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9)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6%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11%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1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암울한 일제시대를 읽으며 우리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암울한 일제시대를 읽으며 우리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용보기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My Review MMCLXXXIX / 인물과사상사 3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여덟 번째 리뷰는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 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이다. 그를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로 소개한 까닭은 그가 쓴 책들에서 '좌표'를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
"암울한 일제시대를 읽으며 우리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용보기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LXXXIX / 인물과사상사 3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여덟 번째 리뷰는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 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이다. 그를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로 소개한 까닭은 그가 쓴 책들에서 '좌표'를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시선을 '날것 그대로' 담담하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을 뿐,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나름 '객관적인 서술자'로 남으려 무던하게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좋았다. 아무래도 '한 쪽의 관점'에 서게 되면 '다른 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는데,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다보면 그 양쪽의 관점을 모두 관찰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단 말이다. 거기에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한 해석'을 가미하고 있기에 조금 더 '객관적인 해석'으로 이해하기에도 무척 좋았다. 물론 이런 두루뭉술한 문장을 싫어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제 막 역사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관점 포인트 : <한국 근대사 산책> 시리즈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부터 5권까지는 '개화기 시대'를 다루었고, 6권부터 10권까지는 '일제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6권은 흔히 '일제강점기'라 불리는 우리 역사가 암울했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일제시대는 크게 셋으로 나누곤 한다. '무단통치기''문화통치기', 그리고 '민족말살기'로 말이다. 그 가운데 6권은 '한일 강제 병합'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까지 약 10년 간을 다루고 있다. 바로 위에서 열거한 '무단통치기'에 해당한다.


'무단통치기'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통치속에 숨조차 제대로 살기 힘든 시기였다. 일제의 헌병과 순사 들은 조선인이라면 아무나 붙잡아 공개적으로 '태형'을 하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조선인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제맛(!)이라면서 문명인이 된 일본제국인이 미개한 조선인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는데, 더럽고 어리석은 조선인은 일본인의 선심을 제대로 해야리지도 못하니 때려서라도 '문명개화'를 시켜주겠으니 감사히 쳐맞으라는 식이었다. 이런 무자비한 통치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만에 하나라도 조선인이 똘똘 뭉쳐서 저항이라도 할까봐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전체 인구수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1910년대 당시 한국은 여러 모로 일본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강제 병합을 당한 직후였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나라 잃은 처지'로 전락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러니 기가 죽어 있을 수밖에 없고 일본의 무단통치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 민중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제의 통치가 좋은 방식인지, 나쁜 방식인지조차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조선 때에도 '수탈' 당했고, 대한제국 때도 '수탈' 당했으며, 이제 나라를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수탈' 당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교육이라도 제대로 받고 있었다면 '누구'에게 수탈을 당했고, 그렇게 수탈 당한만큼 '정책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배워서 알아서 분노라도 했겠지만, 그런 기본적인 권리조차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 민중들에게 무엇에 대한 분노를 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이놈에게 빼앗기나 저놈에게 빼앗기나 '빼앗긴 놈'은 그저 불쌍한 처지일 뿐,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1910년부터 1919년까지 일제가 악착같이 수탈해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우리 민중들도 뭔가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1919년 3월에 벌어진 '3·1 만세 혁명'이 그랬다. 인간 대접 받지 못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얻어 터지고, 기름 짜듯 쥐어짜이면서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가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편이 뺏어갈 때와 남의 편이 뺏어갈 때의 차이를 느끼게 된 것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겪으며 배우는 통에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건 바로 '자존심'을 짓밟힌 것이다. 우리 편이 빼앗아갈 때는 나중에 또 빼앗아가기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짓밟지 않았고 주위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이겨낼 '여력'이라도 남겨두고 빼앗아갔다. 그런데 일제가 '수탈'을 할 때에는 인정사정 봐주질 않았다. 그들은 늘 '합법'이라는 허울 좋은 말과 함께 토지와 쌀 등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탈탈 털어 갔고, 수탈 당한 민중이 죽든지 살아남든지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저들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악착같이 빼앗아갔다.


이런 경험을 강제로 당하면서 우리 민족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건 바로 '안간힘'이었다. 고통이나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힘이었다. 일본놈들이 빼앗아가면서 무식해서 빼앗긴다고 하니 악착같이 학교에 가서 배우려 들었다. 미개해서 수탈을 당한다고 하면 그 잘난 문명이란 것을 배우려 들었다. 더러운 조센징이란 소리를 들으면 깨끗하고 청결하려 애썼다. 그렇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지닌 힘이었다. 오늘날 전세계가 주목하는 '한국문화에 관한 열풍'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가지려는 악착같은 성정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우리 것'이 없더라도 언젠간 그것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도록 묵묵히 참고 이겨내며 결국 가질 수 있도록 안간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불과 100여 년 뒤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고, 다른 이들을 이끌어갈 선도국가가 되었다. 이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저력이다.


