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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구에게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얘기한적이 있다. 아마도 그 누구가 바로 내가 평생을 같이 하고싶은 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도 나도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얘기 했던 것 같다. " 난 결혼이라는 제도가 맘에 들지 않아. 사람들이 북적대는 결혼식부터 바비인형처럼 한결같이 지루한 미소를 지어야하는 신부도 맘에 들지않고 허연 돼지같은 어색한 신랑화장도 구역질나고. 의식이 살아나면서부터 난 사람들 많은 곳을 피해다녔어. 그래서 그런가 초등학교 졸업식외에는 한번도 졸업식장에 가본적이없지. 자라면서 친척이 많지 않은 것이 나에겐 행운처럼 느껴졌을 정도야. 아! 결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 그래서 말인데, 난 이렇게 살고싶어. 한 마흔살 정도에 소통이 가능한 남자를 만나 외딴 섬마을에서 각자의 공간을 쓰며 이웃이라는 묵인된 명분하의 간섭과 유물같은 예의에 방해받지 않으며 서로가 원할 때 섹스-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를 하는거지! 그런 면에서 상대방이 고아일 경우 좀더 수월하게 완벽한 은둔을 꾀할 수 있게되겠지. 아! 참 생활을 위한 돈벌이는 어떻게 하냐고? 그게 좀 고민스러웠지만 이렇게 해결될수도 있을것같아, 우선 집을 사기위해선 정확히 반씩 투자를 하며 나머지 생활비는 연금과 저축, 이자로 될것같아, 뭐? 너무 이상적이다고? 그런 남자가 어디 있겠냐고? 글쎄, 그렇긴 하지. 우리 주변엔 너무 normal한 사람들이 많으니깐..마치 객관식의 질문에 결혼이 정답인양. 그러나 문제는 다수결로 절대정답을 판가름할 수 없다는 거지. 주관식으로 바뀔 경우엔 여러 가지 정답이 나올수도 있으니깐."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에밀과 쥘리에트는 내가 생각만 해오던 은둔생활을 계획하고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그들의 대화중 속담이 인상적이다. <행복해지려면 숨어 살라> <숨어 살려면 행복하라> 나의 경이로운 부러움을 사면서. 그러나 오후 네시만 되면 유일한 이웃인 베르나르댕의 방문을 받으며 거절하지 못한 연약함으로 결국 그들의 평화는 깨지고 만다. 다분히 컬트적이다. 결국 모든 창조는 파괴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는 알에서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데미안) 자신의 길들여진 예의바름을 파괴하지 못한 에밀의 현학적 고뇌와 그 해결방안이 다소 동화적이지만 결코 만만한 가벼움은 아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아멜리 노통의 글은 모두 다 읽은 셈이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그 참신함과 기발함은 결코 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창작이 범람하거나 마르지않기를. [인상깊은구절]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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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의 머큐리를 읽고 한동안 작가의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교직에서 은퇴한 한 노부부가 시골의 어느 마을에 정착하여 살기로 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대개 그렇듯, 소설의 배경은 작은 마을의 주인공 노부부의 집과 이웃의 집 정도.. 한정된 공간에서의 심리 변화를 표현하고, 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 탁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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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을 박박 긁어 뱉어 낸 책 같다. 오후 네시에 오는 앞집 남자가 뭐가 어쨌다는 건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어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그 누구라고 궁금해서 끝장 본다. ㅎㅎ
은퇴후 에밀과 쥘리에트는 시골생활을 시작하고 오후 네시면 앞집 남자 베르나르댕이 찾아 오는데 그 방문은 일분일초의 오차도 없이 매일 네시만 되면 반복됨으로 인해 두 사람은 고민하게 된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수 있지만 다른 것에 애착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세상 그 어떤것에 애착도 없고 흥미도 없고 관심이 없다면 살아가는 이유는 딱 한가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앞집의 남자 베르나르댕은 시간이 가는 것을 축복한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의문이 생겼지만 나는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정상이고 나와 교제를 하는 모든 이들도 정상이므로 누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음이다. 베르나르댕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더 많았다면 나는 비정상이 되는 거겠지!흠.
어지간히 성격이 낭만적이거나 좋지 않다면 베르나르댕에게 화를 낼텐데...두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쩔쩔맨다.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인건 결말이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의 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라면?...과 지식인이라면?...과 사회성을 온갖 갖춘 예의 바른 정상인?하며 뜨악하게 되지만 나라도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이기도 하다.
