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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과 평화를 바라던 ‘음악 혁명가’ (음악 혁명가 한형석)
"독립과 평화를 바라던 ‘음악 혁명가’ (음악 혁명가 한형석)" 내용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08독립과 평화를 바라던 ‘음악 혁명가’― 음악 혁명가 한형석 최형미 글 김희영 그림 상수리 펴냄, 2015.7.15.  부산 서구에서는 2015년 8월 13일에 ‘한형석 자유아동극장 토크 콘서트’를 연다고 합니다. 한형석(1910∼1996) 님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부산 부민동에서 가난한 아이들한테 글을 가르칠 뿐 아니라 아동극을 누구나 돈을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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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08



독립과 평화를 바라던 ‘음악 혁명가’

― 음악 혁명가 한형석

 최형미 글

 김희영 그림

 상수리 펴냄, 2015.7.15.



  부산 서구에서는 2015년 8월 13일에 ‘한형석 자유아동극장 토크 콘서트’를 연다고 합니다. 한형석(1910∼1996) 님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부산 부민동에서 가난한 아이들한테 글을 가르칠 뿐 아니라 아동극을 누구나 돈을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먼구름’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여서 썼고,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 부르던 군가를 지었으며, 중국에서 〈아리랑〉이라는 가극을 짓고 무대에 올려서 우리 겨레 아픔을 달래 주었다고 해요. 제국주의 일본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고 광복군으로 뛰기도 했다지요. 항일독립운동을 문화로 예술로 하셨다고 합니다.


  1996년에 숨을 거둘 무렵 한형석 님을 국립묘지에 모시겠다고 했으나, 한형석 님은 ‘건국 매국노’가 묻힌 곳에 함께 누울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고 합니다. ‘건국 매국노’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권력에 빌붙어야 한 사람이 많았을까요? 그리고 해방 뒤에 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친 사람은 드물었으며, 올바른 평화와 독립과 자유와 민주와 평등을 바라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왜 많을까요?



인공 호수 속에는 돌을 깎아 만든 엄청나게 큰 배도 있었어요. “저것들을 사람들이 다 만들었다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엄청난 흙더미를 쌓아 올려서 만든 산 위에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이 흙과 돌을 지게에 지고 저 산을 올랐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구나.” 형식이는 형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웅장하고 화려한 산이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슬프고 끔찍해 보였어요. (41∼42쪽)



  최형미 님이 글을 쓰고 김희영 님이 그림을 그린 《음악 혁명가 한형석》(상수리,2015)을 읽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을 했으나 사회에나 사람들한테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고 할 만한 한형석 님을 어린이들이 잘 알 수 있도록 빚은 예쁜 책입니다.


  한형석 님을 낳은 아버지는 ‘의술로 펼치는 독립운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을 할 적에 모든 사람이 총을 들 수는 없다고, 다친 사람을 다스리고 고쳐 주는 일을 할 사람이 있다고 여겨서 의술을 펼친 아버님이요, 의술로 번 돈을 조용히 독립군 자금으로 대었다고 합니다. 한형석 님도 아버지 길을 이어서 의사가 되려고 했는데, 의사가 되는 공부가 한형석 님한테는 도무지 안 맞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한참 갈팡질팡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일 무렵, 임정요인이자 광복군을 여는 일에 이바지한 조성환 님이 도움말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한형석 님더러 무엇을 잘 하느냐고 물을 적에 한형석 님은 서슴지 않고 ‘음악’을 잘 한다고 말했고, 이에 조성환 님은 그러면 ‘예술 구국’을 하라고 이야기했다지요.




“대학은 만주에 있는 의과대학으로 가거라. 어려운 때일수록 의술이 꼭 필요하다. 독립운동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형석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겼어요. (47∼48쪽)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 형석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어요. “음악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지만 조성환 선생은 무릎을 치며 말했어요. “그거 아주 좋구나. 넌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 구국을 하거라.” (57쪽)



  총을 들어야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광복군이 쓰는 총을 만들려고 쇠를 달구는 일꾼도 독립운동가입니다. 광복군이 입는 옷을 지으려고 바느질을 하는 이들도 독립운동가입니다. 독립운동에 힘쓰는 이들이 먹을 밥을 지으려고 땅을 부치는 모든 농사꾼도 독립운동가입니다.


