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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슬픔에 관한 이야기만 담긴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은 단순히 슬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가족, 인간관계, 이별, 그리움, 위로처럼 우리의 삶을 이루는 다양한 감정을 시로 풀어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짧은 시 한 편에도 깊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화려한 표현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 읽는 동안 마치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사진 속에 있는 〈우리 엄마〉 라는 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짧은 시 구절만 봐도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전해져 마음이 뭉클했다. 또한 이 책은 한 번에 모두 읽기보다 하루에 한두 편씩 천천히 읽기에 좋은 시집이다. 같은 시라도 지금의 내 감정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종종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감정에도 이름을 붙이고,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읽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읽는 동안에는 조용히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 따뜻한 시집이었다 🌹 #우주서평단 #아티초크 #슬픔에게언어를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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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책을 만났다.
표지에는 테이트 모던 소장작인 배드민턴 치는 두 여인의 그림이 담겨 있다.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벌써 오래 머무르게 만드는 특별한 겉표지를 넘기면 검붉은 첫 면지가 나오는데, 다시 표지를 들춰보면 그 색이 그림 속 여인의 원피스 색과 같다는 걸 알게 된다.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매만졌는지, 그 작은 일치 하나로 짐작이 갔다. 내용은 시대와 나라를 아우르는 여러 나라의 여성 시인 100 명의 시로 이어진다. 이부터 어디서도 쉽게 구해 볼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에 감동을 받은 채로 첫페이지를 펼치게 된다.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또 한번 짙은 회색 위 김명순의 문장 —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 오래 눈에 머물렀다. 시인마다 짧은 소개와 삽화가 함께 실려, 시를 읽기 전 그 사람의 삶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여행길에도 챙기고 싶고, 흰머리가 성성해진 어느 날에도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표지에서 내지, 시 한 편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 초판한정양장본. 어쩜 이 대목까지도 이 책과 근사하게 어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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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은 세계 여성 시선집입니다. 제목처럼 입밖에 내지 못하고 가슴속에 고여있던 여성들의 슬픔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책입니다. 평소 시라는 장르가 어렵게 느껴졌던 이들에게 이 책은 낯선 시대와 나라의 경계를 허물고 다가오는 다정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입니다.
책의 구성은 친절합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시인에 대한 세밀한 설명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들의 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사실 지리적, 시대적 배경이 다른 외국 시인들의 문장이 다소 어색하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실려있는 시인의 고단했던 삶, 그들이 처했던 시대적 한계와 고뇌를 먼저 읽고 나면 시구들이 생생한 실체가 되어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단순히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한 여성이 온몸으로 겪었던 삶의 모습이자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임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저의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시는 “나는 혼자야”입니다. 시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세상은 참 넓어’라는 구절은 넓은 세상 속에서 개인이 느껴야 하는 고립감을 극대화합니다.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다정한 친구들이 있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외로움이 이토록 처절하면서도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광활한 세상 속에 홀로 서 있는 나의 모습이 더욱 작고 외롭게 느껴지지만 그 감정을 시라는 언어로 마주하는 순간 작은 위안이 찾아왔습니다.
시란 복잡미묘하고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일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여성 시인의 목소리는 슬픔에게 각기 다른 빛깔의 언어를 부여합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나의 상황을 그들의 문장에 비추어 보는 과정은 나의 내면을 가만히 보듬어주는 치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타인의 슬픔이 나의 슬픔과 만나 공명하여 나는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이름 모를 우울과 슬픔이 머물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감정들에게 어울리는 언어를 선물해 보시길 바랍니다. 시대를 초월한 시인들의 위로가 우리의 마음음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것입니다.
