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박민경의 『랠리』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는 소설집에 가깝다. 가족과 연인, 이웃과 타인,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에 흔적을 남긴다. 다정한 돌봄도, 상실도, 불안도, 원치 않는 응답도 모두 관계의 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박민경의 『랠리』는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돌봄의 관계를 주고받고, 「스위트 홈」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문영의 삶이 흔들린다. 「별개의 문제」에서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악성 리뷰와 임신, 비 오는 밤의 사건 속으로 밀려가고, 「살아 있는 당신의 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의 흔적이 현재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모두 누군가와 이어지고 다시 반응을 받는 순간을 향해 간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단절이다. 불편한 관계보다는 생산적인 혼자가 낫다는 말은 이미 자기 계발 관련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민경은 『랠리』의 아홉 편의 단편에서 정반대의 말을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그녀는 삶이란 애초에 혼자 치를 수 없는 경기라고 말한다.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공을 보내고, 또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공을 받아내며 살아간다. 이를 위해 그녀는 ‘랠리’라는 단어를 여러 방향과 언어로 반복해 보여준다. 그녀가 말하는 랠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서로 주고받는 운동에서 나온 단어인 랠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삶에서의 랠리는 스포츠 경기와 목적도 결론도 다르다. 경기에서는 점수와 승패를 향해 가지만, 인생에 랠리는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된다. 이때 돌아오는 응답은 반드시 다정하거나 올바른 형태만은 아니다. 돌봄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상실이나 불안, 책임, 공포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목적은 더 나은 삶이고, 끝은 승리가 아니라 죽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짧고 날카로워진 현대에서 제대로 된 타인과의 주고받음은 과연 가능할까. 박민경은 이에 대한 답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홉 편의 단편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관계의 주고받음도 조금 더 가까운 문제로 다가온다.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버티며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의 랠리를 보여주고 있을까.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와 「스위트 홈」이었다. 두 작품은 모두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관계를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가 돌봄과 애정을 통해 이어지는 가족의 랠리를 보여준다면, 「스위트 홈」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의 무게와 공포를 보여준다. 같은 가족을 말하면서도 한쪽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다른 한쪽은 버티게 만드는 무게를 드러낸다. 먼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를 살펴보자. 「괴력문정 다마고치」에서 문정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의 자랑이었던 검은 띠와 힘을 스스로 봉인한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꾸준히 무언가를 포기하며 사회에 자신을 맞춘다. 작품은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질문이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문정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특별히 잘난 사람도, 삶을 그럴듯하게 꾸려낸 사람도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 문정과 아버지 장원의 관계는 얼핏 보면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며 이루어지는 가족의 화해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눈물겨운 재회의 장면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문정의 검은 띠와 장원의 기라는 서로 다른 힘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관찰하고 견디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먹이고, 감시하고,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상대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관계는 강해진다는 것이 혼자 버티는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되는 일인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가족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로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철저히 마이너스적인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바로 제목과는 지독할 만큼 동떨어진 작품, 「스위트홈」이다. 「스위트홈」에서 주원은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와 일찍 성에 눈뜬 여동생과 함께 지옥 같은 집에서 살다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와 호텔 베이커리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담백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녀는 언제나 집안의 어둠이 끈적이는 손이 자신의 머리채를 끌고 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어느 날 동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가족은 다시 주원의 삶에 침입한다. 이미 집을 떠났음에도 주원은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잠시 거리를 확보했을 뿐이었다. 「스위트홈」의 가족은 서로를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계속 끌어내리는 부채의 형태로 작동한다. 주원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에 가깝다. 「괴력문정 다마고치」의 가족이 서로를 회복시키는 긍정의 관계라면, 「스위트홈」의 가족은 한 사람의 삶을 끝없이 갉아먹는 부정의 관계이다. 박민경의 『랠리』 아홉 편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응답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과 행동은 언제나 예상한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봄은 부담이 되고, 사랑은 기억으로 남으며, 사소한 반응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흔들기도 한다. 이 어긋난 응답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붙잡고, 외면하면서도 끝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랠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이 관계 밖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
|
📚서로를 향한 믿음, [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단편들을 엮은 책인데도,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마치 긴 호흡의 이야기 한 편을 읽어낸 듯한 기분이 든다. 저마다 다른 인물과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무거운 세상 속에서도 각자의 삶을 어떻게든 버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빼닮아 있어서일까. 그래서인지 모든 단편이 결코 남의 이야기나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겉돌지 않고 마음에 스며들었다.
