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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문명 #존펄린 #더퀘스트 #문명 #총균쇠 #생태학 #환경사 #기술사 #위기 #역사서 #인문 #교양 #파타고니아 #이본쉬나드 @thequest_book
+ 독서 동기
문명은 숲을 파괴하기만 했으리라 단순히 생각했는데 숲이 문명에 미친 영향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숲과 문명이 서로에게 미친 상호 영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다가선 책이다.
+ 저작 빛깔
이 저작의 주제는 문명의 흥망성쇠가 숲과 깊게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금성과 대기 구조가 유사하면서도 극한의 고온 환경이 아닌 것도 나무들이 구조적으로 대기의 질을 결정해 주었기 때문이고 인류 문명의 발전도 에너지원이자 대부분에 도구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숲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문명들이 숲이라는 요소가 주는 에너지와 도구의 재료가 풍부하던 시절 도시는 흥했고 그 자원이 바닥나기 시작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전쟁을 불사하게 되어왔다. 기술의 발전도 나무라는 자원이 풍부하던 시기와 절약해야 하던 시기에 따라 발전 궤적이 달랐다. 청동기의 발명으로 나무의 수요가 줄었고 철을 이용하게 됨에 따라 에너지원인 나무를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건축재이자 배를 만드는 재료로 흔히 쓰인 나무들을 구하기 쉬운 시절에 막강한 군사력을 지속할 수 있었고, 이런 나무가 소모되면 가까운 타지역에서 대량 구매하거나 전쟁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면서 문명을 유지했다. 도자기도 나무를 구할 수 있는 지역에서 흥했고 근처에 나무가 사라지면 도자기 산업으로 존속하던 문명은 타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사라져야 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아주 광대한 땅을 아주아주 싼 가격에 거래하기도 했지만 울타리를 만드는 나무는 땅보다도 더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 고대의 성벽과 근대의 댐 역시 나무로 축조하는 경우가 잦았다. 나무와 숲은 인류사를 좌우하는 큰 요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서는 이런 숲과 인류 문명의 궤적을 문명별로 풀어 설명해주는 책이다. 마지막은 환경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문명의 성쇠에서 숲과 나무가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인류가 나무 없이 발전하거나 생존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한 감상을 남기는 책으로 짧은 리뷰만으로 이 책이 주는 감상의 폭을 다 전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인류와 연결된 생명들의 기준이자 근간이 나무와 숲이란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본서는 어느 때이고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저작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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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연일 낮기온 최고 온도를 돌파하며 역대급 무더위로 불타오르고 있는 지구. 어린 시절 '지구온난화' 문제는 지구과학 수업 시간에 나오는 기출문제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후 위기는 기출문제로 외우던 답이 아니라 현실 가까이 다가온, 인류 문명의 생사를 결정할 현 시점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존 펄린의 [숲과 문명]은 기후위기를 이해하는 토대가 되는 역사서로 인간의 시점이 아닌 나무의 시선으로 5,000년의 기록을 담아내며 숲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임을 이야기한다. 1989년에 첫 출간되어 시대를 초월하며 재출간된 [숲과 문명]은 인종과 문화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거주지를 확대하며 수천 년에 걸쳐 지구를 파괴하고 숲을 훼손하며 원래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에게도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수많은 기록과 과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밝혀내고 있다. 존 펄린은 인류에게 닥친 과제를 명확히 알린다. "우리가 숲을 잃어버리는 것은 단순히 자연의 종말이 아니라 우리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다."(p.23) 길가메시처럼 숲의 수호자 훔바바를 죽이고 산에서 삼나무를 빼앗아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 할 운명이 될지, 현재와 미래의 숲을 위해 건설적인 보전 전략을 세우며 문명의 번창을 위할지는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숲과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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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얼마나 당연하게 나무와 숲을 배경으로만 여겨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도시의 마천루와 첨단 기술, 거대한 문명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철과 콘크리트, 전기와 에너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이 지적하듯, 인류 문명의 뿌리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었다. 아시리아, 중국, 미케네, 그리스와 로마,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목재 공급 없이는 어떤 위대한 문명도 등장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무는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었다. 