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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성격이 살아 움직여서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내 주변의 인물들이 착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잠시 접기로 했다. 왜냐하면 난희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소중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어울릴 때 우리가 되고, 우리가 되었을 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부딪히면서 알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에 대해, 작가는 난희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세상으로 다가서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난희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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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속의 아이들] 독자 리뷰~^^
가슴이 답답하면 하늘을 올려보며 한숨짓듯이 우리의 아이들은 벽을 바라보며 소곤거린다. 그렇게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그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극복할 수 있을까 벽 밖의 세상은 너무도 비굴하다. “똑 바로 말해, 네가 훔쳤지?” “아빠를 죽인 년” 이런 말들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힌다. 나는 교단에 서서 얼마나 순진한 아이들 가슴에 서럽도록 잔못을 박았을까 또한 업신여기며 슬프게 했을까 이 글의 전반부는 우리 어른들이 읽어야 할 특히 교단에 선 교사가 읽어야 할 부끄럽고 가슴 아픈 참회록이다. 절망의 나락에서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 희망의 포털이 열리듯 벽은 갈라지고 우리의 아이들은 웜홀을 통해 벽 속의 세계로 간다. 이 글의 후반부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4악장처럼 우리 어른들에게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구원을 얻고 희망의 세계로 인도한다. 벽 속의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말더듬이도 있고 손톱자국 가득한 아이도 있고 피아노 미술 학원에 지친 아이도 있고 엄마 같은 할머니도 있다. 상처를 입은 아이들의 소곤거림에 점점 벽 속의 세상은 위태롭게 되고 결국 이 모든 것을 구원하는 것은 남이 아닌 ‘난희’ 자신이다. 현존재, 이것과 교섭하는 주위의 세계 교섭은 관념이라고 본 하이데거보다 작가는 더 명확하게 ‘벽’을 형상화하여 이 세계와 저 세계에 희망의 끈을 연결한다. 세 번을 읽고 또 읽으면서 새끼손톱을 절반만큼이나 갉아먹었다. 다시 벽 바깥의 세계로 와서 명구와 소연이를 포옹할 수 있게 된 것 설핏 눈물이 핑~ 돌았다. 개미를 사랑하는 작가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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