중독성이 높은 책이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족.돈.지식.권력.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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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 노통브의 책은 쉽게 읽히지만 뚜렷이 기억나는 줄거리나 극적 구성이 없는 경우가 많지요. 그녀의 책에 관심이 있어 여러 권 구입을 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내용도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매일 오후 4시면 찾아오는 노인... 커다란 사건보다는 등장인물들간의 대화나 심리 변화에 의해 내용이 진행되는 것은 여전하지만 읽고 난 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아멜리 노통브 책 중 가장 드라마틱하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정말 쉽게 쓴 것처럼 느껴지지만 한번 읽으면 그만큼 빨려들어 단숨에 읽게 되는... 재기가 너무 지나쳐 그 재기에만 의존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또 그 재기에 탄복하게 되는 작가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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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작가에 대한 추천이 많았기 때문에 '아멜리 노통브'의 책에 입문하길 손꼽아 기다렸다.. 아서스의 소중한 나눔으로 만나게 된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 그녀의 책중 어떤것을 읽을지 고민하던중~ 그냥 제목에서부터 끌림이 있는 이 책을 선택했다.
『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 p009 --- 』
오후 네 시...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그들의 네 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시간인지 궁금해서 조바심이 났다. 주인공 에밀과 쥘리에트는 유치원 같은 반에서 부터 사랑을 키워 법적으로 부부가 된지 43년이 되는 노부부로, 자녀가 없지만 아직도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설레임을 품고 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부부다.
그들은 그들이 평생 꿈꾸는 <우리집>... 작은 시냇가 옆 빈터에 자리잡고, 벽을 타고 올라간 등나무때문에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그런 앙증맞을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그리고 평생을 꿈꿔오던 꿈같은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단 일주일.
그들의 시간이 멈춘것 같은 아름다운 생활은 단 하나뿐인 이웃집 '베르나댕'씨의 등장으로 산산히 무너지고 만다. 베르나댕씨는 에밀보다 나이가 많아보이는 의사로... 4시에 그의 집을 방문해 정확시 6시에 돌아갔다. 그가 하는 말이라곤 '그렇소,아니오' 단 두마디.. 이거 정말 상상만 해도 미칠노릇이다..
그는 첫 방문 이후에 매일 오후 4시 정각이 되면 에밀과 줄리에트의 집을 방문했고 '그렇소,아니오'와 함께 침묵의 2시간을 지키고 6시에 돌아갔다. 이쯤되면 불편한 이웃때문에 그들이 행복한 일상이 망가지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소심한 에밀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왜 에밀은 베르나댕씨에게 솔직히 방문을 거부한다고 말하지 못하는가?'에대한 의문을 던진다. 단순히 문을 따주지 않는 것 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정신병자'로까지 보여지는 베르나댕씨의 방문... 결국 이 노부부는 그로인해 그들의 온전한 시간 모두가 그로인한 생각들로 지배되는,, 신경과민 상태로까지 빠지들게 된다.
베르나댕의 부인 베르나데트가 등장과 함께, 어느순간 에밀과 쥘리에트는 베르나댕부부를 그들도모르는 사이에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수 없을 정도의 베르나데트.. 그리고 쓰레기장과 흡사한 그들의 집... 초침까지 맞아 떨어지게 맞추어둔 25개의 시계와 베르나댕씨의 자살소동... 에밀은 어느 순간 베르나댕씨가 살아갈 이유가 없음을 공감하게 되고 결국 그를 도울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 꽃말에는 오해의 소기자 많다. 그 후 나는 가련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등꽃의 절규가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애원이었다. 담을 타고 올라가는 등나무의 모양은 여왕의 옷자락에 매달리는 사람의모습을 방불케 했다. 눈물 섞인 한탄처럼 떨어져 내리는 푸른 꽃송이, 그 협박 섞인 탄원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 인생은 긴 한탄, 끝나지 않는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오.> 나 스스로 내가 내린 결정을 아무리 반박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살아 있을 이유, 그가 죽지 말아야 할 이유, 그를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p180 ---- 』
60대 노부부의 대화와 일상으로 엮여있는 이 소설은 그들이 노부부라곤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상큼하고 명량한 대화로 나를 사로 잡았다. 주인공이 나이를 강조하여 밝히지 않았더라면 아무래도 10대의 이야기라고 단정지었을 법한, 아름다운 묘사들과 달콤한 속삭임들... 아는 책을 읽는 내내 '베르나댕'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품고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을 자주 했다.
책의 마무리쯤 에밀이 서두에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는지 함께 공감하면서, 영화 아멜리에의 느낌 처럼 무언가 평범하지 않고 톡톡튀는 아멜리 노통브의 매력에 쑴풍~ 빠지고 만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냉큼집어 다시한번 그 젊은 작가의 독특한 세계에 빠져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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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은 참 참신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에 비해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위트나 상상력의 정도는 뛰어나고,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의 깊이도 좀 더 깊어지긴 했을지라도 뭔가 참신하다는 맛은 약간 떨어지게 느껴지더라.