나가는 글 : 사실 100년 전에도 일본은 한국의 이런 저력을 감지하고 있었다. 저들이 앞선 문명과 기술, 경제력을 내세워서 세계 침략을 하면서도 유독 '한국'을 악착같이 짓밟으려 했던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저들이 잘나서 '못한 한국인'을 함부로 죽이고 때리고 빼앗고 있는데도 한국인은 순순히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지금 당장 '소의 힘줄(일명 '소좃매')' 끝에 납과 같은 무거운 추를 매달아 공공연한 장소에서 엉덩이를 발랑 까놓고 살점이 터져나가도록 매질을 하면서도 한국인들은 비명을 지르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당장은 무서움에 벌벌 떨고 두려움에 꽁꽁 숨었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어 떳떳하고 당당하니 저들이 나쁜 놈이다. 그러니 저들을 압도할 실력을 기르자. 그래서 본때를 보여주자'하는 오기와 독기로 똘똘 뭉치게 만든 것이다.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상대와 대적하면서도 '도덕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하면서 말이다. 비겁한 반칙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철저히 실력을 쌓으려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안간힘은 신통하게도 먹혀 들었다.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인들도 의아했던 점이 있었단다. 덩치만 보면 일본인은 왜소하고, 한국인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 쬐끄만 일본인이 덩치 큰 한국인을 매질하고 수탈하는 장면을 보면서 말이다. 더구나 외모적으로도 일본인은 꾀죄죄했고, 한국인은 새하얗고 준수했단다. 그런데도 일본인에게 억압 당하고 수탈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는 소회를 밝히는 이들도 많았단다. 하지만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에 성공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었다. 그런데 그들의 성정이 원래부터 '야만'스러운 탓에 잘난 자부심과 만나 '폭력적인 방식'의 통치 수단을 삼고 식민경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무단통치'가 한국인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저들이 '인류애'를 발휘하여 저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명개화'를 우리에게 좋은 의도를 품고 친절하게 이끌어주었다면 우리는 더욱 잘 되어서 이웃나라 간에 더욱 시니지 효과를 발휘하며 전세계에 동아시아 문화를 널리 퍼뜨리는데 엄청난 성과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우리를 너무 만만히 봤고, 너무 함부로 대했으며, 우리가 가진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로 하여금 복수심에 불타는 '경쟁심'만 자극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곁눈질로만 배워서 저들이 자랑하는 문명을 따라잡을 위력을 갖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불과 100년 만에 우리는 따라잡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앞서 나갈 것이며, 저들은 왜 뒤쳐지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호되게 당할 일만 남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는 '일제시대'를 암울하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분명 그들은 우리를 억눌렀고 털었으며 짓밟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눌리고 털리고 밟히면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들여온 '신문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일본제국을 위해서 들여온 모든 것들을 '눈여겨' 보면서 무섭도록 배워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으면 일본 학생 100명 당 한국 학생 10명 뿐이었다고 해도, '전교 1등'은 한국 학생이었고, 일본인을 위한 기업을 만들었어도 일본 근로자 월급은 100원이었다면 한국 근로자는 60원만 받았어도, 그 돈을 알뜰살뜰하게 쓰며 '공부'하는데 썼고, '독립'하는데 썼다. 그렇게 못먹고 못살면서도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차'가 들어오고, '영화관'이 들어오면 직접 타보고 관람하면서 흥을 내며 살아갔다. 단지 타고 보면서 즐기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지금은 '남의 것'이지만 결국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읽혔다.


그래서 앞으로 '일제시대'를 암울한 기분으로만 공부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식한 한국을 깨우쳐주려 식민통치를 무릅쓴(?) 일본제국의 호의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는 엉터리 해석을, 난 할 생각이 없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마디로 '빵점'이다.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야욕'만 가득 담은 못난 방식이었고, 자격지심에 더 삐뚫어진 탐욕으로 점철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일제시대에 일본인에 의해 벌어진 일들을 호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일제의 억압과 수탈과 고문 속에서도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고 숱한 위기에 처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이토록 빠른 시일에 '선진국'이 되고, '선도국가'가 되어 전세계인이 '한국문화'를 아낌없이 칭송하게 만든 위대한 발자취를 다시금 되돌아보기 위한 역사공부를 하려 한다.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도 역시 '균형 잡힌 역사서술자'의 도움이 컸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26.01.2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객관적인 시각으로 근대사를 읽다 6
"객관적인 시각으로 근대사를 읽다 6" 내용보기
국가의 치욕이라고 일컬어지는 1910년의 ‘경술국치’. 일본은 그것을 한일 두 나라가 합친다는 의미에서 ‘한일합방’이라고 불렀으며,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명칭이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일본의 영향으로 한국이 빠르게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궤변을 펼치고 있는 뉴라이트 계열의 정치인과 학자들도 존재하고 있다. 일제
"객관적인 시각으로 근대사를 읽다 6" 내용보기

국가의 치욕이라고 일컬어지는 1910년의 경술국치’.

