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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사실은 두 개의 세계가 서로를 번역해가는 일이라는 것을. 남편은 영국 사람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느 쪽도 아니면서 동시에 두 쪽 모두다. 아직 한국말과 영어를 뒤섞어 옹알거리는 첫째 아리아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의 몸 안에 두 개의 언어가, 두 개의 감수성이, 두 개의 세계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철학적인 일이다. '밥을 몇 시에 먹이느냐'가 아니라, '이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이냐'는 질문 앞에서 저자와 남편은 종종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간극을 번역하는 일이, 육아의 절반쯤 된다는 것도. 아이가 과자를 더 달라고 울면 저자는 빠르게 해결하려 한다. '안 돼'라는 말을 반듯하게 세우고, 그래도 울면 목소리에 단호함을 담는다. 결론을 향해 최단 거리로 달려가는 것, 그것이 저자가 알고 있는 방식이었다. 남편은 달랐다. 아이의 눈높이로 앉아 다정하게 과자를 두 개 건네며 말한다. '이거 먹고 조금 있다가 또 줄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저게 될 리가 없는데. 그런데 된다. 아이는 잠시 투정을 부리다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어느새 과자를 더 달라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린다. 나중에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어.' 그 말이 아이에게 한 말인지, 저자에게 한 말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온 저자에게 '기다림'은 미덕이기보다 불안에 가까웠다. 빠를수록 좋고, 남보다 앞서야 안심이 되는 사회에서, 기다리는 것은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속도를 배우고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이는 자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는 배운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 느린 속도가, 아이에게는 더 깊은 언어로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 머리에 붉은 혈관종이 생겼을 때, 저자는 그것을 '흠'으로 보았다.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게 생겼을까, 속으로 자책했고, 밖에 나갈 때면 모자를 씌웠다. 카페에서 낯선 사람들이 아이를 보다가 혈관종을 발견하고 '다쳤어요?'라고 묻는 말들이 쌓일수록, 마음 한쪽이 점점 작아졌다. 영국에 갔을 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버스에서도, 공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사람들은 아이에게 웃어주었지만, 아이의 머리에 있는 붉은 자국에 대해서는 눈길을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깨달았다. 타인의 몸을 평가하지 않는 것, 다름을 지적하지 않는 것, 그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남편도 그런 사람이다. 결혼한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외모에 대해 평가하거나 지적한 적이 없다. 출산 후 달라진 몸의 선, 배 위에 남은 수술 흔적,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그저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었다. 처음에는 그 다정함이 믿기지 않았다. 이 사람이 진심인가, 싶었다. 그러나 살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오랫동안 내 몸에 들이밀었던 빡빡한 기준을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누군가의 다름을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은 가정일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를, 아이들은 말 없이 배운다. 평가하지 않는 눈, 그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언어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종종 말한다. '완벽하면 재미없어.' 처음엔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렸다. 오래 생각하고 나서야,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철학임을 알았다. 우리는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려 한다. 제때 먹이고, 제때 재우고, 실수 없이 훈육하고, 상처 없이 자라게 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는 완벽한 환경에서 자라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부모와 함께 자란다. 엄마가 화를 내는 날도 있고, 아빠가 놓치는 것도 있고, 서로 다른 방식 때문에 두 사람이 조용히 갈등하는 날도 있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실수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아빠가 화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방향을 찾아가는 것, 이런 장면들이 아이의 안에 쌓여, 언젠가 아이 자신의 언어가 될 것이다. 생일 카드에 남편이 썼다. '논란 더 많이 만드세요.' 그 문장이 왜 그렇게 뭉클했는지, 처음엔 설명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것은 눈치 보지 말고,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나답게 살라는 말이었다. 완벽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남과 달라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네가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고. 아리아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영어로 '머미'라고 부른다. 흥선대원군처럼 한식만 고집하면서도, 영국 국기를 보면 '영국!'이라고 외친다.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음식 문화, 이 모순들이 아리아 안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소용돌이치고 있다. 가족은 매일 번역을 한다. 한국어와 영어 사이의 번역만이 아니다. 빠름과 느림, 직설과 에두름, 경쟁과 여유, 엄숙함과 유머, 두 세계의 다른 언어들을 서로에게 옮기는 일이 우리의 일상이다. 완벽하게 번역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번역하다 보면 원래의 뜻이 조금 달라지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그 어긋남 속에서, 우리만의 세 번째 언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의 남편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얼굴이 작다'고 말하자 놀리는 건가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영국에서 '저 외국인 말이야'라고 했다가, '쥬쥬도 외국인이지'라는 대답을 들었다. 어느 누구도 당연한 기준이 될 수 없는 곳. 우리 가족은 조금 그런 곳을 닮아가고 있다. 어느 쪽도 기준이 아니고, 그래서 아이들은 두 세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자주 드는 생각은,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의 아리아가 오늘의 아리아가 아니고, 오늘의 아리아는 내일이면 또 다른 아리아가 된다. 두 세계 사이에서 자라는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자는 오늘도 번역을 한다. 