미스테리 소설도 아닌것이, 본격적인 부조리만을 그리려는 작품도 아닌 것이기 때문인지 개연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어색함이 많다. 이를 경계소설로 읽게 하려면 독자들의 옥의 티 찾기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릴 것도 같다.
하지만, 가정은 가정...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처럼 인물들은 마치 신화속 인물이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빠진 것처럼 자신의 의지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행동을 한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신의 실존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게 어쩌면 그 가정 및 구도에서부터 당연한 귀결이다.
하여간, 이 작가는 짜증나는 인물을 그려내는데는 탁월하다고 인정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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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내가 과연 ‘나’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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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야기지만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리뷰를 작성하려고 창을 열고 제목을 쓰려는 순간 그냥 문득 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가 문장으로 쓰여지는, 스토리가 텍스트로 구현되는 과정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국문학도임에도 위 명제의 인과나 텍스트로 구현되는 과정에서의 소설적 특정을 명확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오후 네 시'를 읽은 느낌이 저렇다.
소설은 이야기지만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그리고 '오후 네 시'는 기막힌, 훌륭한 소설이다.
나의 아멜리 노통브 입문작. 그녀의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한 것은 2년 전 인데 어찌어찌하여 이제야 읽게 됐다. 사실은 조금 두려웠다. '그녀는 천재다, 그녀의 소설은 그로데스크하다' 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두근두근 흥미로웠기 때문에 미뤄뒀던 그녀의 책을 이제야 들게 됐다. 정말이지 감탄할 수 밖에 없던 그녀의 소설.
늘 그렇듯 책 소개 부터- 이야기는 은퇴한 노부부가 꿈에 그리던 자신들만의 집을 갖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 그들은 호젓한 시골, 아담한 집에서 혼잡한 세상을 잊고 행복한 꿈에 잠기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위에 단 하나뿐인 이웃이 찾아온다. 그들은 그가 의사 출신이라는 사실에 고마워하며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나 그 이웃은 매일 같은 시각에 찾아와 두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다. 반가운 이웃은 조금씩 귀찮은 불청객이 되고 점점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자신들만의 집에서 누리던 평화와 안식을 깨뜨리는 존재가 되며 급기야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인터파크 도서 제공
나는 나를 평생 알지 못한다.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p. 9
책의 시작은 저러하다. 책의 첫 문장에서 감탄한 적은 처음이다. 맞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스스로를 더 잘알게 된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평생을 자기탐구를 해도 우리는 끝내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 아멜리 노통부가 오후 네 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결국 평생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
평생 지식과 철학을 탐구하며 교양있게 살아온 주인공은 은퇴 후 한적한 시골마을에 내려가 살게된다.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와 소박한 삶을 즐기던 그에게 낯선 이웃이 찾아온다. 똑-똑. 그들의 일상은 그렇게 노크 두번과 함께 금이 가기 시작한다. 매일 오후 네 시면 찾아오는 이웃은 목적도 없이 찾아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며 두시간을 있다 간다. 주인공과 그의 부인은 그가 좋아하지 않을만한 질문을 하거나 자기들만의 농담을 하며 이웃의 침입을 즐겨보려 한다. 교양있게 이웃을 대하려던 그들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웃의 행동에 불편해진다. 그리고 그들은 교양있게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교양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고명하신 선생님. 제가 만약 선생님이 갖고 계시지 않은 온갖 특징들을 열거함으로써 선생님을 설명하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이없는 결과가 될 겁니다. <팔라메드 베르나르댕이 아닌 모든 것>이라니. 그 목록은 길겠지요. 왜냐하면 선생님의 특징이 아닌 것들은 무척 많을테니까 말입니다.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예를 들어 의사 선생님께서는 깃털을 가진 동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렇지. 또 선생님께서는 귀찮은 작자도 아니시고, 뻔뻔스러운 인간도 아니시고, 멍청이도 아니시죠." 쥘리에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기라도 하듯 손으로 입을 막았다. p.63~64
그들에게 보여지는 이기적인 자아. 체면은 지키되 그들이 참을 수 없는 시간은 이웃을 놀리며 견디려 하는, 부조리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소설속 그들은 마치 피해자인 것 마냥, 좋은사람들인 것 마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는 인간인 것 마냥 그려진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함이란!