추운 기후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불도,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던 방식도, 모래를 녹여 유리를 만들던 기술도 모두 목재에서 비롯된 열에 의존했다. 수레와 마차, 카누와 선박에 이르는 운송 수단 역시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이는 탐험과 무역, 제조와 전쟁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화석 연료 시대의 개막을 알린 대규모 석탄 채굴조차 갱도를 지탱하는 목재 지지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런 사실들을 접하고 나니, 우리가 흔히 "기술 혁명의 영웅"으로 떠올리는 것들의 목록에 나무가 빠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예찬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 즉 인류가 자신을 지탱해준 숲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파괴해왔는가 하는 역사가 훨씬 더 무겁게 다가온다. 고대 지중해에서만 구리와 철을 제련하는 데 10만 제곱마일에 달하는 숲이 소모되었고, 가정 난방과 취사에 쓰인 목재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두 배에 이른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서는 유리 제품에 대한 수요 때문에 용광로가 밤낮없이 타올랐다는 대목에서는,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파괴의 패턴이 특정 문명이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이든 인도든 메소포타미아든, 심지어 오늘날의 미국이든, 위대한 문명은 예외 없이 주변 숲을 정복하고 황무지를 길들인 것을 하나의 성취로 자축해왔다.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마저 "죽음의 무게로 세상을 비워내어" 지구가 숨 돌릴 틈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은, 인간의 자기 파괴적 습성이 얼마나 오래되고 뿌리 깊은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지 산타야나의 그 유명한 경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미국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영국 왕실이 대형 목재를 왕립 해군의 전유물로 삼으려 했을 때, 식민지 주민들이 온갖 방법으로 이를 회피했던 일화는 흥미롭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미국 독립 혁명의 역사는 인지세와 차 사건에 집중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8세기 전반에 걸친 이러한 목재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혁명의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결국 숲을 둘러싼 갈등은 단지 환경사의 일부가 아니라, 정치사와 경제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었던 셈이다. 숲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뿐 아니라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는 데 기여한다. 나뭇잎에서 방출되는 수분이 증발하며 열을 흡수한다. 아마존 유역의 숲 지붕이 사라지면 계절 기온이 최대 섭씨 41도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경고에 주목해 본다. 책은 폭풍과 홍수, 산불이라는 지난 10년의 재난들을 겪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경고흫 한다. 책은 재앙을 예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숲의 파괴와 문명의 몰락이 그저 은유적인 관계가 아니라 실제 역사적 인과관계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경고다. 우리는 흔히 기후 위기를 미래의 문제, 혹은 최근에야 발견된 새로운 위협으로 여기지만, 책이 보여주듯 숲의 남벌과 그로 인한 문명의 쇠퇴는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오래된 패턴이다. 다만 그 규모와 속도가 산업화 이후 비교할 수 없이 커졌을 뿐이다. 결국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다. 문명은 숲 위에 세워졌고, 숲이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진 모든 것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문명을 일구어 온 인류가, 이제는 그 그늘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은 후 내게 남은 진짜 질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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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왕과 전쟁, 영토 확장, 경제 발전 그리고 위대한 문명의 탄생과 쇠락일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왕도 전쟁도 아닌 ‘숲’의 시선으로 5000년의 문명사를 바라본다면? 존 펄린의 《숲과 문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구세계와 신세계를 오가며 지난 5000년 동안 인류 문명이 숲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속에 숲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더해 문명의 발전과 쇠락을 바라보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나무가 연료와 건축자재로 사용되었고, 나무의 풍부함과 희소성이 사회의 문화와 경제, 정치와 기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5000년의 역사를 풀어낸다. 《숲과 문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내가 나무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나무를 그저 숲을 이루는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과거의 인류에게 나무는 문명을 움직이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불을 사용하기 위해서도 나무가 필요했고, 콘크리트를 만들기 위해 석회를 구울 때도 연료가 필요했다. 