서투르게, 그러나 정성껏 언제나 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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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육아번역기 #임현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두 세계 사이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솔직히, 제목보다 부제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나도 육아를 해봤지만, 육아란 실제 두세계 그 이상의 다채로운 세계가 만나 이루어지는 전인류 문화적 집합체이지 않을까, 혼자 감히 생각해본다. 단순히 엄마 아빠를 넘어서 그 부모와 주변 친인척, 그리고 지인과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까지. 육아의 손길은 끝도없이 이어지는 연결고리 안에서 얼마나 그 균형점을 잘 잡고 하루하루를 버티느냐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새로운 세상과 만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육아이고,그런 시간이 쌓이며 서로 다르고 불분명하다고 생각됐던 흐름이 비로소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일종에, 타협 내지는 적응. 그러면서 누그러지고 깨닫고 또 고민하고 한발 물러서는, 이 세상의 이치를 부모는 아이 덕분에 제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하지만 이 과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흥미롭기도 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신기한 부분이다. 물론, 같은 환경과 유사한 사회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그 간극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우리가 보통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하나의 세계라고 지칭한다고 생각했을 때, 누구나 서로 다른 삶을 최소 20년 이상 살아낸 후의 만남은 당연히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수준의 낯설고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함께 살아낸 가족도 그 속내를 다 알 수 없는 법인데, 전혀 함께하지 않았던 이외의 만남은 오죽할까. 하지만 이 책의 가정은 진짜 말 그대로 세계와 세계가 만난 것이다. 한국과 영국. 정말 세계와 세계의 만남이고 두 세계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이 두 세계가 맞아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듯. "이게 영국이지."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은 그에게 자유로운 멋이 느껴졌다. 아마 누구도 그에게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평가하지 않는 말.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일 테다.(27쪽) 다니엘다운 말이었다. 불안의 고리 앞에서 이 때의 다짐을 다시 떠올렬본다. 원한다면 도전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기. 게 우리의 역할을 테다.(81쪽) 이 책을 천천히 읽다보면 느낌이 온다. 이들의 두 세계가 사실은 어느 순간 하나의 세계로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을. 이들이 보이는 가장 중요한 장점이 바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었다. 다르지만 서로의 생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것, 다른 부분을 오히려 존중하고 서로의 다른 점을 오히려 흥미롭게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다른 두 세계가 전혀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육아가 분명 쉽지 않을 것이고 매 순간순간 문득문득, 육아의 고달픔과 힘듦에 지칠 수밖에 없을텐데도, 이들 부분에 대한 느낌은, 선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에게 쉽게 화낼 줄 모를 것이고, 그러면서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다른 국적의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내가 속한 세계가 하나 더 생기는 일이었다.(136쪽) 나의 세계에 다른 세계 하나를 더 보태는 일.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의 세계 하나 감당하기도 벅찰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른 세계가 생겼다는 것에 이들은 무척 긍정적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아니라, 나를 품어줄 수 있는 세계를 만난 것에 대한 기쁨. 그 기쁨을 고스란히 이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가족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쏟고 있는 중인 것이다. 육아가 분명 매운 맛일텐데, 이토록 순한 맛으로 그려낼 수 있다니, 놀라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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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영역은 낯설다. 절대적으로 나와 거리가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과 자신의 아이를 육아한다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상상하지 못한 다른 세계(9)'는 나와 타인의 삶이 만나는 모든 순간 부딪힌다. 그래서 갈등도 있고 예상치 못한 즐거움도 있겠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엿보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얼마나 치열하게 다투고 따뜻하게 이해하려 했을까 읽기 전부터 기대되어 웃음이 나왔다. 이 세계는 두 개의 문화가 서로 섞여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뭐가 더 낫다 아니다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성적으로. 하지만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것에 기울지도 모른다. 책이 한국에서의 생활에 완벽에 대한 추구, 타인에 대한 의식, 외모에 대한 압박 이야기로 시작할 때, 반박하고 싶어지곤 했다. 한국스럽게 사는 일에 아무 비판도 불만도 없이 절여져있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맞아, 우리 사회의 병폐야.'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외국이라고 해서 더 낫기만 한 것은 아닐텐데? 갈등이 일었다. " 과연 우리는 자유롭게 육아 철학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각자의 성장 배경과 문화에 묶여 있는 것일까. 당연하고 옳다고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각자의 문화 안에서만 통용되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우리 각각의 방식을 보편적인 기준이라 착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107" 이와 비슷한 고민이 이 가족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 살림에서 깔끔함과 정리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은 좀체 타협을 보기 쉽지 않다. 67"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한영 육아 번역기'라기보다는 영국식 육아 적용기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기존의 생애 과정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영국의 생활과 문화에서 느낀 장점과 새로움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많이 받아들인 티가 났다. '화이트 인테리어(191)'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게 유행이라서, 되팔기좋으라고가 아니라 확실히 집이 밝고 넓어보이고 더 깨끗해보이기 때문이라는 장점을 말하고 싶었다. 