의사이고, 장애를 가진 부인을 돌보는 이웃이 왜 자신의 집에 오후 4시면 들어와 자신들을 괴롭히는지 그들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이웃을 걱정하는 것 마냥 함부러 타인을 추측하고, 정의하고, 비판한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알지. 하지만 당신이 보았다시피 그 어떤 대화도 불가능해. 모든 게 설명 되는군. 베르나르댕 씨가 이런 외진 곳에 정착한 것은 자기 아내를 사람 눈에 띄게 하지 않기 위해서야. 그가 그렇게 거친 인간이 된 것은 그 여자와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이지. 다른 인간 관계 없이 그 여자하고만 말야. 그리고 그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두 시간을 머무르는 것은 그의 내면에 남아 있는 인간적인 면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절망에 빠진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존재야. 우리가 없다면 그는 자기 아내처럼 애벌레 같은 상태로 빠져들고 말거야." p. 94
타인에 대한 정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웃이 자살을 시도했을 때 조차, 그는 이웃이 죽고싶어 한다고, 이웃에게는 죽음만이 자유라고, 이웃의 자살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라메드 베르나르댕씨! 좋아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죽어야 해요. p. 177
아멜리 노통브가 어느 노부부의 평범하지 못한 일상을 통해 하려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단순히 특이한 사건을 이야기화 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아와 본성, 타자에 대한 이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부조리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후 네 시'를 읽으며 호프만의 소설 '모래사나이'가 생각났다. 햇빛이 눈부셔서 사람을 죽인 사내. 그리고 사내의 재판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부조리들. 소설 '오후 네 시' 속 사내는 옆집 의사이고 부조리에 중심에는 있는 것은 주인공 노부부 일 것이다. 그들은 뛰어난 공감능력과 배려와 지적수준으로 옆집 의사의 자살을 도와주었고 그것은 옆집사내를 위한 것이었다고 믿고있다. 그리고 이 모든것이 사실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옆집 사내는 끝내 '아무 생각이 없소.' 라고 말했을 뿐이니까.
다만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p. 183
혹자는 '평범을 벗어난 일상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가 아닌 자기탐구에 더 가깝다. 예의바르고 교양있던 그들의 표면적인 모습 뒤에 감쳐진 이기성. 기가 막힌 것은 주인공 부부의 모습처럼 소설도 표면의 텍스트 뒤에 작가의 철학을 철저히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꽤 괴리감 있는 텍스트와 그녀의 말은 재치와 재담과 풍자와 냉소로 포장된다. 그녀가 그로테스크하다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 그대로 드러나는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과 냉소적인 목소리.
비교적 짧고 쉬운 이야기로 많은 사색을 주는 '오후 네 시'. 내 아멜리 노통브 입문작은 무척 흡족했다. 때문에 그녀의 다른 책들도 무척 기대된다. 소설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그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기도 하지만 더 훌륭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오랫만에 즐거운 소설.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사색이 필요하다면 '오후 네 시'를 추천하는 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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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 위해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온 에밀과쥘리에트 부부 하지만.이웃집 한남자 베르나르뎅이 찾아오면서 시작이 된다.. 매일 같이 4시에와서 쇼파에 앉아 커피를 내오기를 기다린다. 앉아서 에밀이 묻는 말에만 네 아니오만 대답하고 6시가 되면 그는 자기 집으로 간다.
에밀은 베르나르뎅에 행동을 무지 불쾌하게 받아들이면서 자기 자신에 속마음을 표출못 한다. 나두 읽으면서 답답해 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면 이책은 사람에 심리에 대해 탐구 하는것 같다. 어디까지 참을것인가? 언제 에밀은 시원하게 자기 자신에 하고 싶은말을 베르나르뎅에게 할것인가를 궁금하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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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책. 표지 그림만으로도 뭔가 궁금하고 괴상 망측한 이야기일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온다. (그래서 표지 일러스트가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됨..^^)
제목처럼 오후 네시만 되면 고요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이사까지 감행한 노부부에게 어김없이 방문해 훼방꾼임에도 정작 자신이 아닌 노부부가 되려 자신에게 훼방꾼인냥 행동하는 이웃의 한 남자.
결국 우리가 지니고 있는 예의라는 것들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얽어매고 있으며 때로 불행하게 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는 작품이에요.
'거절'이라는 것을 못해서 결국 그 방문자에게 '친절'을 베풀고 '선의'를 행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친절'이나 '선의'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평생을 지켜온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에 혼동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이 지닌 가치관으로, 예의로 그 이웃을 구출(?)하고 자신도 평화를 되찾게 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잘 표현해 놓은 작품이에요.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에겐 다소 충격적일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결국 웃으며 깨달음을 얻게 되는 작품입니다~
지금은 그녀의 [ 두려움과 떨림 ]이라는 작품의 전반부를 읽고 있는데 이 또한 재밌네요^^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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