📌'랠리'는 탁구나 테니스에서 공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바로 이 랠리처럼, 삶이라는 경기장안에서 서로의 마음과 온기를 나눈다. 때로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고, 받기 싫은 것을 억지로 받아야 하는 엇갈림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네트 너머에 분명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비록 세상이 원하는 번듯한 어른이 되는 데는 조금 실패했을지 몰라도, 치열하게 마음을 주고받으며 기꺼이 서로의 삶을 살려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 속 문장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내 삶이 포개어 보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세상이 원하는 완벽한 어른은 되지 못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 꿋꿋하게 나만의 서사가 담긴 삶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부서지듯 생존에 급급해 그저 버텨온 시간도 있었겠지만, 네트 너머의 누군가와 함께 랠리를 이어왔기에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삶이 품고 있는 진짜 갈망은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랠리] 이 책은 버거운 하루를 그저 견뎌내느라 지쳐있는 사람들, 혹은 정답 같은 어른이 되지 못해 가끔은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책이다. 승자와 패자만 남는 차가운 세상일지라도, 누군가와 삶의 리듬을 주고 받으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따뜻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삶이라는 코트 위에서 혼자 헛손질을 하는 것마 같은 쓸쓸한 날에도, 네트 맞은편에는 내 삶을 기꺼이 받아내어 주누군가가 있다는 그 다정한 낙관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제 네트 너머의 당신이 이 다정한 랠리에 응답할 차례다. ✍️오늘의 밑줄 한 문장 -사람은 다 힘들어. 그러니까 서로 돌보면서 살 수밖에 없는 거야. -세상이 원하는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내가 가진 것들을 버려가며 다시 시작하는 거지...... -다만 대단하다는 말에 취해 있었고, 그 취기가 지속되자 본인조차 정말 그렇다고 믿어버린 것뿐이었다. 서울에 와서도, 취업을 한 뒤에도 여전히 대단한 사람이고 싶었고, 그래서 가진 것 이상으로 애쓰고 무리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 있는 사람인 척했다. 사실은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바닥까지 끌어다 쓰고 집에 돌아오면 뻗기 일쑤였는데도. -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반드시 받아낼 거라는, 서로를 향한 믿음. 호흡, 박자, 타이밍이 서로를 통과하여 하나의 기관처럼 움직이던 감각. 두 사람은 같은 리듬 안에 있었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 끝없는 망망함에 허망함이 밀려왔고, 자신을 하염없이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 기분이 싫었다. -사람이 숨을 참을 때요. 숨이 차는 건 산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보내지 못한 이산화탄소가 쌓여서라는 거 알아요? -우연은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필연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라.
📓이 글은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의견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랠리 #박민경 #문학동네 #서평 #서평단 #도서협찬 |
|
박민경의 『랠리』에는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괴력을 가진 소녀, 자신이 사실 코끼리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믿는 여자,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바스라지는 병에 걸린 직장인까지. 설정만 보면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장만 읽어도 깨닫게 된다. 이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표제작 「랠리」였다. 주인공 희원은 극심한 스트레스 끝에 자신의 몸이 모래처럼 바스라지는 환각을 경험한다. 물론 현실에는 없는 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계속 갈아 넣고, "너한테 맡기면 걱정 없어"라는 말에 기대어 무리하다가 결국 자신부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력문정과 다마고치」 역시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문정은 자신의 힘을 봉인한 채 살아간다. "나에겐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봉인된 힘이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 역시 어른이 되면서 많은 것을 봉인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솔직함, 열정, 상처받기 쉬운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작품 속에서 가족들이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은 웃기고 엉뚱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했다. 