* @woojoos_story 진행으로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서평단 #슬픔에게언어를주자 #이루카 #아티초크 #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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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우주서평단을 통해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초판한정 양장본을 받았다. '슬픔에게 언어를 준다는 것은 형태 없는 고통이 비로소 '글'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며, 슬픔에 지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한다. 책을 받기 전에는 여성시인들의 시를 담는데 표지를 왜 배드민턴을 치는 두여인의 모습으로 했을까 궁금했는데 옮긴이의 글을 보고서 그 의미를 알았다. p.5~6 초판 한정 양장본의 덧표지에는 영국 유명 화가 데이비드 인쇼의 <배드민턴 게임>(1972~1973)이 실린다. 이 그림의 원제목은 토머스 하디의 연작 소네트<그녀가 그에게(She, to Him)>의 한 구절에서 빌려왔다. 인쇼의 그림속 두 여성은 황혼 무렵의 정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장면에서 셔틀콕은 공중 어딘가에 있고, 황혼은 이미 기울었다. 인쇼는 "서로 무관한 수많은 순간들을 한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그 한 순간에 더 보편적이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림 속 두 여성처럼, 수많은 '여성 작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이 있던 자리에 그들을 지탱한 언어가 있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여러나라의 여성시인 100명의 간단한 작가소개와 시 한편씩이 실려있다. 그 속에는 그들의 슬픔과 고독, 열정과 회환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데, 시 한편 한편을 읽다보면 다시금 책제목을 생각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지만 표현하기 어렵거나 싫을 수도 있는 감정들을 일단 말이나 언어로 드러내게 되면, 그 감정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일단 표현된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 감정들이 건너갈 수 있다. 스스로 삼켜야 하는 혼자만의 감정들이 형체를 가짐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언어로 바뀔수도 있는 것이다. 고독이나 슬픔조차 잊으려거나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누리고 표현할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여길 수 있으려면 일단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시집에 실린 여성들에게는, 현재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것들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woojoos_story님의 진행으로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티초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우주서평단 #슬픔에게언어를주자 #아티초크출판사 #김명순ㆍ브론테자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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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언어를주자 #도서협찬 ⠀ ⠀ 세계 여성 시인 100인의 슬픔과 열정과 고독의 연대기 ⠀ ⠀ ⠀ 세상엔 이렇게나 많은 시인들이 있는데 내가 펼쳐본 이 책에 아는 사람이라곤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억압과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시간에도 소신있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용기를 가진 시인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용기에 나 또한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사춘기 시절 시를 많이 읽었다. 친구에게 시집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나서 시집을 접한게 언젠가 싶을 정도로 시를 읽지 않았다. 중년의 나이에 다시 시를 접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것도 슬픔, 열정, 고독이라는 주제의 시라니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기이지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용기를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 ⠀ ⠀ ⠀ <에밀리 브론테> 슬픔이 슬픔에 맞닿을 수 있다면 ⠀ 슬픔이 슬픔에 맞닿을 수 있다면, 고통이 고통에 응답할 수 있다면, 어떤 연민이든 당신을 녹일 수 있다면, 지금 내게로 오십시오. ⠀ 더는 외로워질 수 없을 만큼 외롭고, 이보다 더 황량할 수는 없습니다. 닳고 닳은 내 심장은 이토록 세차게 고동쳐 당신 때문에 부서지고야 말 것입니다. ⠀ ⠀ 많은 시가 담겨 있었지만 그냥 이 시가 마음에 남았다. 어떤 마음을 이야기 하려는지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꿈틀거렸다. 조금 더 문해력이 넓어지고 난 뒤 이 시를 읽는다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시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려움을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을 전하고 싶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의 여성들의 용기가 나에게 전해지는 듯하다. ⠀ ⠀ ⠀ 우주님 진행으로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 ⠀ ⠀ ⠀ ⠀ #우주서평단 #아티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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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우주님(@woojoos_story) 진행, 아티초크(@artichokehouse)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 김명순·에밀리 브론테·샬럿 브론테·앤 브론테 외 96인 📙 아티초크
