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의 선물』, 『빛의 과거』를 잇는 '시간 3부작'의 마지막 편이라는 무게감을 알고 펼쳤지만, 정작 나를 붙든 건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감각들이었다. 유부초밥을 집어먹는 손끝, 늙어가는 몸에 새겨진 흉터, 서로를 오해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자매의 시선. 그 사소함이 오히려 이 소설을 오래 붙들고 있게 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한 사람의 몸에 담긴 시간과 공간과 사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문장을 읽고서야 소설을 관통하는 질문이 선명해졌다. 안나와 경선, 60대 자매의 삶을 통해 은희경이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몸을 어떻게 살아내는가'였다는 것을. 예쁜 아기였던 경선은 외모 품평을 즐기는 노인이 되었고, 어깨가 넓고 머리가 컸던 안나는 사람들의 무관심에는 초연하지만 경선이 나이 들어 받는 푸대접만큼은 부당하다고 느낀다. 몸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이면서, 동시에 평생에 걸쳐 사회가 우리에게 붙이는 꼬리표이기도 하다는 것—작가는 이 이중성을 자매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를 통해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들여다본다. 정직함이 신랄한 것이 아니어서 좋다. 긴 시간 왕래가 없었음에도 자매는 서로를 의식하고 , 오해하고, 변호하면서 시간을 통과해 간다. 이 소설이 관통하는 늙어감이라는, 자칫 서글프기만 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지만 끝내 찌질하지 않고 가벼운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소설의 문장은 철저히 현재형으로 쓰였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개의 소설이 이미 지나간 일을 서술하는 과거형으로 쓰이는 것과 달리, 현재형 문장은 안나가 유부초밥을 집는 순간, 경선이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순간을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만든다. 나는 여기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동시에 그들 곁에 서서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이중의 시간 감각을 느꼈다. 이 선택이 제목과 정확히 맞물린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시간의 감촉'이라는 말은 은유가 아니라 이 소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었다. 문장으로 시간을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게 하는 것. 늙어감이란 결국 몸에 시간이 쌓이는 일이고, 그 쌓임을 관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전달하려면 과거형의 회고적 거리감이 아니라 현재형의 밀착이 필요했을 것이다. 작가가 7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다듬어낸 문장의 이유를 이해하고 나니, 소설을 읽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감촉'으로 다가왔다.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노년을 앞두고도 여전히 '첫'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로를 반쪽짜리로만 알고 살아온 두 자매가 삶의 저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를 제대로 보게 되고, 그렇게 새로운 우정의 문 앞에 선다. 그 계기가 되는 손녀 다니엘이다. 다니엘의 젊음과 그녀들의 노후함이 대비된다. 그러나 읽어나갈수록, 발견과 성장에 유효기간이 없다는 것, 오히려 몸이 쇠락해가는 시기에 맞이하는 발견이야말로 더 단단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이 소설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요란한 화해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그저 서로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관계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소설은 늙음을 미화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다만 몸이라는 조건을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때로 얄밉고, 그럼에도 끝내 다정할 수 있는지를 현재형 문장의 밀도로 증명해 보인다. 내 몸에 새겨진 그리고 새겨지고 있고 새겨질 그 시간의 감촉들을 은근히 기대하게 만들었다. 좋았던 문장들 모음 # 한 방향으로 흘러 사라져버리는 시간의 능선에 혼자 남겨진 그 겨울 들판의 꿈, 안나에게는 그것이 고독의 악몽이었다. (72) #노인이라는 일반화가 너무 강력해서 개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77) #몸의 고통은 철저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82)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경선이 기다린 건 어떤 한 계절이 아니었다. 계절의 주기와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온몸으로 실험하고 느껴보고 싶었다. (113) #"그래 , 누군가가 기억하면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 거지"(247) #몸의 일상은 현실의 시간대에서 변해가지만, 언젠가 포착한 적 있었던 꿈과 이상의 시간은 그 나름의 도착지를 향해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284) #우리 모두는 고통을 겪고 또 해결하면서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은 어딘가에서 왕국을 건설하고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 (286) #이미 그 시간을 다 치러냈고 지금은 빗줄기 아래 삿갓을 쓴 채 소멸을 기다려야 할 때이다. 소멸이 아닌 시간의 계주를(287) #안나는 어쨋거나 오래 만난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간격이 멀어지면서 마치 수채화 속 원경처럼 서로를 흐리고 부드러운 윤곽으로 보게 된다고 말한다. (326) #우리의 '첫'에 대한 기억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최근'과 '우리의 다음'이 되기도 한다. (357) #몸은 기쁨과 고통과 욕망과 상실의 부화장이고 사랑의 꿈과 왜곡을 간직한 도서관, 마지막 삶이 개체의 시간을 끝내고 무한에 섞여드는 여정이다. (373) |
