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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올리버 색스> 박사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만난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내 감동을 주는 필자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는 1986년에 할런 레인이 쓴 <마음으로 듣는 소리: 청각장애인의 역사>를 읽으면서 청각장애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언어를 알기 전에 청력을 잃어버린 선천적인 청각장애인들의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언어를 습득한 후인 7살 이후에 청력을 잃은 사람들은 비록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소리의 세계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철저히 무음의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데 이들의 세계를 우리가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흔히 장애를 선택할 수 있다면 시각을 잃는 것보다는 청각을 잃는 쪽이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야말로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을 전혀 모르거나 그들을 이해할 생각조차 없었던 무지한 발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선천적인 청각장애인들은 오래전부터 ‘멍청이’로 취급받았는데 그 이유는 언어 자체를 모르는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말이 생각의 일부라고 했을 때 언어를 배우지 못한 청각 장애인들은 생각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또 청각장애인들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결핍에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우연한 학습의 기회가 청력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언어는 의사소통 능력만이 아니라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런 의사소통이 잘못되면 지적인 성장이나 사회적인 교류, 정서적 태도 등이 한꺼번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린 시절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서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나는 청각장애인들이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시각에 의지해서 일반인과 거의 비슷하게 사물의 현상들을 이해하고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청각에 이상이 있어 듣지 못한 사람의 경우, 다른 기관에 아무런 손상이 없더라도 언어를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신적인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청각장애인들에게 빛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수화이다.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세 살 이전에 수화를 배울 수 있다면 일반인들과 같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배우는 언어의 흡수 능력이 탁월한 것은 수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화는 구체적인 화제와 추상적인 화제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효과적인 언어이다. 체계적인 수화를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생기고, 그 학교에서 같은 처지의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생활할 때 이들의 지적 능력은 일반인들과 비슷하거나 어떤 점에서는 월등히 높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수화를 통해 이들의 공간 감각이 일반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은 시각을 잃은 사람의 청력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와 비슷하다. 수화는 진정한 언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충족시키고 있다. 수화는 공간을 언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말을 문법적으로 처리할 때처럼 수화를 사용할 때도 똑같은 신경통로가 이용되지만 추가로 시각적 처리와 관련된 통로가 이용된다. 그래서 수화는 공간인식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말에는 시간이라는 1차원밖에 없다. 글에는 두 가지 자원이 있고, 모델에는 3차원이 있다. 4차원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수화뿐이다. 수화 사용자는 공간의 3차원을 몸으로 이용할 수 있고, 거기에 시간이라는 차원이 덧붙여진다. 수화는 4차원적인 표현 채널 속에서 구문론적인 가능성들을 모두 완전히 이용한다.(132쪽) 청각장애인들 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탁월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언어인 수화가 선행되어야한다. 언어능력이 갖춰진 뒤라야 그들의 다른 지적인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화는 사용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체한다. 말은 몸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수화는 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수화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몸짓이다. 청각장애인에게 수화가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통로인 이유다. 일반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거나 도움을 받아야 될 사람으로 막연히 규정지어놓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일반인들의 생각에 청각장애인들이 반발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현재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의 비율은 인구의 약 0.1%에 해당하며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많은 특징들이 자동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경이로운 선물이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문화가 천성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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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젊은 청각장애인 커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화를 모르니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전혀 모르지요. 그러나 그들의 대화를 보면서(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목소리를 보았네]라고 붙였군요. 참 적절한 표현입니다)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차칸에 같은 청각장애인이나 수화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대화를 공유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과 저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어떻게 대화를 나눌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잘 듣고, 말을 잘 하는 사람들에겐 밤이 문제될 것 없지요. 오히려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 받는 평안한 공간이자 시간이 되겠지요. 그러나 청각장애인들에겐 밤이 너무도 적막하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들이 야광장갑을 끼면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텐데, 서로의 대화를 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렇게들 하지 않나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영국 태생입니다. 미국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임상을 시작했고, 그가 만난 환자들의 사연과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활발한 저술로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었지요. 올리버 색스의 책은 국내에 약 10권 정도 번역 소개되었으나, 이 책이 3번째 독서입니다.