마음속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확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한때는 눈부셨지만 어느새 흐릿해진 꿈,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문득 되살아나는 기억,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뒤에도 조용히 남아 있는 서운함 같은 것들이다. 나는 그런 감정을 오래 붙들기보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를 읽으며,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는 먼저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인류 최초로 이름이 기록된 작가 엔헤두안나부터 브론테 자매, 에밀리 디킨슨, 김명순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성 시인 100명의 시와 생애를 한 권에 담았다. 사랑과 이별, 고독과 죽음, 출산과 자유, 억압과 저항을 지나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이어진다. 시인의 짧은 연대기와 초상이 시와 함께 실려 있어, 한 편의 작품을 읽는 일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만나는 경험으로 넓어진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슬픔과 상실을 다룬 무거운 시들이 주로 담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슬픔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슬픔은 사랑을 잃은 자리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재능과 욕망을 숨겨야 했던 시간이었다. 어떤 시에서는 고독이 견뎌야 할 아픔으로, 또 다른 시에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용한 방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슬픔을 하나의 감정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그 안에 놓인 분노와 욕망, 희망까지 함께 보여준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시는 〈여자의 꿈〉이었다. “비단은 닳아 없어지고, 레이스도 온데간데없고, 낯선 얼굴은 멀고 먼 곳으로 사라지고, 음악은 꺼져 버렸습니다, 영원히. 가슴속에 무언가만 남습니다…… 아프고 달콤하고 애타는 기억, 떠올릴 때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넘칩니다, 말없이, 뜨겁게…… 여자의 꿈은 참 이상합니다!”
꿈속에서 반짝이던 비단과 레이스, 낯선 얼굴과 음악은 결국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손에 넣지 못한 꿈도 한 사람의 삶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끝난 사랑과 지나간 시간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 된다. 마지막의 “여자의 꿈은 참 이상합니다!”라는 문장은 가볍게 들리면서도 묘한 쓸쓸함을 남겼다. 사랑받고 싶고, 자유롭고 싶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다만 여성들에게는 그런 평범한 욕망조차 오랫동안 지나치거나 이상한 꿈으로 취급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이 책 속 시인들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꿈을 시 안에서만큼은 감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존재했음을 세상에 남기는 방법이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상처받은 여성들의 비극만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이 책 속 여성들은 슬퍼하면서도 사랑했고, 흔들리면서도 꿈꾸었으며, 침묵을 강요받는 순간에도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문장이 오늘의 마음을 알아보는 순간, 지나간 꿈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도 더 이상 혼자만의 비밀로 남지 않는다.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온 감정에 알맞은 언어를 찾아주고 싶은 날, 천천히 펼쳐보기를 권한다. #우주서평단 #슬픔에게언어를주자 #김명순 #에밀리브론테 #아티초크 #세계여성시인선100 #여자의꿈 #여성시인 #시집추천 #필사하기좋은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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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 역사 속에서 지워지거나 억압받았던 세계 여성 시인 100인의 목소리를 담아낸 시집입니다. 시대와 언어는 달라도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들의 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작품은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의 **〈검은 그림자〉**였습니다.