「즐거운 나라」는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거대한 몸 때문에 세상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나라가 원했던 것은 특별한 이해가 아니었다. "나만 나를 사랑하면 어쩔 건데? 그냥 나를 좀 읽어달라고." 이 한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절규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을 테니까. 『랠리』의 가장 큰 장점은 기발한 설정과 현실적인 감정이 절묘하게 만난다는 점이다. 읽는 동안에는 황당해서 웃음이 나는데, 책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웃긴데 아프고, 이상한데 너무 현실적이다. 소설집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이 책이 결국 '버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힘을 봉인한 채 살아가고, 누군가는 이해받고 싶어 하며, 누군가는 무너질 듯한 하루를 견뎌낸다. 그럼에도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간다. 『랠리』는 거창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말한다. 사람은 다 힘들다고. 풍선처럼 뒤틀리고 모래처럼 바스라져도, 우리는 서로의 '다마고치'가 되어 기어이 삶의 랠리를 이어갈 테니까. 최근 읽은 소설집 중 가장 독특했고, 가장 다정했던 작품이었다. |
|
랠리 | 박민경 - 전에 <소설보다 : 겨울 2025>를 읽고 박민경작가님의 <별개의 문제>와 작가님의 인터뷰까지 정말 인상적인 소설이었다고 주절주절 주접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예사롭지 않은 필력을 가진 신예작가님의 등장에 관심작가님으로 등록 후 언젠가 작가님만의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상에! 나왔다. <랠리>! 박민경작가님의 첫 소설집인 <랠리>의 출간 소식에 얼마나 기쁘던지..😊 <괴력문정과 다마고치> <즐거운 나라> <랠리> <살아 있는 당신의 밤> <긴 하루> <수색기> <별개의 문제> <스위트 홈> <자라는 자라서> 작가님이 오랫동안 갸웃거리고 서성이며 쓰셨다는 아홉 편의 소설이 실린 <랠리>. 하...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진짜 이 작품이 작가님의 첫 소설집 맞나요? 어쩜 이렇게 고능하시죠? 모든 단편이 조금의 아쉬움없이 정말 너무 좋았다..🫠💚 치열하면서도 위태롭고 무기력한 소설 속 인물들은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너편의 타인과 랠리를 하듯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꿋꿋하게 삶을 버텨낸다. 결과가 비록 희망적이지 않을지라도, 매일 최선을 다해 랠리를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며 나는 어느새 인물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관중이 되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게다가 소설의 끝에 실린 성현아 문학평론가님의 작품해설까지 강렬하고 완벽했다. ‘무덤덤이란 무덤에서 끌어올린 관’이라는 말은.. 후.. 그야말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본문은 물론 해설과 작가의 말까지 책의 모든 구성이 정말 갓벽..✨ 벌써 작가님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랠리 #박민경 #문학동네 #단편소설집 #소설 |
|
요즈음 읽은 소설집 중 가장 재밌었던 『랠리』. 소설 속 내용과 메세지가 마냥 가볍진 않기에, 이렇게 표현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첫 단편을 읽고 느낀 첫 감정은 ‘재밌다’는 거였다! 맛깔나는 문장과 유쾌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 그 속에 담긴 의미있는 메세지들. 이 셋이 끊임없이 랠리하는 통에 흠뻑 빠져들어 읽었다. 이야기를 읽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이번 유월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단편집! 쉽사리 책 선물을 못하는 편인데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을 만난 것 같아 기쁘다. 탁구나 테니스 등에서 양편의 타구가 계속 이어지는 일을 말하는 ‘랠리’. 우리 사회와 인생은 끊임없이 타인과 랠리한다. ”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반드시 받아낼 거라는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주고받을 때도 있지만, 때로 우리는 랠리를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멈출 수 없던 그 순간의 랠리 덕분에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기도 한다. 바로 이 책 속 인물들처럼. 이 책에는 마냥 삶을 낙관하기엔 고단한 사회에 지친 인물들이 등장한다. 정말이지 누구도 이해 못할 것 같은 각자만의 감정과 관계들. 그런 순간에도 콩-하고 랠리를 시도하는 이가 있고, 콩-하고 깨달음을 주는 사건이 있다. 그렇게 콩콩- 주고 받는 랠리 안에서 인물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게 참 좋았다. 특히 좋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제목의 비밀이 밝혀지는 게 참 좋았다. 다 읽고나면 제목만 보아도 그 내용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내용이 잘 함축된 좋은 제목이 많았고, 처음엔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제목도 다 읽고나면 너무나 또렷해진다. (「별개의 문제」도 제목이 너무나 센스있다!) 너무나 좋은 이야기들이 내게 찾아와줘서, 마침내 작가님과 닿을 수 있어서 기뻤다. 무덤덤이라는 무덤과 두 가지의 관으로 표현한 해설도 참 좋았다. 「랠리」속 인물처럼 나도 책장을 덮을 때마다 좋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이 이야기를 만났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 하다는 기분이 들 만큼” 🔖 진심이 된다는 건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딱 그만큼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진심이니까. 그건 스스로를 매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배운 게 있다면, 진심은 대체로 사람을 살게 하지만 갉아먹기도 한다는 거였다. 세상에 완전히 무해한 진심이란 없다. (p.234) #문학동네 #도서제공 #서평단 |
