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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람의섬에서길어올린삶의무늬: 양성필의《제주인의살림집》을읽고
"[서평] 바람의섬에서길어올린삶의무늬: 양성필의《제주인의살림집》을읽고" 내용보기
건축 책이라 하면 으레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난해한 전문 용어의 도열, 도면과 구조도 사이를 부유하는 딱딱한 학술적 담론들. 그러나 양성필의 《제주인의 살림집》은 그 건조한 문턱을 단숨에 허문다. 저자는 치열하게 도면을 그리고 현장을 지휘해 온 건축가이지만, 책 속에서 마주하는 그의 문장은 전문 서적의 고루한 권위를 털어낸 이야기꾼의 호흡을 품고 있다. 건축이라는 거대
"[서평] 바람의섬에서길어올린삶의무늬: 양성필의《제주인의살림집》을읽고" 내용보기


건축 책이라 하면 으레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난해한 전문 용어의 도열, 도면과 구조도 사이를 부유하는 딱딱한 학술적 담론들. 그러나 양성필의 《제주인의 살림집》은 그 건조한 문턱을 단숨에 허문다. 저자는 치열하게 도면을 그리고 현장을 지휘해 온 건축가이지만, 책 속에서 마주하는 그의 문장은 전문 서적의 고루한 권위를 털어낸 이야기꾼의 호흡을 품고 있다. 건축이라는 거대한 분야를 다루면서도 일반 독자의 시선 높이로 다정하게 다가서는 저력은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다.

그의 글은 시원스럽고 거침이 없으면서도, 결코 투박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삶의 모퉁이에 깃든 지극히 사소한 디테일까지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억지스러운 대립이나 자극적인 수사 없이도 독자를 책의 중심부로 천천히 끌어당기는 힘은, 기존의 딱딱한 건축론을 넉넉한 품으로 보듬어 안는 자유로움과 너그러움에서 비롯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저자가 빚어낸 온기 어린 시선의 궤적을 고스란히 따라 걷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학설을 늘어놓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박제된 이론 대신, 제주 땅 곳곳을 직접 발로 디디며 도민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일상의 어록을 길어 올렸다. 비바람을 견디며 쌓아 올린 돌담처럼, 그가 채록한 기록들은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혀 건져 올린 '진정한 삶의 경험이자 기억의 파편'들이다. 여기에 담담하게 털어놓는 저자 자신의 개인사가 겹쳐지며 글은 한층 깊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의 고백적 서사는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가장 솔직한 동력이자, 읽는 이의 마음에 깊은 울림(pathos)을 번지게 하는 원천이다.

비평과 온기 어린 통찰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오늘날의 건축계에서, 이 책은 우리가 건물이 아닌 '사람과 삶의 현장'에 어떻게 애정을 쏟아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살림집이란 결국 규격화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의 숨결과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완성되는 삶의 터전임을 보여주는 정직한 본보기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언젠가 해 질 녘 서귀포 푸른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돌담 곁에서 저자와 마주 앉아 무람없이 세상 사는 이야기를 길게 나누고 싶다는 짙은 여운이 남는다. 삶이 머무는 집,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난 온기 있는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c********g 2026.10.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