 

일본은 그것을 한일 두 나라가 합친다는 의미에서 한일합방이라고 불렀으며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명칭이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일본의 영향으로 한국이 빠르게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궤변을 펼치고 있는 뉴라이트 계열의 정치인과 학자들도 존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 아무리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더라도국권을 잃고 36년 동안 비참한 현실에 놓여있었던 역사를 망강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라 잃은 민족의 비애는 당장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대적 토지 측량을 명분으로 농민들의 땅을 수탈하는 것은 물론그들이 세운 총독부를 중심으로 갖가지 명목으로 수탈과 탄압을 일삼았던 것이다.

 

항일의식을 저지하기 위해 이른바 무단통치를 실시하며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민중들의 침묵을 강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19년 3.1운동은 대대적으로 벌어졌고이에 당황한 일제는 잠시 문화정책으로 민중들을 회유하려 했다.

 

경술국치 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치열하게 항일 투쟁을 벌여나갔으며특히 상해의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등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이 뚜렷한 성과를 이루고 있었다.

 

국내에서도 물산장려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며독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총독부의 문화정책이란 명분 아래상대적으로 다양한 문화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18.08.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가슴아픈 한국전쟁 ㅠㅠ
"가슴아픈 한국전쟁 ㅠㅠ" 내용보기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의 혼란과 재건 과정을 깊이 있게 이야기 해줍니다. 일제 강점기의 상처를 안고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이 겪는 정치적 갈등, 이념 대립, 사회적 혼란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또한 전쟁이 초래한 참혹한 현실과 국민들의 고통, 그리고 전쟁 이후 재건과 성장의 노력까지 폭넓게 조명합니다.
"가슴아픈 한국전쟁 ㅠㅠ" 내용보기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의 혼란과 재건 과정을 깊이 있게 이야기 해줍니다.
 일제 강점기의 상처를 안고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이 겪는 정치적 갈등, 이념 대립, 사회적 혼란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또한 전쟁이 초래한 참혹한 현실과 국민들의 고통, 그리고 전쟁 이후 재건과 성장의 노력까지 폭넓게 조명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n****7 2025.08.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한국 근대사 산책 6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한국 근대사 산책 6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내용보기
책소개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독서광이자 자료수집광, 주목받는 사회문화비평가이자 언론학자인 강준만 교수가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이 쉽고 편안하게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근대사를 내놓았다. 이 책은 근대 한국의 풍경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편견 없이 보여줌으로써 ‘교과서’가 지니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사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다. 특정한 주장을 내세
"한국 근대사 산책 6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내용보기

책소개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독서광이자 자료수집광, 주목받는 사회문화비평가이자 언론학자인 강준만 교수가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이 쉽고 편안하게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근대사를 내놓았다. 이 책은 근대 한국의 풍경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편견 없이 보여줌으로써 ‘교과서’가 지니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사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다. 특정한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종합에 의미를 두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주장을 빠짐없이 두루두루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대의 신문기사, 칼럼 등을 광범위하게 이용하여 지나간 역사의 파편들을 큰 그림으로 종합하면서 역사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역사책이라기보다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할 정도로 영상적이고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당시 연애풍속도에서부터 유명인사의 정치사회적 스캔들, 유행 패션과 히트 가요, 대박 영화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또한 재미있게 근대사에 빠져들던 와중에 공공의식의 결여, 잘 살기 위해 사회구조를 바꾸기보다 오히려 학벌주의 영어열풍 등 잘못된 세태에 편승하고자 발버둥치는 이유 등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어느새 다가와 있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 제6권은 국권침탈의 치욕을 겪은 이후 조선인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머리말 통합의 역사를 위하여

제1장 나라 잃은 민족의 비애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떠난 사진신부 | 기독교 죽이기를 위해 조작된 105인 사건 |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 | 일본에 축복이 된 제1차 세계대전

제2장 일제의 조선 민중 기죽이기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 | 나철의 자결, 순종의 일본 방문 | 러시아 2월혁명과 10월혁명 | 한강 인도교, 쌀 파동, 스페인 독감

제3장 침묵을 강요한 무단정치
무단정치시대의 신문과 문학 | 항일언론인 장지연의 친일논란 | 변사의 등장, 연쇄극의 탄생 | 호남선 개통, 관광택시 등장

제4장 31운동의 폭발
민족자결주의와 고종 독살설 |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 | 2개월간 200회 200만 명 참여한 31운동 | 타오르는 별 유관순 | 제암리 학살 사건 | 31운동과 지하신문의 활약

제5장 일제의 문화통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 일제의 문화통치와 친일화 공작 |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창간 | 한국 최초의 여기자 이각경최은희

제6장 독립투쟁과 배관주의
황량한 폐허의 조선과 문학 | 의열투쟁과 청산리 전투 | 사기적 지방자치 선거 | 백두산 민족주의

제7장 임시정부와 민족개조론
왜 독립운동가들은 동족상잔을 벌였는가? | 왜 김구는 김립 암살을 통쾌하게 생각했는가? |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논쟁

제8장 물산장려운동형평운동어린이운동
쳐다보니 안창남, 굽어보니 엄복동 | 물산장려운동, 금주금연운동 | 한 맺힌 백정의 형평운동 | 방정환의 어린이날 제정

r*****c 2020.03.17. 신고 공감 0 댓글 0