  정치 일꾼이 되어야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삶자리를 지킬 수 있는 씩씩하고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 마음이 된다면, 어느 곳에서라도 나라를 지키고 마을을 지키며 나 스스로를 지키는 튼튼한 사람으로 섭니다.


  학교를 일으키는 사람도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저잣거리에서 남새를 파는 아지매와 할매도 똑같이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총칼을 앞세워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고 해서 고개를 떨굴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저마다 제자리에서 씩씩하고 올바른 넋으로 아름다운 손길을 나누며 어깨동무할 적에는 어느 누구도 이 땅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부모님과도 소식이 닿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자 형석이는 창작 활동에 더 열심히 매달렸어요. 1937년 6월, 여름방학을 맞은 형석이는 첫 종합 예술 작품이면서 중국 최초의 가무극인 〈리나〉를 아동극장에서 발표하게 되어썽요. 〈리나〉는 나라 잃은 폴란드의 음악가가 자신의 딸 리나를 데리고 연주 활동을 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이야기예요. (67쪽)



  《음악 혁명가 한형석》을 읽으면서 ‘구국’이나 ‘독립’을 이루려고 애쓰는 몸짓과 넋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곰곰이 따지면, 군관학교를 세우려고 벽돌을 나르던 사람들 손길도 모두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발치에서 마음으로 힘을 북돋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칼을 든 제국주의는 서른여섯 해에 이르도록 군홧발로 이 땅을 짓눌렀지만, 이동안 적잖은 사람들이 제국주의 권력에 빌붙는 길로 접어들기도 했지만, 훨씬 많은 여느 사람들은 꿋꿋하게 섰습니다. 마치 풀처럼 서고, 마치 나무처럼 섭니다.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뽑히고 뽑혀도 다시 싹을 틔워서 자라는 풀처럼 섰어요. 베이고 베여도 다시 가지를 내놓고, 아예 뿌리를 뽑히면 어린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아기나무를 키우는 어미나무처럼, 이 땅 수수한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에서 씩씩하게 섰습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목숨도 빼앗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빼앗고, 마음도 병들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전쟁 중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는 예술은 무척 중요해요. (79쪽)


(1940년 5월에) 〈아리랑〉은 모두 우리말로 공연되었지만 중국 사람들의 반응도 대단했어요. 〈아리랑〉은 실험극장에서 열흘 동안 공연을 마친 뒤 중국 곳곳을 옮겨 다니며 공연을 했어요. 그 덕분에 중국 사람들에게도 〈아리랑〉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어요. 또한 공연으로 번 돈은 독립군의 겨울옷을 마련하는 데 쓰였어요. (88쪽)




  전쟁이란 무엇이고, 침략이나 식민지란 무엇이며, 다툼이나 싸움이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서로 아끼지 못하기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서로 이웃이 되지 않으니 침략이나 식민지를 일삼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 마음이기에 다툼이나 싸움을 벌입니다.


  우리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전쟁이라고 하는 바보짓’이 다시 이 땅에 들어서지 않도록 슬기를 모으고 힘을 모으려는 마음을 키울 노릇이라고 봅니다. 한겨레 사이에 너와 내가 ‘적군’이 되는 짓부터 내려놓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모든 전쟁무기를 쓸어없앨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할 때에 비로소 평화를 이루리라 느낍니다.


  평화가 이 땅에 깃들어야 비로소 통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함께 이루는 길로 나아가려 할 적에, 독재라든지 막개발이라든지 차별이라든지 불평등 같은 씁쓸한 것들을 쓸어낼 수 있어요.



