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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그랬고, 현재가 그러고 있으며 미래도 그럴 것이다. 늘 남을 위해 사랑하고 투쟁한 사람들은 당시에는 핍박을 받고 현재는 파묻혀지며 앞으로 누군가의 자각이 아니면 다시 기억되는 것조차 힘든 것이 사실일 것이다.
한국의 정신지도자라고 부르고 싶은 함석헌 선생은 지난 20세기를 거쳐오며 일제의 어두운 터널속에 아까운 동지의 생명을 잃었고 동족 상잔으로 어머니와 두 자녀과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독재정권을 향해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가 되어서도 멈추지 않고 [씨알의 대변자]로 싸워냈다.
어릴적에 학교문고를 가득 메운 위인전들은 한결 같다. 그 위인들은 너무나 먼 과거의 인물이고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위치에서 우러러 봐야되는 우상이다.(이순신 장군상을 보라. 그리고 하늘을 치솟을 듯이 높아지는 각 나라의 동상들도 보라)
그렇기 때문에, 신神 처럼 높이 쳐다보고 믿음을 말로만 해볼뿐 감히 그 신神 으로 우상화된 인물의 심정이 되어 현실의 거친 파도를 향해 부딪혀보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종교인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바로 세속을 버리거나 현실과는 다른 고유의 성역에서(그것이 곧 담이 아니겠는가) 그들끼리만 살아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제시대때 청록파시인들이 생명을 외친다거나 독재정권에서 순수시를 표방했다는 지식인들 대부분이 따뜻한 현실의 이불을 덮고 동족이 끌려가든, 총칼에 무지하게 짓밣히든 상관없이 자버렸다는 것이다.
예수나 부처가 위대한 것은 바로 현실속에서 그 깨달음을 펼쳤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산에서 도를 닦았다한들 그 도가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메달려죽은 모습이 각 교회의 상징처럼 세워져있는 것을 우상화나 믿음의 대상으로 전락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함석헌 선생은 그야말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살았던 분이다. 그것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은 몇가지 지표로서 함석헌 선생을 이단자로서 내몰 수밖에 없음이다.
"썩은 쥐를 파먹는 솔개가 어떻게 우주 천지를 나르는 봉황의 마음을 이해하겠느냐." (p167)
라며 박정희와 김종필을 향해 조용히 응수한 것처럼 예수가 경전을 보는 거랑,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거랑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식수준이나 정신수준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그가 기독교에 만족했다면, 오늘날의 목사들처럼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목회로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함석헌은 그 많은 목사들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은 존재로 기억조차 안 되었을 것이고 이렇게 평전으로서 한 사람의 인생(직업)마저 뒤바꿀만큼의 오랜 연구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조용히 로마정부에 눈치를 받지 않고 남들을 봉사하며 교회조직이나 만들어 확장하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다면 그런 예수는 오늘날의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와 다른 인생으로서 2천년이 넘도록 수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이 책과 더불어 "뜻으로 본 한국 역사"도 읽어봐야 될 책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있어 함석헌의 인생과 삶의 자세에 관해 알아보고 싶다면 아마도 함석헌 평전이 괜찮을거라 생각된다.
이 책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지은이 김성수의 박사논문인만큼 기독교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관적으로 많이 담겨져있다는 점일 것이다. 왜 이것이 한계라고 한다면 함석헌 선생은 김경재선생이 말하듯 종교의 다원주의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삶에 기독교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와 함께 일했던 독립운동가와 민주열사를 굳이 퍼센트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나눈다는 것은 자칫 어떤 사회정의를 위하는 공동의 선에 대해서도 우열로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3.1 운동 참가로 검거된 사람들의 종교적 구성에 대한 일본 경찰의 통계에 따르면 3.373명이 기독교인이었고, 2.283명이 천도교인, 346명은 유교인, 229명은 불교인이었다 p38
당시 중요한 시국 성명서 서명자 가운데 평균 69퍼센트가 이들 진보적 기독교인이었다. 그들은 또 인권 운동 참가자 중 44.5 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었다. p161)
이러한 한계는 함석헌 선생에 대한 다양한 종교적 시각속에서나 민주화나 독립운동가라는 한민족의 정체성의 관점에서 연구되어 대중의 참 지도자로서 그 모습이 다방면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종교이전에 사람이 먼저 태어났고, 민족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한국이 외래 종교의 탄일에는 나라가 떠뜰썩하지만, 정작 민족의 명절이나 고유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오히려 무시하는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곧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이든, 독재정권에 있든 상관없이 자기 종교의 구원과 교리에만 갇혀 지내려는 의도아닌 의도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이 다음처럼 한 말은 그래서 종교인의 구분을 떠나 한국의 참 위인으로 평가되고 회자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기독교는 위대한다. 그러나 참은 더 위대하다." [인상깊은구절] 함석헌의 이상주의는 밤하늘의 북극성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북극성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이기에 가까이 있는 언덕보다 더 결정적인 표준, 더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북극성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북극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인간에게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인류는 목적보다는 수단과 과정이 존중받는 사회, 권력자나 승리자가 아니라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영원히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노력마저 멈출 수는 없다. 그 노력들이 쌓이는 만큼 바람직한 삶의 영역은 한 뼘이라도 넓어지고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