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음에도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의 아픔을 시로 승화시키는 태도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의 슬픔에도 이름을 붙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의 고통이라 여겼던 감정들도 오래전 누군가가 이미 겪었고, 시로 남겨졌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특히 필사하고 싶었던 문장은 레티샤 엘리자베스 랜던의 **〈말의 힘〉**입니다. "말 한마디는 뺨을 붉게 물들이며 내달리고 / 수많은 뜻을 머금은 채로, / 아니면 심장으로 흐르는 피를 / 차디찬 죽음으로 돌려버리기도 한다." 말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건네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또한 안나 레티시아 바볼드의 〈삶〉 속 "작별의 인사를 건네지는 말아줘. 대신 더 눈부신 나라에서 아침 인사를 건네줘." 이 문장은 슬픔을 붙잡기보다 다시 찾아올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의 이별도 언젠가는 새로운 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준 문장이었습니다.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만날 때 비로소 누군가를 위로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우주서평단 #슬픔에게언어를주자 #아티초크 @woojoos_story @artichokehou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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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슬픔에 맞닿을 수 있다면, 고통이 고통에 응답할 수 있다면, 어떤 연민이든 당신을 녹일 수 있다면, 지금 내게로 오십시오.” 79, 에밀리 브론테, 슬픔이 슬픔에 맞닿을 수 있다면 어떤 책은 다정하다. 독자의 변덕스런 감정을 인내하며 한결같음으로 독자의 방문을 허락한다. 이 책은 다정하다. 발을 헛디뎌 절룩거리는 독자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준다. 혼돈과 의심, 수치와 소외로 얼어붙은 독자를 재촉하지 않고 침묵 속에 기다려준다. 책에 숨겨진 촛불 하나로 길을 잃어 헤매는 독자에게 환한 통찰의 빛을 내어준다. 다정한 이 책은 삶에 기진해진 독자를 페이지를 길게 펼쳐 포옹해준다. “이제 밤이 오면 잠 대신 고독이 찾아와 내 침대 머리맡에 앉는다. 지친 아이처럼 누워 그녀의 발소리를 기다리며, 나는 그녀가 조용히 불빛 끄는 것을 바라본다.” 177, 캐서린 맨서필드, 고독,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그 다정한 책이다. 이 책의 다정함은 조금 더 특별한데, 그것은 이 책의 목소리들이 모두 여성들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내 앞을 살다 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길어 올린 맑은 물 한 잔을 독자에게 권한다. 갈애와 갈증을 안다고, 열기와 냉기를 안다고. 고양과 추락을 안다고. 상실과 추방을 안다고. 그녀들은 고요히 말한다. 멀리서 당도한 시어들은 속삭인다. 안다고, 내가 당신을 안다고, 보았다고. “내 가슴속에는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문을 닫아버린 곳. 당신의 얼굴을 기억 속에 가두고 열쇠를 가져가 버린 곳” 157, 래드클리프 홀, 기억, 기원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공유한 경험과 감정들, 통찰과 지혜가 여성 시인들의 시어들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시에서 공명이 울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성이라는 젠더가 통과해온 거시사와 미시사, 그리고 그 경험이 체득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안에 여성의 앎이라는 특수한 상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젠더를 넘어 인간 조건에 관한 시들에서도 안도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리의 고통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남자는 없으니, 그 산고를 당신들의 잔혹함을 막는 빗장으로 삼으라.” 41, 에밀리아 라니어, 여성을 위한 이브의 변론 세계여성시선집이라는 기획 반가웠던 이유는 이 안도감 때문이었다. 어머니 젖가슴과 땀내에 대한 향수로 절절한 시구, 여성의 몸을 사물과 등치시키는 시구, 역사에 남성사를 의심 없이 합일시키는 시구, 폭력을 사랑으로 전도하는 시구, 가해를 자기 연민으로 연소시키는 시구, 진리의 담지자로 화한 자아 비대의 시구를 읽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안도감. 며칠 전에 본 영화의 도입부. 가정폭력으로 쉼터에 첫 방문한 여성에게, 현관문을 열어준 여자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여긴 안전해요.’ 물론 그 안에도 잡음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전’이라는 단어를 대번에 이해하고 안도하는 ... 우리에겐 아직 여성들만의 방이 필요하다. 이 시선집은 그 방 중 하나다. “기묘한 신비여라, 말의 힘이란! 그 속에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69, 레티샤 엘리자베스 랜던, 말의 힘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이 시선집의 이름처럼, 의심받고 폄하되고 부정되었던 여성의 경험과 감정이 여성 시인들의 손끝에서 언어라는 몸을 갖추게 되자,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다. 이 책은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여성 시인들이 남긴 시 100선을 담고 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시가, 왼쪽 페이지에는 시인의 연대기가 소개된다. 시인들의 소개를 읽다보면 숙연해진다. 