형석이의 바람과는 달리 연합국이 들어오면서 극장은 미군 전용 위안 극장으로 쓰였어요. 형석이는 단순한 극장 관리자가 되고 말았어요. 형석이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그의 새로운 꿈이 물거품이 되어서가 아니에요. 그토록 힘들게 되찾은 조국인데 동족끼리 총을 겨누게 된 현실이 너무 슬펐기 때문이에요. (104쪽)


당시 형석이는 부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월급을 받았는데 자유아동극장을 (무료 공연으로) 운영하느라 늘 빚에 허덕였어요. 하지만 극장 공연은 물론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야학원까지 운영했어요. 형석이는 자유아동극장에서 낮에는 공연을 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108쪽)



  《음악 혁명가 한형석》을 읽는 어린이들이 가슴속에 고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이 책을 어린이한테 읽힐 어른들도 가슴속에 맑은 노래를 고운 씨앗으로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노래 한 가락으로 부르는 독립과 평화를 함께 돌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하는 우리가 다 함께 아름다운 평화를 이루고 민주와 평등과 통일로도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어린이책 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5.08.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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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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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한형석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상수리 인물 책방 시리즈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을 다루어주고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대단하다 의지를 불타게 해주는 힘도 있다. 한형석은 일제강점기에 압록강 행진곡과 같은 음악을 작곡하여 우리 독립군의 사기를 높여주었다한다. 이러한 음악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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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한형석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상수리 인물 책방 시리즈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을 다루어주고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대단하다 의지를 불타게 해주는 힘도 있다. 한형석은 일제강점기에 압록강 행진곡과 같은 음악을 작곡하여 우리 독립군의 사기를 높여주었다한다. 이러한 음악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꿈꾸고, 독립을 향한 열망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한형석은 우리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모습을 보면서 8.15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지금 더 의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k*******4 2015.08.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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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혁명가 한형석/상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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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명가 한형석/상수리   상수리 인물 책방의 다섯번째 인물이에요.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한형석에 대해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동안 독립운동하면 직접 몸으로 움직여서 활동했던 사람들만 떠올렸으니까요. 유관순이나 안중근, 윤봉길처럼 말이죠~ 음악으로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낯선 이름의 한형석을 만나보았습니다.   이 책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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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명가 한형석/상수리

 

상수리 인물 책방의 다섯번째 인물이에요.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한형석에 대해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동안 독립운동하면 직접 몸으로 움직여서 활동했던 사람들만 떠올렸으니까요.

유관순이나 안중근, 윤봉길처럼 말이죠~

음악으로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낯선 이름의 한형석을 만나보았습니다.

 

이 책은 한형석이란 낯선 독립운동가의 일생에 대해 전기문처럼 쓰여진 책이 아니에요.

음악을 싫어하는 강복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한형석을 만나볼 수 있답니다.

강복이는 체육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라 음악을 싫어했지만,

음악시간에 <압록강 행진곡>을 듣고 감동을 받아요.

강복이의 증조 할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할어버지가 증조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가끔 군가를 부르셨거든요.

음악 시간을 싫어하는 강복이는 군가 <압록강 행진곡>을 통해 음악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고,

음악 선생님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압록강 행진곡>을 배우다 - 주인공 강복이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에요.

"자, 모두 조용히 하고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 봐~" 로

끝이 나고..

가족 모두 독립운동가 - 본격적인 한형석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먼구름 - 이제 한형석의 이야기가 끝나고..

"정말 멋진 분이지?" 라는 선생님의 말로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동안 음악 시간이 지루하고 괴로웠던 강복이도 한형석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알려지지 않은 한형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십니다.

한형석이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인 <아리랑>을 작곡했다는 사실!

한유한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활동했기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도요.

선생님은 어떻게 한형석이라는 이름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강복이는 엄마와 함께 한형석의 생가를 찾아보고 '자유아동극장'이 복원되길 바라며,

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음악혁명가 한형석은 이렇게 재미있는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서

책 속에 쏙 빠져서 단 숨에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마치 이야기 속의 강복이와 강복이 친구들이 음악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듯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도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어요.

 

"대학은 만주에 있는 의과대학으로 가거라. 어려운 때일수록 의술이 꼭 필요하다.

독립운동을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한형석의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남겨진 한형석에게 했던 말이에요.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큰 생각을 갖고 계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형석이 만들어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형석이 애국심과 독립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아버지가 있기에,

한형석이 존재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생각한 많은 애국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나와 내 가족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과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가족과의 단란한 삶, 따뜻한 집, 재산...

