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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한글’은 만든 사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쉽게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문자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에는 그러한 사실이 한국 사람들만 알고 스스로 만족하는 내용으로 여겨졌다면, 이제 한국의 다양한 문화(이른바 K-Culture)가 세계에 널리 알려짐으로써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를 인정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를 접하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또한 한국어를 학교에서 배우는 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시점에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은 한글이 지닌 문자로서의 우수성을 대변하는 요인이라고 이해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글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 한글의 창제 의도가 얼마나 관철되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훈민정음을 창제한 의도를 밝힌 <어제서문>과 세종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어리석은 백성(愚民)’들이 쉽게 익혀 사용할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정설로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한글의 창제 이후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민중들에게 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더욱이 관직의 등용문이었던 과거제도는 한문을 능숙하게 사용해야만 합격할 수 있었기에, 근대 이전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기관이나 제도가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도 현실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한글은 한자의 발음기호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에 어느 정도의 타당한 면이 있음을 전제하면서, 그것은 한글 사용의 한 사례일 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다만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한글이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물론 민중들에게 널리 사용되지 않았기에 그러한 면모가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마치 외국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데 활용했다고 해서, 한글이 외국어 발음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다만 당시의 조선의 한자 발음이 중국의 그것과 다르기에 이를 문제시하는 기록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글의 주된 창제 목적은 아니지만 ‘한자의 발음기호’로 활용되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는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먼저 <어제 서문>에 드러난 ‘세종의 한글 창제 의도’를 추출하여, 그것을 다음의 세 가지 항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훈민(訓民)이라는 용어에서 드러나 있듯이 ‘백성을 가르치겠다’라는 의도이며, 두 번째 의도로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어리석은 백성(愚民)에게 표현 수단(한글)을 주겠다’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일용(日用)에 편리함을 느끼게 해주겠다’라는 항목으로 정리하면서, 이것이 세종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얼마나 정책으로 관철되었는가를 짚어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제 서문>에서 밝힌 한글의 창제 의도는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으며, 그것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 사회에서 민중들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겼던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말하고자 하는, 말할 수 없는 민중’들에게 훈민정음을 가르칠 수 있는 제도나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중들 또한 일부의 상황만을 제외한다면 한글 사용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훈민(訓民)’이라는 용어가 오히려 당대 민중들을 ‘복종과 세뇌’하기 위한 의도로 활용되었으며, 실제 한글의 사용도 당시의 지배 계급인 양반(사족) 계층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확대되었음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한글의 창제 의도가 조선시대에 걸쳐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저자가 꼽은 ‘불편한 진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한글의 창제 의도가 조선시대에 걸쳐 온전하게 적용되지 않았더라도, 오히려 교육제도가 정립된 근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글의 창제 의도가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 https://cafe.daum.net/Allwithbooks )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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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자 강명관은 세종의 한글 창제와 관련하여 다소 논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글학자 김슬옹과 지면 논쟁도 벌인 것으로 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71919200005757?did=NA). 강명관의 핵심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세종의 발명이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종은 우리말이 중국의 글자로는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한글을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훈민(訓民)이 있을지언정, 애민(愛民)은 없다. 그리고 한글 창제 후 세종의 의도대로 한글을 민중, 즉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쓴 사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종은 한글을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강명은 한글을 만듦에 있어서 그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한문으로 된 <어제서문>이라고 본다. 이 <어제서문>을 한글로 쓴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 한다. 해례본은 세종이 쓴 <어제서문>을 누군가 번역한 것이고, 그 번역도 불완전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특히 “어엿비 너겨”, 즉 “가엾게 여겨”라는 부분의 오역으로 인해 세종의 애민 사상을 드러낸다고 잘못 파악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는 그저 “나는 짠하다” 정도라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강명관은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그는 세종이 그저 감정적인 차원에서 백성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의 생활과 필요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이해를 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증거로 보는 것이 ‘부민고소법’에 관한 얘기다. 세종 이전에 백성들이 지방 수령들을 고소하는 것을 허용하고, 처벌하지 않았던 데 반해, 이에 대한 금지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여 폐지를 했고, 대신 ‘부민고소금지법’을 제정하기도 했다는 얘기다. 세종이 백성을 잘 헤아렸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매우 다른 내용이 이것이기도 한데, 김슬옹의 반박을 보더라도 이는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항인가 보다. 대신 이것은 아직 태종이 상왕으로서 거의 수렴청정 비슷하게 할 때의 일이기 때문에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반대 의견인 모양이다. 하지만 강명관은 세종도 분명한 지배계급의 일원으로서 계급적 이해관계에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독자적인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이를 복구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물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러모로 궁리하긴 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것을 보더라도 세종의 한글 창제 있어 ‘애민사상’은 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강명관의 주장인 셈이다. 또한 백성들이 나날이 쓸 수 있도록 쉬운 글자를 만든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쓴 문자가 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한글은 창제되자마자 쉽게 익혀서 쓰였다. 하지만 그 사용자가 왕실, 지배층의 여성 등을 중심으로 쓰였다. 세종은 한글 창제 후 4년 만에 죽었기 때문에 후속 조치를 취할 시간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이 놀라운 문자 체계는 중국어를 익히거나 한문을 읽거나, 혹은 사대부 집안의 여성을 중심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등 다소는 보조적 수단으로 명백을 이어오게 된 것은 다분히 세종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게 강명관의 생각이다. 이렇게 강명관은 세종과 한글에 관한 ‘국뽕’을 배격하자고 하고 있으며, 이 역사를 당대의 지배계급의 관점이 아니라 민중의 관점에서도 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자, 그럼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난 세종이 지배계급의 일원으로서 백성들의 생활을 세세히 알지 못했고,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공들여 발명한 문자가 어떤 쓰임새를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백성을 가르치는 대상(訓民)으로 봤던 것은 명백하게 시대의 한계다. 그러나 그럼에도 세종의 혁신성은 누구 봐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본다. 그리고 시대적 한계가 있었지만, 그 시대에서 가장 진취적으로 백성을 생각한 것도 맞다고 본다. 글자를 만들면서 백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게 자신의 정책과 모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또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 예측하지 못했지만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사람이었던 것만큼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난, 강명관의 주장이 한글과 세종을 심하게 폄훼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세종은 그 어느 임금보다도 뛰어난 왕이었으며, 한글은 (창제되자마자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의 범용성을 깨달았듯이) 그 어떤 문자보다도 뛰어난 문자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진취성과 혁신성의 혜택을 바로 우리가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의심 없이 평가되고 받아들여져 왔던 사안에 대해서도 건강한 비평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