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이완용의 글씨는 그림이다.
"이완용의 글씨는 그림이다." 내용보기
신문기사를 통해 처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 추사 선생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매국노라 비판을 받고 있는 자라고는 하나 나름 명필이라는 소문이 있던 이완용의 이름을 대놓고 제목에 넣었던 책과 저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책에 관련된 정보를 찾다가 근거나 맥락도 없이 비난으로 점철된 서평을 보게 되었고, 묘한 반발심이 생기
"이완용의 글씨는 그림이다." 내용보기



신문기사를 통해 처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 추사 선생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매국노라 비판을 받고 있는 자라고는 하나 나름 명필이라는 소문이 있던 이완용의 이름을 대놓고 제목에 넣었던 책과 저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책에 관련된 정보를 찾다가 근거나 맥락도 없이 비난으로 점철된 서평을 보게 되었고, 묘한 반발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접 읽어보고 내가 판단한 서평을 공유하여 책과 저자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는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구매하게 된 책... 저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었고, 서화에 관련된 지식이 적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객관적이고 검증된 자료를 활용해 이완용을 서술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이완용의 글씨를 내 나름의 지금까지 경험에 의한 판단을 해보려 했다. 인생을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며 나름의 판단 기준을 만들어 왔는데, 걸음걸이나 행동, 옷 매무새를 보아도 사람의 인격이나 성격이 보인다. 더 나아가 말을 해보거나 직접 작성한 글을 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글이 아닌 글씨로도 그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기준에서 내가 바라본 이완용의 글씨는 명필이라기 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글씨였다. 예쁘게 그리려 노력한 그림이라는 느낌과 함께 겉으로 들어난 외형적 기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깊이보다는 화려함이 더 빨리 와닿는 글씨였고 사람에 따라 명필이라 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일단, 글씨에 대한 개인적 느낌을 먼저 정리하고 책을 읽어나갔다. 이완용은 글씨를 누구에게 배웠는지 추측하는 부분에서 추사 선생이 등장했다. 추사의 제자 이상적의 사위 이용희의 제자가 이완용이었고, 같은 우봉이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 최소한 글씨를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되기도 했다. 아마도 글씨를 배워야 한다는 당위성에 앞서 최고의 스승에게 배워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추측도 해본다.



하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근대에 접어들어서도 글씨가 미술의 영역이었다는 점이다. 미술이라는 말의 용어가 일본에 의해 그림만 분리되어 정의되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당대 문인들이 글씨를 예술의 영역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을 사회적 분위기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반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완용은 권력을 이용해 당대 미술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의 그림으로 풀이하자면 현재 국무총리가 그림을 좋아하고, 다작을 취미로 했다면 어떻게든 그림 하나라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 그림이 예술적 가치가 높고 낮음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에 줄을 대기 위한 증거로나 권력자와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라도 총리의 그림 한 점이 가지는 의미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당대에 이완용 글씨를 얻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인기로 치부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들이 조선에 왔다가 가면서 이완용의 글씨를 기념품처럼 가지고 갔다는 것은 조금 의외이기도 한데, 아마도 예쁜 글씨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선호도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은 해본다. 책을 읽어가며 다양한 그의 글씨를 보게 되면서 핵심을 유지하는 일관성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힘, 지조, 철학이 없는 글씨였고, 과도한 외형에 대한 집착은 글씨가 가지는 의미를 축소하게 만들었다. 글씨가 가지는 뜻과 메시지는 보이지 않고 점점 화려한 외형만 부곽되는 그림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최선을 다해 객관적 정보를 기술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독립문 편액의 글씨를 쓴 주인공을 검증하는 부분에서 이완용과 김가진의 천자문 친필까지 대조하며 검증하려는 노력은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안중근의 글씨와 비교하는 대목에서 표현되는 의견은 크게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각자의 시선이 있는 것이니 수용하며 넘어갔다.



일제의 백화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서화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알게 되었는데, 현재도 백화점에서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는 특징이 만들어진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보러 백화점에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문화에 하나였었다.



그 외에도 간송 선생의 "한남서림"의 존재감이 상당했다는 사실 등을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굳이 매국노라 비난을 받는 인물을 연구하며 책으로 펴내는 이유를 말미에 설명하며 "채봉채비 무이하체", 즉 무를 캐는 이유가 뿌리에만 있지 않다는 말이 깊이 와닿는다. 책을 내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지 않았을 저자 입장에서 그래도 이완용과 그의 글씨를 통해 그가 우리의 미술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 또 다른 이완용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헤아려 본다.



이완용 덕분에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료들도 많이 남아있었고. 저자의 연구를 통해 근대 우리의 서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넓어졌다는데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2 2026.04.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