이런 것들을 뒤로 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를 희생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없는 일인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했던 한형석과 그의 가족들이 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한형석의 아버지가 한형석에게 나라의 독립에 대한 큰 뜻을 품게 했다면,

그 방법과 길을 제시해 준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 조성환이었어요.

아버지는 의사가 되라고 하셨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한형석에게

길을 제시한 사람!

조성환은 한형석에게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후,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 구국을 하라고 조언해었어요.

 

" 그거 아주 좋구나. 넌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 구국을 하거라."

 

아버지가 의술로 독립운동을 했다면, 너는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하라고...

딩~~~!!

저도 이 부분에서 큰 깨달음이 왔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진로를 찾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하는 것!!

한형석은 비록 아버지의 바램대로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한형석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방법이었고,

한형석의 예술 활동을 통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애국심 고취에 큰 힘을 얻게 됩니다.

독립을 위해선 민족의 정신 무장이 먼저고, 정신 무장을 위해서는 음악, 연극과 같은 예술활동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예술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그 조언은 한형석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죠.

 

한형석은 군을 위한 행진곡이나 군가를 만드는 것 말고도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어요.

어려운 시기에 상처받았을 아이들을 위로하는 일을 했던거죠.

모두들 먹고 살기 바빠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한형석이 한 거에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자유아동극장겸 색동야학원을 열어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희망을 주기 시작해요.

형편 때문에 오래 운영하지는 못햇지만 뒤늦게나마 한형석의 정신을 이어받고 기념하기 위해

자유아동극장이 복원된다고 하니 다행이 아닐 수 없네요.

 

부산의 부민동.

한형석의 생가가 있다고 합니다.

멀어서 당장에 가볼 수는 없지만 시간을 내어 아이와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요.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로 독립운동을 했던 한형석.

위인전이 삶에 멘토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이런 부분인거 같아요.

아이는 한형석처럼 큰 그림을 가지고 나와 나라를 위한 미래의 삶을 개척하는데 필요하고...

부모인 저는 한형석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 주었던, 아버지나 조성환처럼 아이들이 길을 찾는데

조언자가 되어주는...

 

한형석의 호가 '먼 구름'이라고 하네요.

먼 구름 한형석...

많은 사람들이 맑은 하늘 저 높이 떠 있는 구름을 보면 한형석이라는 음악가를..

나라의 독립을 노래했고, 음악과 아이들을 사랑했던 한형석을 떠올려보길 바래봅니다.

 

아, 그리고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 운동가에 대한 책이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고, 그 분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것인데,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만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참 안타깝네요.

그런 의미에서 상수리 인물 책방의 두번째 이야기 '나는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도 참 의미있는 책입니다.

 

 

 


 

3******a 2015.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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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독립을 노래하다 음악 혁명가 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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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독립을 노래하다 음악 혁명가 한형석     역사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었는데  광복 70주년만에 진주같이 훌륭한 분을 찾게 되어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음악가가 계셨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네요.   음악가 한형석은 일제 감정기때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로써 늘 나라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여  자신의 삶은 나라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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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명가 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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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었는데

 광복 70주년만에 진주같이 훌륭한 분을 찾게 되어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음악가가 계셨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네요.

 20150805_121415.jpg

음악가 한형석은 일제 감정기때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로써 늘 나라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여

 자신의 삶은 나라를 위한 삶인듯

그렇게 살고 계셨었는데 그 정신을 이어 받아 한형석 선생님도

그렇게 일생을 살다 가신 분이에요.

 

 20150805_121430.jpg

33년간 남의 땅에서 ​상하이,베이징,시안 등 중국의 여러도시를 돌아다니며

나라가 독립을 하기 전까지 음악으로 나라를 지켜왔다고 보면 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조국의 흙 한줌과 태극기를 주시면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조국을 위해 노력하겠노라

다짐하고 살아가셨답니다.​

 20150805_121524.jpg

비록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의사로써 헌신하진 못했지만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광복군의 사기를 높이는

(압록강 행진곡)을 만들어 민족을 하나로 만들고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을 공연하여

 민족의 자부심을 키워나갔습니다.

남한으로 돌아와 고국의 땅을 밟으면서도

그 정신은 끊임없이 이어져

자신의 사비를 털어 한국전쟁이후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자유아동극장을 만들어 민족의 소중함과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하셨답니다.