시각인식 불능증 환자인[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선 음색인식 불능증, 역행성 기억상실증 등 기이한 신경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긍정의 에너지를 찾아주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에선 저자가 등산중 발생한 사고로 한쪽 다리의 근육과 신경이 심하게 손상되는 부상을 입게된 사연을 접하게 됩니다. 진단명은 '말단부 신경장애'였습니다. 병을 앓고나서 환자를 더욱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자신과 같은 증상의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이 증상이 생각과 정서의 '억압'때문이 아니라, 신경 단절의 결과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시점에서 약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수화'에 관한 책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그 특유의 탐구정신이 발동합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그들(청각장애인들)은 독특한 언어, 감수성 그리고 자기들만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의 세계', '수화로 생각하기', '청각장애인 혁명' 입니다. 이 책을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겸양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 나는 이 분야(수화)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편견도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욕심을 부릴 이유도 없고, 반감도 없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완성한 뒤 아마도 맨 처음 했어야 할 일이었지만 늦었다고 고백합니다. 수화를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유아발달 과정에선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이 듣고 배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도 적용이 됩니다. 일단 알아 들을 수 있어야 말문이 트이는 것이지요. 어학은 듣고 말하기 과정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거나 아주 어릴 때 청각을 잃은 사람들의 상황을 생각할 때 가장 심오하고 궁극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언어와 생각의 관계." 언어를 배우고 나서 청각장애가 발생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도 결례가 안 될까요. "언어를 배우기 전에 청력을 잃은 사람들의 상황은 1750년 이전에는 정말이지 재앙이었다. 그들은 말을 배울 수 없어서 '벙어리'가 되었고, 심지어 부모나 가족들과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으며, 아주 기초적인 몇 가지 수화와 몸짓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문자를 익히고 교육을 받아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가장 비천한 일밖에 할 수 었으며, 대개 극빈에 가까운 상황에서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과 인간과의 대화는 언어와 정신을 발진시킵니다. 청각장애인에겐 안타깝게도 부족한 현실이지만, 대화를 통해서 '내면의 말'이라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사고(思考) 능력을 얻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면의 말은 거의 단어가 없이 이루어지는 말이다. ...겉으로 하는 말의 내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겉으로 하는 말에서 생각은 단어로 구현되지만, 내면의 말에서 단어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순간 죽어버린다. 내면의 말은 대부분 순수한 의미만으로 이루어지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면의 말(또는 내면의 수화)을 통해 비청각장애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사례를 보면 결국 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내면의 말'의 핵심이 문법이라고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문법적 제약이 없다면 언어만의 독특하고 엄청난 자유로움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수화에 대해서 이 사실이 확립된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고 하니 그간 청각장애인들의 깊은 대화의 어려움을 추정하게 됩니다. 수화에 대한 비청각장애인들(개인적으로 정상인이라는 표현보다는 이렇게 쓰는 것이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이 듭니다)이 갖고 있던 '수화'에 대한 판단은 해도 너무합니다. 30년 전만해도 청각장애인들의 '수화'가 일종의 팬터마임이나 그림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더군요. 일예로 '브리태니커백과사전'(14판)에선 수화에 대해 "허공에 그림을 그려서 글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답니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촘스키가 안 보인다 했더니 드디어 나오는군요. 홈볼트는 '언어를 생성해주는 문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모든 언어가 "유한한 수단을 무한히 이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놈 촘스키 덕분에 이 "유한한 수단들이 특정 언어에서 무한히 사용되는 경위"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촘스키는 이 깊은 속성들을 문법의 '심충구조(deep structure)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것이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선천적인 특징이라고 봅니다. 처음에는 이 특징이 신경계 속에 잠들어 있다가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과 접하면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 어쩔수 없는 빈자리가 마로 이 부분입니다. 마지막 3부는 앞서의 글들이 임상 레포트에 가까운 글이었다면, 감동이 더해진 글입니다. 1988년 3월 9일. 갤러데트대학입니다. 이곳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세계 유일의 교양학부 대학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대학이 전세계 청각자애인 사회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개교한 지 12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청각장애인 총장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이사회에서 비청각장애인 총장이 선임되자 1,000명의 학생들이 대학 안밖에서 시위를 벌인것입니다. 교수와 교직원들도 학생들이 내세운 요구사항을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청각장애인 총장을 선임하라. 2) 제인 바셋 스필먼 이사회장은 즉각 사임하라. 3) 이사들의 과반수인 51퍼센트를 청각장애인으로 구성하라. 4) 보복은 하지 말라.
