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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와 신격화, 그 사이에서 성장하는 테스
"대상화와 신격화, 그 사이에서 성장하는 테스" 내용보기
대학 입학 후, 나름 여성문제와 페미니즘에 관해 혼자서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그래서인지 주변에서 '페미니즘', '여성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며 책 추천을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그때마다 당사자의 성향과 '페미니즘'을 접한 기간 등을 따져서 책을 추천해 주곤 했는데, 가장 난감한 경우가 '페미니즘' '여성문제'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극단적인 페미니즘
"대상화와 신격화, 그 사이에서 성장하는 테스" 내용보기

대학 입학 후, 나름 여성문제와 페미니즘에 관해 혼자서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페미니즘', '여성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며 책 추천을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당사자의 성향과 '페미니즘'을 접한 기간 등을 따져서 책을 추천해 주곤 했는데, 가장 난감한 경우가 '페미니즘' '여성문제'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극단적인 페미니즘의 형태가 매스컴을 탄 경우가 많아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수의 지인들은 '페미니즘'을 과격한 정치 사회 변혁운동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추천했던 책은 페미니즘 명서인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인데, 이 조차도 흥미 부족 등의 이유로 읽다가 만 지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재밌는 책은 없냐는 그들의 물음에 그동안 아무 대답도 해 줄 수 없었지만, 이제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토머스 하디 - 《더버빌 가의 테스》


저자 : 토머스 하디

역자 : 김보원

출판사 :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사실 '테스'라는 이름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주 예전에 보았던 황정음 주연의 드라마 '끝없는 사랑'에서 황정음 배우분이 영화배우로써(!배우가 연기하는 드라마 속 배우!) 테스 분을 연기 했던 장면을 보았었다.


(드라마를 함께 본 어머니께서는 고등학교 시절 '테스'를 읽었다며 '끝없는 사랑' 속 황정음 배우분의 역할이 테스와 매우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드라마 속 황정음 배우분의 역할이 너무 고달픈 인생을 산 주인공 이미지라 그랬는지, 내 속의 테스는 한없이 불쌍하고 그런데도 울지 않는 캔디 같은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근데 이게 웬일, 책을 읽어보니 캔디와는 다른 결의 테스의 느낌을 얻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평소 정말 관심이 있었던 여성문제에 대한 큰 줄기를 잡을 수 있는 책의 내용이라니! 재미와 공부 둘 다 잡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호랑가시나무 열매 같은 그 입술에 키스 한 번만 하게 해 줘요, 테스. 아니면 따뜻한 뺨에라도 좋소. 그러면 말을 멈추지 - 정말이야, 약속한다구!"

위의 책 70쪽, 알렉 더버빌의 말



우선은 테스 인생에 등장한 두 남자 중, 첫번째 알렉 더버빌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테스라는 순박한 시골 여자에게 위기의 순간 등장한 가짜 사촌 알렉 더버빌은 테스의 외모와 몸매 그리고 그 순박함에 이끌려 그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를 원하는 남자다.


책 내내 알렉 더버빌은 테스의 허락 없이 테스를 안거나, 뽀뽀하기도 하고, 테스에게 눈길을 떼지 못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이후 6부 개심자에서 테스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에도 알렉 더버빌은 테스에게 자신을 유혹한 것은 테스라며 더는 유혹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하기도 한다. 하물며 그는 자신이 신앙을 저버리게 된 이유를 테스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속에 숨겨져 있던 테스를 향한 성적 욕망, 지배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테스, 당신은 유혹의 화신이고, 귀엽고도 지독한 바빌론의 마녀요. 당신을 다시 만난 순간 난 당신을 거부할 수 없었단 말이오!" … 그의 눈에는 세속적인 믿음과 종교적인 믿음이 똑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개심 이후로 내내 그의 얼굴 주름살 속에 죽은 듯이 숨어 있던 그 옛날의 발작적인 정욕의 잔해가 부활이라도 하듯 잠을 깨고 살아난 것 같았다.

위의 책 456-457쪽



알렉의 이런 모습은 현대적으로 바꿔보자면, 여성을 대상화 하는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어떠한 의미를 지닌 대상으로 보고자 하는 시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테스를 향한 알렉의 사랑은, 그 깊이가 아무리 깊다고 할 지라도, 테스의 내면이 아닌 그의 외면을 보고 일어나는 감정이다. 테스와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지 않고도 알렉은 '귀엽다, 예쁘다' 등의 말을 계속해서 건네고, 행동으로 그러한 마음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테스가 처음 알렉을 만났을 때, 알렉은 테스에게 딸기를 직접 먹여주고, 장미꽃을 꺾어 테스의 머리에 꽂는 등의 행동을 한다. 이러한 행동 또한 테스를 일종의 인형과도 같이 여기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명문가의 이름을 사서 방탕한 삶을 즐기고 있는 알렉이라는 인물에게 테스라는 예쁘고 순박하며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진짜 그 명문가(더버빌가)의 후손이기까지 한 인물의 등장은 성취욕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즉, 알렉에게 테스는 가지고 싶은, 내 것이 되어야만 하는 예쁜 인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더 이상 젖 짜는 처녀가 아니라 환영으로 나타난 여성의 정수, 곧 전체 여성이 응축된 하나의 전형이었다. 그는 반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아르테미스나 디미터, 혹은 다른 멋있는 이름으로 불렀으나 ……

위의 책 181쪽, 에인절 클레어의 생각을 나타낸 구절


그렇다면 테스의 영원한 사랑으로 남게 된 에인절 클레어는 어떨까?