|
"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박민경의 첫 소설집 《랠리》 "소설이라는 건 어떤 사건을 통과하는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관계의 성공보다 관계의 마찰에 더 관심을 두는 이야기들 같았다.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을 우리는 따뜻함으로 기억하기 쉽지만, 사실 대부분의 관계는 마찰 속에서 형성된다. 서로 다른 몸과 마음이 부딪히고, 기대와 현실이 어긋나고, 이해와 오해가 오가며 끊임없이 어긋나는 순간들을 포착한 소설이었다. 랠리의 본질이 공을 넘겨 상대를 이기는 것 아니라 공이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향해 계속 움직이는 데 있듯이, 이 소설집 역시 관계의 결과보다 관계를 지속하려는 움직임 자체를 주목한다는 점이 좋았다. 상대가 받아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공을 보내는 사람들. 랠리와 인생은 참 닮아있다. 완벽하게 사는 것, 정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서툰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가는 것, 무너지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 그리고 세차게 날아오는 삶의 공을 넘어지면서도 끝내 받아치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코트 위에서 계속 무언가를 던진다. 말을 걸고, 문자를 보내고, 글을 쓰고, 사랑을 하고,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마음을 보낸다. 네트 너머에서 무엇이 돌아올지 몰라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은 누군가의 응답을 기대하는 존재인 걸까. "희원은 주현과 주고받았던, 믿음, 감정, 기억을 주고받으며 살아볼 만한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김정운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상호주관성이 떠올랐다. 나와 당신이 마찰하는 공간에서 각자의 주관성이 교차하고, 서로를 밀고 당기며 인생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공유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진짜 자아를 발견한다. 서로의 삶이 서로를 살게 만든다는 진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삶이라는 끝없는 랠리 속에서 언젠가는 공을 받아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오더라도 서로를 향해 공을 띄웠던 눈부신 랠리의 시간들은 남는다. 그 기억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하고 감사하게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책을 덮으며 얻는다. 소설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소설가의 최선이 창조한 세계에서 소설이 주는 최선의 행복을 누렸다. 감사합니다, 박민경 작가님. 끈질기고 아름다운 주고받음의 여정을 다채로운 푸른빛깔 《랠리》에서 즐겨보시길 추천합니다.
#도서지원 #랠리 #박민경 #문학동네 #소설추천 #단편소설 |
|
#협찬도서
아홉 편의 소설이 담겨 있습니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섯 편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즐거운 나라> 5kg의 우량아로 태어나 네 살에 이미 키 120cm에, 몸무게 38kg에 이른 88년생 신나라의 이야기입니다. 놀림의 대상이었던 나라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유도라는 세계에 입문합니다.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지만 진전은 없었습니다. 나라의 인생엔 우울한 날들만 더해집니다.
<랠리> 지옥철을 오가던 평범한 회사원 희원은 어느 날 갑자기 몸의 일부가 사라지는 환각을 겪게 됩니다. 뇌가 신체를 파괴되기 쉬운 무기물로 인지하는 증상이었습니다. (81쪽)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타인을 챙기느라 자신의 감정 따윈 버려둔 지 오래전이었습니다. 무던한 척, 괜찮은 척 살아오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의사는 스트레스 상황을 줄여 보라고 조언합니다. 점심시간만큼은 나 홀로를 외칩니다. 우연치 않게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만나게 됩니다. <살아 있는 당신의 밤> 결혼을 앞둔 현수의 앱에 난데없이 옛 애인 선배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위치 확인 앱 미나스에서 지구별을 떠난 선배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현수는 선배의 위치로 향합니다.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어둠은 짙어졌고, 알 수 없는 존재가 움직입니다.