1주일간의 온건한 시위는 청각장애 학생들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새 총장으로 선임 된 청각장애인 킹 조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다들 자신의 가능성을 누르던 것이 사라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청각장애인들도 귀로 듣는 것만 제외하고는 귀가 들리는 사람들과 똑같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습니다." 비청각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들의 대화를 알아 들을 수가 없지요. 아..볼 수가 없으니 시각장애까지 포함되나요? 이 책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을 못한다고 해서 생각까지 더듬거리고 막혀 있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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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제목인 《Seeing voices》를 직역한 《목소리를 보았네》라는 제목을 보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기가 어렵고 공포스릴러 같은 느낌까지 주지만, 목소리를 듣고 말을 해서 의사소통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이 특별히 발달된 사람들에 대한 책이라는 걸 알게되자 제목에 수긍이 간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보니 스쿠바 다이빙을 즐기던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바다를 알지 못하면 세상의 반도 알지 못한다는 말에 설득당해 교육을 수료하고 처음 바다로 갔다. 시끄러운 바깥 세상과는 달리 아무런 소리가 없는 깊은 바닷속에서는 갖가지 색깔의 물고기와 산호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더 한층 평화롭게 느껴졌었다. 말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간단히 손모양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보이면 OK? 라고 묻는 것이고 본인의 상태도 좋으면 손가락으로 같은 모양을 반복하면 된다. 손등을 위로가게 펴서 좌우로 흔들면 지금 상태가 좋지 않다, 검지를 위로 향하게 하면 수면 위로 올라가자는 식으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 물론 이런 몸짓은 언어의 수준까지는 이르지도 못한 것이다.
노엄 촘스키는 "인간의 언어는 구문이라고 하는 일련의 규칙에 따라 상징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는 체계다. 구문이야말로 언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구문과 문법을 사용할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이 인간에게만 있으며 이 능력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나누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청각장애인들이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인 언어능력이 있지만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으면 이런 능력은 활성화되지 않고 지적, 정서적 능력의 개발도 한계가 생긴다. 불행하게도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상당수가 언어를 배워야할 중요한 시기에 이르도록 발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적 능력이 있음에도 자폐증이나 지적발달장애아로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의 경우 차라리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에게 태어나는 것이 가족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아서 정서적으로도 편안하고, 수화를 모국어로 익힐 수 있어서 더 낫다고 한다. 심지어는 생후 4개월 된 아기도 우유를 먹고 싶은 경우 수화로 표현할 수 있다니 아무리 말이 빨라도 생후 1년은 지나야 간단한 단어를 겨우 말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몸짓언어라는 것이 훨씬 원시적이면서도 본능적인 언어에 가까운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딸이 청각장애라는 것을 발견한 샬럿의 부모들은 딸이 장애인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수화를 배워서 보통 아이들을 뛰어넘는 지적, 감성적 능력을 갖는 딸로 키울 수 있었다.
청각장애인의 교육에 있어서 수화냐 구화냐의 커다란 두 흐름이 있고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서로 투쟁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청각장애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소리를 내는 구화법을 가르쳐야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화를 이용한 교육에 비해서 지적 성취가 뒤지게 되는 문제가 있다. 결론은 가능하다면 두 가지 언어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섞어서 사용하는 교육정책이 필요하고, 소리가 들리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간단한 수화 몇 가지라도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를 배우면 "이토록 아름답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독창적이고 감수성 있는 언어를 배운다는 사실에 짜릿한 흥분과 자극을 느끼고 있습니다.(110쪽)"라고 고백하게 될지도 모른다.
활자의 크기까지 고려한다면 본문보다 훨씬 더 방대한 각주가 달려있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가 청각장애인들과 그들의 언어인 수화를 이해하기 위해 쏟은 아름다운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청각장애인과 그들의 언어인 수화를 넘어서, 언어와 뇌과학으로 논의를 확장시키며, 청각 장애인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다른 감각을 주된 감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돕고 있다. 악성 베에토벤이 생애 후반기의 이십년을 청각장애인으로 살면서도 걸작들을 계속 작곡했고 그의 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뇌는 그가 실제로 자신의 음악을 듣는 것 처럼 느끼게 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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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보았네”라는 역설적인 제목, 우리가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 수화와 청각장애인들.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생각하였기에 그런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해는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큰 집단인 정상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작은 집단인 소수자들 흔히 비정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입장 바꿔 생각해봐, 그렇지만, 그런 경험이 없기에 입장을 바꾸기도 힘들고, 이해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으로써 공유하는 것이 많기에 편견을 벗어 던지면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화는 무얼까? 수화는 다른 방식의 표현,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듯 그들은 동작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는 소리에 의한 표현이 정상적이고 그 외의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있지는 않는가? 이런 우리들의 편견을 새로운 시각(언어, 생물학, 문학 등)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가 펼쳐진다. 