에인절 클레어는 테스라는 여성 인격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알렉 더버빌과는 완전 반대쪽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에인절 클레어는 철저한 신앙을 지키는 두 형들과는 달리 신앙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가 가득찬 인물이다. 그는 후에 영국 본토에서 대목장을 운영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보필해줄 부인을 늘 찾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순박하면서도 아름답고, 목장일을 잘 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테스는 자신의 이상형에 딱 맞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에인절은 테스를 일종의 여신처럼 여기는 구절이 많이 등장한다.

오전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을 깨우러 온 테스에게 빛이 난다고 표현하거나, 그의 모습이 한 명의 여신과도 같다는 등의 표현은 에인절이 테스를 바라보는 시선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온몸으로 어떤 숨결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거의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그의 신경을 타고 번져가는 숨결이었고, 실제로 뭔가 신비한 생리적인 작용을 일으켜 그는 싱겁게도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위의 책 209쪽, 에인절 클레어의 생각을 나타낸 구절


에인절 클레어에게 테스는 자신이 지켜야하는 순결의 꽃이자,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단 한명의 여인이었다. 에인절과 테스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잘 살펴보면 에인절은 테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테스가 알렉 더버빌과의 관계에 대해 털어놓으려 몇 번을 다짐하고 이야기를 꺼내 보아도, 에인절 클레어는 테스를 향한 환상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결혼 후 테스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클레어가 보인 잔인하도록 냉정한 모습은 자신의 환상을 깨어버린 한 여성에 대한 지독한 분노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여인은 당신이 아니오."

"그럼 누군가요?"

"당신의 모습을 한 다른 여인이오."

위의 책 323쪽, 에인절 클레어와 테스의 대화


이러한 에인절의 모습은 여성을 일종의 보호해야할 순결의 집합체로 묘사하고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강요하는 시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에인절에게 테스는 순결의 꽃 봉오리 속에 있을 때 사랑할 수 있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에 관한 많은 논평들과 감상들이 테스의 수동적인 면모를 비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만났던 테스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의지력과 주체력이 강해지지만, 그렇다고 알렉을 만났던 초반부의 테스가 완전히 수동적이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알렉을 기분나쁘게 잘생긴 청년이라고 묘사한다던가, 그가 주는 딸기를 '반쯤은 기분 좋게, 반쯤은 마지 못해' 받아 먹었다던지 하는 묘사는 알렉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과는 상반되게 정신적으로는 알렉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술을 거하게 마신 여성들의 질타에서 자신을 구해준 알렉과 거닐었던 숲 장면에서는 둘의 감정이 연결되었나? 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테스가 알렉에게 의지를 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그 밤 이후에도 알렉의 집에 이 삼주 가량 더 머물었다는 말은 테스의 주체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인절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주체성의 성장이 매우 돋보인다. 테스는 에인절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고, 그것을 고백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조언도 뿌리치고 자신의 결정만으로 고백하기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테스는 자신은 에인절의 부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같이 사는 여성 일꾼들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건네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데, 이전의 테스와 비교해보면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움직이는 주체성이 많이 보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테스는 에인절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고백하고, 그로부터 버림을 받아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다시 만난 알렉과 동거를 하며 '더버빌 부인'이라고 불리는 와중에 자신을 찾아온 에인절을 거절하지만, 참지 못하고 알렉을 죽이고는 에인절을 찾아나서는 장면은 테스 자아 성장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끝없이 괴롭히던 알렉을 죽이고 자신이 사랑한다고 생각한 에인절을 따라나서는 테스는 자신이 잡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알렉과의 첫 관계 이후 고향을 떠나 목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활기차 보이기까지 한다. 에인절과 지낸 그 짧은 며칠 사이에 테스는 자신의 동생 리자 루를 에인절에게 맡기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순순히 손을 내민다.


그녀가 일어서서 몸을 털고 앞으로 나섰으나, 사나이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준비됐어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위의 책 565쪽, 테스가 체포되는 장면


테스라는 한 인물의 인생의 여정은 여기서 끝을 내린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서평을 작성하면서 너무 여성문제의 초점에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국 농촌의 실상을 잘 표현했다고 알려진 토마스 하디라는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가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테스라는 한 여성의 성장 연대기였고, 알렉과 에인절이라는 두 남성이 대변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뿐이었기 때문에.


사실 길이 문제 때문에 줄인 부분이 굉장히 많다 (그럼에도 길어졌다). 예를 들면 테스와 함께 일했던 낙농장의 여성들의 연대라던가, 테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시비를 거는 농장 주인과 마을 사람들 등등.

그만큼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함축이 굉장히 많고,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도 너무나 많다.


여성문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서라도, 이 책은 매우 재밌는 성장소설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테스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와 함께 울고, 웃고, 두 남자에게 화를 냈다가 사랑도 느꼈다가 하는 이야기로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테스의 감정변화에 따른 자연환경 묘사가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편이라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별에도 세상이 있다고 했지, 누나?"

"그래."

"우리 세상하고 같아?"

"모르지만 그런 거 같애. 어떤 때는 우리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처럼 보일 때도 있단다. 대개는 싱싱하고 안 썩은 건데 - 벌레 먹은 것도 가끔 있지."

"우린 어디 살아 - 싱싱한 거야, 벌레 먹은 거야?"

"벌레 먹은 별이야."

"싱싱한 별도 많은데, 우린 그런 별을 못 골랐으니까 운이 아주 나쁜 거네!"

"그래."

위의 책 36쪽, 알렉을 만나러 가기 전 테스와 동생 에이브러햄의 대화

YES마니아 : 로얄 y********4 2020.02.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