<수색기>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해서 오후 세 시에 퇴근하는 청소 노동자 애영이 주인공입니다. 애영은 어떻게든 노화를 늦추려고 노력합니다. '브레인 트레이닝'앱을 열어 뇌 연령을 확인합니다. 틈틈이 문화 센터에 다니며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 합니다. 아들은 애영의 휴대전화에 동작 감지 앱을 깔아 놓았습니다. 앱으로 애영의 무사를 확인합니다. 아들의 염려가 부질없다 생각했지만 위기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퇴근 후, 현관문이 닫히지 않은 것을 확인합니다. 아들이 선물해 준 로봇 청소기가 사라졌습니다. 애영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청소기를 찾아 나섭니다. <별개의 문제>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자 보여주기를 중시하는 남편과 꼼꼼하고 조심스러운 실속파 아내가 주인공입니다. 일단 벌려 놓고 부랴부랴 뒷수습하기에 바빴던 남편도 결혼과 현실이라는 단어에 성격이 조금씩 변해 갑니다. 피자 가게를 차리며 받는 별점 테러를 만회하기 위해 이벤트를 열고 서비스를 추가합니다. AI의 반갑지 않은 활약으로 일이 점점 줄고 있는 삽화가 아내는 배달 피자 상자에 귀여운 그림을 그리며, 닭봉을 튀기며 남편의 사업에 합류합니다. 두 부부가 뼈빠지게 노력해도 별점 테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별점 테러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직접 배달에 나섭니다. 두 시간이 지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타고난 모습 때문에 매 순간이 순탄치 않은 인물의 삶에서부터 독립 후 맞이하는 시련까지, 부모의 사랑과 돌봄이 자식의 돌봄으로 이어지는 서글픔에서부터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간까지, 학창 시절부터 청장년기를 지나 노년에 이르는 다양한 삶의 장면을 만났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단편소설 모음집 「랠리」는 우리가 흔히 소설이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 마주하는 후련한 결말을 선사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들은 시련과 고통에 담담함을 보여 줍니다. 때로는 급박한 상황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인생을 풀리지 않는 과제의 산더미처럼 느끼고 있는 독자에게 「랠리」의 전개는 오히려 고맙게 다가옵니다. 풀어야만 할 다음의 임무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특별한 인물도 대단한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소설 속 장치는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괴력문정과 다마고치>의 '다마고치'에는 게임과 돌봄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과 돌봄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고된 인생의 주인공 신나라와 소설의 제목 <즐거운 나라>는 반어법을 통해 주인공의 안타까운 상황을 더욱 애처롭게 만들었습니다. <별개의 문제>의 '별개'도 독자에겐 특별했습니다. 피자집 사장인 남편에게 '별의 개수'는 생계를 위해 쟁취해야 할 목적이었고, 삽화가인 아내에겐 완성해야 할 그림, 꿈의 문제였습니다. 별은 남편과 아내에겐 별개의 의미였지만 중요성만큼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장치와 위기의 순간이 아홉 편 모두에 담겨 있었습니다. 소설을 이제 막 비틀어 읽기 시작한 초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일상의 순간에서 극적 효과를 이끌어낸 부분이 반가웠습니다. 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좋은 벗이 되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럽게 넘겼습니다. 인생의 다양한 순간을 만났습니다. 고단한 삶의 연속이 현실적이었습니다. 소설적 장치와 극적 구성을 경험했습니다. 「랠리」를 통해 인생의 다양한 순간을 소설의 매력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랠리 #박민경 #박민경소설 #문학동네 |
|
2026-167th #서평단 #랠리 #박민경 #문학동네 🏓363번째 도서제공 원제는 <여름의 단어>였다 <랠리> 속 탁구 장면이 이 책의 최종 제목이 되었다 총 9개의 단편이 다 공감을 이끌어내며 재미있게 금방 읽었다 각자의 소설에 인물들이 살아숨쉬며 애잔한 마음에 조금 코끝이 시큰거릴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단편 스타일이 모여있다 이렇게 부족한 모습들이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고 각자의 마음에서 다르게 출렁거릴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는 그렇게 해석이된다 그럼에도 슬퍼도 누군가에 알아달라고 징징거리기 보다는 이제는 언젠가는 흘러가버릴 그런 감정에 익숙해져버려서 무탈하기만, 아니면 오늘만 지나면 나아지리라 그렇게 하루하루의 루틴을 해나가면 조금 침잠되어가는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긴 듯 닮은 듯 좋았다 🏓<1. 괴력문정과 다마고치> 지금은 선뜻 상상하기 어렵지만 장원은 한때 태권도장을 운영했었다 딸 문정은 남자애 같은 여자애였다 문정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봉인된 힘이 있다 💬 세상이 대수냐. 나부터 구해야지. 