사람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선박을 만드는 데도 나무가 필요했다. 집을 짓고 도구를 만들고 난방을 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도 나무는 빠질 수 없었다. 실제로 저자는 청동기시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나무가 거의 모든 사회에서 주요 연료이자 건축자재였으며, 나무의 풍부함과 희소성이 사회의 문화와 경제, 정치와 기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그동안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숲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인 곳에서 문명이 발전한다. 문명의 발전 뒤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무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숲과 문명》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로마의 목욕탕 이야기였다. 로마의 목욕탕을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나무가 필요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목욕탕의 물을 데우고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나무를 계속해서 태워야 했고, 그 양이 무려 114톤에 달했다는 이야기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도 목욕 가는 것을 좋아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면서 그것을 그저 당연한 일상의 편리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로마의 목욕탕 이야기를 읽고 나니 내가 누리는 편리함을 위해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나무가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이루어낸 발전 뒤에는 얼마나 많은 자연의 희생이 있었을까?’ 문명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편리함의 뒤편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숲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숲과 문명》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문명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숲이 풍요로운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서 문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나무가 필요해지고, 결국 숲은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숲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문명도 위기를 맞는다. 풍요로울 때는 숲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숲이 사라지고 나서야 숲을 지키려고 한다. 문제는 그때는 이미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숲이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기다가 숲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는 모습은 시대가 달라져도 반복된다. 《숲과 문명》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세계와 신세계의 문명을 숲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게 한다. 숲이 풍요로울 때 문명이 발전하고, 인간이 숲을 과도하게 이용하면서 숲이 사라지고, 결국 인간 사회 역시 영향을 받게 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떨까?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너무 뜨겁거나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 집중호우와 홍수, 가뭄으로 말라가는 식물과 강을 바라보며 우리는 흔히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숲과 문명》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상기후는 숲이 보내는 경고가 아닐까? 과거의 문명들이 숲을 소모하면서 위기를 맞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같은 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은 단순히 나무가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다. 숲은 우리에게 연료를 제공하고, 물을 저장하며, 홍수와 토양 침식을 막아준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숲이 존재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숲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쉽게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숲과 문명》을 읽다 보면 숲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숲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나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숲과 문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었다. 과거의 사람들도 숲이 풍요로울 때는 숲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숲을 이용했고, 숲이 줄어든 뒤에야 숲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거와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숲을 비롯한 자연이 무한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숲과 문명》은 과거의 문명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역사책이다. 