옅은 녹색, 연분홍색, 캐릭터벽지, 포인트벽지 많은 디자인을 거쳐왔지만 크림과 흰색은 가장 질리지 않고 안정감을 주는 선택이었다. 육아서를 읽고선 왜 인테리어 한 마디에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하냐고 할 수 있지만, 읽는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말이었다. 획일적이고 지나치게 기준을 세워둔 듯해 답답하게 여겨졌을지 모르지만, 고심해서 효율이 가장 좋은 길을 요령껏 가려는 노력이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흙에서 뒹굴고 놀아도 좋고, 유아용 세제를 구분해서 쓰지 않아도 좋다. 무균의 상태로 배양하듯 자라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집안에서 신발을 신는 문화에서 아이가 기어다니는 것(83)은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이것만큼은 '영국식 돌봄'이 유연하고 하는 수식도 아무 소용없이 양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밖에서는 바닥도 굴러다니고 강아지랑 뒹굴고 놀 수 있지, 하지만 신발을 신고 다니는 집안에선? 안된다. " 일터로 향하는 엄마들은 매일 아이들과 작은 이별을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하더라도 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데는 끝없는 고민이 따른다. 하지만 내가 나의 엄마를 향해 가졌던 생각을 떠올려보면 일을 계속 할 이유가 선명해진다. 나도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날 위해 너무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으니까. 95" K 할머니 육아에 대해 예찬하는 저자이면서 자신의 삶과 가정의 균형을 조절하고 있는 여성으로서 황혼육아, 돌봄 노동을 부모 세대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산후우울증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154)을 이야기하면서 그 결말이 친정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156)으로 맺어진 것은 현실적이면서도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가 없는 현실에 대해 말할 때 순간적으로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쉽긴 할텐데 싶었다. 그리고 곧 자신이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육아하는 아빠들이 아이와 둘이 외출을 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혹은 싱글 대디라면 매번 이런 상황을 마주하진 않을까. 44" 사실 영국 펍에 아기 의자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썩 괜찮게 다가오진 않았다. 영국의 펍은 그 의미나 기능이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한국식으로 생각하기에 술집에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 우리 음주 문화를 생각했을때 그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마저도 육아를 하면서 잠깐 압박감을 해소하고 저녁시간의 여유를 즐기고픈 마음을 몰라주는 고리타분한 생각일 수 있다.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현실을 담은 조언을 남겨주길 바란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있어 그 점이 재밌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게 읽었다. 중반이 지나면서는 연애와 가족 이야기의 비중도 높아지면서 전체적으로 이들이 어떻게 가족이 되었고, 되어갔는가를 관람하듯이 읽었다. 전문적인 비교나 분석은 없었지만 저자가 굉장히 유연하고 열린 태도로 한국과 영국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반영하여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결혼과 육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영 육아 번역기'라는 제목이 재미있고 의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와 엮인 해프닝은 씁쓸했다. 소중한 누군가의 책에도 어쩔 수 없는 사건이 가끔은 끼어드는 법이다. 생활기반과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조금씩 닮은 넷이 되고,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과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으며 읽히길 바란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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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육아, 그리고 가정. 이 모든 것에 한 톨의 관심도 없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해 공감은커녕, 내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상상해 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파심을 미리 내비친다는 것은, 결국 그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의미한다. 저자인 임현주 아나운서와 남편 다니엘은 한국과 영국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삼아, 자신들만의 새로운 가정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들은 한국을 무조건 비난하지도, 영국을 맹목적으로 찬양하지도 않는다. 과거 자신을 키워준 부모의 양육 방식이나 복잡한 가족사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의 형성 과정에 집중할 뿐이다. 양육이라는 거대한 범주를 논하기에 앞서, 두 개인이 어떻게 삶을 대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각자의 문화를 공존시키는지 그 과정을 산뜻하게 펼쳐 보인다.
흔히 육아는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부모와 보조 양육자들이 쏟아붓는 노고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서서히 쇠락해가는 어른들이 뒤쫓기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려는 성인과 호기심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아이. 이들이 마주하는 수많은 처음의 순간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 결이 올바르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이 부부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면면을 인정하고 조율해 나가는 에피소드들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는 태도가 좋았다. 기혼자들의 해묵은 조언들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정립해 나가는 모습에서, 관계의 문법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것. 단순히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화를 해석하고 소통하는 방식에서 이들이 보여준 번역의 과정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지향점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기록이 관계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따뜻한 선례가 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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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는 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세계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내는 일이라고 한다. 