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진 작가의 작품집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모델 사키. 애인인 사진 작가의 집에서 함께 살지만 그와 사귄다고도 말도 못하는 신세다. 애인은 사키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지도 않고, 애정 담긴 눈빛으로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욕구를 배설하는 변기처럼 성욕만 채우고 만다. 그에게 애정을 키우던 사키는 거식증을 앓는다. 음식을 잔뜩 사다가 씹고 뱉는 일상. 사키 자신도 괴롭지만 그가 다른 모델을 찍는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밴드의 보컬을 소개받는다. 마쓰키라는 그 보컬은 사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를 있는 그래도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쓰키와 그녀를 변기처럼 취급하는 사진 작가 사이에서 사키는 괴로워한다.
위험한 사랑 중독에 빠진 젊은 여성을 담은 이 작품은, 작가가 집필중 곡기를 끊어 통원치료를 했다고 밝힐 정도로 목숨을 바쳐 집필한 것이다. 구원의 손을 잡았다가도 스스로 그 손을 놓는 여성의 모습은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 이미 변기의 삶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데도 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광기의 애증. 머리를 잘라내도 끊임없이 머리가 자라나 끝내 죽지 않는 히드라라는 괴물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식과 스스로를 내던지는 고통. 스스로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방 같은 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거식을 하면서, 자신을 숨기고 상대가 사랑할 만한 모습을 연기하며 사랑을 갈구해야 하는가.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충분히 두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가네하라 히토미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고통스런 질문을 던지며 이 작품을 끝맺는다.
자신을 망치고 있다는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자기 파괴를 멈출 수 없는 사키의 모습을 보니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하이드라>에서는 '거식'이라는 극단적인 파괴방식이 등장했지만 우리도 작게나마 자기 파괴적 행위를 할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상대에게 하는 사소한 거짓말도 자신의 정직을 파괴하는 방식이니. 삶을 사는 내내 우리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런 짓을 해도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줄 것인가?'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닌데,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이 사람이 떠나지 않을까?' 하지만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만큼 그릇이 큰 사람임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내 쪽에서 떠나는 것이 맞다. <하이드라>의 사키는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밀어넣었다. 자기애를 키워서 내 안목을 믿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믿어야 한다. 사랑을 믿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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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 왜 이렇게 지어졌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가네하라 히토미의 소설 <하이드라>는 그 제목을 소설을 다 읽은 뒤에 내용과 어떻게든 매치시키려고 애쓰게 만들었다. 왜 제목이 <하이드라>일까? 주인공 '사키'를 비유한 말일까? 아니까 '히드라'라고 불리는 뱀의 종류일까? 항문이 없는 강장 동물인 '히드라'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 모든 질문을 하게 만든 소설 <하이드라>는 짧은 소설이다. 장편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약14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중편소설이다. 읽는데 오랜 시간을 쓴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필력과 이 소설의 묘한 분위기는 여운이 남을 정도였다. 유명하진 않지만 한 사진 작가의 전담 모델이 되어 일을 하고 있는 사키. 무척이나 마른 몸매와 묘한 분위기의 모습이 사진으로 극대화되어 가끔 사키를 알아보는 팬들이 있다. 사진집 '델릴라'의 주인공으로 사키를 찍어주고 있는 사진작가 신자키는 사키의 연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미쓰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관계이다. 어느날 미쓰키와 함께 간 어느 가게의 오픈 파티장에서 사키는 밴드의 리더인 마쓰키를 만난다. 마쓰키는 사키의 오래된 팬이라며 처음 만난 날 사귀자고 한다. 신자키와의 사적이면서 공적인 관계 때문에 마쓰키의 제안도 썩 반갑지 않다. 이젠 나이가 들어 불러주는 곳이 없던 사키에게 신자키와의 작업은 유일한 일이자 수입원이다. 하지만 적극적이면서 뭔가 다른 분위기의 마쓰키에게 끌리게 되는 사키, 급기야 둘은 연인 관계가 되면서 사키는 신자키와의 관계도 위태위태해진다. 철저하게 공적인 관계인 껍데기와 같은 신자키와 두근거림과 마음으로 다가오는 마쓰키 사이에서 사키는 고민한다. 신자키의 모델이 되기 위해 매번 먹었던 음식을 토해내며 거식증에 걸렸지만 마쓰키가 해 준 볶음밥은 토하지 않고 다 먹게 되면서 사키의 마음을 많은 변화를 보인다. 신자키가 사키가 싫어하는 모델 란의 사진집을 찍는다는 소식을 듣고 사키는 드디어 신자키를 떠나려고 하는데.... <하이드라>는 2007년에 일본에서 나온 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처음엔 이런 사실들을 알지 못하고 읽으며 가네하라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소설들은 강렬하면서 자극적인 소재로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았는데 <하이드라>는 여주인공 사키의 심리변화를 아주 심도있게 그려내고 있어 점점 소설에 몰입하게 했다. 애인의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자로 그려지는 사키는 외로움과 웃음을 잃어버린 정신적으로 피폐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마쓰키를 만나 자신과 다른, 신자키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같은 느낌을 받는다. 보통의 감정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마쓰키를 통해 사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