역사를 통해 환경을 생각하게 하고, 환경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5000년의 역사 속에서 숲과 함께 성장하고 숲을 잃으며 흔들렸던 수많은 문명. 그 역사를 알고 나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숲도 더 이상 평범한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숲은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이기 전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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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문명의 가장 오래된 재료였다. 집과 성벽과 선박을 만들었고, 장작과 숯이 되어 인간의 생활과 산업을 움직였다. 금속을 제련하는 데에도 막대한 목재가 필요했다. 숲을 걷어낸 땅은 농경지가 되었고, 그곳에 남아 있던 나무의 뿌리는 토양을 붙들고 물의 흐름을 조절했다. 인간이 숲에서 얻은 것은 목재만이 아니었다. 문명이 살아갈 수 있는 물질적 조건 전체가 숲과 얽혀 있었다. 펄린이 보여주는 역사의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문명들이 이 사실을 거의 같은 방식으로 경험했다는 데 있다. 숲이 풍부하면 도시가 성장했고, 인구와 산업이 커질수록 더 많은 나무가 필요했다. 아테네의 해군력도, 로마의 거대한 건축물도, 베네치아의 선박도 숲을 소비하며 유지되었다. 영국은 목재와 숯의 부족을 석탄으로 돌파하면서 산업혁명의 문을 열었다. 문명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전쟁과 정치의 기록보다 나무의 수명이 더 중요한 연대기가 된다. 산림 파괴를 문명의 부작용이라고 부르기에는 이 구조가 지나치게 정확하다. 인간은 숲을 파괴한 뒤에야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문명을 발전시키는 바로 그 과정에서 숲을 소비했다. 농지를 넓히기 위해 나무를 베고, 도시를 만들기 위해 목재를 가져오고, 금속을 생산하기 위해 숲을 태웠다. 각각의 선택은 당시의 삶 안에서는 합리적이었다. 문제는 그 합리성이 축적되는 방식에 있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는 순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숲이 줄어들면 토양을 붙들던 뿌리가 사라지고, 흙이 물에 쓸려가며, 강과 항구가 변하고, 농업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인간이 계산한 것은 나무의 가치였지만 자연이 치른 비용은 토양과 물과 생명의 형태로 나타났다. 문명은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계산하면서도,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한 조건의 가격에는 무심했다. 여기에서 ‘발전’이라는 단어의 이상한 성격이 드러난다. 인간은 부족함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돌파했다. 목재가 모자라면 더 먼 숲으로 갔고, 연료가 부족하면 새로운 연료를 찾았으며, 생산량의 한계가 나타나면 더 효율적인 기술을 만들었다. 영국의 석탄 사용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목재라는 오래된 한계를 벗어난 순간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세계의 크기도 커졌다. 기술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장치인 동시에 필요의 규모를 확장하는 장치가 되었다. 더 효율적인 생산은 더 많은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더 많은 생산은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냈다. 한계를 넘어선다는 말은 때로 한계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더 멀리 있는 한계까지 달려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인간은 숲을 이용했지만 동시에 숲이 유지하는 토양과 물에 의존했다. 자연에서 자원을 꺼내오는 능력이 커질수록 인간은 자신이 자연과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을 강화했다. 산은 광산이 되고 강은 수력원이 되며 숲은 목재 저장고가 된다.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가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의 목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목록에서 빠진 것들이 인간의 삶을 떠받치고 있었다. 숲이 제공하는 그늘과 물, 토양과 생물다양성은 목재의 가격표에 들어가지 않는다. 인간에게 쓸모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자연을 분류하는 순간, 인간에게 직접 쓰이지 않는 것들은 너무 쉽게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오래된 관념은 결국 인간이 자연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이기도 했다. 펄린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또 하나의 장면은 이동이다. 숲이 고갈되면 인간은 다음 숲을 찾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로, 유럽에서 대서양 너머로 자원의 중심이 옮겨가는 동안 새로운 산림은 새로운 문명의 연료가 되었다. 고갈은 이동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한 지역의 풍요가 사라지면 다른 지역의 풍요를 가져오면 됐다. 하지만 현대의 문명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없다. 산업과 교역은 지구 전체를 하나의 소비망으로 연결했고, 한 지역에서 벌어진 산림의 변화가 다른 지역의 생산과 소비와 기후에까지 이어진다. 무엇보다 지구 바깥에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또 하나의 숲이 없다. 오랫동안 인간은 부족함을 만나면 장소를 바꾸었다. 이제 장소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이제 문명의 능력을 무엇으로 측정해야 할까. 더 많은 땅을 경작하는 능력, 더 많은 철을 생산하는 능력, 더 많은 에너지를 끌어내는 능력, 더 빠르게 이동하고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능력. 