20150805_121513.jpg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조국의 독립을 노래하며

힘을 잃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반드시 독립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던 훌륭한

한형석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우리도 나라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고

이어나가야할 것 같습니다.

 

j******n 2015.08.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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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혁명가 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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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혁명가 한형석 상수리 인물책방 5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분은 음악으로 혁명을 이끄신 한형석이라는 분입니다. 위인 전집으로 많은 위인들을 만나보긴 했지만 한형석이라는 이름은 많이 낯설게 느껴져서 소개글을 꼼꼼히 볼 수 밖에 없었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이분의 심성이나 성향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답니다. 책은 현대 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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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혁명가 한형석

상수리 인물책방 5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분은 음악으로 혁명을 이끄신 한형석이라는

분입니다. 위인 전집으로 많은 위인들을 만나보긴 했지만 한형석이라는 이름은 많이

낯설게 느껴져서 소개글을 꼼꼼히 볼 수 밖에 없었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이분의 심성이나 성향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답니다.




책은 현대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강복이라는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이 되어 진행이

됩니다. 음악 시간에 압록강 행진곡이라는 곡을 배우면서 군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보고 광복군에 대한 이야기도 배우게 되면서 역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됩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부분이었죠.

그때 불렸던 군가라는 설명과 함께 선생님이 이곡을 만든 한형석 선생님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집안 자체가 독립운동을 하는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의사

공부를 한 그 당시에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었고,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8살 위인 형에게 의지를 하면서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어머니와 형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도우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답니다.

그렇게 33년이라는 세월을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혼자 생활을 해나가면서 독립을

염원하며 음악으로 나라를 위했다는 것이 놀라운 경험이었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독립운동이라 하면 총과 칼로 맞서는 독립군의 형태로만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문화 예술로 힘쓴 경우는 잘 모르던 상황이라

새로운 정보를 얻은 기분이었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인 아리랑을 만드신 분

광복군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압록강 행진곡'이라는 군가를 만드신 분

이 곡 외에 여러 곡의 군가를 만들기도 했다는군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응원가를 부르면서 뭉쳐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군가의 힘이

어떤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답니다.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도 나라를

위해 힘쓸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겪어 나가면서 아버지가 떠나면서 쥐어준

흙과 태극기를 간직하면서 그 외로움을 견뎌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소신을 가지고

진정 원하는 일을 누구의 도움이 없이 해나갔던 부분.

아버지를 따라 의사 공부를 할려고 했었지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간 일.

배울 부분이 너무 많은 한형석 선생님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존경할 만한 분이고, 이런 분을 왜 몰랐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선생님의 얘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얘기할 거리가 많답니다.

나중에 조국으로 돌아와서도 아이들을 위한 문화 공연을 연출하고 극장까지 만들고

예술교육에 얼마나 헌신하신 분인지를 배워 나가다 보니 어느새 책이 끝났답니다.

음악을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위인을 더 알게 된 계기가 된 책이라

그만큼 중요한 핵심을 역사와 함께 접하게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기분이었답니다.



g*******s 2015.08.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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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혁명가 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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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이 누구지?" ​   분명 아이들이 보는 인물전으로 나왔을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에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된 책이에요. ​무심코 앞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에 먼저 눈이 멈췄어요. 이 책을 쓴 최형미 작가 왈, "작가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기억을 찾아내어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는데 후훗, 이 정의 맘에 들어요^^ 그나저나 조국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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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형석이 누구지?"

​   분명 아이들이 보는 인물전으로 나왔을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에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된 책이에요. ​무심코 앞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에 먼저 눈이 멈췄어요.

이 책을 쓴 최형미 작가 왈, "작가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기억을 찾아내어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는데 후훗, 이 정의 맘에 들어요^^

그나저나 조국의 독립을 노래한 한형석이란 분은 어떤 분이실까요?