수화는 시각적인 언어이며 공간적인 언어이며 다른 방식의 언어이다. 어떤 면에서는 목소리 언어보다 휠씬 더 뛰어난 점도 많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수화를 알지 못하기에 “무슨 일이든 너무 늦어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항상 실천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그러면 좀 더 다양한 세계가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화는 완전한 언어이며 뇌의 기본적인 언어다. 만국공통수화는 없지만, 수화들에는 문법적 형식과 관련된 보편적인 요소를 가진다. 수화는 우리가 소리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수화사용자의 몸과 영혼, 그가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독특한 정체성이 수화라는 행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현된다.”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뿌리가 깊다. 심지어 성경에서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로 말소리 중심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통사람에 비해 많은 면에서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그러나 청각장애인들도 보통 사람과 같은 앎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청각장애가 발생했을 당시의 연령이 중요하고, 어린 시기에 이 사실을 알고 교육을 하면 일반인 못지않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일반인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는 이런 교육과 사람들과의 교류가 부족해서이다. 청각장애인의 교육과 해방, 일례로 보통을 강조하는 청각장애인 교육에서 청각장애인 중심의 사고가 아닌 일반인적인 사고로 말하는 법(구화법)을 강조하면서 수화를 억압했을 때 청각장애인들의 문자해독률이 떨어졌다. 또 청각장애인들이 장애 때문에 소외 당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수화로 생각하기. 말로 생각하기, 그림으로 생각하기 그러면 수화로 생각하기도 가능한 것 같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일반화 속에 있지만, 말 대신에 다른 매체도 충분할 것 같다. 생각과 언어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지적, 정서적인 면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 무엇보다 언어의 사용법과 올바른 종류의 대화가 필요하고 질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화는 언어와 정신을 발전시킨다. 청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이런 대화에서 소외되기에 정신적인 발전이 더디다. 또한 “청각장애 자체는 불행이 아니다. 불행이 시작되는 것은 의사소통과 언어가 단절되었을 때다.”, 장애로 인한 단절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언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구조가 분화되고 성숙하는 것이다. 언어는 말로 하는 언어와 손짓언어로 나눌 수 있다. 수화는 공간을 언어로 사용하는 4차원 안의 언어이다. 동시적이며 공간적이고, 문법적 관계와 공간적 관계가 섞어 있다. 수화는 좌뇌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의 소리 언어가 청각적, 순차적 조직이고 수화는 시각적, 공간적 조직이다. 무엇보다 언어경험이 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의 기능 발달에는 언어와의 접촉, 의사소통, 적절한 언어 사용이 필요하다. 뇌 안에 문법능력이 내재되어 있고 아이는 자기들만의 언어구조와 공간적 문법을 창조한다. 변화의 시작. 수화는 단순히 동작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몸 전체,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그의 수화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도구이다. 미국의 청각장애인대학에서 청각장애인총장이라는 단순한 요구도 관철되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대학교의 기숙사생활을 통해 정체성확립을 하게 된 많은 사람들의 의식변화로 시작되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선도적인 스토키의 연구 “수화의 구조”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들의 무관심과 적대적 반응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떤 언어를 날 때부터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자신의 말이 사실은 엄청나게 복잡하며 진정한 언어의 수많은 장치들을 그 안에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기인한 문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청각장애인들의 권리운동은 그들의 의식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더 이상 피보호자로써의 자신이 아닌 주체로써의 자신으로의 인식하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 주해가 너무 잘되어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책인것 같다. 이 책을 읽고서 역시 이해에는 배움이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란 것에 대한 생각 항상 그들을 2류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반성, 알지 못하면 볼 수 없다는 말처럼 알지 못하기에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너무 나 중심적으로 사고했기에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인 사회에서도 장애인들은 돌보아주어야 할 존재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의 의식수준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입장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시각의 교정이 필요한 때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나 교육기관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그들이 편하게 생활을 할 여건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지만, 이런 영역에서는 아직 뒤떨어진 것은 이런 장애에 대한 교육과 공감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함께 나아가면 진정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 같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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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아무래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리없이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듣는 것이 불편해서 수화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청각장애우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올리버 색스 교수의 <목소리를 보았네>를 읽으면서 커다란 충격을 느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 올리버 색스교수는 자신의 환자와의 만남을 글로 옮겨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책을 여러 권 내오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뇌염후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도파민 치료에 대한 반응을 정리한 <깨어남; awakening>을 통하여 그와 처음 만났습니다. <깨어남>은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는 <사랑의 기적; http://blog.joinsmsn.com/yang412/4271286>이란 이름으로 