인류는 오랫동안 이것을 발전의 지표로 삼아왔다. 풍요는 늘 ‘얼마나 더 많이 가질 수 있는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숲과 문명』이 보여주는 역사는 그 풍요의 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었는지를 되묻는다. 성장에는 자원이 필요했고, 자원은 언젠가 고갈되었다. 인간은 고갈을 새로운 자원으로 해결했고, 새로운 자원은 다시 더 큰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이 순환을 멈추지 않는 한 문명의 외연은 계속 넓어질 수 있지만, 그 외연을 지탱하는 세계의 면적은 무한하지 않다. 어쩌면 문명의 역사는 자연을 정복해온 역사가 아니라 자연의 한계를 계속 바깥으로 밀어내온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숲이 사라지면 다른 숲으로, 목재가 부족하면 다른 연료로, 땅이 부족하면 다른 대륙으로. 인간은 언제나 다음을 찾아냈다. 그 능력이 인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동시에 그 능력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의존하는 세계의 한계를 잊어버렸다. 이제는 다음 숲이 없다. 다음 대륙도 없다. 바깥으로 밀어낼 자연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지금의 문명이 마주한 가장 낯선 조건이다. 그래서 『숲과 문명』은 숲을 보존해야 한다는 결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 책이 오래된 산림의 역사를 통해 건드리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문명이라고 불러왔는가에 관한 문제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멀리 이동하고, 자연이 가진 한계를 기술로 돌파해온 능력. 우리는 그것을 발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한계를 돌파하는 능력만으로 문명을 평가한다면, 그 문명이 자신의 생존 조건까지 소비해버리는 순간에도 여전히 발전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쩌면 문명의 수준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져올 수 있는가보다,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에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숲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인간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랫동안 숲을 자신의 역사에서 주변부로 밀어냈다. 펄린은 그 주변부를 다시 중심으로 가져온다. 그러자 우리가 발전이라고 불러온 수천 년의 시간이 나무의 성장과 벌목, 토양의 소실과 새로운 숲으로의 이동이라는 물질의 역사와 포개진다. 인간의 문명은 숲 위에서 시작되었고, 숲을 소비하며 몸집을 키웠다. 이제 그 문명이 정말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얼마나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소비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얼마나 배울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문명의 다음 장에는 아마 새로운 숲의 이름보다, 더 이상 숲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 인간이 포기해야 할 것들의 이름이 먼저 적혀야 할 것이다. ✏️도서출판 북퀘스트로부터 오퀘스트라 4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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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이 너무 두꺼워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는데 읽다보니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어려운 전문용어가 남발되어 각주와 본문을 왔다갔다 읽어야하는 책이었다면 바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어쩌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일지도 모르는 숲과 문명의 관계를 독자가 읽기 편한 용어들로 쉽게 풀어나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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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후위기가 심해지면서 아마존이나 인도네시아의 산림파괴를 경고하는 뉴스가 종종 들려옵니다. 하지만 인류는 오래전부터 숲을 일방적으로 파괴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파타고니아 설립자 이본 쉬나드가 30년만에 재출간을 이끌어낸 전설적인 고전 <숲과 문명>은 바로 나무와 숲의 관점으로 5000년간 다섯 대륙에서 펼쳐진 인류의 역사를 집대성한 책입니다.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청동기 크레타, 그리스, 로마제국, 아프리카와 이슬람, 근대 영국과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거대 문명의 번영 뒤에는 언제난 무자비한 삼림 파괴가 있었음을 고발합니다. 또한 도시의 건축 자재와 제련용 땔감, 군함의 재료로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남은 사막화와 토양 유실은 결국 찬란했던 제국의 몰락을 불렀다고 이야기합니다. 안타깝게도 인류는 여전히 숲을 훼손하고 있고,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생존과 숲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우리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이 리뷰는 출판사의 책 제공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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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문명》은 나무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석기, 청동기, 철기로 시대를 구분하지만, 인간의 삶과 문명의 성장 과정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었다. 