임현주의 <한영 육아 번역기>는 한국과 영국처럼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란 두 사람이 부모라는 공통의 배역을 맡으며 생기는 일을 담아내었다. 연애, 결혼 그리고 육아처럼 큰 굴곡속에서도 서로 다른 삶을 '번역'해 나가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오역들마저 사랑의 일부였음을 고백한다. 완벽한 이해라는 불가능한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또 용기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처음엔 육아에 국한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책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물론 부부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육아이지만 그 부피가 너무 크지는 않아야 한다는 균형감각이 드러났다.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나’라는 섬이 통째로 잠기지 않도록 부부만의 공간을 사수하고 육아와 무관한 대화를 나누며 ‘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한다. 아이가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가꾸어 나가는 독립적인 어른의 뒷모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가 정해둔 ‘좋은 부모’라는 도달 불가능한 이상향에 매몰되기보다, 적어도 아이에게 ‘나쁜 어른’의 본보기가 되지 않겠다는 정직한 다짐이 드러난다.(102P) 이 책에서 드러나는 지점은 한국 사회의 절대적 기준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튀지 않는' 무난함을 지향하며, 그 기준에서 벗어날 때 불안을 느낀다. 스스로에게도 버겁다고 느끼는 그 엄격한 잣대를 타인에게도 똑같이 들이대며, 서로에게 일말의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는 삭막함 속에서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무난함'이라는 압박과 그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드러난다. 한국 사회의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나 타인의 삶에 쉽게 틈입하는 오지랖 섞인 시선들 속에서 평가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육아를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물론 TV 속 육아는 상당히 달콤하고 현실의 육아는 거친 핸드헬드로 찍어낸 리얼리즘 다큐멘터리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투박하고 불완전한 화면 속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따뜻함과 사랑의 가치가 담겨 있다. 마냥 두렵고 어려울 것 같았던 육아를 그리고 아이들을,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인상깊다. 이처럼 육아는 아이를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미성숙함과 불안을 마주하고 이를 정성껏 '번역'해내는 일이라고 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영화처럼 화려한 미장센을 갖추고 오지 않으며, 때로는 어설프고 웃기기까지 한 현실의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124P). 그 불완전함을 긍정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저자는 그 인내의 시간 속에서 부모와 아이가 각자의 세계를 지키며 나란히 자라날 수 있다고 고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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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온갖 매체에서, 각종 책에서 육아에 관련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이기에 각자가 원하는 육아 방식도 그만큼 다르다. 그러다 보니 주변 친구부터 가족들까지 참견하기 제일 좋은 것 또한 육아의 세계이다. 하물며 나라가 다르다면 그 간극의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한국에서 자란 여자와 영국에서 자란 남자가 만나 가족이 되었고, 아이가 생기면서 서로의 차이는 더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가치관도, 생활 방식도 완전히 다른 시간을 보내온 두 사람은 한 집에서 서로 다른 삶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영국에는 노키즈존이라는 개념이 매우 생소하다고 한다. 영국은 펍에도 유아차를 옆에 두고 맥주를 마시는 엄마 아빠들이 있고, 부모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기저귀 갈이대가 설치된 화장실과 아기 의자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한국에서는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유아차는 밖에 두고 입장해야 하거나, 아예 입장부터 제한되는 곳도 많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노키즈존을 한두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부터 이렇게 다른 한국과 영국의 육아는 사고방식도 매우 다르다. 한국식 육아는 섬세한 보살핌에, 영국식 육아는 유연한 돌봄에 가까우니 말이다. 저자와 남편의 성격 또한 정반대에 가까운데, 감정이 화르륵 잘 불붙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쉽게 화내거나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 차분하게 생각을 이야기하는 편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한국과 영국을 넘나드는 집에서,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펼쳐진다.
이 책은 생후 5개월 된 딸을 안고 생방송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MBC 아나운서 임현주가 육아 고민과 결혼 생활을 담은 것이다. 저자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와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서로를 ‘번역하며’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을 겪어 내고 있다. 한 가정에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모든 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벌어진다는 뜻과도 같다. 그만큼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기쁘고 행복하고, 그러다가 또 불안해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게 되는 것이 육아의 세계이니 말이다. 저자는 육아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헤쳐나가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제의 아이는 오늘의 아이와 다르고, 육아에 정해진 정답도 없다. 한국과 영국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현실 육아기는 그런 점에서 누구나 겪어 봤을 만한 공감과 두 나라의 무수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드라마로 인해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들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부모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각자의 세계를 잘 지켜가며 조화롭게 관계를 만들어나갈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서로의 언어를 정성껏 번역하며,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함께 자라고 있는 이 예쁜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