|
안나는 자신이 홀로 죽고 잊히리란 걸 알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소중한 존재가 된 적이 없으니 죽음 또한 누구도 안타깝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억울함이나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시간차가 있을 뿐 모든 존재는 사라지고 잊히는 운명을 피할 수 없으니까. -p69 한번은 초록색 신호에 맞춰 아파트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대편에 닿기도 전에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어버린 적이 있었다. 걸음이 느려졌다는 것은 그동안 자연스럽게 주어졌던 몸의 기본값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안나는 그것을 삶을 단출하게 재편해서 꾸려갈 정도의 욕망밖에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경고로 받아들였다. -p81 어떤 시간은 생활의 때묻은 이력으로 채워진 채 흘러간다. 하지만 같은 시기의 또다른 어떤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그대로의 세계 안에서 흘러간다. 삶이란 그처럼 의미가 다른 여러 개의 시간이 겹쳐져 흘러가는 게 아닐까. 몸의 일상은 현실의 시간대에서 변해가지만, 언젠가 포착한 적 있었던 꿈과 이상의 시간은 그 나름의 도착지를 향해 다른 길고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마지막까지 품고 있는 시원이나 본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p284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살아가진 못한다.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감각의 변화, 신체의 변화로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보편적인 시간이 흐르는데 그 시간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기억한다. 은희경의 장편소설 '시간의 감촉'은 자매인 안나와 경선의 이야기다. 체형, 성격이 달랐던 안나와 경선은 삶을 대하는 방향이나 태도도 무척 달랐다. 다름의 격차가 벌어지면 서로에게 침묵하는 횟수도 잦아진다. 다름은 서로 간 오해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알고 싶지 않은 욕구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화선지에 똑 떨어뜨린 먹물 한 방울이 스며들면서 퍼지듯 시간의 영역이 퍼지면, 만나게 된다. 겹쳐진 시간 속에서 안나와 경선은 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무심히 때로는 의식적으로 툭 털어놓는다. 경선의 병실에서 보호자로 있게 되면서 안나는 경선과의 만남이 불편하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타인을 대하는 노하우가 몸에 밴 것일 수도 있고, 타인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 들었던 거부감이나 분노가 옅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었다는 거겠지. 나이 든 사람은 지나온 시간의 감촉을 잘 알고 있기에 흘러가는 시간의 감촉을 잘 느낀다. 때로는 시간이 시간을 먹기도 하고, 시간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우리는 흘러온 시간의 감촉을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나. 같은 책이어도 읽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다. 내가 어린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의 감촉'이 보다 더 짙게 읽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를 거쳐간 시간의 감촉을 생각한다. 거칠 때도 있었고 말캉말캉할 때도 있었고 딱딱할 때도 있었던, 나의 시간. 나이를 먹어가는 내 시간의 질감을 상상해본다. |
사실 상 거의 모든 부분이 공감 되어서 문장을 곱씹고, 곱씹으며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어떻게 리뷰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안나와 경선은 자매이지만, 서로 다른 삶의 자취를 남겨왔다. 그리고 서로 피를 나눈 자매이지만, 서로의 삶에 대해서 이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던 때도 많았다. 겉으로 봐선 경선은 이런 사람이라고 추측했으나, 실상 그렇지 않았다. 또 안나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안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추측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삶은 각자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고, 자기 자신이 아니면 그 삶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겉으론 잘 보이지 않아도 각자 나름의 어려움과 그늘을 드리우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삶에 대해 누군가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당당당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삶은 다양하면서도 비슷하다. 요즘 나도 내 기질과 살아오면서 마주한 시간과 선택들이 어떤 ‘나’를 만들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각자의 삶을 만들어온 시간들이, 또 그렇게 만들어진 삶이 찬란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같다. |