 

 

    일찍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셨던 한형석의 할아버지는

자녀들에게도 드넓은 세상을 배우라고 권하셨고, 장남인 한흥교는 유학을 떠나 열심히 공부해

부산 최초의 양의사가 되어요. 그 때가 한형석이 태어난 1910년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분, 일제 시대를 고스란히 겪어내셨구나요.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걸 아는 아버지 한흥교는 부산으로 돌아와 편할 수 있었던 삶을 버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일하며 독립운동을 하셔요. 태어나 아버지 얼굴을 몰랐던 한형석은

5살이 되던 해 가족과 중국으로 건너가 아버지와 처음 상봉하게 됩니다.

자신을 꼭 안아주는 아버지가 단단하고 커다란 나무 같다고 느낀 형석이에겐

아버지의 말씀이 하늘의 뜻과도 같았지요. 17살이 되던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온 가족이 고국으로 돌아가자 한형석은 덩그러니 혼자 중국에 남겨져

어떻게 하면 나라를 위한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요.

   역사가,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요. 17살이면 한창 자기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사춘기인데

유관순도 16살에,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대첩을 성공한 싸움에서도 그 또래가 많았다는군요.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목숨을 던진 그분들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    아버지는 한형석이 당신과 같은 의사로 독립운동을 하며 나라를 돕기 원하셨지만

한형석이 잘 하는 것은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 친구분인 조성환 선생님께 조언을 듣고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뜻은 받들되 '예술구국'을 하기로 마음 먹어요.

​아, 그 순간 뭉클했어요. 저 또한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부모이기에

부모가 어떤 마인드로 살아가느냐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느냐가

고스란히 그 삶으로 자녀에게도 전해지고 가르쳐지는 것이었지요. 참 부모의 자리가 두렵습니다.

 

    에술대학을 졸업하고 한형석은 중국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계속 음악활동을 해요.

중국인을 위한 군가를 작곡하고 아동가무극인 '리나'도 발표하며 큰 호응을 얻지요.

이 때 한형석은 작곡자에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한유한이라는 다른 이름을 써요.

나라를 위해 독립을 돕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속상해 나라를 그워한다는 의미로

생각할 유, 나라 한 자를 써서 '한유한'이라고 한 거에요.

나중에 1997년, 중국의 음악사 학자인 량마오춘 교수가 <한유한 씨,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글을 잡지에 실으면서 그분이 한국에 살고 있는 한형석인 것을 알고 찾아왔다고 해요.

아~ 그런데 한형석 선생님은 1996년에 돌아가셔서 결국 만남이 이뤄지지 못했다는군요.

사연이 넘 안타까워서 읽고 있던 저도 탄식이 흘러나왔어요.

 

 

   한형석이 중국 군대 음악교관으로 소속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오해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형석은 자신의 방에 아버지가 주셨던 태극기와 고향에서 갖고 온 한 줌의 흙을 놔두고

순간도 자신이 조국을 잊어본 적이 없음을 밝히며

한국청년간부 훈련반에도 소속되어 그들을 도왔어요.

그리고 우리 전통 민요와 창작곡을 섞어 오페라 <아리랑>도 무대에 올리고

박동운이라는 청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의 한 용사> 작품도 올려 인기를 누려요.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된 한형석은

<국기가>, <광복군 제2지대가>, <압록강 행진곡>, <조국 행진곡> 등도 만들고 책도 펴내며

위문공연도 다니며 공연도 했어요. 또 전쟁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동극장도 만들고 합창단 지휘와 연극 활동에도 힘쓰고요.

어른들의 욕심으로 일어난 전쟁,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선생님의 예술혼과 열정 덕분에

죄없는 아이들의 고단한 삶은 위로를 받고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일본의 항복으로 찾아온 광복~

광복군은 다시 새로운 임무를 맡아 중국에 흩어진 동포를 모으고

일본군에게 끌려간 한국 군인들을 다시 조국으로 보내는 일을 맡게 되요.

한형석도 동포들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며 계속 한국의 소식을 듣다 1948년,

드디어 조국으로 가는 마지막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합니다. 

머나먼 땅에서 군사 훈련을 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애썼던 광복군의 존재가 새롭게 느껴졌어요.

 

   같이 나랏일을 하자는 제안도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겸손함이 참 대단했는데요.

문화극장 설치 담당자로 시작한 일이 안타깝게 개관 일주일만에 한국전쟁 발발로

무기휴관에 들어가는 아픔도 겪으셨더라고요. 그 후로도 예술가로서 교육가로서

자유아동극장 겸 색동야학원도 설립하시고 합창단과 연극협회, 부산대학교 교수도 역임하셨대요.