불을 피우고, 집을 짓고, 도구와 배를 만들고, 벽돌을 굽고, 금속을 제련하는 일까지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자원은 숲과 목재였다. 특히 로마의 사례는 흥미롭다. 공중목욕탕을 유지하고, 유리와 벽돌을 만들고, 선박과 건축물을 짓는 데 막대한 양의 목재가 사용되었다. 문명이 성장할수록 더 많은 자원이 필요했고, 숲이 부족해질수록 인간은 더 먼 지역으로 나아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문명의 발전이 단순히 편리함과 풍요의 역사가 아니라, 자연의 자원을 끊임없이 사용해온 역사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숲은 문명의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문명을 가능하게 해온 존재였다. 1989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 지금 다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와 환경문제가 일상이 된 오늘, 인간과 숲의 관계를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되짚어보게 하는 묵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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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문명, 우리가 잊고 있던 이야기 《숲과 문명》은 인간과 숲이 함께 만들어온 5,000년의 역사를 따라가는 책이다. 숲은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자원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욕심과 선택으로 가장 먼저 사라져간 존재이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숲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보는 일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수많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니까.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 이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숲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 조금 천천히 읽어도 좋을 책, 읽고 난 뒤 주변의 숲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책이었다. 📚 출판사 더퀘스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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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명은 숲을 잘라 번성하고 그 뿌리가 뽑히는 순간 같이 사라졌다.” ⠀ ⠀ ⠀ 역사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역시 흥망성쇠다. 그런데 《숲과 문명》은 그 이야기를 왕도 전쟁도 아닌, ‘나무’를 중심에 놓고 다시 보여준다. ⠀ 책은 세계 최초의 나무 아르케옵테리스에서 시작해 5,000년의 문명을 따라간다. ⠀ ⠀ ⠀ 철을 제련하는 목탄부터 배와 수차, 풍차, 베틀까지 문명의 곳곳에 나무가 있었다. ⠀ 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Book’조차 너도밤나무(Beech)에서 유래했다니, 우리가 아는 역사 전체가 사실은 나무 위에 서 있었던 셈이다. ⠀ 재미있는 건 문명의 시작부터 숲의 파괴가 세트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 ⠀ ⠀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에서 영웅이 가장 먼저 한 일도 숲의 수호자를 죽이고 나무를 베어 오는 것이었다. ⠀ 수천 년 뒤 로마도 똑같았다. 화려한 공중목욕탕과 유리를 만들고, 네로 황제의 사치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나무가 태워졌다. ⠀ 로마인들도 나무가 부족해지는 걸 알고 벌목을 제한하고 난방을 아끼려 애썼다. ⠀ ⠀ 아끼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맛본 풍요를 스스로 줄일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 가까운 숲이 줄어들면 더 먼 곳으로 갔고, 그래도 부족하면 남의 숲을 빼앗았다. ⠀ ‘나무로 만든 나라’라 불리던 아메리카의 울창했던 숲도 결국 그렇게 사라져갔다. ⠀ ⠀ ⠀ ⠀ 읽다 보니 세계사가 거대한 ‘숲의 소멸 지도’처럼 보였다. ⠀ 나무 하나를 중심에 놓았을 뿐인데 흩어져 있던 세계사가 하나로 이어졌다. ⠀ 환경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풍요가 어디에서 왔는지, 익숙한 세계사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보고 싶다면 이 책은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 ⠀ ⠀ 나무는 오랜 시간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 그 풍요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 ⠀ ⠀ ⠀ <문장수집> ⠀ ⠀ 환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가장 크고 주목받는 시기는 나무처럼 중요한 자원이 고갈될 위기에 놓일 때다. (P.21) ⠀ ⠀ 아르케옵테리스와 그 후손들이 인류 때문에 죽어간 이야기는 “우리 행성이 지금 겪고 있는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해주는 렌즈”와도 같다. (P.38) ⠀ ⠀ 사람이 없으니 마치 저주에 걸린 것만 같았다. (…) (반면) 숲은 마치 풀려난 죄수처럼 자유롭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 《닥터 지바고》 중 (P.40) ⠀ ⠀ “배가 없다면 해군은 존재할 수 없고, 목재가 없다면 배는 존재할 수 없다.” (P.45) ⠀ ⠀ 길가메시의 전쟁 구호인 “나는 저 거대한 숲을 베어버릴 것이다.”는 온 사회의 주문이 되었으며, 숲은 그 구호 아래 하나씩 무자비하게 벌목당했다. (P.62) ⠀ ⠀ ⠀ ⠀ #숲과문명 #벽돌책 #파타고니아 #숲 #역사 #존펄린 #더퀘스트 #세계사 #문명사 #환경사 #생태사 #기술사 #인류문명 #숲의역사 #역사책추천 #인문책추천 #교양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