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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뉴진스’나 ‘르세라핌’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신곡을 부지런히 섭렵해나가고는 있지만, 사실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드는 노랫말은 내 어린 시절보다도 훨씬 더 거슬러 올라야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곡들로부터 마주하게 된다. 최근에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해서 화제가 된 정훈희의 <안개>, 우리네 인연을 ‘우연’이나 ‘필연’이라는 틀에 묶어두지 않으려는 의지로 채워진 노사연의 <만남>,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정서를 관통하는 신중현의 <미련>, 오늘 날 ‘방구석 여포’들의 존재를 예견하듯 쓰여 진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 풍요에 잠식된 사회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식의 조소섞인 풍자가 담긴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한 개인이 몸소 감내해온 세월의 깊이에 따라 그 무게감이 달라지는 ‘낭만’을 생동감 넘치게 그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있다. 이 노래의 작곡과 작사, 노래 모두를 겸했던 가수 최백호 개인의 체험이 <낭만에 대하여>의 노랫말을 이루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청춘을 흘려보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법한 정서를 노래가 품고 있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곡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 곡을 토대로 최백호를 ‘한국의 빌리 조엘(Billy Joel)’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러고보니 대중으로부터 ’낭만 가객’이라고 불리는 최백호의 별칭과 빌리 조엘을 향한 ‘음유 시인’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무언가 일맥상통해 보이기도 하다. 최백호의 첫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자신의 대표곡인 <낭만에 대하여>가 그러했던 것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퇴색되거나 지워지고 흘러가버림으로서 결국엔 잃어버리게 되는 모든 순간들이 낭만이었음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낭만에 대하여>의 노랫말 중 한 구절이기도 한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싶은 작가는 ‘잃어버린 것’을 향한 미련이나 ‘다시 못 올 것’을 향한 그리움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긴 세월을 감내하는 와중에 빛나는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디딤돌로 삼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그러한 삶 안에서의 매우 짧은 찰나의 순간들조차 영원을 품은 아름다움으로 창작해낼 수 있음을 고백한다. 세월의 흐름이 빚어낸 (잃어버린 혹은 다시 채울 수 없는)빈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창작물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창작품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삶을 향한 태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작가 최백호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짚는다. 자신이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아련한 기억들, 어려웠지만 가수로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살아내려 했던 이야기, 자신이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에 얽힌 사연, 최근 젊은 가수들과 함께했던 작업과 가수이자 화가로서 맞이하게 된 새로운 도전, 칠십 여년을 살아오면서 쌓인 세상과 삶을 향한 개인적인 단상들 등을 전하며 잃어버린 것들 너머의 남아있는 것들에 시선을 둘 수 있는 여유를 공유한다.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들추어내며 그 안에서 부끄러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하거나 한 달에 한 번씩은 홍대 근처의 만화방에 방문해서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져 지낸다는 고백을 전하는 대목에서는 흘러가는 세월 앞에 무력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월의 흐름을 존중하고 인정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산문집 곳곳을 채우고 있는 화가 최백호의 그림 작품들은 세월 앞에 무력해지지 않되 세월의 흐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려는 작가의 태도를 증명해주듯 자리잡고 있다. 이제 일흔이 넘은 나이인 작가 최백호가 가수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젊은이들에게 어울릴 법한 깔끔한 셔츠와 가벼운 청바지, 편안한 스니커즈 차림의 모습이 칠십 여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진 주름과 흰 머리가 이질감 없이 나름의 조화를 갖춘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가장 유명한 곡을 통해서 ‘잃어버린 것’과 ‘다시 못 올 것’을 ‘낭만’으로 규정했던 최백호는, 이처럼 몸소 그 노래를 자신이 본인이 직접 살아내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산문집이 그가 자신의 노래를 몸소 ‘살아냄’의 일환처럼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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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노래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최백호
우리 시대의 가수 최백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는 어제 책을 빌려서 오늘 오전에 3시간에 걸쳐서 읽었다. 저자의 인생과 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노래하는 사람은 작두 타는 무당과 같다고 한다. 그 무아경지에는 박자도 리듬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밝음보다는 어둠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책표지도 검은색인지 모른다. 그의 책 제목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이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도 있다. 그러나 이 제목이 좋은지는 의문이다.