 

  량마오춘 교수에 의해 예술구국한 일이 알려진 한형석 선생님의 업적.

​총칼로만 싸우는 게 독립운동이 아니라 누군가는 음악을 연주하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시와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어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

그 시대, 어둡고 깜깜하기만 했던 시절에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던

예술인의 한 분으로 살아가신 한형석 선생님.

당신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가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r******5 2015.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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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명가 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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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명가 한형석벌써 여름방학을 한지도 1주일이 지났네요. 짧은듯 하면서도 긴것이 아이가 방학동안 해야할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다독인데요, 그런 면에서 역사전집은 열씸히 읽히고 있는데 아직 인물쪽은 진도가 나질 않는데, 아무래도 글밥도 그렇고 두께감이 좀 있다보니 아이가 자꾸 손이가게 되질 않는것 같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음악 혁명가 한형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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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명가 한형석

벌써 여름방학을 한지도 1주일이 지났네요.

짧은듯 하면서도 긴것이 아이가 방학동안 해야할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다독인데요, 그런 면에서 역사전집은 열씸히 읽히고 있는데

아직 인물쪽은 진도가 나질 않는데, 아무래도 글밥도 그렇고 두께감이 좀

있다보니 아이가 자꾸 손이가게 되질 않는것 같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음악 혁명가 한형석은

상수리 인물 책방 시리즈 중 5번째 권으로 민족의 노래, 혁명의 음악을 작곡한

위대한 예술가인 한형석의 삶을 그린 책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음악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한 의지와 열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사실 저도 한형석이란 음악가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_+


일제 강점기시절 일본은 우리 민족을 갖은 방법으로 탄압했고

그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는데, 그 당시 음악과 시, 소설, 그림등으로 조국의 독립에대한

의지를 불태운 이들 중 한명이 바로 한형석이 었습니다.
일제강점기시절 음악가인 한형석은
[압록강 행진곡]과 같은 여러 군가를 작곡해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광복군의 사기를 높여 주었고, 오페라 [아리랑]을 무대에 올려
길고 긴 항일 운동으로 지친 사람들을 달래고 애국심을 드높였습니다.
이러한 예술 활동으로 한형석은 민족의 자주 독립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조국이 독립할 때까지 33년간 낯선 중국 땅을 떠돌며 지냈습니다.


비록 우리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기가], [광복군 제2지대가], [조국 행진곡] 등
주옥 같은 독립군가를 작곡한 위대한 예술가로, 음악 혁명가 한형석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한형석의 삶을 그린 책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음악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강한 의지와 열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한형석의 위대한 작품도 한번 감상해보면 더욱 좋지 싶어요~ ^^


p*******3 2015.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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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구름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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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지요? 선생님   선생님의 호인 ‘먼 구름’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겸손한 삶을 살고 가신 한형석 선생님을 이 후배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음악사학자 량마오춘 교수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생님을 영원히 묻혀 계셨던 분으로 만들었겠지요? 저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무심히 보는 먼 구름처럼 선생님이 계셨고,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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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신지요? 선생님

 

선생님의 호인 먼 구름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겸손한 삶을 살고 가신 한형석 선생님을 이 후배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음악사학자 량마오춘 교수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생님을 영원히 묻혀 계셨던 분으로 만들었겠지요? 저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무심히 보는 먼 구름처럼 선생님이 계셨고,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던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독립이 된 후에도 정부의 고위관료가 되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길을 택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위인전들과 다르게 평범하게 태어나신 것이 묘사되고, 그 어려운 일제 강점기의 시대 상황 속에서 성장하신 것을 담담하게 그려나가 처음에는 얼마나 큰 일을 하신 것인지 저도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뭐가 음악혁명가라는 것이지? 하는 의문도 들었지요. 그런데, 이런 화려하지 않고, 간결한 전개가 책을 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울림으로 계속 제 안에서 퍼져 나가네요. 총칼이 아닌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강하게 하여 일제에 대항하게 한 선생님의 일은 총칼보다 더 강력한 무기라 느껴졌습니다.

