독하는 대목까지 매 문장마다 소름이 돋았다. 사실상 ‘환경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아주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주제인데도 정광모는 이 단편을 통해 너무나도 세련된 방식으로 그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단편집에서 「첫 이혼」, 「휴먼 장르」, 「멸종을 기록하는 방법」은 SF로 분류되겠지만 그 어떤 리얼리즘 소설보다도 현실을 날카롭게, 그리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글이 깔끔하고 쉽게 읽힌다. 오랫동안 여러 번 파헤쳐야 하는 글도 좋지만 SF는 쉽게 읽히고 오래 생각나는 글이 좋다고 생각한다.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동시에 섬세하고 다정하다. 다시 곱씹으면 굉장히 직관적이고 날카롭다고 느껴질 만큼 현실과 닿아 있다. 사람을 출신이나 나이, 성별 따위로 판가름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임을 알지만, 솔직히 말해 젊은 여성 독자들은 글을 읽을 때 ‘촉’이 온다. 이건 남자가 쓴 글이구나… 이건 기성세대가 쓴 글이구나… . 그러나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는 소위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지역 출신 기성세대 남성의 글이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트렌디했다. 그가 말하는 SF와 리얼리즘은 타인의 불행을 전시하거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으로, 광장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가는 것을 지향한다. 그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차기작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서평을 마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멸종과이혼의연대기 #정광모 #산지니 #공삼_북리뷰 #SF #리얼리즘 #소설 #한국소설 #단편집 #책추천 #책리뷰 #책스타 #책스타그램 #북리뷰 #북스타 #북스타그램 #서평 #서평단 #SF소설추천 |
|
✔️SF인 듯, 리얼리즘인 듯,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였다. - 첫 이혼 - 봄을 걷다 - 휴먼 장르 - 멸종을 기록하는 방법 - 유라시아 탑승권 - 베팅 - 마지막 전화 가상처럼 느껴지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들... 현실처럼 읽히지만 미래? 우주? 알수 없는 장면들... 로봇과 인간의 결혼, AI 로봇을 위한 휴먼 장르 소설, 부산-유라시아 횡단 열차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 다른 소설들이었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 ’첫 이혼‘에서는 여자 인간과 남자 로봇의 결혼. 이혼이 시스템화되지 않은 남편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다. ‘왜?’ 라는 의문과 ‘로봇과 인간이 결혼이 아니라, 남자로봇과 여자인간을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들... 📍소설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소설. 충격과 울림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
최근들어 노안이 진행되는지 가까운 거리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몇번의 망설임 끝에 다초점 안경을 맞추고 나서야 책을 읽을때 꽤나 불편했던 점이 어느정도 해소 되었다. 정광모님의 소설집 첫번째 작품, "첫이혼" 을 읽으면서 "눈으로 본다"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이 넘처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 결정하고 행동하는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반면 눈을 감고서도 더 선명하게 느낌으로 가까이 있음을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32~33페이지 첫번째 소설의 한구절이다. "ᆢ우주와 하나 되기를 추구하는 히차콥 종교 수행자는 세속에서 30년 동안 의무를 다한 후에 출가해서 수행을 한다. 수행자가 첫번째 경지에 오르면 스스로 눈을 멀게하고 두번째 경지에 오르면 스스로 귀를 멀게하고 세번째 경지에 오르면 스스로 목소리를 없앤다. 오직 내면의 소리와 우주의 소리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다 ᆢ" 두번째 소설, "봄을 걷다" 중 시각장애인이 봄을 느끼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특히 눈으로 보면 봄을 잘 보지 못한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52~53페이지, "봄은 발의 감각에서 먼저 느껴질까? 손과 얼굴을 툭툭치고 지나가는 바람에서 앞서 오는 것일까?ᆢ눈이 보이던 시절에 봄은 내게 어떻게 다가왔던가. 여자들의 가볍고 다채로운 빛으로 물든 옷에서 봄을 본 것 같다. 봄은 노란 개나리와 붉은 진달래를 통해 내 주위로 번졌는지도 모른다.ᆢ눈이 잘 보이면 계절도 시각의 영역에서만 작동하는지도 모른다ᆢ그러니까 눈으로 봄을 보던 때에 나는 봄에 몸을 제대로 담지 못했던 것이다" 세번째 작품 "휴먼 장르"를 읽다보니 최근 애용하는 쳇지피티가 떠오른다. 질문과 동시에 방대한 양의 자료와 동영상을 불러온다. 처리속도와 답변의 명쾌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AI 로봇연대에 대한 "소설과 예술공급"이란 소재가 기발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234~235페이지,작가의 말 중 몇구절을 옮겨 본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2024년 12월에 일어난 비상계엄 이후의 사태는 그야말로 소설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건의 전개는 예상을 뛰어넘고 관련된 인물들의 개성은 독특하며 캐릭터의 선도 굵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까지 반전을 오가는 장엄함은 웬만한 소설의 전개와 절정으로는 흉내 내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같이 소설같은 현실 속에 살아가는 건 아닐까? 236~237페이지 "우리가 현실로 부르는 현실은 두뇌가 만들어낸 허구에 가깝다. 우리 두뇌가 탁월하게 전기신호와 화학신호를 이용해 현실을 모사하기에 우리는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