소개되었는데, 로버트 드 니로의 파킨슨환자 연기가 너무 진짜 같아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목소리를 보았네>는 청각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의사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시각적인 언어인 수화의 존재, 그리고 수화를 습득하면 따라오는 지각능력과 시각적 지능의 놀라운 발전은 뇌가 우리로서는 짐작조차도 하기 힘든 잠재력을 풍부하게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 따라서 나는 청각장애인들과 그 가족, 교사, 친구들이 이 책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라지만, 일반 독자들 또한 이 책에서 인간 조건에 대한 뜻밖의 시각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12쪽)”고 적어 하나의 언어로서의 수화가 가지고 있는 놀랄만한 잠재력을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집필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의 얼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요약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제1부 ‘청각장애인의 세계는 할런 레인의 <마음으로 듣는 소리>의 서평으로 시작하여 에세이로 고쳐 쓴 것이며, 제3부 ’청각장애인 혁명‘은 1988년 3월 갤러데트대학에서 일어난 청각장애인 학생들의 시위과정을 지켜본 느낌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제2부 ’수화로 생각하기‘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독립언어로서의 수화의 가치가 의학적으로도 입증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청각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이 쉽게 이해되는 구절을 인용해봅니다. “언어를 배우기 전에 청력을 잃은 사람들의 상황은 1750년 이전에는 정말이지 재앙이었다. 그들은 말을 배울 수 없어서 ‘벙어리’가 되었고, 심지어 부모나 가족들과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으며, 아주 기초적인 몇 가지 수화와 몸짓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 문자를 익히고 교육을 받아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가장 비천한 일밖에 할 수 없었으며, 대개 극빈에 가까운 상황에서 혼자 살았다.(37쪽)” 이렇듯 비참하게 살던 청각장애인들에게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있어난 것은 프랑스의 드 레페 신부가 가난한 청각장애인들 사이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수화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리문답도 성경도 하느님의 말씀도 모른 채 귀머거리이자 벙어리로 살다가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영혼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드 레페 신부는 그들의 수화의 손짓들을 그림과 단어에 연결시켜 청각장애학생들에게 읽기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한때 수화를 억압하고 구화법을 강조한 결과 청각장애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청각장애인들의 전반의 문자해독률이 급격히 뒷걸음질친 결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55쪽)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도 수화를 익히게 되면 정상적인 아이들처럼 인지능력이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지체 혹은 자폐증으로 진단되어 환자취급을 받으면서 정상적으로 발달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윌리엄 캘빈의 <생각의 탄생; http://blog.yes24.com/document/7064175>에서 ‘언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며, 생각의 경계를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라고 한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화라는 모국어를 통하여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청각장애자는 지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부의 갤러데트대학의 시위의 의미는 저자와 밥 존슨이 나누는 이야기로 대변할 수 있겠습니다. “(밥 존슨은) 청각장애인들이 ‘무기력하다는 환상’의 무게 밑에서 고생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 환상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말했다.(190쪽)”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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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접하는 상황이 아니라 약간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정상인의 경우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전혀 생각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이라고 해도 겉보기에는 일반인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 정상인으로 생각하기에 그들의 어려움이라든가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주위의 청각장애인들의 고통과 그들만의 대화 방식에 대해 자세히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수화와 언어의 발달단계, 언어학적 측면에서의 우수성과 풍부한 어휘력이 있다는 사실에 기존의 고정화된 언어와 단어의 틀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편집 구성면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도서의 두께는 얇으나 책의 내용은 너무나 많은 사실을 담고 있고, 최근까지의 연구의 결과가 주축이 된것이 아니고 이전의 내용에 최근의 사실을 접목했다는 점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연구의 결과라 할지라도 최근의 상황과는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언급되어있지않고 최근의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못하는것 같다. 그리고 참고적인 설명을 각주로서 독자의 이해를 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각주로서 보다는 내용에 직접 설명을 부가하여도 좋을 내용들이 각주로 설명되어있어 각주를 유심히 읽지 않으면 전후의 내용과 관련성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각주 부분을 제외하면 오히려 더 이해하기 힘든 형태로 되어있어 독자로 하여금 본문의 내용을 읽다가 각주 부분을 다시 읽고 이해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기에읽기에 약간은 짜증을 부릴만한 형태를 하고 있어 도서가 얇다고 하여 쉽사를 손대었다가는 오히려 도중에 그만 둘 수도 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목만으로는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화에 관한 내용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제목이 아닐까? 많은 의미를 두고 생각을 해보아야 할 타이틀인것 같다. 그러나 내용만은 정상인들이 장애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된 도서이다. 우리와 함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에 대해 정상인들은 정상인들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기에 그에 대한 배려가 드물고 그러기에 장애인들의 삶이 힘들어지는것 같다. 이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장애인들에 대해 그렇게 좋은 판단을 하지 못했던것 같아 이책을 읽고 난 후 그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화는 아직까지 세계 공통은 아닌것 같다. 