 

  자유아동극장이지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극장을 설립하신 선생님의 그 열정은 지금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돌보고 싶다는 저의 모습이 얼마나 작은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환경이나 저의 한계를 핑계되며 자꾸 움츠러들고 있는 제게, 저보다 더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극장을 운영하신 선생님을 뵈면 저가 맞닥뜨리고 있는 환경이나 제 한계는 명함도 내밀 수 없네요.

 

  선생님과 상록수합창단의 압록강행진곡연습 일화를 통해서는 선생님께서 작곡하신 곡들에 혼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CD가 있거나 출판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압록강 행진곡을 비롯한 선생님의 음악들을 실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바로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언젠가 부산에 가게 되면 선생님 생가나 자유아동극장에 한 번 가서 더 자세히 뵐 기회가 있겠지요? 늦었지만 선생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2 201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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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음악혁명가 한형석 조국 독립을 노래하다
"[상수리] 음악혁명가 한형석 조국 독립을 노래하다" 내용보기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조명하는 위대한 예술가 '민족의 노래, 혁명의 음악'을 작곡한 위대한 예술가, 한형석.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라면 가장 첫 번째로 생각나는 인물이 바로 안익태 였어요. 3.1 운동에 가담하였고 애국가를 만든 인물로 아이들에게 안익태는 위인전에서도 자주 보았기에 익숙한 편이구요. 음악혁명가 한형석은 이번에 아이 책을 통해
"[상수리] 음악혁명가 한형석 조국 독립을 노래하다" 내용보기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조명하는 위대한 예술가

'민족의 노래, 혁명의 음악'을 작곡한 위대한 예술가, 한형석.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라면

가장 첫 번째로 생각나는 인물이 바로 안익태 였어요.

3.1 운동에 가담하였고 애국가를 만든 인물로

아이들에게 안익태는 위인전에서도 자주 보았기에 익숙한 편이구요.

음악혁명가 한형석은 이번에 아이 책을 통해 저도 처음 알게 된 인물입니다.

"총칼로만 독립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음악으로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음악가로 안익태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인물이더라구요.

1910년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때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도왔고, 가족은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독립운동을 도운 아버지를 보며 자란 한형석은

어릴 때부터 나라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죠.

당시 독립운동은 총과 칼로 친일파를 처단한느 식의 무력 항쟁이 대부분이었는데

한형석은 음악을 통해 독립운동의 뜻과 의지를 널리 았렸습니다.

압록강 행진곡과 같은 여러 군가를 작곡해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광복군의 사기를 높여 주었고,

194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오페라 '아리랑'을 무대에 올려 길고 긴 항일 운동으로

지친 사람들을 달래고 애국심을 드높였습니다.

이러한 예술 활동으로 한형석은 민족의 자주 독립을 꿈꾸었는데요,

전쟁이 목숨도 빼앗고 희망도 빼앗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주는 것이 예술이라며

피폐해진 민족의 정신과 감성을 음악으로 위로하고자 하였지요.

이번에 만나게 된 인물, 음악혁명가 한형석!!

이렇듯 우리의 역사 속에는 훌륭한 일을 하신 분들이 많지요.

 이렇게 조명해 봄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고

또 감사하는 마음을 새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p*******8 2015.07.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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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이란...
"애국이란..." 내용보기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김구선생님 등으로만 알았는데이번에 이 책을 통해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한 한형석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예술을 통한 독립운동.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이고 가슴을 펄떡이게 하는 음악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한형석 선생님의 이야기를초등학교 교실에서 부터 천천히 펼쳐져나갑니다.초등학생 강복이와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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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김구선생님 등으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한 한형석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술을 통한 독립운동.

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이고 가슴을 펄떡이게 하는 음악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한형석 선생님의 이야기를

초등학교 교실에서 부터 천천히 펼쳐져나갑니다.

초등학생 강복이와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로 한 평생을 살아오신

한형석선생님의 출생에서 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못다이룬 꿈을 이야기하며 돌아가시기 전의 일화로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은 안 잘 모르고 지나갔던 음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한형석 선생님에 대한

일대기 책이 초등학생 4학년 부터 읽을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s******3 2015.07.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