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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간디라고 불리는 함석헌 선생님에 대해 저자 박홍규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간디와 비교한다. 인간 함석헌 선생은 숭배해야 될 대상이 아니다. 비판할 점은 숨김없이 해야 된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진보 사상가였던 함석헌 선생님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에 불과하다. 허물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스승의 허물을 덮기만 하고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함석헌 선생의 업적이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1901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 정권을 몸소 경험한 함석헌 선생의 발자취를 '함석헌 평전'과 함께 간디와 비교하여 분석한 책들을 통해 살펴보는 것은 자랑스런 우리나라의 지성인을 알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함석헌 선생의 철학의 바탕에는 기독교가 있다. 일본 유학 시 만난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의 문하생으로 김교신과 함께 공부한 적이 있다. 조선으로 돌아와 <성서조선>에 참여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를 책을 통해 만나게 되면서 영향을 받는다. 반면, 인도의 간디는 직접 톨스토이와 서신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영향을 받는다. 훗날 함석헌 선생은 간디가 살았던 인도를 방문하기를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함석헌 선생에게 영향을 주었던 우치무라 간조의 사상의 근저에는 그가 철저한 일본인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치무라는 청일전쟁을 정의로운 전쟁, 즉 의전이라고 하고, 한국 병합에 대해 침묵했으며, 관동대진재 때의 한국인의 학살에 대해서 침묵했다는 점에서 함석헌으로서는 스승으로 삼기 힘든 사람이었다. " (130) 또 우치무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정한론자 사이고 다카모리를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함석헌도 도요토미를 찬양한 것은 우치무라의 영향인지도 모른다.(196) 함석헌 선생은 아버지가 장로셨다. 기독교는 그에게 있어 자연스러웠다. 함석헌 선생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으로 퀘이커교도로 살아간다. 퀘이커란 '하나님 앞에 벌벌 떤다'는 뜻이다. "퀘이커들은 일요일 월요일 하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교회라 하지 않고 단순한 모임이라 하며 목사도 교직자도 이른바 지도자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141) 함석헌 선생은 섭리 사관과 만주 사관으로 역사를 인식했다. 즉 섭리 사관이란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역사도 신의 섭리라는 관점이다. 무신론자인 저자 박홍규님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사 인식인 셈이다. 그리고 만주 사관이란, 본래 한반도는 만주와 연결되는 것이 섭리였기에 한민족의 보금자리는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였다고 하는 역사인식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함석헌 선생님을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식민사관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수 많은 지식인과는 분명히 구별된 삶을 살았음을 볼 수 있다. 인도에서도 간디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고 한다. 하물며 험한 세상을 살았던 함석헌 선생의 평가가 모두 좋으리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저자 박홍규님처럼 새로운 비판적 안목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