한국의 수화가 외국의 수화가 다르고 각 나라마다의 고유한 정서와 민족성에 의해서도 형태가 많이 다른다는 것이다. 미국의 ASL이 주축으로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경우 우리의 실정에 맞는 수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화를 위한 몸짓과 손짓은 인간 고유의 형태로 남아있기에 청각장애인들 끼리의 대화는 국적을 불문하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니 이또한 훌륭한 언어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청각이 잃어버림에 대한 보상으로 시각적인 발달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나고 그럼으로써 빠른 손짓과 몸짓을 일반인에 비해 더 빨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것이다. 선천적인 청각장애인들과 후천적 청각장애인들 사이에도 큰 차이를 나타낸다. 선천적으로 청각 장래를 앓는 경우 수화를 통한 의사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되고 소리라는 의미를 모르기에 오히려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수화에 더 빨리 적응하고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의 경우는 더 효과적인 수화를 사용할 수 있으나 기존에 터득해왔던 소리에대한 언어를 생각하게 됨으로 효과적이게도 입술모양을 읽어 상대방의 언어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게 수 있게 되지만 약간의 혼동도 가미된다것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되지만 청각장애인이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에는 많은 고통과 시련이 마음속에 각인될것이다. 수화가 우리가 사용하는 정형화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한 문법 어휘력보다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된다. 한편 언어발생학적 측면에서는 우리의 시조들이 처음 사용했던 의사소통 도구가 바로 수화였던것이다. 그러기에 갓태어난 아기들이 언어를 습득하는것보다 몸짓으로 소통하는것이 오히려 더 우리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언어가 발생되고 문법화의 형태로 정형화된 언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수화는 현재에도 놀라우리 만큼 우리의 주변에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말로하지 않고 의사전달을 할때의 우리의 몸짓만 봐도 수화는 청각장애인들만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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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책은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낸 적이 없었다. 이번에 리뷰어로 활동하면서 이 책을 받았을 때도 솔직히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낼까 걱정이 되었다. 더군다나 나는 수화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몇년 전에 동생이 수화를 배우러 다니면서 이야기해준 게 내가 아는 수화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차서 푹 빠져서 읽었다. 다만 노안이 와서 안경을 쓰고서야 읽어야하는 나에게 작은 글씨의 각주가 많은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각주가 간단한 참고문헌 페이지 소개 정도가 아니라 거의 그 자체로 한 장을 차지할만큼 깊이있는 내용들이어서 각주를 건너뛰고 읽기도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매우 힘들게 읽었다는 점이 불만이라 편집/구성에서 별 하나를 뺐다. 이정도 내용이라면 편집 방향을 바꿔서 읽기 쉽게 배치하던가 아니면 글자 크기라도 키워줬으면 좋았을뻔했다. 대부분의 독자가 각주를 건너뛰고 읽으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내 편협한 생각일까? 책이 새로움을 일깨워주고 읽기에 흥미진진했지만 3부로 이루어진 내용들이 약간 따로 노는 느낌이어서 내용에서도 별하나를 뺐다. 본래 세 개가 각각 쓰여진 것을 모아 책을 냈다고 저자가 밝히고 있지만 좀 더 매끈하게 이어지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청각장애인이 없어서 그동안 아무런 구체적인 생각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요즘은 성탄절에 아이들이 무용인 듯 수화를 곁들인 노래를 하거나 방송에서 수화를 동시 방영하는 것은 본 적이 있어도 직접 수화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어서 동생이 수화를 배울 때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생하고 수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수화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 말씀이 이렇게 체계화된 수화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했단다. 난 멍청하게도 수화는 만국공통어일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에서도 얘기하지만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사용하는 각자의 수화로 대화해왔다는 것이다. 수화에도 단계와 종류가 있어서 단지 글자를 표현해서 단어를 얘기하는 방법도 있지만 수화나름대로의 문법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수화는 우리가 1차원적으로 하는 '말'보다 더 풍부한 공간과 시간을 사용하는 4차원적인 표현법이라는 말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또한 이 책의 본문이라 할 수 있는 2부에서는 이런 수화가 어떻게 뇌를 자극하는지, 언제 수화를 배우고 사용하게 되는지에 따라 다른 지적인 정보 활동이 달라지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아이가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면 하루라도 빨리 수화를 체계적으로 배우게 해야한다는 사실도 널리 알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청각에 문제가 없는 일반인들은 말을 익히고 알아들으면서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이런 조치가 취해지지않으면 지적장애나 자폐같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인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었던 역사적인 흐름에 대해서 읽어나가다보니 그동안 청각장애인이 받았을 고통이 느껴져 안타깝기도 했다. 아직 우리나라도 수화가 언어로 공식 인정되지않기때문에 수화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거의 모두 나에게는 새로운 내용이어서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내용을 다 기록해놓을 수도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그동안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 청각장애인들에게 큰 관심이 생겼다. 오래전에 지적장애아들을 알게되면서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특수교육과에 진학의 꿈을 품고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지만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드니 기회가 닿는대로 수화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는 청각장애인 신부님이 탄생했다. 청각장애를 가졌지만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부님이 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이겨냈겠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는 한여름에 시원한 우물물을 만난 것처럼 행복한 일이리라. 