이 책은 저자의 노래 인생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를 가졌다. 그는 축구와 만화와 미술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 책에 그려놓은 그의 그림은 수준급이다. 그는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유는 깊다. 그래서 이 책은 지식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우러나온 진한 곰탕 맛이다. 그래서 모든 글들이 나의 마음에 스며든다.
우연히 그의 노래가 유명하게 된 낭만에 대하여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무명의 시절에 우연히 히트치게 된 노래는 생물이라고 했다. 그의 노래도 인생도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의 책도 많은 감동을 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경험을 한다. 그처럼 감동이 없는 책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다.
“그런데 말이야. 이건 내가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았고 정말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비밀인데. 나는 말이야 사실 노래할 때 작두를 탄단다. 음악이라는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운 작두를 탄단다. 음악이라는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무당처럼 춤을 춘단다. 맨발로, 머릿속은 완전히 비워지고 완벽한 무념의 상태에 들어가 훌쩍훌쩍 뛰며 춤을 춘단다. 그 순간 그곳에는 박자도 멜로디도 쉼표도 도돌이표도 없는 무아의 세계, 사실 그것마저도 느끼지 못하지만 그럴 거야 그것이 무아의 세계일 거야. 거기서 노랠 하는 거지-(p.27)
그리고 나는 웃음보다는 눈물이 좋다. 즐거움으로 숨 넘어가는 듯한 행복한 웃음소리보다, 아픔을 억누르며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에 더 마음이 움직인다. 밝고 경쾌한 가벼운 노래보다는 슬프고 가슴 아픈 노래들이 좋다. 가사도 멜로디도 슬퍼야 편하다. 그래서 박남정보다는 김수희가 좋다. 김수희의 그 끈적하게 불어 늘어지는 〈애모〉가 좋다.(p.40)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고독’이다. 그것은 내가 노래와 그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 언제나 가장 소중한 친구이다. 고독에서 사유의 힘이 오고 혼자 견뎌 낼 수 있는 강인함이 온다. 진정한 고독은 따뜻한 위로를 준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그랬으면 좋겠다.”(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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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쯤 가수 생활하다 보니. 어느 한 영역에 오랜 기간 머물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닌, 시간이 쌓임에 따라 스스로 터득해야만 하는 것들. 40년 정도를 한 우물을 팠다는 굉장한 뚝심을 발휘했음을 뜻하기도 할 테지만, 무엇보다 인간으로서도 충분히 영글었음을 의미하지 싶다. 십대, 이십대는 제 아무리 노력한들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하는 게 불가능하니 말이다. 텔레비전을 즐겨보지 않는 나와 같은 이에게도 저자의 이름은 익숙하다. 잦은 방송 출연을 한 게 아님에도 그러하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유명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그의 노래를 웅얼거리면서 뭇사람들이 말하는 ‘역주행’이라는 걸 하게 됐단다. 내놓은 지 1년 반이나 지난 앨범의 판매량이 뒤늦게 급증하는 사례라니. 여느 때보다도 문화의 생명력이 짧고 대중들의 성향이 수시로 뒤바뀌는 오늘날에는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 같다. 음악은커녕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는 저자가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무대에 올라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오래 전이었으면 상상치 못했을 일이다. 유수의 대학을 졸업했거나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입장이 아니기에 더더욱.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심혈을 기울여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기대치 않았음에도 급부상해 모두를 놀래기는 일도 있다. 조금 더 살면 이에 익숙해질까 하다가도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인간이 어찌 따라잡을 수 있을지 싶은 마음이 든다. 기본적으로는 삶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외로움과 두려움을 감내하며 성장해 지금에 이르게 된 이야기는 무척 단단했다. 부는 바람에 쉼 없이 흩날리던 순간이 있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거니 싶었고,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적절한 때가 도래했음을 깨달았기에 이와 같은 책을 낼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가 드는 것 이상으로 타인의 시간도 흘렀기에, 이야기 속 등장 인물 다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들을 소환하는 일이 꼭 실례만은 아니어서, 몇몇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리움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 같다.