오랜 세월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이토록 혹독하고 고단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시로 남겼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숙연함. 전쟁과 혁명, 억압과 저항, 사랑과 이별, 외로움과 고독, 탄생과 죽음.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관문들을 통과하며 여성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의 파동이 이 책안에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19, 술키피아, 드디어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저 공은 얼마나 저렇게 공중에 떠있었을까. 시선집 표지 위에는 두 명의 여성이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는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두 여성의 몸을 오간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여성 시인 술피키아가 뛰어 올린 둥근 마음 하나가 내게 도착한다. 나는 응답한다. 둥근 마음 하나 공중으로 뛰어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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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형태 없는 고통에 이름을 부여한 여성 시인 100인의 치유와 구원의 언어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4000년이라는 광활한 시간 속에서 시(詩)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낸 여성들의 기록물입니다. 초판 한정 양장본의 표지 그림은 영국 화가 데이비드 인쇼(David Inshaw)의 〈배드민턴 게임(The Badminton Game)〉입니다. 정원에서 두 여성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순간을 그리고 있으며, 공중에 떠 있는 셔틀콕과 함께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신비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에는 인류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작가인 기원전 2300년경의 엔헤두안나부터 영국의 브론테 자매들, 그리고 우리 근대 문학사의 아픈 손가락인 김명순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성 시인의 시가 담겼습니다. 오랜 시간을 가로질러 여성들이 남긴 목소리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사랑은 허락받아야 했는가, 왜 재능은 숨겨야 했는가, 왜 슬픔은 침묵 속에서만 존재해야 했는가를 말이죠.
고전을 읽을 때면 당대의 시대상과 작가의 한계를 저울질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시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런 저울질은 무색해집니다.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 분야의 진입 장벽이 여성들에게 철저히 닫혀 있던 시절,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은 오직 펜과 종이뿐이었습니다. 재료비 없는 예술, 그래서 허락된 예술이 바로 시였습니다. 에칭 스타일로 복원한 100인의 초상과 함께 시인에 대한 정보가 담겨 시인의 개인사와 시대적 맥락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말할 수 없었던 슬픔을 어떻게든 언어의 형태로 붙잡아두려는 안간힘, 그것이 바로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제도와 억압 속에서도 끝내 파괴되지 않은 영혼의 생존 본능을 보여줍니다. 기원전의 메소포타미아 여사제와 19세기 영국의 목사관 골방에서 시를 쓰던 자매들,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 번역과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신여성의 고통이 겹쳐집니다. 문학사에서 브론테 자매들로 묶여 기억되는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로의 가장 친밀한 문학적 동반자이자 경쟁자로 자라났습니다.
언니 샬럿 브론테가 부당한 사회적 억압과 여성의 희생에 맞서 저항하며 경제적·정신적 독립을 쟁취하는 여성의 여정을 담은 『제인 에어』를 통해 당대에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면, 동생 에밀리 브론테는 은둔주의적인 성향 속에서 인간 내면의 날것 그대로의 열망과 황량한 야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불멸의 고전 『폭풍의 언덕』을 집필하여 문학사에 깊고 강렬한 충격을 남겼습니다. 남성 필명으로 공동 시집을 펴내며 세상에 처음 목소리를 드러냈던 이 천재 자매는 서로 다른 결의 뜨거운 문학적 무기를 통해 당대 사회가 규정한 여성을 향한 한계를 완전히 깨부수고 세계 문학사 중심에 그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사회가 부여한 아내, 어머니, 딸이라는 역할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한 단독자로서의 자아를 갈망하는 목소리도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19세기 영국의 지성 조지 엘리엇(본명 메리 앤 에반스)은 남성 필명 뒤에 숨어야만 했던 억압적 구조 속에서도 인간 내면의 심연을 끊임없이 탐구했습니다. 미국 시문학의 선구자 에밀리 디킨슨의 시 「슬픔은 생쥐」는 슬픔이라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감정을 뜻밖의 사물과 형상으로 보여줍니다. 에밀리 디킨슨에게 슬픔은 숨어서 자라나며(생쥐), 나의 온 존재를 앗아가고(도둑), 어설프게 전시될 때 다치기 쉬우며(곡예사), 결국에는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완성되는 것(탐식가)입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지적인 입체감으로 빚어냅니다.