💬 대졸자 임과 동시에 대출자가 되었다는 한탄과 일의 소박한 기쁨과 대단한 슬픔을 나누며 💬 야 나 어쩌면 조만간 효도할지도 몰라. 난 곧 팀장 죽일지도 몰라. 같이 파이팅하자. 💬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인생의 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는 세간의 말에 문정은 동의했다. 그럼 나머지 반은? 그건 당최 감이 안 왔다 💬 꼭 앞서야 하는 걸까. 그런 것엔 큰 관심이 없었다. 💬 그때 로부터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누군가에게 자신은 여전히 맞혀도 덜 미안한 사람인 듯싶었다. 💬 그렇다면 서른엔 무엇을 해야 적절할까 💬 힘을 쓴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쓰고 싶었다. 파괴 하는 것이 아니라 붙드는. 밀치는 게 아니라 당겨 안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제약과 무례한 질문을 돌파하는 방식으로. 힘 을 선도하는 힘. 강함을 지향하는 강함을 갖고 싶었다. 문정에겐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는 괴력이 필요했다. 🏓<2. 즐거운 나라> 몇 해 전, 강원도 산중의 비닐하우스에서 향정신성 버섯을 재배한 혐의로 한 여성이 검거되었다 흔들리는 보디 캠 영상 속에는 산발을 한 채 짐승 같은 괴력을 발휘하며 저항하는 거구의 여성이 담겨 있었다 💬 아무도 신나라의 상처는 보지 못 하는 듯했다 💬 당첨이 확정된 복권이었다. 머지않아 터진다. 터진다. 제발 터져! 그러나 언제나 속이 먼저 터졌다 💬 현실이 비좁고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소녀들이 으레 그러 하듯 신나라도 책에 빠져들었다. 💬 탁월한 작품은 독자를 만들지만 위대한 작품은 작가를 한든다. 🏓<3. 랠리> 희원의 몸이 바스러지기 시작한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몸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게. 그 엄연한 상실이 남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게. 이 상황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아주 괜찮아 보인다는 것도. 그 모든 것이 희원을 지독히 외롭게 만들었다 💬 외로움이란 아무리 거대해도 막상 내뱉고 나면 너무 작고 납작해져버리곤 했다. 희원은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의 부피를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전할 자신이 없었다 💬 끝없이 재현되는 어제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희원은 문득 과거와 완전히 같은 미래를 과연 미래라고 부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4. 살아 있는 당신의 밤> 미약하지만 신호는 확실히 잡혔다.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작고 동그란 구체가 맵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불안정한 환자의 위치를 보호자가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것이 미나스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5. 긴 하루> 첫째가 이혼한 뒤 본가로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남자 셋이 저녁을 함께 먹는 날이 드물게나마 생겼다 💬 요즘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라는데, 둘째는 직장을 휙 그만뒀다가 휙 잘도 구했다. 다 고만고만한 회사긴 했다. 원래 저수지에서는 비슷한 놈들만 낚이는 법이니까. 💬 어설픈 내 새끼. 여력이 남아 있을 때 속아주고 싶고, 밀어주고 싶다 <6. 수색기> ‘브레인 트레이닝’ 앱을 가장 먼저 실행했다. 뇌 인지력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태영이 깔아준 게임이었다 건강과 스마트. 그 두가지가 이 새드를 살아가는 시니어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인 듯했다 💬 삶이란 것이 너무나 납작하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 나도 어린 태영의 일상에 저토록 촘촘히 간섭하며 키우지 않았던가 <7. 별개의 문제> 내가 병주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랜차이즈 피자집을 차린 병주 가장 악질은 이유 없이 별점 테러를 가하는 이들이었다 <8. 스위트 홈> 우리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벌레를 해충이라고 부릅니다 이 건무렝 살기 시작한 지는 두 달쯤 됐다 <9. 자라는 자라서> 김두리는 맞선을 본 이현정과는 멀리갈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요플레 먹으러 오라고나 하던 박유나라는 옛 연인이 있다 윤하나는 올 초 급성심근경색으로 에크모 시술을 받았다 💬 가족이라도 적당히 덮어놓고 모른 채 살아야 원만하게 아껴줄 수 있는 법이었다. #소설추천 #책 #다꾸 #필사 #북스타그램 #책추천 #책스타그램 #책리뷰
|
|
#박민경작가 #랠리책 #문학동네 #소설집추천 #단편소설추천 #솜사탕사랑