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던 지난날의 공기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었다. 여느 분야보다도 자유로워야 하는 게 예술이지만, 사회 전반에 흐르던 경직된 분위기로부터 음악이라 하여 자유롭기가 어려웠다.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가위를 들이대던 시절이었고, 방송 차 해외를 방문할 때 감시원이 따라붙는 일도 있었다. 때는 박정희 정권의 말기로 삼엄했던 사회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초반의 기세등등했던 자세가 친분이 쌓임에 따라 누그러지는 걸 보며 그들 또한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통령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보인 중정 인사의 기가 죽은 모습에선 일말의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격동의 시간을 통과했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는 생각, 이 또한 거쳐야만 하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등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럼에도 노래하고 춤을 춰야 했던 이들의 혼란에는 비교할 바 아닐 듯.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연상시키는 듯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라는 소제목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어 의미심장했다. 오늘날은 어떤 시대일까.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어찌 평하게 될까. 그림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라면 페이지마다 수놓은 예사롭지 않은 그림으로부터 보다 많은 걸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Beck Ho 라는 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모든 예술의 본질은 동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음악과 미술은 애당초 없었을까, 아니면 바삐 살다 보니 잃어버린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일까. 뜻 모를 아련함이 온몸을 감싸고 도는 듯한 착각이 아직도 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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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엔 아이돌 그룹이니 K-POP이니 해서 대형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상품 같은 가수와 노래들이 귀를 간지럽히고 세상도 반기고 있지만 간혹 흘러간 옛날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잊고 있던 향수가 되살아난다. 누가 지적하거나 가르쳐 준 것도 아니다. 꼬맹이 시절 흘려 들었던 노래들이 체화된 채 잠들어 있다가 청각을 통해 되살아 난 것이다.
목청껏 고래고래 소리를 잘 지르면 "거참 노래 잘한다"라고 찬사를 받지만 모든 노래가 그런 것만도 아니다. 특히 가사가 주는 힘은 예전 노래를 이기지 못한다. 얼마 전에 어느 교양 프로그램 말미에 배경 음악처럼 깔린 노래 한자락 때문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결국 찾아냈다. 바로 찾아서 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끌림 때문이었다.
"부산에 가면 다시 나를 볼 수 있을까..."
최백호 가수가 부른 <부산에 가면>이라는 노래라고 했다. 1시간 듣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 예전에 들었던 영일만 친구부터 20여 년 친구와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부산에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노래의 힘이 있었다. 세게 불러서도 화려한 테크닉이 동반돼서도 아니었다. 차트 1위라 솔깃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틀어 놓고 침잠하고 싶어져서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배철수 가수가 진행했던 콘서트 7080 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있다. 확실히 지금과는 다른 아우라가 있다. 무엇이 더 낫다의 의미가 아닌 살아온 세월, 잊고 있던 추억들, 당시 난 아주 어렸지만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살 수 있게 해준 세월 그 자락 밑에 감수성이란 게 있다면 그중 하나가 지나간 노래가 아닐까 싶다.
옛날 가수의 독백 같은 책이지만 곳곳에서 잠시 잊고 있던 옛이야기를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것들, 그래서 더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니 왜 저 시절엔 저렇게 살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 가요계 선배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 해줄 수 있는 충분한 연륜이 쌓이고 보니 어느새 칠순이 되었다는 저자. 그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일화가 줄줄이 나오고 내 추억도 한술 더하게 된다.
저자의 노래들은 제목만 봐도 느껴지는 감성이 있다. "낙조를 멀리서 바라보는 어느 중년 남성의 쓸쓸함" 그리고 자신의 고향과 어머니를 무척이나 그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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