청각장애인들이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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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 언니를 따라서 수화를 배우러 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언니가 하는 것은 다 따라하고 싶었던 나이라 언니가 어디를 가든지 껌딱지처럼 찰싹 붙어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거기도 빡빡 우겨서 따라갔던 것 같다. 언니는 수화에 관심이 많아서 한동안 배우러 다녔었다. 실생활에서는 휠체어 탄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지금 이곳에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에는 죽음의 레이스라고 할만큼 위험천만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휠체어를 움직여 주는 장치를 타고 내려갈 바에는 집밖을 나가지 않는편이 나을 정도다. 어떤 계단은 급경사라서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도 살아가기에는 이땅은 그다지 넉넉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어렸을때 영어를 배우기에 급급해 하지 말고 수화를 배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태어날때부터 청력을 상실하는 아이도 있겠지만 사고로 인해 청력을 상실되거나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수화가 단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언어의 수단이기보다는 어릴때부터 놀이처럼 함께 배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들이 들으면 무지 좋아할 소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수화가 언어로써 아이에게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다. 생후 4개월된 아이가 말은 하지 못해도 수화로 우유를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고 집중력을 길러주어 사고를 깊게 만들고 공간감적인 능력을 크게 향상 시켜준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금방 수화를 습득할 뿐만 아니라 즐거워한다. 그리고 수화의 습득과 더불어 읽기를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도 실력이 크게 향상된다. (158쪽) 수화를 좀 더 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이지만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 버리지만 몸으로 배우는 수화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기억 상실증에 걸려도 몸에 익숙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디가 불편한 것 그런것을 떠나서 아이들이 함께 자연스럽게 클 수 있으면 좋겠다. 재수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아이가 그러지 말라는 경우도 없으니까 말이다. 장애란 것이 갑자기 나에게도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선진국은 복지에 대해서 잘되어 있어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시설이 좋은지 알았지만 그것도 아닌가 보다. 버스안에서 두분이 빠른 속도로 수화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폭풍 수다로 느껴질정도로 두분의 손동작은 빠르게 움직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토록 재미있게 하는지, 나도 그 안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들리지 않아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소리가 끊긴다고 해서 세상과의 단절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언어는 활기차다. 감정을 묘사하고 상상력을 발달시킨다. 강렬하고 멋진 감정들을 전달하는데 이보다 더 적합한 언어는 없다. (45쪽) 가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배로 나올때가 있는데 수화로 이야기를 하면 왠지 마음에서 나올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화로 욕도 하고 거친 말들도 할 수 있지만(귀가 들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리로 들리는 것과 손으로 말하는 것은 느낌이 다를 것 같다. 그렇다고 손으로 감자나 먹어라거나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면 소리는 없을지라도 기분이 좋을리도 없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책을 통해서 귀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본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우리들 속에서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꾸는 것을 허락해주면서도 그들을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일 것인가? (225쪽) 이 책을 통해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확실히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직접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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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창시절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여 친구를 따라 캠핑을 간 적이 있었다. 으레 캠핑이라고 하면 시끌벅적한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 캠핑은 조용했다. 사람들의 손만이 분주히 오갈 뿐이었다.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한 캠핑이었다. 내게는 아주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들이 수화를 이용하여 서로의 의사를 나누는 것은 신기했다. 당시 친구에게 간단한 수화를 배운 기억도 난다.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따라 간 캠핑이어서 그 이후로 청각장애인들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간혹 TV 뉴스 시간에 화면의 제일 아래쪽에 수화로 뉴스를 전하는 걸 보곤 한 것이 전부였다.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는 수화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생소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은 총 세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의 세계”는 지은이가 청각장애인들의 역사를 다룬 할런 레인의 책 “마음으로 듣는 소리(When The Mind Hears"를 읽고 쓴 서평을 바탕으로 한 글이다. 언어를 습득하기 전에 청력을 잃은 아이들이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고 발전해나가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2부 “수화로 생각하기”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표현력이 매우 뛰어나며 말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3부 “청각장애인 혁명”은 1988년 3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세계 유일의 교양학부 대학인 갤러데트 대학에서 벌어진 청각장애인 총장을 임명하자는 학생들의 시위를 지은이가 직접 체험하고 취재한 현장을 담아낸 글이다. 일상 생활에서 청각장애인을 자주 접할 기회도 없고 수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리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각주와 인용이 곁들여져서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런 상황을 접해보지 않아서인지 솔직히 상당히 생소한 내용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면도 있었다. 