| 함석헌 선생은 지난 20세기 한국현대사의 격동기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종교사상가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는 훌륭한 문필가요, 종교 시인이었으며, 민권운동가로서 그리고 역사철학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운동을 실천한 까닭에 흔히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우며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제도권이 아닌 재야에서 일하였고, 자기를 드러내 놓기를 즐겨하지 않으신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이 위대한 한국인을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저자 김 성수가 영국 세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퀘이커 교도로서의 함석헌의 생애와 유산(An Examination of the life and Legacy of a Korean Quaker, Hahm Sokhon : Voice of the People and Pioneer of Religious Pluralism in Twentieth Century Korea)'을 한국어로 번역·편집한 것이다. 철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저자는 20대 초반 더 정확하게는 1979년 함석헌 선생을 강연을 처음 들을 때 마치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함석헌 선생의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함석헌에 미친 젊은이가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9년 함석헌 선생의 죽음을 접하고는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에 유학하여 본격적으로 함석헌을 주제로 연구를 시작하여 이 책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를 '신의 도시와 세속도시 사이에서의 여든 아홉 해'로 붙이고 함석헌의 삶이 하느님 나라와 인간세상의 이원론, 이념대립의 뿌리가 깊은 한반도 현실과 대결하며 평화와 관용의 공동체를 역사속의 삶과 하나로 묶는데 바쳐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평북 용천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평양고보학생일 때 체험한 3·1독립운동 시위와 그 이후 오산학교로 이어진 학창시절, 그리고 일본 도쿄에서의 무교회주의에 공명하는 과정 등에 대한 초기서술은 민족에 대한 고민이 신학에서 비롯된 사상적 변화를 이해하는 단서임을 보여준다. 3·1운동이후 친일로 기운 기독교 교단의 모습에 실망하고, 사회주의 무신론과 기독교 사이에서 갈등했던 그는 성서본질을 강조하는 무교회주의를 대안으로 택한다. 그것은 유불사상 탐구와 결합되면서 정치권력·제도가 줄곧 민중(씨알)을 괴롭혔던 이후 80년대까지의 정치·사회상에 대한 응전론의 신념을 굳히는 토대라고 규정한다. 청년기에 톨스토이, 러스킨의 평화주의, 웰즈의 세계주의론 따위의 영향으로 양심과 도덕을 지고의 인간적 가치로 보았던 함석헌 선생의 사상적 궤적이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서는 영향력 있는 이상주의자로 변화되고 있음을 저자는 적시하고 있다. 말년에 들어서 노태우 정권과의 밀착 의혹, 여성편력 등의 민감한 부분까지 가감하지 않고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지은이는 이기적이고 소심했던 그의 가정생활과 불행한 가족사 등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이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스스로를 '함석헌 환자'라고 자칭하고 있는 저자가 시종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료와 근거에 입각해서 함석헌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평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좋은 책임을 강조하며,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 본인의 종교가 기독교나 퀘이커교가 아니라 불교임을 밝혀 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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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탑이 하나 일어설 때 민중의 양심에는 그림자가 한치 깊어간다"(p.101) |
| 일반적으로 너무 유명한 사람은 대중들이 볼때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아는게 없다.함석헌도 그중 하나다. 평전은 이러한 지식허영을 메워주는 쟝르이다. 한 인간의 일생을 리뷰하여 타당하게-여기에는 주,객관적 관점이 포함된다- 작성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인물연구로 학위를 딴 사람은 흔치 않고, 이는 그 결과물이다. 서론이 길었다. 인물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관심이 는 사람은 방법론적으로 저자의 연구방법을 원용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내용면에서도 만만치는 않지만 역사상 인물의 고민과 고뇌를 담아냄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약 1백년전에 나서 불과 몇년전에 간 인간의 생애가 지금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저자의 실증적인 자료수집솜씨에 대한 평가와 함께 기록을 좀처럼 남기지 않는 우리문화의 결함을 극복한 오묘한 조화의 피조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