|
언제부터인가 나이듦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늙는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해서인지 지켜줘야 할 소중한 존재가 생겨서인지 노년기에 접어든 부모님들 때문인지. 최근 들어 좋게 읽었던 책들만 봐도 『남아 있는 나날』, 『사랑의 역사』, 『모든 열정이 다하고』. 모두 노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책 역시 너무나 좋았다. 삶이 언제나 순탄하고 행복하기만 하진 않다. 살다 보면 굴곡 하나쯤, 자잘한 생채기나 어두운 시간도 누구에게나 있을 테지만, 나는 그 기억을 오래 붙들며 분노를 더해가는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 한때는 선명하게 아팠을 일들을 이제는 담담하고 잔잔하게 이야기하기까지, 안나와 경선 두 사람에겐 어떤 시간이 흘러야 했을까. “안나는 어쨌거나 오래 만난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간격이 멀어지면서 마치 수채화 속 원경처럼 서로를 흐리고 부드러운 윤곽으로 보게 된다고 말한다.” (p326) 지나간 일을 없었던 것처럼 지우지도 않고, 여전히 선명한 상처로 붙들고 있지도 않은 채, 그때의 아픔도, 미숙했던 자신도 언젠가는 조금 너그러이 돌아볼 수 있기를. 수채화 속 원경처럼. 나의 시간이 가장 오래될 그날, 돌이켜본 삶이 그런 감촉으로 남으면 좋겠다. |
|
은 희경 작가의 시간 여행을 함께 했다. 새의 선물을 읽고 시간의 감촉을 읽었다. 이제 내 나이가 65, 소설 속의 그 나이다. 저자는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읽을 수가 없었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잔잔하게 마음의 파동을 일으켰다. |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다. 안나와 경선의 삶은 잔잔하다가 폭풍이 몰아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두 자매의 세대보다는 한참 뒤에 태어났지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을 만들어 준 책이다. 그 시절에 빠져 있는 시간이었다. |
|
쌍둥이는 아니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두 자매의 이야기~~읽는 내내 소설 모순이 계속 생각나게 하였다. 이성적이고 독립적인 언니 안나와 타인과의 관계에 깊이 침윤하면서 살아온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동생 경선의 이야기~~ 서로 다른 두 자매가 나이들어 동생의 질병을 간병하려고 재회하면서 다시 이전을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
|
오랫만에 노크했군요 며칠전 은희경 작가님의 tv출현을 보고 아~내가 너무 책읽는것을 잊고 있었구나 싶어 얼른 신작을 주문했답ㄴ다. 마침 요즘mbc에서 6부작으로 방영하는드라마 제목이 (안나)인데 여기서도 안나라는 이름이 등장해 무지 반가왔습니다. 잘,재미있게 읽업 볼랍니다 |
|
말이 필요없는 책 좋아하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며 동시대를 읽는다는건 더할나위없는 행운이다. 이번 책은 흐르는 시간 속에 육신과 정신의 늙음을 이야기한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있다. 과연 나는 누구와 어떻게 어떤 늙음을 맞이할까. 어떤 시간은 생활의 때묻은 이력으로 채워진 채 흘러간다. 하지만 같은 시기의 또다른 어떤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그대로의 세계 안에서 흘러간다. 삶이란 그처럼 의미가 다른 여러 개의 시간이 겹쳐져 흘러가는 게 아닐까. 몸의 일상은 혈실의 시간대에서 변해가지만 언젠가 포착한 적 있었던 꿈과 이상의 시간은 그 나름의 도착지를 향해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p284 세상의 눈치를 살피느라 조급한게 더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배제와 고립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딱하고 볼품없는 인간이 될까봐 두려워 안간심으로 붙들고 있는 관계에서는 자신이 부당한 계약의 을이 될 수 밖에 없다. 많은 시간 sns플랫폼을 맴도는 것도 불안 때문일 것이다. p157
|
|
시간의 감촉이라는 감정을 두드리는 제목에 이끌려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에도 감촉이 있다는 것이란게 뭘까? 내가 살아온 매 시간과 순간의 생각과 행동 감정이 모두 켜켜이 쌓여 나를 이루었다는 것. 안나와 경선 두 자매의 이름은 무언가 안나가 더 세련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는 투박한 외모와 덤덤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는것 부터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60대의 그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조금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60대 이상, 또는 노인들은 인생에 대해 많은것을 깨달았고 무덤덤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60대도 섬세한 감각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던 글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