- 문학동네 박민경 작가님의 책은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엄청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글이 있어서 기대하며 펼쳤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정말 재미있게 읽은 몰입도가 굉장한 책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고싶어졌습니다.) 박민경 작가님은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살아 있는 당신의 밤]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첫번째 소설집 랠리가 출간되었다고 해요. 작가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눈이 온순해보이고 속눈썹도 길고 예쁘게 생긴 지상최대 최고의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파괴적인 힘모다도 눈에 서린 착함을 읽어내려하는 사람들의 시도가 느껴진것을 이야기하고 그 느낌으로 마음이 편안핸 경험을 말합니다. (그래서 비슷한 의미로 '즐거운 나라'에 코끼리가 등장했나 봅니다.) 사실 소설집은 읽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기도 해요. 한 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작품을 시작하는 흥미와 몰입감이 떨어지기도 하거든요. 《랠리》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은 하나하나 소재가 다르고 개성이 뚜렷했습니다. 문장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주인공이 설레면 같이 설레고, 슬프면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소설들이었어요. [괴력문정과 다마고치] 겉으로 드러나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묵묵히 타인을 위해 힘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그 힘들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과정. 아버지와 딸이 외치던 '봉인해제'는 아마 지금도 계속되고 세상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거란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답니다. [즐거운 나라] 큰 키와 남다른 체격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시선을 감당해야 했던 신나라의 이야기인데요. 무거운 소재임에도 우울하게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잠깐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 안의 여주인공은 못생긴 외모때문에 사회가 주는 차별과 불이익을 감내하며 살아왔고. 참고 참다가, 끝내는 자신을 사랑해주던 남자친구의 사랑도 받기를 밀어내고 자신의 아픈마음을 이야기하던 그 장면... 나는 혹시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상처준 적이 없는지. 아니면 나도 이런 다름의 이유로 불이익이나 차별과 상처를 받은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던것 같아요. 마지막에 주인공은 자신만의 '즐거운 나라'를 개척하고 그녀가 말하던 '나 좀 살자'라고 포효하던, 그 말의 서사가 밝혀지던 이야기였습니다. [랠리] 읽고 나면 제목처럼 시원한 바람을 맞은 기분이 듭니다. 일상을 벗어나 잠깐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순간들, 직장 창문 밖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느꼈던 작은 일탈의 욕구들. 그런 마음들을 담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작은 공감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살아있는 당신의 밤]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병에 걸린 그. 그를 바라보는 주인공. 그리고 그가 꿈꿨던 비상하고픈 해방감. [긴 하루] '일탈'을 이야기하는것 같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있고 우리 인생은 계속된다. 라고 말해주는 응원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한국단편문학 현진건 '운수좋은 날'이 잠깐 떠오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달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글이였어요. [수색기] 밝은 기분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려 시도하고 노력해도, 사회가 받아주지 않으면 다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그래도 툭툭 털어내고 내 삶을 살아갑니다. 로봇청소기에 정을 줄 노년일지라도... [별개의 문제] 일상에서 누구나 상상했던일, 그런 일상의 화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의 장난이 평범한 사람을 한순간에 악마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사람은 항상 친절해야 한다. 라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됐답니다. [스위트 홈] 가족은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가족이라고 다같은 가족이 아니라는 인터넷 커뮤에서의 글들이 떠올랐어요. 그 미움들은 실제 존재하는 거였습니다. [자라는 자라서] '자라'라는 하나의 생물 소재로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연결시키는 부분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글. 연결되는 부분이 전혀 이질감없이 느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라' 를 놓고 저마다의 이익의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는 모습들. 이런 구성은 너무나 놀랍게 다가왔어요.