이 책에서 마음을 가장 저릿하게 만든 시인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5개 국어에 능통했던 천재 번역가 김명순입니다.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적 낙인, 유학 시절 겪은 성폭력 사건과 그로 인한 문단 내 남성 작가들의 악의적인 인신공격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칼날 같은 소리를 피해 스스로의 영혼을 지키고자 했던 절규를 엿듣는 기분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에 실린 100편의 시는 과장되거나 예스러운 어투를 걷어낸 현대적 번역 덕분에 친근하고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마음속을 떠돌며 우리를 괴롭히던 슬픔이 있다면 펼쳐보세요. 슬픔에 지지 않기 위해 펜을 쥐었던 100명의 시인들이 건네는 뜨거운 위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슬픔에게언어를주자 #아티초크 #여성시인 #세계문학 #슬픔시 #시집추천 #인디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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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겹쳐 보였다. "옛날 여자 시인들 모음집이네" 하고 끝날 책이 아니었다..!! 먼저 「슬픔은 생쥐」의 "진정한 슬픔은 혀가 없는 법"이라는 구절. 이거 읽으면서 요즘 유행하는 '감정 라벨링', '저널링', 심리 상담 붐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지금 앱까지 만들어가며 "오늘의 감정을 기록하세요" 하고 있는 그 일을, 이 시인들은 몇백 년 전에 이미 종이와 펜만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 mz세대가 말하는 '마음 챙김'이나 '감정 해방일지' 같은 것도 사실 새로운 게 아니라, 여성들이 오래전부터 살아남기 위해 해왔던 생존 기술의 재발견이 아닐까 싶었다. 「여성의 권리」의 "세상에서 잊히는 것,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는 구절은 솔직히 좀 뜨끔했다. 이 책에 김명순이 실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발언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인데, 실제로는 문단에서 조롱당하고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죽었고 오랫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사람 아닌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문학계에서 여성 서사 복원 작업인 나혜석 재조명, 강경애 재출간, 이런 흐름들이 계속 있어왔는데, 이 시집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잊히는 게 여성의 운명이자 권리"라는 시구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그 잊힘을 되돌리려는 출판 자체와 맞물려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첫 번째 진통」을 읽을 땐 요즘 저출생 담론, 임신·출산을 둘러싼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 논의가 떠올랐다. 여전히 출산은 정책 통계로만 다뤄지고 여성의 실제 경험과 고통은 잘 언어화되지 않는데, 이 시는 그 생생한 순간을 몇백 년 전에 이미 정직하게 써놓았다. 지금도 산모의 심리, 산후우울증 같은 걸 제대로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시가 갖는 힘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내가 즐기는 날들」은 요즘 말하는 '혼자만의 시간', '바운더리 설정', 번아웃 담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Mz세대가 '혼자 있고 싶어요'를 당당히 말하는 시대인데, 사실 이건 새로운 권리 주장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들이 절실하게 원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던 것의 뒤늦은 인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초판 한정 양장본'이라는 상업적 포맷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도 사회 현상이다. 요즘 출판 시장에서 여성 서사, 페미니즘 문학이 확실한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하나의 트렌드이자 소비 카테고리가 된 지 오래다. 이게 좋은 일이면서도 한편으론 '슬픔'과 '고통'이 세련된 굿즈처럼 소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함도 살짝 든다. 다만 그 소비가 결국 잊혔던 목소리들을 다시 세상에 꺼내놓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나는 그 정도의 상업성은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옛날 여자들이 참 힘들었구나" 하고 끝나는 과거형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여전히 씨름하고 있는 문제들인 감정을 말할 권리, 잊히지 않을 권리, 몸에 대한 발언권, 혼자일 권리의 아주 오래된 초판본 같은 느낌이었다. 몇백 년의 시차를 두고도 이렇게 정확히 지금 여기와 겹쳐진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