다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지은이 올리버 색스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는 남다른 집요함으로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건드리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데, 이 책은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수화의 매력에 대해 전하는 책이 아닌가 한다. 지은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마치 밀어붙이기 식으로 써내려가는 글이었다. 이 책 한 권으로 청각장애인의 세계와 문화를 이해했다고 하는 것은 어줍찮은 이야기일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알게되었다고 하는 것도 그저 하기 좋은 소리로 내뱉는 것처럼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내 주위에는 청각장애인이 없고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아직도 청각장애인에 대한 생각은 다소 피상적이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과정이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수화가 가지는 매력이 어떤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청각장애가 없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만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청각장애인들이 바라보는 또 다른 세계와 문화가 존재한다는 특이한 경험을 전해 준 책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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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중학교 2학년 올라가는 아들 녀석과 대화를 좀 했다. 거실에 놓인 책상 위의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를 보고서 하는 말이, “목소리를 어떻게 봐요?” “보이는 목소리란 뭘까?” “모르겠는데요. 눈빛?” “눈빛하고 비슷하긴 한데... 목소리를 ‘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르게 생각해봐.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 의사소통?” “그렇지. 그러면 의사소통을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거라면 뭘까?” “...” 아들 녀석에겐 끝내 답을 알려주기 말았지만, 그 답을 듣고는 곧 수긍을 하고 참 괜찮은 제목이라 했다. (그리고 녀석답게 표지의 그림에 대해 품평을 했다. 마음에 든다고). 그렇다.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는 수화(手話, Sign)에 관한 세 토막의 글을 묶은 책다.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예전 책들을 생각해보면, 청각장애인과 그들의 삶, 원인 등에 대해 더 신경을 썼을 법한데 분명 이 책은 (따지자면) 청각장애인보다는 ‘수화’에 더 방점을 찍고 쓴 책이다. 그럼 왜 수화일까? 올리버 색스의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처음 나온 게 1989년의 일이다)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할런 레인의 『마음으로 듣는 소리: 청각장애인의 역사』이고, 또 하나는 1988년 청각장애들의 유일한 교양학부 대학인 갤러데트 대학(Gallaudet University)에서의 시위다. 첫 번째 장이 애초에는 바로 할런 레인의 책에 대한 서평으로 쓰여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청각장애인에 대해서 비로소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이 바로 갤러데트 대학의 시위(청각장애인 총장을 선임하라며 시위를 했고, 그것을 관철시켰다)를 보고 쓴 글이다. 그러나 그것은 계기일 뿐, 이 책의 중심은 (올리버 색스도 인정하고 있듯이) 두 번째 장이다. “수화로 생각하기”. “왜 수화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바로 이 두 번째 장에 있다. 수화를 배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건 그저 남과 의사소통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력을 비롯한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화도 단순히 정상인들의 언어를 손짓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수화만의 문법을 갖는 수화일수록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수화가 바로 생각이다. 즉, 청각장애인들의 인지 능력과 사회 능력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수화이기 때문에 올리버 색스는 청각장애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수화’에 대해서 썼다고 본다. 그리고 이 내용은 그대로 청각장애인이 아닌 정상인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수화는 의사소통을 위한 하나의 언어이며, 언어야말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올리버 색스는 바로 그 ‘언어’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청각장애인들의 언어’를 특별히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책이 다분히 학술적인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특히 두 번째 장), 적지 않은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논문을 보고, 학술 서적을 보면서 감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다. 올리버 색스의 이전 책들을 읽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고, 올리버 색스가 적절히 구체적인 상황들과 학문적인 내용들을 섞어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반인(그런 게 과연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부르니까)이 수화를 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로는 그것을 의사전달을 위한 손짓 정도로 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어쩌면 판토마임에서 좀 더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 언저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지하철에서 ‘소리 없이 떠드는’ 그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좌뇌가 주로 활성화되듯이 저 대화를 나누며 저들의 좌뇌도 활성화될 것이며, 그건 그들이 손짓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저 이미지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소음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올리버 색스는 분명히 ‘입술읽기’보다 ‘수화’가 훨씬 나은 의사소통 방법이라고 했는데, 청각장애인임에도 4개 국어를 마스터한 김수림씨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수화를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 * 한 가지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분도 언급했듯이 ‘각주’가 읽기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하긴 『색맹의 섬』에서는 책 절반이 각주였으니 그에 비해서는 아주 없는 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본 내용과 주석을 오가느라 집중력이 자주 흐트러진다. 이걸 통합시켜 쓸 순 없었나, 싶어 몇 군데는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본 내용과 각주는 분명 다른 차원의 글이다. 그만큼 그가 대충 생각하고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읽기 불편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201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