이 책 《랠리》소설집을 읽으며 느낀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함이었습니다. 현실소설 같다가도 스릴러가 되고, 때로는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다가도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독자를 혼자 두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친절한 문장으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끝까지 신나게 데려가 줍니다. 박정민 배우가 성해나 작가의 소설을 두고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 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박민경의 《랠리》도 그랬습니다. 성해나 작가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다양한 장르의 재미가 가득 담긴 소설집. 단편소설은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분들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후에 솔직한 후기를 작성하였습니다.
|
|
평론에서 인용된 말처럼 현대 사회는 좋은 삶보다 생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무사히 하루를 통과하고, 뒤처지지 않고, 제 몫을 해내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살아 있다는 사실만 남고 살아가는 기쁨은 조금씩 마모된다. 『랠리』의 인물들은 바로 그런 상태를 살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버텨왔지만 어느 순간 살아가는 이유보다 살아남는 방법에 더 익숙해진 이들. 모두 살아 있지만 충분히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설 속 비극은 가난이나 질병, 상실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자신이 하나의 인간이기 전에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더 많은 성취와 효율을 요구받을수록 인간은 풍요로워지기보다 점차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삶을 이루는 수많은 경험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되고, 존재는 평가와 증명의 대상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하루는 채워지지만 삶은 비어가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박민경은 그 상실을 거창한 사건으로 회복시키지 않는다. 누군가 건네는 귤 하나, 오래 이어지는 전화 연결음, 우연히 나누게 된 대화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인물들을 다시 삶 쪽으로 이끈다. 특히 표제작 <랠리>에서 탁구공을 주고받는 행위는 이 소설집 전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은유처럼 읽힌다. 공은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가 받아주어야 다시 건너갈 수 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홀로는 자기 존재를 온전히 지탱할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주고받으며 자기 바깥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삶을 지속시키는 힘은 의존과 교류 속에서 태어난다. 누군가의 안부를 기다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떠올리고, 함께 기억할 순간을 만드는 일. 그런 보잘것없는 왕복들이 하루를 견디게 하고 삶을 다음 장면으로 건네준다. 버려진 것과 순수함. 함께 존재하기란 불가능해 보이는 그 두 가지를 같은 자리에 놓은 소설집, 『랠리』.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존재들, 누구의 시선에서도 비켜난 것들 속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생의 빛이 있다. 그것은 낙관과도 조금 다르다.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삶 어딘가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희미한 신뢰에 가깝다. 인간의 존엄은 유용함에서 비롯된 적이 없다. 쓸모를 잃었다고 해서 존재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연약하고 초라한 순간에도 쉽게 소멸하지 않는 어떤 것이 인간 안에 남아 있다. 이 소설집은 그 작고 완고한 생의 의지를 바라본다. 세상이 놓쳐버린 것들 속에서, 인간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빛을 향해 오래 시선을 머문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일이 결국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 문장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누구도 완전한 고립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성공이나 눈부신 승리가 아니다. 때때로 타인이 건네는 작은 신호들이다. 『랠리』는 쓸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잊기 쉬운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기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계 속에서 살아난다는 것. 그리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삶은 누군가와 주고받는 작은 랠리 속에서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살아가는 이유보다 살아남는 방법에 더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오래 버티는 법은 배웠지만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지 가끔 흐릿해지는 사람에게. 나이 들거나, 다르거나, 뒤처졌다는 이유로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기분을 경험한 사람에게. 그리고 인간이란 결국 혼자 견디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와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믿는 사람에게 이 소설집을 권하고 싶다. 박민경의 인물들은 거창한 구원 대신 작은 왕복을 선택한다. 말 한마디, 안부 한 번, 선의의 시선 하나가 오가며 생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탁구공이 네트를 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랠리를 이어가듯이.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며 끝내 “닿았다 드디어”라고 적는다. 그 문장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 소설집 역시 우리에게 건네진 하나의 공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공은, 생각보다 멀리 날아와 있었다는 것을. ✏️도서출판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